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이일영 외 지음 / 지식공작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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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 사람이 사회에 무수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움 속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슬픔 속에 남겨졌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행했던 일은 결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82)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신이 발견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지난 7월 16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문구다. 7월 10일 오전이 기억난다. 출근 준비를 할 때, 뉴스를 보던 남편이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알렸다. 사무실에서는 온종일 '이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죽음의 원인을 추측하고, 고인을 애도하고, 성폭행 피해자의 입장을 걱정하고, 정치적 의견까지 오갔다. 한 정치인의 죽음과 그 죽음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여러 결로 확장되고 추측되는 상황이었다. 지식공작소의 책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는 그 상황이 고스란히 활자로 녹여져있다. 책은 사회를 맡은 이일영(교수)과 세 명의 패널, 이인미(시민단체 활동가), 이재경(역사학과 정치학 전공자), 도이(정치 활동가)가 2020년 7월 24일 '젠더 좌담회'에서 다룬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다.

좌담회는 박원순 시장 유고 사태를 비롯해 여성에 대한 인식, 미투, 페미니즘, 안희정 전 지사 사건, 정치적 권력 등에 대해 얘기한다. 가장 먼저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당선되기 전까지, 1993년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를 맡아 승소했고, 양성쓰기 운동, 호주제 폐지운동 등에 힘 쏟으며 여성인권 향상에 기여한 인물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혼동의 감정을 야기했다. 이일영 교수는 좌담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공격을 받는다"며 "(이것은) 이야기를 하면 양 극단으로 맥락이 만들어져 어떻게든 공격이 나오기 때문(p.26)"이라고 말한다. 이재경 님이 경험한 카톡방 사례도 등장한다. 누군가 추모글을 올리면, 또 다른 누군가가 들이 받고, 말이 없던 몇 사람이 우르르 나가는 상황. 이것에 대해 이 교수는 "삼분의 일과 삼분의 일이 싸우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숨는다."며 "우리 사회가 세 쪽이 난 셈"이라고 얘기한다. 한쪽은 박, 다른 한쪽은 피해자, 나머지는 회색분자가 되는 셈이다.

박원순의 죽음과 고소가 함께 회자되며 '사건'에 대한 입장은 주로, 두 가지로 나눠졌다. (1)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성폭력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2)피해자 입장을 두둔하는 것=페미니스트 또는 박원순을 지지하지 않는 것. 프레임 양 끝에는 박원순과 피해자가 서 있다. 이것은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이 보도된 후 더 선명해졌다. 서울시장(葬)이 도마위에 오르며 정치적 색이 덧입혀졌다. 쉽게 생각하려는 걸까? 하나의 논점으로 정리하고 싶은걸까? 혹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걸까? 패널 이재경님의 "추모와 슬픔이라고 하는 감정과 이 피해자 문제를 좀 분리해 생각하고 싶다. (p.25)"고 말한다. 진일보한 정치인이라 믿었던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문제와 그 사람이 행한 성 관련 이슈는 별개의 것으로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대자보의 핵심이 이것이리라.

패널들은 '정치권력'도 논의한다. 이일영 교수는 "뛰어났던 존재가 막다른 길에 몰려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는 걸 보면 정치권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생긴다.(p.27)"며 "권력이 주어졌을 때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게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인가 보다 하는 공포감(p.28)"이 든다고 말한다. 공포감. 이것이 박 전 시장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생명'과 맞닿은 공포였을 것이다. 반면, 안 전 지사의 피해자 김지은 씨는 다르다. 그녀는 '언짢게하면 안되는' 사람을 모시는 수행비서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면 직장이 하루아침에 날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여러차례 말을 했지만) 쉽게 말을 하기 어려웠다'고 수차례 언급한다. 이것은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한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에 대해 느끼는 공포다. 결국 정치권력은 각자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박 전 시장의 사건과 안 전 지사의 사건, 유사해 보이는 두 사건에는 두 명의 피해자가 등장한다. 박 전 시장의 죽음으로 우리나라가 들끓었을 때 정치인과 연관된 사건에 호기심이 생겨 책 <김지은입니다>를 읽었다. 틈틈히 읽으려 책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다. 지나가며 책 제목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많이 순화한 표현이다) "그 사람 책도 냈어? 별일이네" "뭐 그런 책을 읽어?"였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고통이 간접적으로 전이돼 힘들었고, '그저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주변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상처받았다. 이게 왜 아무일도 아니지? 묻고 또 물었다. 보통 두 사건의 피해자들을 비난하며 입막음 시키는 공통적인 의견이 하나 있다. 바로 "그때 얘기했어야지" 라는 것. 책에는 '여성들이 피해를 당했을 때 바로 반발하지 못하는 이유'에 논의도 나온다. 이인미 활동가는 "여성들이 자기결정권을 죽여야 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양육된다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며 "태어나서 한 번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해보지 못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고 그걸 행사할 수 있을까? (p.37)"라고 되묻는다. 그러면서도 피해자 역시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배우며 성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회문화적 맥락을 짚으면서도 피해자로 수렴되는 삶보다는 나아가고 발전하는 삶을 지향하라는 목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걸까.

