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림
손봉수 외 지음 / 잇스토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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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미림>을 리디북스에서 만났다. '잇스토리'의 서평단에 당첨되어 이북으로 제공받아 읽게 되었다이 소설은 영상화를 위해 기획발간된 중편 소설로 작가는 공동 집필로 손봉수와 강필식이다중편소설인데 종이책으로는 124쪽 분량이라 단숨에 읽혔다1980년대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이미 많이 나와 있고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기에 클리셰 범벅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젊은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다배경지식이 많다면 그 시대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문학적 재미도 충족될 것이다이 소설의 배경은 87년 이전이지만 유신의 그림자가 그대로 남아있던 시절이었다정부는 불순 세력 색출 및 소탕이라는 미명 하에 사찰을 밥 먹듯 하고 아무렇지 않게 자유를 억압하던 야만의 시대가 불과 40여 년 전이다. 20대 독자라면 자신이 태어나기 불과 20년 전의 대한민국 실상에 기겁할 지도 모르겠다.

 

美林아름다운 숲은 1960년대 중반 중앙정보부가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의 동향 파악을 위해 운영하던 정보수집팀의 이름이다고급 술집 마담 등을 협조차 활용한 데서 미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중정의 후신 안기부는 이 미림을 활용하여 내부적으로 여론조사팀이라는 명목으로 비밀리에 활동을 지원하였다.

 

1980년대 중반 미림팀의 작전은 가수 김태원을 감시하고 도청하는 것이다그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로 순수와 젊음의 상징인데 사실은 극렬 운동권과 한총련 세력들과의 실질적 커넥션을 통해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실체를 증명하려는 것이 미림팀의 목표다이 작전의 실무자 이명준 과장은 냉철한 프로인데 도청 도중 김태원의 애인이 윤미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균열이 시작된다.

 

이명준이 윤미란을 이 작전 소탕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해 하는 행동은 그간 치밀하고 노련한 일처리 방식과는 분명 달랐다그것을 눈치 챈 김형남은 안가 서기관에게 알리고 이명준을 감시하기 시작한다일하는 스타일은 달랐지만 손발이 잘 맞던 둘은 이제 가면을 쓴 채 이중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이명준에게 미란은 조직에서 배제된 선배 윤영재의 딸이고 한때 과외를 하던 학생이었으며 시간은 흘렀지만 감정이 남아 있는 여자였다그에게 미란은 지키고 싶은 아름다운 숲이 아니었을까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임무를 수행해온 이명준이 자신의 일에 회의를 품게 만들었으니까과연 이명준은 윤미란을 이 소탕 작전에서 구할 수 있을까이 리뷰에서 결말까지 쓰면 스포가 되므로 여기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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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 세상 끝에서 경이로운 생명들을 만나 열린 나의 세계
나이라 데 그라시아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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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동물이다. 뭍에서 뒤뚱거리며 걷는 귀여운 모습에 반해 물 속에서는 노련하게 유영한다. 이런 모습은 여러 미디어를 통해 보여진 것들이고, 동물원에 가면 직접 만날 수도 있다. 그들의 귀여움을 극대화시킨 펭귄쇼라는 상품으로. 펭귄을 실제로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음에도 그들이 인간에게 친근한 이유는 그 외모만큼이나 미디어에서 자주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고 동물을 소재로 다루는 영상이나 책을 즐겨본다. 그래서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한 <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의 서평단에 신청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내가 예상한 내용은 펭귄들의 생태를 밀착 취재한 보고서였다. 그런데 저자 나이라 데 그라시아는 남극의 일상을 일기처럼 썼으며 펭귄을 포함한 다른 남극 생명들의 생태 전반을 기술했다. 박수용의 <꼬리>처럼 시베리아 호랑이 하나에 집중하는 글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목차를 봄, 여름, 늦여름, 가을로 구분하여 펭귄이 알을 낳고 키우는 생애 주기에 초점을 맞춰 관찰 연구한 것을 기본으로 하여 물개나 물범을 연구하는 다른 팀원들의 보고, 그 외 갈매기나 크릴 같은 생명들에 대한 보고, 남극 탐험의 역사까지 다룬다. 여기에 연구자들 개인의 생활 모습은 물론 저자의 일기 같은 글이 이어져 하나에 깊이 집중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책으로 남극 생태계 전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남극 탐험의 역사에서 스콧과 아문센의 대결 아닌 대결은 이 책으로 처음 접했고 아주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우리나라도 남극에 기지를 세웠고 그곳에서 연구하는 이들의 책이 몇 권 나와 있는데 이 책은 남극 입문서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남극에 관심이 있거나 그곳에 사는 생명들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저자처럼 색다른 일을 하는 사람의 고민과 생각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일을 하는 곳이 특별한 장소이기에 그 결이 차이도 분명하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아등바등 사는 현실이 괴롭고 내가 처한 고민이 우주에서 제일 큰 것처럼 느끼는 이들에게 더욱 이 책을 권한다.


