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단숨에 읽어 치웠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 견딜 수 없는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아주 원초적인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의 즐거움.


사실 실존이니 진실이니, 주체니 자아니하는 온갖 위대한 사상으로는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없다. 그런것들은 인생을 헝클어뜨리기 위해 발명된 것이다. 당신의 삶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아, 지금까지 믿어왔던 게 전부 진실이라고 생각해? 사상은 의문과 고민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사악한 용이다. 이 용은 우리가 현실에 안주해 휴식과 평안을 얻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이 용의 세례를 받는 순간 우리가 의지하던 세상은 흐물흐물 무너지다가 마침내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절대적 암흑으로 변해버린다. 


하지만 이야기는 정반대다. 이야기는 휴식을 준다. 어린 시절 우리는 아련히 들려오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 우리와 똑 닮은 사람과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삶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견고한 증거가 된다.





소네 케이스케의 단편집 '코'에는 일본 현대 소설이라면 예의 등장하는 엽기가 존재한다. 트라우마, 정신병, 암매장, 장기 매매, 사지 절단 기타 등등.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이 비정상적인 이야기를 매일매일 현실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기사는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누가 누구를 죽인 다음 시체를 토막내 조금씩 조금씩 내다 버렸다는 얘기 조차 더 이상 뉴스가 될 수 없는 시대인 것을. 


그렇다면 이 소설은 진부한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끔찍한 현실에 익숙해져 있다지만 오히려 그것은 너무나 익숙해져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처럼 뿌옇게 우리 주변을 떠다닌다. 우리는 장기 매매와 암매장, 토막 살인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을 느껴본 적은 없다. 이 소설의 대단함은 이렇게 막연하게 떠다니는 고통의 관념을 아주 날카로운 칼날로 벼려낸다는데 있다. 소네 케이스케는 이 칼날을 움켜쥐고 우리의 피부를 잘근잘근 썰어준다. 그것도 우리가 똑똑히 지켜보는 앞에서.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단편은('폭락', '수난', '코') '수난'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작이라 부를만하다. 특히 '폭락'의 경우 소재가 너무나 기발하다. '폭락'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주식 시장에 상장하는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그곳의 인간들은 자기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인간 관계를 관리하고 억지로 선행을 일삼는다. 


그러나 이것을 과연 가상의 세계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의 세계를 돌아보라! 오늘날 인간 관계 맺기는 더 이상 온정과 인간애의 발현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이며 언제나 관리되야 하는 대상이다. 결혼은 두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한 숭고한 도전이 아니라 돈과 돈이 만나는 거대한 비지니스다. 나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면 부모형제와의 관계도 청산해야 한다. 그건 몰인정한게 아니라 최선의 의사결정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우리는 무진장 애를 쓴다. 시장이라는 절대적 '신'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찍이 법으로 통치하는 것에 실패한 이 사회를 온전하게 다시 세운 것은 시장이었다.'(63p)라는 대사는 이 소설의 백미다.





'수난'은 그다지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일본인이라면 충분히 써낼 수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코'는 앞선 두 작품에 비해 가장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다. '폭락'이 소재의 참신함으로 활화산처럼 질주하다 뻔한 반전으로 추락하는 허술함을 보였다면(이런걸 보면 역시 신인은 신인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코'의 경우 구성이 매우 치밀하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마치 평행선처럼 진행되던 두 이야기가 결정적인 순간 마주치며 등골이 오싹한 전율을 끼얹는게 이 소설의 특징이다. 


두 이야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표현 자체도 꼼꼼히 신경썼다. 한 명의 등장인물은 평범하게 또 한 명은 독백으로. 특히 독백의 경우 등장인물의 정신병적 심리를 아주 잘 묘사하는데 이것이 또 다른 등장인물과 극명한 차이를 보여 소설 전체에 기괴한 분위기를 드리운다. 줄거리와 구성이 중요한 작품이기에 이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소네 케이스케를 단순한 호러 소설가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소설가는 우리 사회의 악마적 얼굴을 '호러'라는 장르로 버무려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 같은 자질은(주제와 표현의 완벽한 결합) 그야말로 대작가에게서나 볼수있는 능력 아닌가! 물론 소네 케이스케는 아직 신인이다. 그의 자질은 일부에서 번뜩이며 나타났다 곧바로 사라지곤한다. 