얼마 전, 일년간 휴직하고 돌아온 (연차 차이 많이나는) 남자선배가 복직했다.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있던 나를 엘리베이터에서 본 그는 "혹시 임신했어? 좋아보이네?"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살쪘다고 놀리시는 건가요?"라며 받아쳤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동료들이 순식간에 모두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놀림거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주변에 있던 몇명의 동료들이 '요즘 그런 얘기하면 큰일나'라고 농을 칠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순식간에 상황은 종료됐다. 다수의 눈빛과 웃음이 내내 기억에 남아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몇 시간을 앉아 사건을 복기하다 용기를 내서 그 분을 따로 만났다. 이래저래해서 기분이 나빴고, 그런 말은 앞으로 삼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는 내가 이와 관련해 어떤 처분을 내리더라도 달게 받겠다며(회사안에는 성희롱 관련 정식 절차가 존재한다) 정말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 선배는 왠지 다시 마주치고 싶지가 않다.

책에는 '온정적 차별'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온정적 차별이란, '저 사람이 선한 의도로 말했다는 게 다 보이지만 나에게는 불편한 차별 (p.57)'이다.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안 그러자니 마음이 불편한 그런 차별. 결은 서로 다르지만 박 전 시장의 피해자도, 안 전 지사의 피해자도, 그리고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었던 나도, 한 켠에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차이가 있다면 빈도와 강도였을 것이다. 책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은 여러 '성'관련한 사건을 담고 있다. 박원순에서 시작해 안희정, 이윤택, 고은 사건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와 이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공식발표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사건의 진짜 사안을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568p에 달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들이 사건관계자들 눈에 안보이는 것 같아 답답했고,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우리나라 성 관련 사건들이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암울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과, 남녀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결은 많이 다른걸까.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려운 걸까. '#피해자와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 대신 '한 사람이 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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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 K-방역을 둘러싼 빛과 그림자
안종주 지음 / 동아엠앤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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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가고 친구를 만나는 일상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여름 휴가를 가며 코로나19가 종식된 듯 했지만, 8.15를 집회를 기점으로 우리 삶의 반경은 다시 줄어들었습니다. 코로나19, 과연 2020년만 버텨내면 되는걸까요? 서울대 미생물학을 전공한 후 여러 언론에서 복지전문 기자로 활동한 저자 안종주는, 책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 전쟁> 프롤로그에서 "코로나19를 중심으로 감염병과 맞닥뜨린 인간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p.7)"고 말합니다. 감염병학을 강의하고, 질병과 관련한 글을 쓰는 저자의 입장에서 지금의 사태가 어떻게 보였을까요?


"인간은 두려움을 주는 존재를 만나거나 재앙적 사건 앞에서 내면에 감추어진 모습이 드러나고 그에 따라 온갖 군상이 나타난다. (p.7)"고 저자는 말합니다. 책은 이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코로나19 발화 시점인 2019년 12월로 돌아갑니다. 중국 우한에서 괴질이 발생하고 해당 지역 의사들은 사스나 메르스 때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사람 간 전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만방에 알립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대중의 관심은 '중국 정부의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통제 여부, 발설 여부, 그 범위까지. SNS를 타고 쓰러져가는 중국 의료진들의 모습과 감금됐다는 블로거들의 제보가 이어지면서, 중국이 '숨기고 있다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전 세계가 알아차리고 맙니다.

이후 유람선에 관광객들이 감금되는 등 전 세계적 멈춤 상태가 발생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입국금지의 범위, 우한 교민들의 한국 수용 논란 등의 홍역을 치릅니다. 그 때 질병관리본부는 매일 코로나19 상황을 브리핑하고, 확진자들의 동선을 SMS로 안내했습니다. 8.15 두번째 확산 전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다."라고 일컬어졌던 우리나라의 힘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책에서는 홍혜걸 의학박사의 진단키드 관련 발언, 감염병 확산에 대한 가짜뉴스, 종교집단으로 인한 확산 등을 다룹니다. 또 책은 마지막에 '코로나가 준 숙제는 인권(p.331)'이라고 말합니다. 신천지 교회, 이태원 클럽과 관련된 확산을 언급하며 종교집단과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렸다고 저자는 언급합니다.

