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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레이얼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작가의 묘사가 너무 맛깔스러워서였을까, 생뚱맞게도 실제 모나코의 날씨가 어떤지 무척 궁금했다. 카사블랑카, 에사우이라, 와르자자트, 사하라 사막 등등 로빈이 폴의 뒤를 쫓아가는 여정에서 묘사된 모나코의 도시들은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하고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마 그녀의 질식할듯한 상황이 마치 모나코의 날씨처럼 느껴지면서 이를 보는 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도 모나코의 날씨가 궁금했던 이유는.
또 다른 궁금증. 책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로빈의 절절한 슬픔과 분노는 누구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그려져 있다. 하지만 폴의 생각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폴이 로빈을 배신을 했을까? 그렇게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람인데. 단순히 폴의 보헤미안적 기질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났던 과거의 비밀 때문에?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자책하는 폴의 모습에 더욱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그 마음은 결코 알 수 없는 의문으로 남았지만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폴의 생각과 마음이 너무 궁금했던 이유는.
세 번째 궁금증. 폴의 뒤를 쫓는 로빈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을 베푸는 이들, 그런 이들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살아가는 내 주변에도 과연 있을까, 라는 그런 궁금증. 가난하지만 남을 돕고 나눌 줄 아는 마이카 가족, 아티프, 이름 없는 베이커리 주인과 같은 그런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응답하라 1988을 보라, 그 속에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이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은??? 여전히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우리 주변에 있겠지만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없으리라는 마음이 더 큰 건, 단순히 나만의 잘못된 생각일까. 아부의 한 마디가 내 속에서 끝없이 울리며 외치고 있다.
‘미츠바’는 늘 ‘미츠바’로 보답을 받습니다. (p.400)
모두가 그런 마음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소설 속 내용을 조그만 살펴보자.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선택’의 주체가 자기 자신인지, 또한 자신에게 벌어지는 문제가 결국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함정인 것은 아닌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로빈을 보면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나는 왜 이리 불행하지?’ 라고 생각하며 불만을 토로하기 일쑤지만 정작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며 사는 게 아닐까? (p.184)
로빈은 폴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의 결혼을 강행한다. 자신이 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상한 확신에 찬 채로. 그런데 그런 확신과 선택의 이면에는 그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죄책감 혹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결국 그녀는 무언가에 떠밀려 스스로 나락 속으로 빠져든 셈이다.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스스로가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된 것이다. 마치 그녀가 폴을 바라보며 느낀 것처럼.
누구에게나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다. 폴 역시 자기 자신이 장애물이 되어 성공의 수혜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p.442)
그렇지만 이런 선택이 불행하기만 한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쉽지는 않지만 이런 선택도 분명히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도하는 모든 일의 밑바탕에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깔려 있다. 우리는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벗어던지는 순간 행복을 느끼게 된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을 경우 상대의 두려움과 불안감도 자신의 몫이 된다. 부부가 짊어지고 있던 짐들을 모두 내려놓을 때 비로소 배우자 덕분에 생의 축복이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매우 고귀하고 드문 순간이다. (p.92)
어려웠겠지만 분명 폴과 로빈도 함께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폴이 자신이 지고 있었던 짐을 로빈 앞에 모두 내려놓았다면 말이다. 피하거나 숨기지 말고 진심으로 부딪쳤다면 말이다. 결국 그와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갔지만.
절망에 절망을 더한 시간을 보낸 로빈에게 그래도 행복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 맴돌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고 잡아달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꿈은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행복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p.439)
그렇다면 결국 작가는 모든 선택이 자기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행복으로 가는 것도 불행으로 가는 것도.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솔직히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한 번만 다시 깊이 생각해보아야겠다. 무엇이 진정한 답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