p.259


내게 남극은 인간과 동떨어진 자연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가진 인간의 특징을 사방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인간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물질이 유기적으로 조직되는 공통 법칙일 뿐임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나방이나 크릴, 펭귄과 비슷한 면이 아주 많고, 내 다리와 내가 딛고선 짙고 축축한 흙의 경계는 흐릿하며, 그런 경계가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가 사실상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349


남극은 정말 독특한 땅으로 다가왔다. 오두막에 쌓여있던 책들을 통해 이 대륙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한 경험을 개념화하면서 남극 대륙은 문화적으로 어떤 곳인지를 자주 생각했다. 고딕 소설들과 회화 작품들에서 남극이 어떤 곳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남극이 인간의 모든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중심점으로 여겨지거나 머나먼 땅, 인간과 무관한 모든 것을 대표하는 땅으로 묘사되는 방식에 관해서도 생각했다. 남극을 맨 처음 찾아온 탐험가들이 인간이 생각하는 세상의 개념에 이 대륙을 어떻게 끼워 넣었는지도 생각했다. 남극 탐험 이야기와 칠흑같이 어두운 풍경이 담긴 그림들, 인간의 총체적 정신을 상징하는 풍경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이 멀고 낯선 땅에 관해 축적된 이야기들, 예술이 대화를 끌어내는 방식이 문화와 정체성이 되고, 그것이 가치와 정치적 의지, 정책, 보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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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급식 탈출 소원라이트나우 6
강리오 지음 / 소원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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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동중학교 예준은 학원도 안 다니면서 전교 1등이다. 국밥집을 하는 아빠와 단둘이 사는 예준은 아빠에게 곰살맞게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 딸이 아니다. 예준에게 마음의 안식과 에너지를 주는 것은 포니 제과점의 포니쿠키다. 그런데 먹고 싶은대로 사먹을 돈이 없는 예준은 포니쿠키를 훔치기에 이르고, 점점 그것을 먹지 못하면 수학 문제를 풀 수 없게 된다.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인 현대 사회, 어른들은 술과 담배에, 아이들은 게임과 스마트폰에. , 스마트폰 중독은 애어른 할 것 없이 빠져 산다. 중독은 결핍에서 오는 욕망이 제어할 수 없어 극대화된 상태이다.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면 중독이 아니다.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예준은 포니쿠키에 의지하는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을 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식탐과 도벽, 이중 중독에 빠져버린 것이다.


항상 바쁘고 피곤한 아빠를 위해, 명문고인 재동고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전교 1등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강박. 이것이 예준을 중독 상태로 몰고 갔다. 물론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예준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준도 점점 의문에 빠진다.


시키는 대로, 정해진 대로 하면 정말 다 되는 것일까?’


재동고에 가기 위해 자신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은 어른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노선을 이탈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행동이었다. 그 마지막 스펙으로 얹어야 할 것은 교내 급식 공모전에서 1등을 하는 것이다. 상금 50만원의 2분의 1은 포니쿠키를 마음껏 사먹을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은 예준에게 부상이 틀림없었다. 이를 가능하게 할 제안을 전교회장 슬후가 던진다. 예준에게 같이 참여하자고 하며 둘이 하면 당연히 1등할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청소년 소설 <불량 급식 탈출>은 예준의 심리상태를 따라가면서 푹 빠져들게 만든다. 예준이가 어서 중독에서 벗어나길 바랐다가, 꿋꿋이 버티며 혼자 공부하는 것을 응원해주고, 친구 소진이나 아빠에게 다 털어놓아 마음이 편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예준이 급식 공모전을 통해 학교의 비리를 밝히려고 할 때는 중학생이 과연? 하는 우려보다 예준이라면 분명 해낼 거라는 믿음이 컸다. 착실한 모범생은 시키는 대로 걸어온 길이었고 이제부터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겠다는 작심을 예준은 행동으로 옮겼다. 전자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학생들 전체를 위한 것이며 우리 사회의 부정의에 반기를 드는 행동이다.