책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 전쟁> 제목을 접했을 때, 코로나를 중심으로 한 사람 간, 집단 간의 오해와 불균형, 윤리 문제 등을 기대했습니다. 미드 '워킹데드'에서 좀비와 싸움을 하던 인간들이 파를 나누며 서로를 파괴하는 과정이 있듯이, 미드 <100>에서 지구의 자원을 두고 싸우는 어른과 청소년들의 대치와 같은 상황 말이죠. 그러나 책은 '코로나19'에 대해 연대기적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발원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데이터는 언론의 기사가 대부분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옵니다. 이런 상황에 안종주 저자의 책은 코로나19 요약집처럼 느껴져 아쉬웠습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들을 한눈에 보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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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땐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 - 오늘 행복해지고 싶은 당신에게
김옥림 지음 / 미래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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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책을 읽고 싶습니다. 부담없고 소소하고 평화로운 책. 꼭 무언가 의미를 찾지 않아도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 그런 마음으로 펼친 책이 김옥림 저자의 <힘들 땐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 입니다. 시, 소설, 에세이, 동화, 동시, 자기개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는 이번 책에서 '마음 방역'에 집중합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코로나 시대를 이겨낼 마음을 키우자 말합니다.


책은 아주 저자의 소소한 것들을 독자와 나눕니다. 풀에서 자라난 들꽃, 독자들이 보낸 메일, 제자가 가져온 들깨로 만들어진 향기로운 저녁 등 입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한 글을 읽으며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책은 총 6파트로 구성됩니다. 힘들 땐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날, 나를 만나는 시간, 향기가 있는 저녁,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사람이 되라, 멈춤 그 아름다운 미덕 입니다. 120여 편으로 녹아든 저자의 생각을 보고 있으면, 우리 모두의 작은 '일상'이 '이야기'요, '감동'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사람과 관계에서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대하고자 하는 열망이 샘 솟습니다.

가끔은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나만 뒤처진 것 같아 조급해집니다. 버겁기도 하고 지치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이럴 때일수록 '멈춤'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 삶이 힘들다는 건 당신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의미'라고 위로합니다. 코로나, 삶, 관계 등 우리를 구성하는 여러가지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을 '더 잘되기 위한 신호'로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책이 주는 메시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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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요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 1
이은채 지음 / 스토리닷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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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불만이 가득합니다. 미소는 물론 표정도 사라졌습니다. 'Golden Laugh'라 불리던 쾌활한 웃음이 어느 순간, 숨어버렸어요.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자 무서웠습니다. 걱정도 됐습니다. 내가 변한 걸까? 나를 잃은 걸까?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7년간 요가를 했습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원이어서 선택했습니다. 선생님과 합이 잘 맞아, 동네 언니 동생처럼 지내기도 했습니다. 요가 강사를 해보면 어떻겠냐 제의를 받았지만, 꿈많고 당찼던 20대의 제게 요가는 운동이자 취미였습니다. 이후 필라테스, 킥복싱, 권투 등 다양한 운동을 접했고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가 교습소를 다니지는 않지만 새로운 요가 학원이 생기면 눈이 머뭅니다. 언젠가 다시 가야할 곳처럼 느껴집니다.

'삶은요가' 이은채 대표가 책 <내가 좋아하는 것들, 요가>를 냈습니다. '삶은요가'는 요가를 중심으로 한 몸과 마음 테라피 교육을 진행하는 곳입니다. 제목만으로는 요가자세를 담은 그림과 설명이 빼곡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책에는 요가 뿐 아니라 음식, 몸, 일상 등 이은채 작가를 둘러싼 다양한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상처로 남은 당시의 기억.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수시로 들었(p.11)'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싶었다. (p.12)'고 고백합니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저자는 요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시기의 불안정했던 마음이 요가를 통해 위로받았다. (p.7)'고 말합니다.


책은 요가를 통한 저자의 회복을 담고 있습니다. 요가를 하며 마음이 열리고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힘들었던 기억과 아토피로 생활이 어려웠지만, 끊임없이 요가를 실천하자 '마음 상태'와 '주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는데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낱개의 문장으로 놓여진 저자의 회복 과정을 읽으며 마치 제 마음을 따뜻하고 섬세한 무언가가 톡톡 건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문장이 진행되면서 한 사람과 그 주변의 공기가 밝아지는 기분. 그걸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에는 이은채 대표의 가족, 여행, 음식,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저자의 가족은 '낯선 곳에서 요가하며 한 달 살기'를 실천합니다. 제주도와 발리에서 살아보며, 쫓기는 여행이 아닌 가족과 자신을 바라보고 보살피는 시간으로 만들어 갑니다. 또 아토피 치료에 관심을 쏟으면서 인공제품을 멀리하는 자연주의 생활도 언급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먹는 것이 곧 내 몸'이라는 생각에 적극 공감합니다. 음식에 깃든 에너지가 곧 나를 이룹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와 상업성에 물든 소비생활에 익숙해져 가공식품을 자꾸만 입 속에 넣고 맙니다. 이밖에 생활을 간소화하는 자세도 보여줍니다. 역시 많은 분들이 지향하는 지점이 아닐까요. '마음 속 공허함이 클수록 소비에 집중한다'는 말이 다시금 와닿습니다.

