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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2017년 12월 13일>
* 섬에 있는 서점 by 개브리얼 제빈 - 너무 사랑스러운 빨간 책, 흔하지 않다
* 평점 : ★★★★★
'난 책이 너무너무너무 좋아'..라는 이미지를 뿜뿜 풍기며 티도 많이 내고 다닌다.
그 어떤 곳이든 꽂혀 있는 책을 보면 무슨 책이 있나.. 하고 책 앞으로 달려간다.
책 권함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나름 책을 골라주려고 노력도 하고 말이다.
그냥 책만 보면 설레인다.
하지만, 그것은 책을 보고 설레이는 것이지 책을 읽고 설레이는 것은 아니다.
아직 가끔 스쳐지나가듯 책을 읽으며 묘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말했듯이 스쳐지나가는 감정이라 정확하지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설레인다는 것!!
이 책을 보며 그걸 느껴버리고 말았다.
빨간 표지의 양장본, 뭐 대단한 것은 별로 없다.
'The Storied Life of A.J.Fikry'의 제목을 가진 '섬에 있는 서점'..
제목만 들어도 잔잔함이 느껴지고, 작은 마을의 서점의 여유로움과 평범함이 느껴진다.
피크리는 앨리스섬의 서점주인이다.
사랑하던 아내를 사고를 잃어 삶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하며 지낸다.
고집이 세고, 주관까지 뚜렷한 피크리는 출판사 신입 영업사원을 잔인하게 보내버린다.
그 날, 그는 희소성이 높아 가격이 상당한 작품을 도난을 당하는 일마저 겪게 된다.
운동을 하고 온 사이 서점에 놓여있는 아기..
그렇게 피크리는 마야를 만나게 되고, 그는 마야를 입양하여 아빠노릇을 한다.
피크리라는 주인공이 마야를 키우면서 보여주는 인간미, 그런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게 되고..
피크리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P.98) 에이제이는 분홍색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마야를 보고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뭔가 참을 수 없는 기운이 속에서 간지럽게 부글거리는 느낌이었다.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거나 벽이라도 쾅 치고 싶었다. 술에 취한 기분, 아니면 적어도 탄산이 들어간 기분이었다.
미치겠군, 처음엔 이런 게 행복인가 보다 했다가, 이내 이건 사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빌어벅을 사랑, 그는 생각했다.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감정인가. 그것은 죽도록 술 마시고 장사를 말아먹겠다는 그의 계획을 정면으로 가로막았다. 제일 짜증나는 것은, 사람이 뭔가 하나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결국 전부 다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 꾸밈없는 사랑에 대한 표현이 다정하지 못한 피크리의 모습처럼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아차 싶은 탄식, 조심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또,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대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이 툴툴대는 모습과 겹쳐보여며 웃음을 자아낸다.
이 문장들을 여러 번 읽으며, 부러움이 가득찼다. 작가는 괜히 작가가 아니구나..하면서...
(P.111) 마야는 자신의 손을 에이제이의 손 위에 얹어 아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막는다. 아이는 눈으로 그림과 글 사이를 왔다 갔다 훑는다.
돌연 '빨강'이 빨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이름이 마야라는 것을 알게 되듯, 에이제이 피크리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듯,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이 아일랜드 서점임을 알게 되듯.
(P.119)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P.121) "내가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많지 않아요. 선생들은 숙제로 내주고, 부모들은 자식이 뭔가 '고급'스러운 것을 읽는다고 즐거워하죠. 하지만 애들한테 그런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니까 애들이 자기는 독서랑 안 맞는 줄 알게 되는 거라고요."
* 우리는 이 문장에서 많은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어른들이 골라서 정해놓은 학년별 권장도서, 추천도서를 지금의 어른들은 그 시기에 읽었는가?
읽었다면 그 도서들이 재미있었다고 기억을 하는지?
전~~혀.... 그렇지 않다.
40대가 된 지금 읽어도 그때 읽었던 권장소설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시대상으로 맞지 않아 어려운 책들, 물론 좋은 책들이기는 하나 아이들에게 어른도 이해못하고, 재미없는 책들을 권하는 사회가 과연 책을 권장하는 사회인지 물어본다.
아이들 눈에 재미있는 책이 권장도서가 되어야 하고, 추천도서가 되어야 도서관에 발 디딜 틈이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P.262) 에이제이는 종종, 이 세상 최고의 것들은 죄다 고기에 붙은 비계처럼 야금야금 깎여나가는 중이라는 세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레코드 가게가 그랬고, 그다음엔 비디오 가게가, 신문과 잡지에 이어 이제는 사방에 보이던 대형 체인 서점마저 사라지는 중이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형 체인 서점이 있는 세상보다 더 나쁜 유일한 세상은, 대형 체인 서점'조차' 없는 세상이었다.
적어도 대형 서점은 약이나 목재가 아니라 책을 팔지 않는가! 적어도 그런 서점에는 문학 공부를 한 사람, 책을 읽을 줄 알고 사람들에게 책을 골라줄 수 있는 사람도 좀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그런 대형 서점이 온갖 출판 쓰레기를 만 부씩 팔아치우는 동안 아일랜드 서점에서는 순문학을 백 부는 팔 것 아닌가!
(P. 303) 죽는 건 겁나지 않아. 하지만 내 지금 상태는 약간 두려워. 날마다 내 존재는 조금씩 둘어들어. 오늘의 나는 말이 결여된 생각이지. 내일의 나는 생각이 결여된 몸뚱이가 될 거야. 그렇게 되는 거지. 하지만 마야, 지금 네가 여기 있으니 나도 여기 있는 게 기뻐. 책과 말이 없어도 말이야. 내 정신이 없어도. 대체 이걸 어떻게 말하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 어찌 이토록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친 자식이 아닌 마야를 자신이 죽어가는 시간에도 이렇게 사랑이 뚝뚝 떨어지게 애타하는지..
에이제이의 죽음앞에 가슴이 찡해온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 넘의 눈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오려해서 요즘은 버겁다.
"우리는 우리가 수집하고, 습득하고, 읽은 것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 있는 한, 그저 사랑이야.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진정 계속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해."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 이야기등에서 나오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설명해놓은 주석들까지 꼼꼼하게 읽느라 좀 정신이 없었지만- 고전문학작품을 많이 접하지 않은 나여서 그랬을거지만- 그럼에도 몰입이 흐트러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책에 해박한 지식이 없어도 읽기가 부담이 없는 책..
보며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읽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러다 '내가 이 책을 즐기며 읽고 있구나..'.. 알아챘다.
이런 감정에 대해 서툰 나는 이 책이 특별해졌다.
이 책은 책을 즐긴다는 감정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주위를 돌아보면 피크리같은 사람이 있은 것 같은, 픽션이 아닌 일상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감동,
그렇다고 어디선가 봤음직한 흔한 이야기가 아닌 사랑스러움이 퐁퐁 솟아나는 책이다.
너무 사랑스러운 빨간 책..
이 책을 보내기 아쉬워 자꾸만 눈길을 멈출 수 없게 만든 책이다.
"서점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