먹거리에 장난질을 치는 어른들에게 아이들도 말 할 수 있다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당당하게 나서는 예준에게 박수 쳐주고 싶다. 청소년 독자들에게 예준은 뜨거운 공감의 주인공이 될 듯싶다. 그간 만나온 소설 속 주인공 중 이토록 극과 극인 요소가 공존한 캐릭터가 있었을까. 상실과 결핍으로 인한 식탐과 도벽,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 사회가 원하는 모범생의 길로 주욱 걸어나갈 수 있었으나 잘못된 것을 보고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는 예준은 매력적인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청소년 독자들은 예준을 보며 자신의 현재 모습을 투영해볼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 소설 속 어른들도 청소년 독자들에게 반면교사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 아이들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교장선생, 예준의 잘못된 행동을 알고도 기다려준 포니제과점 사장을 보면서 자신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잘 살면 좋겠다고, 그러기 위해 이러이러한 어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덮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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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최다미 내일의 숲 5
오동궁 지음 / 씨드북(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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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뇌는 그대로인데 몸만 사이보그로 바뀐다. 그러면 내가 맞는가? 가족을 포함한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금세 적응할 것이다. 외모는 달라도 사고와 행동, 말투는 그대로니까.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언뜻 테세우스의 배가 떠오르지만, 거기서 교체되는 것은 배의 모든 부분이라 했기에 이 책처럼 뇌가 그대로라면 다 바뀐 건 아니다. 한편 의문이 들기도 한다. 기존의 내 외양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산다면 나의 생각과 태도도 변하지 않을까.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분명 달라질 것이므로.


골육종을 앓다가 신체 모두를 잃고 뇌만 살려 다른 몸(의체)으로 다시 태어난 고등학생 최다미는 자신에게 적응해 나가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 되었다. 청소년 소설 <내가 아는 최다미>를 읽으며 내가 최다미라면 그 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상념에 빠질 틈을 주지 않고 숨가쁘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수영이 전부였던 다미는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보급형 의체에는 큰 충전단자가 있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 모든 걸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다미는 절친이었던 현지와도 서먹해진다. 다미와는 달리 금수저 은결은 유전자 맞춤형 고급 의체를 쓰고 있지만 너무나 수영이 하기 싫다. 그런 은결이 다미에게 의체 맞교환 제안을 한다. 수영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던 다미는 몇 시간만이라도 물속을 유영하고 싶었기에 그 제안을 수락한다.


이제 청소년 소설에도 SF장르가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이 소설의 소재가 먼 미래에나 일어날 것이므로 무한 상상력의 산물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루게릭병을 앓게 되면서 자신의 몸을 사이보그로 교체한 로봇공학자 피터 스콧의 사례는 몇 년 전 현실에서 일어났다. 피터 스콧의 선례가 보여주듯 의학계와 공학계에서는 인간과 사이보그의 접목이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문학계에 SF는 이제 대세가 되었다. 소설가들이 발전하고 있는 과학계에서 소스를 얻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듯 과학계는 그 문학적 상상력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간 우리는 보아왔다. 소설에서 구현된 상황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내가 아는 최다미>는 정신과 신체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청소년들에게 장르적 재미를 충분히 주면서도 과학적 상상력을 북돋우고, 철학적 질문도 던지며 밸런스 게임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다미와 은결처럼 내 몸이 바뀐다면 어떨지, 다미처럼 의체 맞교환을 할 것인지, 은결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지 같은 다양한 질문들에 답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이다.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다. 그럼에도 한계는 분명한데 그것은 몸에 기인한다. 몸의 한계를 극복한 많은 이들의 사례를 자기계발로 연결하는 이들도 있고, 나답게 사는 것의 주체가 몸일까 정신일까에 천착한 이도 있었다. 피터 스콧은 인간 존재의 진정한 의미는 절망과 공포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하루를 살아도 온전한 자신으로 살고 싶다고 했던 그는, 세상의 규칙을 파괴하고 운명에 맞서라고 설파했고 극한의 상황에서 행동했다.