이 신세대 작가를 '부조리'란 옛 단어로 수식하고 싶지는 않지만, 문득 그 단어가 떠오른 이유는 내가 아마도 소네 케이스케에게서 '아베 코보'의 아메리카노 버전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는재로 2012-05-19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뵙겠습니다 님의 서재에댓글은 남기는것은 처음인데
확실히 단순한 호러 작가라고 설명하기 에는 작가의 글을 이끌어가는 스타일이 장난아니죠 저는 코와 폭락이 가장 마음에 들더구요 모든것을 자본으로 생각하는 주가에 의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는 방식또한 현대의 물질만능을 비판하는

한깨짱 2012-05-21 19:41   좋아요 0 | URL
역시 모든 분들이 코와 폭락을 언급하는 걸 보니 '수난'이 좀 아니긴 아니었나 봅니다. 저도 '폭락'의 경우 그 소재의 선택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사실 완성도 측면에서 보면 '코'가 더 좋긴 한데 '폭락'이 주는 소재의 신선함은 가히 충격적이었네요.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 탱고를 찾아 떠나는 예술 기행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에노스 아이레스. 리오넬 메시. 보르헤스. 그리고 왕가위. 나에게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축구의 나라였고 보르헤스의 도시였으며 왕가위의 고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난 이 도시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것은 땅고.


두 남녀를 보라. 나른하게 달아오른 조명 아래 잔뜩 긴장한 상체가 물흐를 틈도 없이 밀착해 있다. 두 사람은 지금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검은 양복에 머리를 빗어 넘긴 남자는 그 시원하게 드리운 이마처럼 자신감에 넘쳐 흐른다. 여자는 이미 남자에게 몸을 맡긴 뒤다. 부풀어 오르는 감정에 고개는 젖혀지고 두 팔은 남자의 얼굴과 어깨를 꼭 안아 쥔다. 두 다리를 수줍게 포개어 몸을 뒤트는 순간 남자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여자의 다리를 훑고 지나간다. 





이것이 바로 탱고다. 사랑의 격정과 황홀의 순간을 노골적으로, 솔직하게, 그리고 정열적으로 표현해 내는 춤. 이 사랑이 이토록 격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두 남녀가 이별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탱고 한 곡은 보통 3분 내외이며 길어야 5분이다. 3분 후면 그들은 떨어지는 것이다. (중략) 3분이든 30년이든 똑같다. 탱고나 인생이나 다를 바 없다. 언젠가 상대는 떠난다. 그러므로 이별을 전제로 한 춤에서 그들은 정열적일 수 밖에 없다. 끝을 알고 하는 사랑이니, 그렇게 안타까운 것이다.(37p)


탱고는 원래 부두 노동자들의 춤이였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에 경제 부흥의 바람이 불던 시절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항구에는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떠나온 청년들로 가득찼다. 그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왔다. 매일밤 시달리는 향수는 말할 것도 없지. 청년들은 허기진 마음을 채우기 위해 사창가를 찾고 독한 술을 마시지만 어디 영혼의 굶주림이 물질로 채워질 수 있겠는가. 사무치는 고독에 그들은 동변상련의 몸둥이를 부둥켜 안고 서로의 외로움을 치유했던 것이다.





탱고가 춤이라면 그것은 또한 음악이기도 했다. 탱고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것을 듣고 나면 '아 이게 탱고였구나'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곡이 있다. 알파치노 주연의 '여인의 향기'에 나온 바로 그 음악. 그 강렬한 선율 때문에 한 번 듣고 나면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곡이다. 


탱고 음악은 물론 탱고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었다. 기타와 바이올린과 이동식 피아노로 구성된 밴드는 역시 빈민층의 음악 답게 조촐하고 애잔했다. 탱고의 양식은 표현력과 이동성에서 확고한 우위를 보였던 반도네온이 밴드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부터 확실히 자리잡기 시작한 모양인데 독일 이민자들의 손에 들려온 이 악기는 원래 찬송가 반주를 위해 만들어졌다. 싼 가격과 휴대성 때문에 개신교 보급에 큰 역할을 한 이 악기는 지구를 반대편에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날아와 또 하나의 '붐'에 불을 붙인 셈이다. 바로 '탱고'라는 붐 말이다. 


