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지혜정원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는 소설인데 굳이 필명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었다.

다 읽은 지금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것이,

老학자의 '젊은 날의 회고록' 정도, 자전적인 요소가 강해서 그랬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남들은 참 좋았다고 하는데 난 힘들게 읽었다.

소설 한 권을 10여일에 걸쳐 읽는 건 안나 까레리나 이후 처음인것 같다.

안나 까레리나는 3권짜리이기라도 했지~--;

 

다 읽은 지금도 사람들을 그렇게 열광하게 만든 힘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인문학적, 지연과학적, 예술적 기지와 통찰을 뿜어내고 있는 듯 하지만,

너무 만연체로 늘어지다 보니 알아 먹을 수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고,

사랑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내 관심사가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것이어서 그런가,

이렇게 넓은 분야를 전반적으로 두루 아우르고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스러움은 사랑받은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사랑하는 것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사랑받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 배움은 경험에 의해서만 가능한 종류이다. 많이 사랑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은 사랑스러움을 간직한다. 절제와 훈육이 함께한다면 사랑은 클수록 좋다. 어린아이는 자랄 때 그들이 본질적으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자란 사람들은 유년 시절에는 그 사랑스러운 애교로 우리 보살핌에 보답하고 성인이 되었을때에는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함에 의해 우리 사랑에 보답한다.(147쪽)

 

이 책이 버거웠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우리말을 사용할 줄 아는 작가이긴 하지만,

영어권에서 오랜 시간 살다보니 그 문화와 정서, 어순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다.

 

인문학적, 지연과학적, 예술적 기지와 통찰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것이 백과사전 같은 박학다식한 책이지만,

기교적인 면에서 잘 쓰여진 소설은 아닌 듯 싶다.

 

소설의 기교나 작법적인 요소들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쭈욱 읽어온 소설들만큼 세련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힘은 소설적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이면의 자전적인 요소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포기와 관용은 한쌍의 상관적인 개념이 된다.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관용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서만 관용한다. 이제 많이 늙어서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될 때 많은 것을 관용하게 된다. 이것이 구교가 개신교보다 더욱 인간적이고 미신적이고 관용적인 이유다. 개신교는 엄격하다. 언제라도 싸울 태세가 되어 있고, 용서할 수 없는 문제가 많고, 정립해야 하고 준수해야 하는 원칙이 너무도 많다.(107쪽)

처음에 개신교, 구교를 넘나들때는 오강남을 떠올렸다.

좀 더 읽다보니, 오강남은 아니다.

친구가 알려준 사람의 이력을 찾아보니 그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읽으면서 여러 작가들이 떠올랐는데 '브로크백 마운틴'과 '시핑 뉴스'의 애니프루도 생각났고,

언젠가 읽었던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도 생각났다.

 

나도 작가처럼 20대 초반의 짧은 기간을 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외국 생활이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돈독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외국 사람들 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찾으려 했었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그곳보다는 우리나라의 이름없는 동네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갔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에 나오는 이런 문장들에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눈에 사랑의 콩깍지가 씐 그 인물이 등장하기 전이라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멜리사, 그 책이나 논문은 어쩌면 내가 미혼이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을 거야.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어. 가정적 행복은 학자의 죽음이야. 멜리사, 아직은 더 써야 해. 당신과 행복한 채로 어떻게 책을 써? 나는 가족을 부양할 만큼 벌고 있지도 않아. 교수는 준실업자야. 테뉴어를 못 받으면 실업수당을 받아야 해.ㆍㆍㆍㆍㆍㆍ(152쪽)

 

이런 문장도 완전 멋지다.

그녀는 이곳에 살면서도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있다. 이곳은 외로움의 보상을 아름다움으로 한다. 외로움에도 중독될 수 있다. 아름다운 정경이 함께 한다면.ㆍㆍㆍㆍㆍㆍ(228쪽)

 

모르겠다, 저자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설레발치기에는 마음의 움직임이 미미하다.

그냥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정도로 일갈하는 수밖에.