<내가 아는 최다미>의 다미와 은결 역시 그러했다. 몸은 의체로 바뀌었으나 뇌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이 온전히 뇌라고만은 할 수 없다. 힘겨운 상황을 견뎌낸 데는 정신을 지탱시킬 몸이 어떤 형태로든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성형수술로 극복 가능하고, 노화로 생기는 신체 기능 이상 역시 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소설처럼 의체로 완전히 몸을 바꿀 수 있는 때가 언제쯤일지는 모른다.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현재 자신의 몸을 아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그까짓 거 어떻게든 이겨내 보겠다!’는 마음도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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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리플리 리플리 5부작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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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증후군을 탄생시킨 장본인, 그 톰 리플리씨를 이제야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워낙에 영화화가 많이 되어서인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름은 친근했으나 그의 소설들은 제목만 알았지 직접 읽어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플리 역시 알랭 들롱으로 처음 만났기 때문인지 낯설지가 않았다. 리플리의 재능은 대중적으로 이미 유명하다. 거짓말에 능수능란하고, 편지도 그럴 듯하게 잘 쓰며 자신이 상상한대로 이야기를 지어내며 결국 현실로 만들고야 만다.


소설은 리처드(애칭으로 디키) 그린리프의 부자 아버지가 리플리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이탈리아로 떠난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리플리에게 아들을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리플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는 부자 아버지 돈으로 유유자적 이탈리아에서 그림이나 그리며 한량처럼 사는데 자신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우니 불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그는 낙관적이었다.


나는 재주가 많고 이 세상은 넓다. 일단 일자리를 구하면 끝까지 버티겠어. 끈질기게 버티는 거야. 버티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디키는 자신을 찾아온 리플리를 반길 리 없다. 안면만 있을 뿐 친구랄 것도 없는 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보낸 하수인 정도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리플리는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디키에게 접근한다. 그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때론 굴욕적일지라도 감내하며 주위를 빙빙 돈다.


둘은 칸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리플리가 디키를 죽이고 만다. 여러 번 살인 충동이 일긴 했지만 소설 3분의 1정도가 지났을 무렵인데 너무 급작스러운 게 아닌가 싶었다. 디키의 시신을 바다에 버리고 리플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디키 행세를 하며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온 후 디키의 친구 프레디가 찾아오자 그도 살해한다. 초반부에 두 명이나 죽인 뒤 작가는 남은 분량은 어떻게 소화하려고 한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디키의 여자 친구 마지의 의심, 이탈리아 경찰의 수사, 디키 아버지가 데려온 미국 사설탐정의 조사까지 리플리는 그의 재능으로 잘 넘긴다.


신체 조건이 디키와 비슷했기에 디키와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그의 말투와 행동을 흉내냈으며 서명도 그대로 따라했다. 이 소설을 요즘의 범죄 미스터리물과 견주면 허술해 보이고 억지스런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1955년에 발표된 작품임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에는 지문 조사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며 무엇보다 CCTV가 없었기 때문에 리플리가 자신의 행적을 지어낸 말로 충분히 무마할 수 있었다. 또한 목격자도 용의주도하게 피하면서 행동했기 때문에 리플리의 시나리오는 크게 빗나가지 않고 실현되었다.


리플리는 분명 범죄자이고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소시오패스라 부를만하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가 리플리를 싫어하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한다. 두 명을 살해한 리플리가 어떤 거짓말들로 자신의 행동을 덮으려고 할지 궁금하게 만들고, 들킬 뻔한 상황에 이르러서는 그리 되지 않길 바라게 했다. 실제로 내 가까운 사람이 그러하다면 치 떨리게 싫을 것 같은데 독자라는 제 3자의 입장으로서는 그가 들키지 않길 바랐고,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 해도 한번 안락하게 살면 좋겠다는 연민까지 일었다. 이것이 작가의 능력이고 톰 리플리라는 인물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재능있는 리플리>1권으로 리플리 5부작이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역자는 1권부터 5권까지 천천히 읽어보라고 권했다. 2<지하의 리플리>에서는 결혼도 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자신의 원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5권까지 꼬옥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또 역자는 리플리 시리즈를 여행기로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리플리가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을 서술한 부분을 읽다보면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란다.


요즘 나오는 소설 속 주인공은 훨씬 잔인하고 사이코패스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인물의 범죄 행위에는 당위와 개연성의 잣대를 들이대며 읽는다. 그렇게 해야만 할 이유에 설득당하지 못하면 억지스럽다고 폄하하게 되는데 왠지 리플리에게는 그런 마음이 덜 했다. 거의 70년 전에 창조된 인물이라 후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외롭지만 철저히 혼자여야만 한다는 서술에 약간의 동정심이 일어서일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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