20세기 초 우연히 프랑스에서 발매된 탱고 음반은 이 이민자들의 음악을 전세계로 알리는 기회가 됐다. 그리고 이 인기는 예상치 않은 결과를 얻어냈다. 바로 아르헨티나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어느 정도 봉합하는 구실을 한 것이다.


말했다시피 탱고는 부두의 노동자, 보잘것없는 하층민의 음악이자 춤이었다. 상류층은 이 춤과 음악을 지저분하고 퇴폐적인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음악이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얻자 그들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20세기 초의 전형적 부르주아 답게 아르헨티나의 상류층들은 유럽 문화라면 무조건 숭배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탱고도 받아들일 수 밖에. 이 우스꽝스러운 현상은 사람의 편견이라는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견고한지, 또 그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한다. 무력과 피가 아닌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 우리는 언제쯤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여전히 많은 탱고바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말벡 와인을 마시고 두꺼운 스테이크를(아르헨티나는 소고기가 유명한데 인구 3천만인 이 나라는 소가 6천만 마리라고 한다) 먹으며 탱고의 기에 젖어든다. 


창 밖 거리에는 외로운 가로등이 홀로 불을 밝히고, 어둠 속에선 두 남녀가 서로의 몸을 밀치며 마치 고독의 뿌리를 뽑아 버리려는 듯 뜨거운 땀방울을 쏟아 낸다. 가슴을 저미며 울리는 반도네온과 바이올린의 울음. 콘트라베이스의 육중한 울림은 끝내 우리를 고독의 심해로 끌고 내려가려는 바위추다.

책을 읽는 내내 탱고를 듣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눈에 아른거리는 사랑, 그 떨림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가져다 준 것. 아이폰, 맥북, 앱스토어, 꿈, 열정, 비전 그리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관리자.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성공 이후로 독단과 고집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우리네 사장님들.


이 책이 우리 나라에서 무수히 많이 팔렸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과연 몇 명이나 완독했을지 의심스럽다.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은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과는 달리 약간 지루하다. 호흡이 길다. 쪽수가 많다. 하지만 잡스가 유일하게 인정한 자서전이듯이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를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대안이다.




알게 된 것


나는 스티브 잡스가 왜 그렇게 통제에 집착했는지 알 것 같다. 기본적으로 대중은 무지하고 천박하다. 그들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게 뭔지 모른다.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물어보면 이것 저것 맹렬히 얘기한다. 그리고 정확히 그렇게 만들었을 때 괴물이 탄생한다. 대중들은 그 괴물을 보고 이것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대중의 가능성을 본다. 그들에겐 '정말로 원하는 것'을 지각하는 능력 자체가 없는게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후적이다. 무엇을 보기 전까지 그들은 그게 뭔지 모른다. 자유를 줬을 때 그들은 괴물을 만든다. 하지만 완벽한 경험은 완벽한 통제에서 나온다. 완전함 속에 자유는 없다. 



반박하고 싶은 것


이 책의 저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운영 체제의 최종 승자가 된 것을 두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일종의 심미적 결함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보기엔 그렇지 않다. 세상은 제대로 돌아간다. 사람들에겐 추한것과 아름다운 것을 봤을 때 그것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는 본능적 감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을때 천지가 개벽한거다. 세상은 통째로 뒤집혔고 지금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두려운 것


나는 안드로이드가 세상을 지배할까봐 두렵다. 세상이 또 다시 추와 미숙함으로 뒤범벅된 몰취향의 지옥으로 빠져들까봐. 어쩌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엔 정말로 미학적 결함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린 얼마나 오랜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하는 걸까. 


잡스는 죽었다. 그의 시체 주변에 지금 굶주린 까마귀 떼가 한 가득이다. 한 거대 전자 회사의 회장은 돈을 벌기 위해 휴대폰을 만든다. 위대한 영혼은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아이폰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가 만든 제품 덕분에 비로소 미에 대한 올바른 취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반성하는 것


스티브 잡스는 독단적이었다. 그렇다면 독단적인 것은 스티브 잡스인가? 나를 돌아보자. 나는 사용자와의 대화 없이도 정말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독단적이다. 나는 통제를 좋아한다. 나는 훌륭한 제품이 뭔지 알고 있다.만약에 실패하면? 그땐 '세상을 너무나 앞서 갔기 때문'이라고 적당히 둘러대면 그만이다. 세상은 나를 알아 볼 능력이 없다. 