여러 이야기 중 이은채 작가의 '일'에 대한 태도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저자는 요가를 직업으로 갖는 것에 회의가 들었던 때를 회상합니다. 분명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는데,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자신의 페이스를 잃고 초심을 놓쳤다고 말이죠.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는 그런 권태기, 하지만 벗어나는 방법은 제각각 입니다. 저자는 '배우는 것을 즐기는 태도(p.83)'를 가져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진짜 관심있는 것을 공부하다 보니 기분 좋은 느낌이 들고 이것은 곧 즐거움과 만족감으로 연결되는 걸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호기심의 대상은 몸과 마음 모두에 있었지만 우선 몸을 여는 게 좀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84-85)'고 고백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는 말, 핑계에 불과한 이 말을 자꾸 내뱉는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아버지의 임종 장면에서 같이 울고, 요가로 신체를 이완할 때 저도 숨을 골랐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멈추고 깊이 들여다볼 때' 느껴지나 봅니다. 천천히. 느리고. 깊이있게. 어쩌면 그간 제가 느낀 불평과 짜증도 이걸 못해 생긴 건 아닐까요. 핸드폰과 컴퓨터와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끊임없이 눈과 머리에 자극을 집어넣기만 바빴던 시간들.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았기에 마음이 무거웠던 건 아니었을까요. 요가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미니멀라이프, 자연주의 등 도움받을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책꽂이 제 눈이 잘 닿는 곳이 이은채 대표의 책<제일 좋아하는 것들, 요가>를 놓아둘 생각입니다. 오늘부터 천천히, 느리고, 깊이있게 나를 바라보는 일을 하고싶어요. 이 초심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다시금 꺼내 읽을 생각입니다. 이은채 대표님이 운영하신다는 요가 클래스도 한 번 가보고 싶네요! 그리고 또 하나, 저만의 <제일 좋아하는 것들, OO>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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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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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어떤 관계의 사랑도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자꾸 떠오른 건 왜 일까. 캐서린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마음,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그것도 모두 사랑일까. 로테의 주변을 멤돌던 베르테르가 결국 "하느님, 제 비참한 꼴을 보고 계시니 이제 끝내 주십시오. (p.170)" 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사랑인걸까.

단테,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 3대 지성인 괴테는 1774년 자신의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출간한다. 1772년 독일의 베츨라에 있는 제국대법원에서 법관시보로 일했던 괴테는 친구의 약혼녀,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진다. 당시 자신의 경험이 모티브가 되어 괴테는 단 7주만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소설에는 청년 베르테르가 등장한다. 변호사인 그는 한 상속 사건을 처리하러 시골 마을에 내려온다. 그곳에서 약혼자가 있는 법관의 딸 로테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만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가 '빌헬름'이라는 자신의 친구에게 로테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고스란히 담아 보낸 편지 형식을 띈다. 친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편지 형식이지만, 날짜별로 서술되어 있어 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에서는 화자의 다양한 생각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큰 맥락은 '로테에 대한 사랑'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 인간의 어리석음, 사랑에 대한 갈망과 같은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된다. 이런 표현은 화자의 생각을 속속들이 알게하지만 다소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읽혀 독자들의 집중을 방해할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한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부터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지! 내가... 너는 그런 것에 대한 감각이 있으니 너한테는 고백해도 될 것이다. 나 자신을 얼마나 숭배하게 되었는지! (p.66)"

화자는 온전히 '(자신이 느끼는)사랑'으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 로테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의기양양해 하고, 약혼자 알베르트가 돌아오자 의기소침해진다. 그리고 결국 로테가 알베르트와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자 마지막 입맞춤을 한 뒤 세상을 등진다. 이런걸 사랑의 위력으로 봐야할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정도로 한 여자에게 빠져 사리분별을 잃어버리는 사람. 이런 파국 로맨스가 더 이상 효용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또, 로테의 태도도 문제로 읽힌다. 로테도 분명 베르테르의 감정을 알아차렸다. 약혼자가 있으면서 다른 남자의 감정을 받고 즐기는 로테는 어떤 마음이었던걸까. 그저 좋은 사람으로 옆에 두고 싶었던 걸까. 사랑을 포함한 감정이 어려운 것은 이렇듯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허밍버드 클래식M'에서 출간된 소설이다. musical의 m을 딴 '허밍버드 클래식 m'은 뮤지컬과 오페라의 원작이 된 소설들을 시리즈로 내놓는다고 한다. 9월에 공연을 시작하는 뮤지컬 <베르테르>를 볼 때 참고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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