 

나스타샤는 내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있다.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직감으로 느껴진다. 사랑은 이성과 논리로 상대를 파악하지 않는다. 사랑은 분석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감과 일치이다. 나스타샤의 마음이 내 마음을 파고들어서 내 마음에 공감의 반향을 일으킨다. 이때 둘 사이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마음의 벽은 일거에 허물어진다. 언어는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부적절한 도구이다. 언어가 끝나는 데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은 보여지는 것이지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483쪽)

  우리는 점점 말을 잃어가고 있었다. 말은 유기적인 협조를 위해 요구된다. 그것은 문명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자들은 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외에 다른 소통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대화를 통해 요구하는 것은 어떤 목적의 달성은 아니다. 단지 소외와 무관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여자의 대화는 언어를 위한 언어일 뿐이다. 그녀들은 명제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나스타샤와 나 사이에는 대화를 위한 대화조차도 필요 없어져 가고 있다.

  여기 둘만의 세계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서로에게 속해 있다. 눈을 뜨는 순간 서로 바라보게 되고, 하루 종일 어깨와 등을 맞대고 있고, 머리를 맞대고 잠을 청하는 우리에게 언어는 필요없는 것이 된다. 나는 이 침묵이 편하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소외도 없고 어떠한 섭섭함도 남아 있지 않다. 미소와 침묵과 솔직함이 모든 단어를 대신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체 세계이다. 나스타샤는 내게 전체 우주이다.(502쪽)

 

언어말고도 다른 소통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나도 때때로 한다.

그동안 나는 상대방을 미루어 짐작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이 아니고, 상대방이 내가 아닌 이상,

노력하여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때로는 소리내어 얘기하는 것이 소통에 이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둘 사이에 어떠한 소외도 없고 어떠한 섭섭함도 없는 침묵이 뭔지 알 것도 같지만,

아직까진 그런 영혼의 쌍둥이를 만나지 못한 탓인지,

나는 때론 너무 수다스럽고 때론 너무 말을 아끼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틀어서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때로 억지로 웃는 사람, 눈만 웃는 사람, 얼굴까지 웃는 사람 따위를 만나지만,

전 인격을 통틀어 자기 자신이 되어 웃는다는 것은,

경험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자신부터 말이다.

그녀는 웃음에 의해 한층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웃음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여자는 자기 자신이 될 줄 안다. 표정만 웃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미소에 의해 자신의 전 인격이 웃을 때 거기에는 아름다움을 넘어선 고결함까지 있다. 티 없는 웃음은 따뜻함과 친근함을 불러온다. 스스로가 될 줄 아는 사람만이 그런 웃음을 짓는다. 그러한 사람은 순수하고 선량하고 솔직하다.(212쪽)

 

좋은 책인듯 하지만,

내가 제대로 읽을 깜냥이 아니어서 일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고,

때문에 누군가에게 용기있게 권하기 좀 애매한 책이다.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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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7 17:27   좋아요 0 | URL
그런말이 생각나네요..사랑을 책으로 배우든가 ..연애를 책으로 배우면 발생하는 그 온도차이를....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들 말이죠..

양철나무꾼 2017-03-28 18:20   좋아요 1 | URL
제가 책을 애정하고,
책을 통하여 배우는 걸 즐기는데,
다행히 사랑이나 연애는 아니었어요.

남편이 첫사랑이었으니까 남편을 잘 만난 덕이겠죠?^^

서니데이 2017-03-28 14:24   좋아요 0 | URL
어제 여긴 비가 오지 않았지만, 오후 네 시, 다섯 시 되는 그런 시간에 너무너무 추웠어요.
한밤엔 기온이 1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요즘처럼 일교차 큰 날에는 감기 조심하세요.
양철나무꾼님, 기운나는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7-03-28 18:23   좋아요 1 | URL
저는 겨울이면 목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터틀넥을 즐기는데,
보통 3월 초면 벗었거든요.
올해도 몇 번 시도했다가 다시 찾아 입었어요.
한밤에 1도라면 아직 멀었네요~--;

서니데이 님도 감기 조심하셔야 합니다~!
따뜻한 저녁 드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