스티브 잡스는 독단적이었다. 나는 독단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스티브 잡스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는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컴퓨터 회사의 CEO가 되기 전까지 스티브 잡스는 루저였다. 그는 직업이 없었다. 대학을 중퇴했다. 아는게 없었다. 그는 차고를 빌려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그가 짜 넣은 코드나 설계한 회로는 하나도 없었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뚜렷히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고집을 부렸고 억만장자가 됐으며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추방당하고 돌아와 완전히 새롭게 세계를 재창조 했다.


그의 능력이 그저 타고난 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따라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도전'이다. 덧붙여 '꿈'을 꾸는 것이다. 


꿈꾸고 도전하라.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격려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군자란 2012-05-0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브 잡스가 매혹적인것은 그가 루저였었고, 이 시대의 지식의 권력자들이 옳다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편견, 아집에 도전하면서 끝내는 그들에게 강력한 케이오펀치를 날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 인물이라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말 대단한 인물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인물이 나올수 있을 까요?

한깨짱 2012-05-07 13:18   좋아요 0 | URL
잡스 신드롬에 대한 가장 탁월한 분석이네요. 여지껏 읽은 어떤 얘기보다 간결하고 정확하고 유려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아마 이런 인물이 나올 수 없을 겁니다.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시장 자체가 너무 작아요 ㅎㅎ 근데 그건 그렇고 이 리뷰 진짜 못썼네요...

군자란 2012-05-0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철학 대 철학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앞으로 강신주의 책은 따지지 않고 다 보기로 했다. 미학에 진중권이 있고 경제학에 장하준이 있다면 철학엔 강신주다. 그렇게 정했다. 이유를 묻지 마라. 철학은 강신주다.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단 철학 vs 철학은 온 지구의 철학을 전부 쏟아 부을 기세로 독자를 압도한다. 제목에도 vs, 대결이다. 주제 하나에 적어도 두명 혹은 그 이상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책의 두께는 전설적인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훌쩍 넘겨 버린다. 쪽수는 928.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의 부피는 그 안에 담긴 사상의 무게와 질에 비례한다. 철학 vs 철학은 정말로 세상 모든 철학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날리는 강신주의 초강력 훅이다. 




책을 보는 내내 출판사 그린비가 원망스러웠다. 이런 책은 5권 정도로 분권할 수도 있지 않나.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서양편과 동양편으로만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린비는 확실히 동서양 철학의 바이블을 만들고 싶어한것 같다. 오로지 한 권. 그 야심만만한 기획에 우선 한 방 맞고 들어간다. 

다음은 내용. 강신주에 반한 이유는 그가 아주 쉬운 철학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었던가? 그 천재 물리학자는 '무언가를 어렵게 설명하는 건 그가 잘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정확치는 않지만 대충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강신주는 철학의 대가다.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그러나 그 쉽지 않은 무게에 머뭇 거리던 사람, 그런 사람에게 철학 vs 철학은 아주 편안한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928페이지의 부담을 이겨낼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 말이다. 


내용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반은 서양 또 반은 동양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서양의 것을 우리것 보다 앞에 두기 시작했지? 지금 당장 나가서 서점을 둘러 보라. 서양 철학은 넘쳐나지만 동양의 것은 쓰는 이도 찾는 이도 드물다. 이에 대한 반발로 한 때 공자니 맹자니 고대 중국 사상이 뜨기도 했지만 대개는 경영과 결합된 상업주의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천박하긴! 철학은 철학으로 남겨 두어라! 철학 vs 철학은 공평하게 책의 반을 동양 철학에 할애한다. 강신주 본인의 전공도 도가다. 그래서인지 동양 철학에 대한 애정이 넘쳐 흐른다. 잊혀진 우리 것을 기필코 제자리로 돌려 놓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뿐만 아니다. 동양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우리 자신 조차 중국 사상의 아류로 생각해 왔던 한국과 일본의 철학까지 소개한다. 비록 그 양이 많지는 않지만 그 의미는 분명하고 또 확실하다.


