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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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허준'의 '동의보감'에만 나오는 표현은 아닌가 보다.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되시겠다.

 

'글을 쓰는 사람'을 일컬어 작가라고 한다고 '작가'의 의미를 글로만 축소시켜 얘기 하더라도,

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려고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얼마전 친구들이 얘기했던 내 글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극복해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때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듣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았었다.

근데, 이 책 '서문'에서

대학 바깥 학문공동체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도 독서가 아니라 독서를 경유한 글쓰기로 바뀌었다. 모르던 것을 배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글로 소화하는 과정이 곧 공부가 됐다. 이들에게 파워라이터의 글쓰기는 좋은 본보기이자 영감의 원천이다.(5쪽)

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글을 본 후에야 알 것 같았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긴 시대에는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어떻게 문장력을 발휘해서 설득력 있고 멋지게 전달하느냐가 관심사였던 데 비해, 지식의 생명이 짧은 시대에는 문장에 대한 관심 이상으로 어떤 지식을 신속하게 담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아예 지식을 생산해가면서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도 무리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7쪽)

라는 철학자 김용석의 말을 재인용하고 있는데,

파워라이터가 필요하게된 시대적 요구와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를 알 수 있게 된 키워드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작가가 독자와 소통을 하지 못하거나, 소통이 더디다는 것은,

요즘처럼 쌍방향으로 실시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대에서는 구식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니까 아예 지식을 생산해가면서 글을 쓰는 실천력과 행동력이 요구되는게 무리도 아니겠고,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 작가의 필요충분 조건이 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는 보이는 24명의 파워라이터가 있고,

이들과 인터뷰를 하고 글로 옮긴 5명의 또 다른 파워라이터가 있다.

글쓰기, 책쓰기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지만, 인터뷰어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좋은 참고자료가 되겠다.

 

암튼 이 분들이 얘기하는 글쓰기 비법을 다 전수받을 수는 없는 고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취합하였고,

나머지는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것을 골라서 선별적으로 적용해 보려고 하였다.

 

요즘 대세가 지식을 신속ㆍ 정확하게 전달하는 거라고 하지만,

작가의 개성, 그리고 글을 읽는 독자의 취향 또한 무시할 수 없을 듯 싶은데,

나는 주영재 기자가 글을 쓴 강신주, 김두식, 박찬일, 선대인, 이병률 편이 좋았는데,

작가들의 그것을 신속ㆍ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무생물인 글에 온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어 따뜻하게 만들어 주어서 였다.

 

주영재를 소개하는 끄뜨머리 각주를 보면 'ㆍ지혜로운 아내 선경과 귀여운 아들 윤건이와 함께 보내는 지금이 늘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 생각한다.'고 되어 있다.

나까지 따뜻하고 훈훈해진다~^^

 

다시 얘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의 글쓰기라곤 이곳에 리뷰를 쓰거나 페이퍼를 쓰는 정도가 고작인데,

얼마나 더 힘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의 경우,

책을 읽다보면 오탈자나 문장 오류 등이 돌출되어 눈에 띄는 고로 꼭 언급하고 넘어가는 반면,

내 글은 변학도 생일 잔치에 초대된 암행어사도 아니면서,

일필휘지로 쓰고나면 그뿐,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 참 안 좋은 버릇이 있다.

그렇게 무르익지 않아 부족하고 어설픈 글을,

무장해제하고 쓴 맨얼굴로 쓴 가식없는 글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 사람이 쓴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겠다.

성격이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사람이 수식이 화려한 만연체의 문장을 쓰기는 쉽지않을 것이고,

어설프고 부족한 글을 쓰는 사람이 논리적이거나 똑 부러지는 반듯한 성격일리는 없다.

 

그러니까 나의 글쓰기라는 것은,

'유려하지만 힘을 필요'로 하는 그런'논리적 글쓰기'나 '문학적 글쓰기'가 아니라,

쓴다는 행위를 통한 배설과 그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겠고,

그걸, 나의 호프(호프라고 하니까 시원한 그 HOF가 생각나지만서도 패쓰해주시고~), Hope, 희망, 강신주 님께서 이렇게 구실을 마련해 주신다.

아울러 글쟁이가 되려는 사람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변비'와 '비만'이다. 글을 잘 쓰려면 좋은 책을 무턱대고 많이 읽기보다는 일단 지금까지 읽고 배운 것들을 글이나 말로 '배설'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독서 모임에 나가든, 블로그에 글을 쓰든, 책을 써서 풀든 속을 비워내서 더는 말이나 글로 떠들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책도 읽힌다. "먹고 싸는 것을 함께해야 순환이 되는데 만성 변비 상태인 사람들이 많아요. 책은 많이 읽는데 세상에 대한 판단이 별로 없는 사람들의 문제는 배설기관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거죠."(26쪽)

여기서 '변비'와 '비만'은 '불통(不通)'의 의미겠지만,

(난 불통(不通)을 비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소화불량이나 '체증'이 더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여기선 변비와 비만 모두 욕심으로 인해, 놓고 버리지 못함으로 인한 소통장애라는 의미일테니까...이해는 된다.)

