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에서 만난 한자 - 한문 선생님의 교실 밖 한문 수업
김동돈 지음 / 작은숲 / 2018년 12월
평점 :
책을 뜨문뜨문 읽는다.
예전처럼 두껍고 글자 작은 책을 내처 읽지는 못하고,
한권을 들고 뜨문뜨문 음미하듯 읽는다.
읽었던 곳을 되짚어 읽기도 하고,
거기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유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을 붙잡아 하나의 견해로 확고히 하지는 못하고 흐지부지이다.
요즘 읽는 책이 '김승호' 님의 '주역원론'이어서 더 그런 것도 같다.
그동안 '주역은 어려운 것이다'란 인식이 있었는데,
김승호 님의 책을 읽으면서 주역이 쉽고 재밌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그런데 주역이 쉽고 재밌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위해선 생각에 매듭이나 뭉친 부분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사고를 가둬두고,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제한하다보면,
그런 제한된 것을 뛰어넘는 것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자연을 '인공'의 반대 개념이냐 '인간'의 반대 개념이냐 따위로 국한 시키지 않고 바라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커질 수 있는 거대한 개념이듯이,
'자연'의 자리에 '주역'을 대입시켜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전작인 '길에서 주운 한자'를 재밌게 읽었던 터라,
이 책이 나오길 내심 응원하고 기대했었는데,
내 삶이 꿀꿀하다보니 그렇게 그렇게 잊혀졌었다.
얼마 전 저자 분의 서재에 들렀다가 알게 되어 서둘러 구입했다.
저자 분의 서재에서 봤던 내용들이었지만,
책의 형태를 갖추어 나오게 되니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전편을 읽으면서 좀 아쉬웠던 종이의 재질이나 사진의 선명도 따위를 개선하였으며,
한자어를 보기 좋게 배치하여 편집하는 등 책의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다.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본문에 한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다른 색을 사용하여 돌출시키고 글이 끝난 뒤에 언급하는 방법을 쓰는데,
한글과 한자를 나란히 사용해도 좋았을 것 같다.
자주 봐야 눈에도 익고 익숙해지니 말이다.
이 글을 시작하며 '주역'을 언급했는데,
어떻게 보면 '한자'라는 것이,
아니 적어도 내겐, 이 책의 사고와 설명 방식이 주역의 그것을 닮은 것 같다.
아무렇게나 한꼭지를 따라 읽다보면,
주역의 사고처럼 '자연' 그 자체인 저자의 사고를 만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사실 내가 저자 분에게 감동을 받은 건,
104쪽의 '바람 멎으니 꽃 떨어지고'의 근간이 되는 페이퍼였다.
'휴정'의 '독파능엄'을 저자 분이 나름대로 번역을 했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번역도 멋지지만,
저자 분의 번역도 '능엄적으로' 멋졌었다, ㅋ~.
이 책이 좋은 것은 '길에서 만난 한자'를 알아보고 익히는 것도 있겠지만,
저자 분을 따라 읽다보면,
저자 분의 사유의 흐름이나 확장을 경험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보면 내 자신도 사유를 단정하게 가다듬을 수 있고,
사유의 흐름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확장시켜야 할지,
엿볼 수 있다.
덕분에 좋은 책 잘 읽었다.
'후기를 대신하여'를 보니,
댁에 편찮으신 분이 계신가 보다.
내내 마음쓰이시겠다.
하지만 이런 책을 쓰신 분이라면 무게 중심을 잘 잡으셔서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