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22
이재무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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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집의 맨 뒷장 '시인의 말'을 빌어 '시를 삼십 년 넘게 써왔지만 나는 여전히 시가 무엇인지 모른다.' 고 한다.

이건 어찌보면 겸양일 수도 있지만,

시의 세계란 것이 무궁무진하여 아무리 구하려하고 다다르려 해도 다다를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매번 시를 쓸때마다 처음인 듯 낯설고 당혹스럽기만 하다' 고 하지만,

쓸모없는 듯 보여도 그게 더께로 쌓이다보니 내공이 되어 '이제는 그것 때문에 어떤 강박에 휘둘리지 않는다.' 며,

'시와 잘 놀기만 바랄 뿐'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시인를 흉내내어 얘기해보자면,

다시 말해, 삶을 시로 치환시켜 얘기해보자면,

사십 년 넘게 살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삶이 처음인 듯 낯설고 당혹스럽기만 하다고 하여, 이제는 그것 때문에 어떤 강박에 휘둘리지 않는다.'

쓸모없는 듯 보이는 그것도 더께로 쌓이다보니 내공이 되어,

내 삶을 지지해 주는 지지대 역할을 거뜬히 한다.

이제는 삶을,

햇살 좋은 날 산책나온마냥 지금 이순간을 감사하며 지나게 된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시집도 천천히 숨을 고르며 읽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했었다.

삶에 쫒겨 마음 줄이 팽팽할때는 시집 한권, 시 한편도 사치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길 위에서 구했다는,

생활인듯 삶인듯한 시를 읽고 있노라니,

이렇게,

이런 방법으로도,

시집이야말로 삶에 쫒겨 마음 줄이 팽팽할때 읽어야하는,

맞춤 처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우기, '삶에 무릎을 꿇는' 다시말해 '슬픔에게 무릎을 꿇는' 그것이 항복의 그것이 아니라,

낮은 자세로 임하는 그것이어서,

고개를 낮추어 눈높이를 맞추는,

소통과 공감의 그것이 되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오가며 흐르는 내(川)가 된다.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어항 속 물을

물로 씻어내듯이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

슬픔은 생활의 아버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고개 조아려

지혜를 경청한다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닦아본 사람만이,

삶을 시로 치환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겸허하게, 슬픔이 기쁨의 또 다른 이름이고,

그리하여 슬픔이 언젠가는 기쁨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돌멩이와 구두

석 달 전 길을 걷다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귀 기울여보니 영락없이 구두 밑창에서 나는 소리라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았다 언제 뚫렸는지 엄지손톱만 한 구멍이 보이고 그 속에 작은 돌멩이가 들어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어디서 굴러든 것일까 나는 돌멩이를 꺼내 길에 놓아주었다 그 후로도 여럿 돌멩이들은 예의 구멍에 들어와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다가 이내 꺼내지고는 하였다 과연 이들의 동숙은 서로가 서로를 원해 이루어진 것일까 하나의 간절한 염원이 이룬 것일까 아무려나 내 알 바 아니지만 우리네 설운 삶을 다녀가는 무수한 인연들이 혹여 저 돌멩이들과 구두가 맺은 지극히 사소한 우연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오늘도 내 생은 하루만큼 저물어간다

'돌멩이와 구두'를 읽으면서,

우리는 미래를 대비하고 염원하느라고,

지금 이순간 또한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를 간과하고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헛된 희망과 간절한 염원을 혼동하느라고,

우리의 무수한 삶이 이루어지는 길을 외면하지는 않았나?

험한 길 위에 놓여진 돌멩이에게서 내 발을 지켜주는건,

내가 오늘 신고 있는 밑창이 엄지손톰만큼 뚫어진 구두 한켤레이다.

밑창이 뚫어진 구두로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오늘 나의 생은 '하루만큼'만 저물어갈 뿐이다.

 

'사소한 우연'일지라도 그게 두번, 세번 반복되면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이 씨줄과 날줄을 엮어 어디에선가 중첩되면 '운명'이 되는 것이지,

그게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간절한 염원만으로는 아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나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마음이나 생각이 행동을 변화시킬때 돌멩이와 구두의 만남은,

우연에서 인연이나 운명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이어지면, 지금 이순간이, 오늘 하루가, 내 곁에 있는 그대가 가장 소중하다.

 

 

두부에 대하여

 

두부가 둥그런 원이 아니고

각이 진 네모인 까닭은

네모가 아니라면 형태를 간직할 수 없기 때문

저 흔한 네모들은

물러 터진 속성을 감추기 위한 허세다

언제든 흐물흐물 무너질 수 있는 네모

너무 쉽게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네모

가까스로 네모를 유지한 채

행여 깨질까 조심스러운 네모

제가 본래 단단하고 둥근 출신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네모

우스꽝스러운, 장난 같은 네모

지가 진짜 네모인 줄 아는 네모

언제든 처참하게 으깨어질 수 있는 네모

둘러보면 그런 두부 같은 네모들이 얼마나 많은가(71쪽)

이 시는 깍두기로도 읽혔다.

우리는 까만 양복을 쫘악 빼입고,

'형님~'하며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그 사람들 말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시골길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걷는다

두근두근 길도 내가 그리웠나 보다

이제사 알겠다

내가 시골길에서 자주 넘어지는 이유(91쪽)

 

암튼 오랜만에 시집 한권을 읽으니, 마음이 순해진다.

나의 시집을 읽는 눈이 순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지만,

시집을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오늘에서야 마음이 순해지는 것은,

이재무, 그의 시들이 길위에서 길어올린 삶 자체여서이지 싶다.

아들과 베드민턴을 치며 들키지 않게 져주는 것으로 일상에서 사랑을 길어올리는 시인처럼,

일상을, 지금 이순간을, 살고 봐야겠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지극히 숭고한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니까 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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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17 18:04   좋아요 0 | URL
저도 옮겨주신 시골길이란 시가 좋더라구요. 능청스럽다고나 할까... ㅎㅎ

양철나무꾼 2015-03-18 09:11   좋아요 0 | URL
`식물성 곱창`과 어우러진 `순대를 사서 먹었다`도 완전 죽음이었죠, ㅋ~.

2015-03-17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8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3-18 06:59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이 시인의 시집 읽고 있는데...^^
어려운 말로 쓰기보다는, 말씀하셨듯이 생활인 듯 삶인 듯, 이 시인의 시들이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나름 시대 비판 정신도 슬쩍 슬쩍 느껴지는데 그걸 드러내놓고 표현하기 보다는 역시 삶 속에 녹아있는 상태로 표현하는 것 같고요. 슬픔을 슬픔으로 무릎 꿇게 하듯이요.

양철나무꾼 2015-03-18 09:28   좋아요 0 | URL
그쵸~?^^
비판정신을 그대로 드러내는게 아니라 삶 속에 녹여내는것,
그게 이 시인의 시 속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느껴지는 `글빨`이고 `연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