 

사람은 in put, out put만 제대로 되면 걱정할게 없는 셈이다.

먹는 것도 그렇지만,

읽어 들이기는 하는데 말을 하거나 글을 써서 내놓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고,

읽어 들이는 것보다 과한 양을 말하거나 쓰는 것도,

큰 흐름에선 일종의 '장애'이다.

 

언젠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와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된,

많이 읽기만 하고 소통을 거부하고 주위와 단절된 채로 살아,

자기 안에 갇힌 사람들이 맞이하는 극단적인 파국을 엿보면서 받았던 충격이 다시 떠올랐다.

 

전에 다른 책에서도 언급됐었던 내용인데, 강신주 편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독자들이 자신을 멘토로 여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책을 쓰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삶이 완전히 변했다는 독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라고 하는데,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여겨져서 말이다.

 

또 한가지, 이 책에 나온 24명의 파워라이터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하는 글쓰기 비법은 '꾸준히'이고,

그도 말은 '꾸준히'라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

개인적인 글쓰기 성향이야 내가 뭐랄 수 없는 부분이고,

그의 강연이고 글이고 오래도록 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셔서,

부디 알아서 건강관리를 하셨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는 글쓰기 비법들이 여럿 있는데,

 

김두식은 글을 쓸때 일단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렇게나 적고 나서 많이 고치는 편이라고 하면서도,

글을 많이 고칠 때의 함정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전제를 많이 깔고 예상되는 공격에 자꾸 방어를 하다 보면 글이 밋밋해진다는 점이다.(47쪽)

 

친근하고 순한 인상이지만 글은 독하게 쓰는 '김원' 같은 경우,

'좋은 글이란 무엇보다 독자가 저자의 고민을 읽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격을 얻는다(57쪽)'고 하면서,

요즘 같은 전자 복제 시대에 자기만의 고유한 글쓰기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나'와 지금의 '현실'을 글 속에 넣으려는 시도 그 자체라(58쪽)고 역설하는 걸 보면,

지식을 생산해가면서 글을 쓰는 '파워라이터' 일선에 선 사람이 아닌가 싶다.

 

군대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김종대' 같은 경우는, 글쓰기에도 통섭이 필요하다고 애기하고 있다.

자기 분야의 책만 읽으면 쓸 수 있는 어휘가 제한돼 표현 능력에 제약이 생긴다며,

다른 분야로 자꾸 시야를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한다.

탄소는 다른 원소와 결합해서 화합물을 만들지만 불소는 화합물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박근혜 정부의 인재 주기율표상에는 성격이 다른 두 존재가 있다. 탄소 같은 김장수와 불소 같은 남재준이다."라는 문장의 도입부를 만들어낸 분이다.(72쪽)

'말과 술과 글은 많이 할수록 늘어나죠'는 김종대의 수사니까 멋지다.

 

박찬일이 좋은 것은 '요리를 인문의 영역으로 확장'시켰기 때문 이다.

하나의 음식이 생기고 모습을 바꿔가는 데는 당대의 경제적 조건이나 유행 등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영향을 미친단다.

요리가 인문의 영역에 들어갔다는 또 다른 근거로...그는,

인문학이 인간의 상처를 쓰다듬으려는 것처럼 요리를 통해 치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점을 꼽았다.(79쪽)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박찬일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지만, 박찬일이니까 맞춤한 표현이 있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콩나물 국밥을 먹을 때는 미리 다져놓은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다진 마늘과 풋고추를 넣어 먹으면서 콩나물 국밥의 핵심이 양념을 갓 다졌을때 터져 나오는 향이라는 것을 알았다.(85쪽)

 

그동안 그의 직업으로 미루어 개인적인 캐릭터가 일치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던 사람으로는 '선대인'이 있다.

옛날에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 경제연구소 소장이라고 소개되고 있었는데,

하는 애길 들으면 상대방을 참 많이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었었다.

요즘 선대인 다음으로 그 코너를 진행하는 사람의 경우,

사회자가 노트와 연필을 준비하고 설명을 요구하는데 '그냥 외우시면 된다'고 하는 걸 들으면서,

경제전문가나 그런 사람들은 시간마저 돈으로 환산하려 드는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었다.

라디오를 통해서 그의 어리숙한 목소리와 어투를 들으면서 정말 경제 전문가가 맞나 싶었는데,

경제 지표나 동향을 분석해 내는 건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고 논리정연했다.

