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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마션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8월
평점 :
판매중지
화성에서 1년 반 살아남기

감자가 먹고 싶어지는 영화, 마션. 그 이야기를 들은 뒤, 원작 소설인 마션에 흥미를 팍팍 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감자가 먹고 싶다. 햇감자. 결이 부슬부슬 일어나는 좋은 감자. 찜기에 넣고 푹푹 찐 다음, 따끈따끈 뜨거울 때, 숟가락으로 부드럽게 퍼먹는 거다. 약간의 버터와 치즈를 허락해도 좋겠다. 스프에 넣어 먹어도 맛있다.
고로 이번 주말, 감자 파티다. 요리는 먹어줄 사람이 있을 때 해야 즐거운데, 주말부부여서 주중에는 혼자 지내다 보니 의욕이 안 난다. 심지어 회사 가면 아침점심저녁 세 끼 다 차려준다, 회사 만세. 고로 남편 만나면 감자 파티를 하자. 감자는 남편이 삶는 거로. 땅땅. 가끔은 남편에게도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절대 귀찮아서 맞다. 헷.
이 소설 재난물이다. 주인공 혼자 화성에 남았다. 식량도 제한되어 있다. 구하러 온다는 보장도 없다. 심지어 몇 번이고 죽음의 고비까지 넘긴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정말 스릴러도 보통 스릴러가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며 단 한 번도 주인공을 걱정하지 않았다.
이 주인공 너무 유쾌하다. 지나칠 정도로 낙천적이다. 혼자 고립되어 있는데, 정신적으로도 무너지지 않고, 앞에 닥친 모든 문제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몇 번이고 주인공이 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을 보다 보면, 위기가 닥쳐도 주인공이 이번에는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까. 기대만 될뿐, 주인공 죽으면 어쩌지, 이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 버린다.
이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시점을 교차해가며 진행한다.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초조하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주인공이 너무 태연하다 보니,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마저, 코미디로 느껴진다. 작가가 바란 건, 제3자 입장에서 주인공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하고,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었을 텐데.
사이언스 픽션. 하지만 딱히 과학 상식 없어도 된다. 이 유쾌 발랄한 생물학자가 닥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남는지, 그 부분에만 집중해서 읽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전자책으로 900쪽이 약간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그 두께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어제 정신 차리니 마지막 장이 날 손짓하고 있었다. 반갑다. 마지막 장. 그런데 내 시간 어디로 사라졌니. 시계 바늘이 어째서 고속 이동을 해버린 거지.
이미 출간된 지 꽤 된 책이고, 영화도 흥행했던 터라 읽은 사람 많을 것 같지만. 혹시 영화만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분명 이 책, 재미있지 않을까. 영화 등장인물을 떠올리며, 영화를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 될지도.
다만 소소한 아쉬움이 있다면. 후일담이 전혀 없이 이야기가 끝나버린 것. 그 덕분에 이런저런 상상할 여지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 한 마디라도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