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있는 리플리 리플리 5부작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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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증후군을 탄생시킨 장본인, 그 톰 리플리씨를 이제야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워낙에 영화화가 많이 되어서인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름은 친근했으나 그의 소설들은 제목만 알았지 직접 읽어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플리 역시 알랭 들롱으로 처음 만났기 때문인지 낯설지가 않았다. 리플리의 재능은 대중적으로 이미 유명하다. 거짓말에 능수능란하고, 편지도 그럴 듯하게 잘 쓰며 자신이 상상한대로 이야기를 지어내며 결국 현실로 만들고야 만다.


소설은 리처드(애칭으로 디키) 그린리프의 부자 아버지가 리플리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이탈리아로 떠난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리플리에게 아들을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리플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는 부자 아버지 돈으로 유유자적 이탈리아에서 그림이나 그리며 한량처럼 사는데 자신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우니 불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그는 낙관적이었다.


나는 재주가 많고 이 세상은 넓다. 일단 일자리를 구하면 끝까지 버티겠어. 끈질기게 버티는 거야. 버티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디키는 자신을 찾아온 리플리를 반길 리 없다. 안면만 있을 뿐 친구랄 것도 없는 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보낸 하수인 정도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리플리는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디키에게 접근한다. 그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때론 굴욕적일지라도 감내하며 주위를 빙빙 돈다.


둘은 칸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리플리가 디키를 죽이고 만다. 여러 번 살인 충동이 일긴 했지만 소설 3분의 1정도가 지났을 무렵인데 너무 급작스러운 게 아닌가 싶었다. 디키의 시신을 바다에 버리고 리플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디키 행세를 하며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온 후 디키의 친구 프레디가 찾아오자 그도 살해한다. 초반부에 두 명이나 죽인 뒤 작가는 남은 분량은 어떻게 소화하려고 한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디키의 여자 친구 마지의 의심, 이탈리아 경찰의 수사, 디키 아버지가 데려온 미국 사설탐정의 조사까지 리플리는 그의 재능으로 잘 넘긴다.


신체 조건이 디키와 비슷했기에 디키와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그의 말투와 행동을 흉내냈으며 서명도 그대로 따라했다. 이 소설을 요즘의 범죄 미스터리물과 견주면 허술해 보이고 억지스런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1955년에 발표된 작품임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에는 지문 조사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며 무엇보다 CCTV가 없었기 때문에 리플리가 자신의 행적을 지어낸 말로 충분히 무마할 수 있었다. 또한 목격자도 용의주도하게 피하면서 행동했기 때문에 리플리의 시나리오는 크게 빗나가지 않고 실현되었다.


리플리는 분명 범죄자이고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소시오패스라 부를만하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가 리플리를 싫어하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한다. 두 명을 살해한 리플리가 어떤 거짓말들로 자신의 행동을 덮으려고 할지 궁금하게 만들고, 들킬 뻔한 상황에 이르러서는 그리 되지 않길 바라게 했다. 실제로 내 가까운 사람이 그러하다면 치 떨리게 싫을 것 같은데 독자라는 제 3자의 입장으로서는 그가 들키지 않길 바랐고,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 해도 한번 안락하게 살면 좋겠다는 연민까지 일었다. 이것이 작가의 능력이고 톰 리플리라는 인물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재능있는 리플리>1권으로 리플리 5부작이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역자는 1권부터 5권까지 천천히 읽어보라고 권했다. 2<지하의 리플리>에서는 결혼도 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자신의 원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5권까지 꼬옥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또 역자는 리플리 시리즈를 여행기로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리플리가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을 서술한 부분을 읽다보면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란다.


요즘 나오는 소설 속 주인공은 훨씬 잔인하고 사이코패스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인물의 범죄 행위에는 당위와 개연성의 잣대를 들이대며 읽는다. 그렇게 해야만 할 이유에 설득당하지 못하면 억지스럽다고 폄하하게 되는데 왠지 리플리에게는 그런 마음이 덜 했다. 거의 70년 전에 창조된 인물이라 후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외롭지만 철저히 혼자여야만 한다는 서술에 약간의 동정심이 일어서일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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