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쓰기 고전쓰기 시리즈 1
임종수 엮음 / 문사철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사실 그렇고 그런 논어를 생각했고, 그렇고 그런 필사노트를 생각했었던 내게,

'이태준의 필묵'의 한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엮은이의 말은 신선했다.

 

 

書如其人 字如其人이라는 말을 몰랐던 소싯적부터,

남편의 연습장 글씨를 보고 반해 쫒아다녔을 정도로,

'글씨란 그 사람과 같다'는 내 연애사의 중심이 되는 가치관이지만,

이리저리 치이고 바쁘게 살다보니,

남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글씨를 쓸 일이 별로 없어졌고,

쓰더라도 갈겨쓰거나 흘려쓰다보니 쓴 사람도 읽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급기야 벌어졌고,

그러니 어쩌다 쓰는 글씨라곤 신분 확인용의 '서명'이 고작이었다.

 

나이가 들고 세월은 비껴갈 수 없다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오래 보고 있으면 잔상이 오래 남고 눈이 피로해지더니,

급기야 그 좋아하는 책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먹고 살려니까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아예 안 쳐다볼 수 없고,

내가 좋아서 읽는 책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는데,

개인적인 느낌인지 몰라도

허연 형광 종이보다는 재생지를 사용한 책이,

작고 다닥다닥 붙은 글씨보다는 한글서체나 손글씨가,

많이 봐도 괜찮은 것이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독서 생활의 위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 독서 생활의 전환기라고 생각을 바꾸니까 견딜만 했다.

단지 눈으로만 읽는다고 생각하면 독서활동이 위축될 수 있을텐데,

정민의 '책벌레와 메모광'을 빌리지 않더라도,

온몸과 마음, 거기다가 머리로 통과하면서 읽는다고 발상을 전환시키니 얼마든지 다양하고 광범위해질 수 있었다.

 

나이를 먹고 시력이 약해지면서 내 몸 하나 하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른바 과한 부분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심신의 온 감각기관을 적절하게 열고 협력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심신의 온 감각기관을 열고 공감각적으로 협력하는 독서를 하기 가장 적합한 것들이 동양고전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이렇게 저렇게 띄엄띄엄 접했던 책들이지만, 난 전혀 이해불가였었던 책들.

그런 책들을 선조들은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두루 섭렵할 수 있었을까?

암튼,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려고 마음 먹었던 차여서 이 책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이런 모양새를 갖추었다.

왼쪽에 한자가 단정하게 앉아 있고 밑에 독음이 있고,

그 밑에 빨간 글씨로 작게 해석이 되어 있는데, 요즘 방식을 따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고전이란 죽간에 적힌 몇 단어로 압축된 문장이 고작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석이 있는게 아니라,

가치관이나 견해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면 그만이다.

죽간에 적힌 몇 단어로 압축된 문장은 그래서 선문답 형태를 띄는 것이고,

그걸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각자의 가치관에 맞게 해석을 하면서 위로를 받고,

죄사함을 받는, 일종의 면죄부가 아닐까 싶다.

난 고전이 그렇게 짧은 문구로 이루어진 이유이고,

오늘날 고전이 필요한 이유이고 고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암튼,

손으로 베껴 써가며 읽는 이 방법이 좋은 것은,

눈으로 읽고, 입으로 외고, 손으로 베껴쓰고, 머리로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놓는,

읽기가 곧 행함으로 이어지는 심신의 온 감각기관을 열고 공감각적으로 협력하는 독서이기 때문이다.

 

난 책의 모양새가 두껍고 옆에 노트하기에 불편한 것도 있지만,

내가 감히 범접하기도 아까워서 노트를 따로 준비하였다.

책의 제본 방식이 필사하기에 불편하다는 것 외엔, 역자의 노고와 내공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 뒤에 실린 이 분야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의 참고 문헌을 보고 역자 프로필을 다시 보기 전까지는,

이 책의 파격이 낯설었던게 사실이다.

모든 학계가 다 그렇겠지만,

고전, 이 분야는 특히 파격을 파행처럼 취급하고 내치는 곳이 아니던가 말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자연스레 그렇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면,

앞장 서서 걷는 사람의 그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대접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옛날식으로 음차하여 오늘날의 입장에선 어색하기만한 현토가 맘에 안 들었었는데 이 책에서는 현토를 볼 수 없어서 좋았고, 해석의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함이 싫었는데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이 좋았다.

그동안의 책에선 고어 투의 투박한 문체를 그대로 사용했었는데 이 책에선 요즘 일상용어로 고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물론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겠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책들이 비교의 방법으로 '이중 부정'은 '강한 긍정'인 한자어 특유의 해석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비교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 책은 비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기능인 나열과 열거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는게 아닐까 싶다.

나열과 열거를 통해...장점을 부추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힘을 얻고 위안을 받으니까 말이다.

공자는 양화(陽貨)에서,

시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고,

ㆍㆍㆍㆍㆍㆍ 

사람들과 어울리게 할 수 있고,

ㆍㆍㆍㆍㆍㆍ

시를 배우면 날짐승과 길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러니 이러구러...시는 고사하고 논어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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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2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2-05 09:04   좋아요 0 | URL
Let`s cheer up~!

마녀고양이 2016-02-02 21:42   좋아요 0 | URL
글씨 이쁘다, 이뻐~ 자기만큼.

양철나무꾼 2016-02-05 09:05   좋아요 0 | URL
헤헤~, 내가 내 미모로움을 아는지라 급 겸손 모드로~--;
칭찬 맞지~???

paviana 2016-02-04 12:10   좋아요 0 | URL
이 책 관심있어서 보관함에 넣어놓았는데, 미리보기가 없어서 너무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몇가지 질문이 있는데 논어 전문이 다 있는거지요? 간혹 좋은 구절만 편집한 책들이 있어서요.
그리고 책에 직접 필사하기 많이 불편할까요? 저는 노트 따로 둘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서...ㅠㅠ
제가 <배우고 익히는 논어> 이책과 어떤게 나을까 비교중이라서요.

양철나무꾼 2016-02-05 09:19   좋아요 0 | URL
네, 고주, 신주까지 들어가면 좀 난해해지지만요.
책에 직접 필사하기 많이 불편하지 않습니다만 하드커버 장정이라 부피감은 좀 있습니다.


성백효 님 책은 제가 보지 않아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군더더기 없는 번역`이라고 되어 있던데,
전 현토를 하나의 `군더더기`라고 보는 입장이라서~--;

paviana 2016-02-05 15:39   좋아요 0 | URL
하드커버군요. 새로운 사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설명절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2-12 18:14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2-17 17:08   좋아요 1 | URL
금욜날 댓글을 주셨는데, 벌써 수욜이네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인가요?
좋은 저녁시간 보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