 

이 책에서도,

그의 저술이 호응을 얻는 이유로,

부동산과 세금 등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 문제를 쉽게 풀어 설명해주고 대안까지 제시해주기 때문이라고 하는걸 보면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글을 써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리고,

블로그 글은 그 짧게 쓴 글들을 다듬은 것이고,

반면 블로그에 차분하게 쓴 글은 다시 SNS를 통해 유통시키기도 하는 글쓰기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래서일까, 읽는 사람에게는 글이 어렵다는 느낌이나 억지로 쥐어 짜냈다는 느낌이 없고,

본인에게는 글을 쓰다 막힌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뿐더러,

마감임박하여 글빚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좋은 글쓰기 습관인것 같다.

 

그동안은 읽는 만큼 말하고 쓰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했다면,

신형철을 얘기하면서는 말하고 쓰기의 절제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 의미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고,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은 정확하게 쓴다는 것이다.

"김현 선생의 비평이 섬세해서 좋다는 빤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섬세함은 비평의 여러 가치 중 하나가 아니라 비평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비평이 미세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사회적 실천일 수 있으려면, 섬세함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김현 비평의 힘은 제게 근원적인 것이에요."(125쪽)

 

본인은 사양할지도 모르지만,

지식이나 논리는 기본인데다가,

비평이란 글이 지녀야 하는 따뜻함과 섬세함을 장착해서,

글을 읽는 이들의 지성과 감성에 깊이 각인되고 있으니 말이다.

 

 

글쓰기는,

누군가에게는 지식을 나눠주는 행위이고,

누군가에게는 배설을 통한 카타르시스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얻는 방법이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쓰다듬는 힐링이 된다.

 

책읽기의 연장선인 글쓰기와 말하기는 누군가에겐 '읽은 만큼 충분히'여야 하고,

어느 누군가에겐 '읽은 만큼 말하지 않고 쓰지 않는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겠지만,

공감과 소통이라는 큰 흐름에서 봤을 때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인 것 같다.

 

나는 여기에,

다소 밑지고 손해봐도 좋으니, 체온만큼의 온기와 따뜻함은 챙겨가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모든 얘기는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얘기였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데다가, 즐기기까지 하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얼마전 인테넷에 떠도는 '스타킹'이란 프로그램에 나왔던 '헨리'라는 친구의 동영상을 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완전 멋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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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08 16:43   좋아요 1 | URL
책과 글을 처음 읽을 때는 나를 위해 시작했지만, 많이많이 읽을수록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고민하고 염려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독서의 참맛이겠죠. 그래서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은 이들은 다시 연대하며 글을 쓰고 그런 이어짐들... 비관주의, 내 생각의 전달만 있는 움직임도 개인의 자유임을 인정합니다. 어쨌거나 표현과 행동과 결과도 각자의 몫.
글의 첫머리에 양철나무꾼님이 `통즉불통 불통즉통`을 가져오시게 된 것도 그런 연결들로 읽힙니다^^

양철나무꾼 2015-05-08 17:44   좋아요 1 | URL
저의 책 읽기와 글쓰기는 세상이나 연대를 생각할 정도로 고차원적이진 결코 않구요.
오히려 어떤 이즘을 띠고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는걸 경계한다고 할까요?
만약 제 글에서 어떤 이런 의식이 느껴졌다면 그건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지, 의도된 것은 아니랍니다.
저는 더디더라고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기꺼이 내켜서 였으면 좋겠습니다~^^
헨리처럼요, 완전 멋지지 않아요~?^^

AgalmA 2015-05-08 17:49   좋아요 1 | URL
아직 세상에 정답이라고 나온 건 없지 않나요... 문득 연결하고, 연결짓다가 어? 아! 하게 되는 거겠죠 :)
그 헨리, 수많은 헨리들에게도...

양철나무꾼 2015-05-08 18:00   좋아요 1 | URL
그런데, 말이죠.
전 제가 좋아하는 책읽기와 글쓰기에 있어서 제가 내켜서이고 싶지,
세상과의 연대를 먼저 생각하면서, 이념에 의해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물론 그런 책읽기와 글쓰기 또한 삶의 한 방법임은 인정하지만 말이죠~^^

AgalmA 2015-05-08 18:11   좋아요 1 | URL
저도 하다보니 그리로, 저리로 간다는 거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삶은 모든 것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감은빛 2015-05-08 18:54   좋아요 0 | URL
칼럼이나 기사 형식의 글을 써보려고 몇 번 시도하다보니 제 글쓰기의 한계에 대해 많이 깨달았습니다.
글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드러내야 하는데,
제 글은 길고, 밋밋하고, 주제를 잘 보여주지 못하더라구요.
완전 절망하고 있습니다. ㅠㅠ

이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양철나무꾼 2015-05-13 16:34   좋아요 0 | URL
이거 이거 너무 욕심이 과하시거나 겸손하신거 아닙니까?
도대체, 감은빛 님께서 글쓰기의 한계라고 말씀하시면,
전 항상 좌절이지 말입니다~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