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서 얻는 그토록 풍부한 삶의 에너지와 기쁨을 또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제 아이가 나름의 인격에서 간주되면 될수록 아이에게 나름의 특징과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부드러움, 호기심, 상상력이 그러한 아이의 능력에 속하는데 그것은(이것이 중요하다) 어른이 고도 산업 사회의 요구와 강제에 순응한 결과로 더이상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즉 새로운 조건의 영향으로 어머니 노릇으로 얻게 되는 만족이 새롭게 강조되고 심지어 역사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심지어 몇몇 여성들의 경우 아이에 대한 동경 속에서 공공연히 어떤 치료를 기대하기도 한다.
우리는 배우자나 애인, 심지어 자식들로부터도 새로운 삶과 새로운 힘을 얻기를 기대한다.
아이를 바라는 동기를 들 때 별로 거론되지 않은 것 중에는 부모가 됨으로써 일직선적인 소비 및 출세 세계를 돌파할 수 있다는 예감, 그리고 아이는 안정된 사회가 없애려고 하는 예측 불가능성 및 계산 불가능성의 징후를 띤 사건이라는 생각도 들어있다.••••••젊은 부모들은••••••아마도 더 힘들고 때로는 짜증도 나겠지만 어찌되었든 아이가 새로운 인생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관문`일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아이를 갖는다.
`사람들은 아이와 더불어 많은 것을 체험한다.언제나 기분전환을 얻는다.`
"아이가 없다면 당신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의 하나를 빼앗기는 것이며 당신의 가능성을 다 써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내 모험심은 자기애와 호기심, 그리고 아이의 몸, 아이의 체취 및 소리에 대한 감각적인 동경을 먹고 자란다.
괴테의 말을 빌자면 "사람들이 아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결코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희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는 활력과 삶의 기쁨 덩어리이다."
물론 이 말은 아이가 새로운 조건에서 실존적 구멍을 메우기 위한 내용물 기능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난 늘 아이를 원했어요.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19세 소녀)
아이를 갖게 되면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학교를 중퇴한 18세 소녀)
자신의 길은 보이지 않고 막다른 골목만이 보이는 상황에서는 종종 아이에 대한 생각만이 유일한 희망이 된다.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지 알게 되지요.
필자들은 사람들이 아이에게서 "세계의 의미"와 "어려움으로부터의 구원"을 찾는다고 말한다.또 만평에서는 아이를 자신의 의미 추구욕의 수단으로 만드는 "섬뜩한 아이 바라기"를 보여주고 있다.
내 우정 관계의 허약함과 덧없음, 떠는 애인의 비영속성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게 되자마자 신화적으로 미화한 나와 내 아이 사이의 혈연 관계와 내가 거리에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이 고독과 고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하게 가능한 안전장치로 보였다.
또한 옛 가족들과 깊은 거리가 생겨 멀어진 경우 아이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다.
내가 내 인생을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을 때 개인적 전망도 정치적 전망도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면 나는 언제나 한 가지 사실만을 생각했다. 나를 구원하는 그 생각은 내가 아직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