내용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 각 28개 씩 56개의 장으로 나뉘어진 철학적 쟁점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기 때문에 그것들의 역사, 즉 철학사까지 포괄하고 있다. 사실 사상의 진보란 앞선 시간의 축적이 포화됐을 때 터져 나오는 빅뱅의 순간 아니던가. 모든 뒤에 것들은 앞선 것에 대한 반발과 저항으로 시작돼지만 사실 그 앞선 것이 없다면 뒤에 것의 저항 또한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까 모든 낡은 것들은 혁명의 어머니. 우리가 항상 새로운 것만 찾고, 새로운 것만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언젠간 기필코 시대착오적이 되고 만다. 역사는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이말은 우리가 겸허해지기 위해서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이 정말 철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가? 불행하지만 아니다. 그 누구도 한 권의 책으로 철학 모두를 담을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너무 오만한거다. 이 책의 임무는 무지한 당신과 나를 철학의 샘, 그 무궁한 지혜의 우물로 인도하는 것이다. 철학 vs 철학은 철학의 샘으로 가는 기나긴 사막, 그 구도에 동행한 한 병의 물이다. 물이 적다고 욕하지 마라 당신은 이 물에 구원받아 비로소 샘에 도달했으니, 이것을 얼마나 먹고 마실지는 모두 우리에게 달린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군자란 2012-04-3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 그양반 책은 의외로 중독성이 있는것 같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쓰는 능력이 상당히 탁월한 양반인것 같습니다. 이 양반책을 읽다보면 위로가 되는 데요. 스펙이 그다지 출중하지 않는데도 짱짱한 책들을 계속 내는 것보면...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게 부럽죠!!

한깨짱 2012-04-30 18:24   좋아요 0 | URL
이 분은 정말로 철학을 열심히 하시는 분 같습니다. 존경 할 만한 사람 같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다작가 아닙니까! 이런 사람 흔치 않아요. 맘 같아선 전작을 구매해 보고 싶지만, 한 권 읽는데만 진이 쭉쭉 빠져서 쉽지 않네요.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은 느리다. 요즘 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시류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책을 골랐다면, 당신은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다. 책이 느린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쓰기가 어렵다. 주제를 정하기가 어렵고 구성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뿐만 아니라 출판 후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여러모로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다. 책이 무거운 이유는 쪽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이 모든 책임과 의무가 한 쪽 한 쪽 켜켜이 쌓여 단단한 무게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럼 왜 책을 봐야 하는가? 책에는 시류를 초월하는 깊이가 있다. 신문은 하루살이 인생이고 잡지는 한달 짜리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책은 백년을 간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자식에서 또 그 자식으로 누누히 읽혀 내려지는 건 책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이 시류를 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발빠른 신간이라면 중요한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책이 많이 나올수록 사회는 더 똑똑해진다. 속도와 깊이를 겸비한 책 만큼 인간의 지성을 살찌우는 건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아프리카가 없다'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 책이 2011년의 가다피 축출(리비아의 독재자)을 다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릿적 얘기가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2011년이라면 엄연히 과거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좀 봐주시게 그래도 아직 4월이지 않은가.


이 책은 불행한 노예 무역이 시작됐던 15세기 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 역사의 요점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좀 더 무게가 실리는 쪽은 현재이며, 역사를 정치와 문화로 나눌 수 있다면 방점이 찍히는 쪽은 정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아프리카의 기아, 폭력, 독재가 모두 현재의 일이며 그 모든 것들이 저급한 정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정치는 실로 암울하다. 아니 암울하다는 말조차 과분하다. 국제 원조는 매년 수십조가 투입되지만 부패한 국가 지도자들은 그 돈으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열중한다. 그들이 탐하는건 원조금 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초거대 다국적 기업과 신흥 경제 대국들은 아프리카의 석유, 다이아몬드, 철광석 등 양질의 천연 자원을 노리고 부패한 지도자에게 검은 돈을 뿌린다. 아주 싼 값에 자원 채굴권을 넘긴 지도자들은 그 돈으로 무기를 산다. 그리고 그 무기는 독재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살해하는 군대를 무장시킨다.


우리가 이 책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끔찍한 아프리카의 현실이 대한민국 근대 역사와 쌍둥이처럼 닮아있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와 내전, 수십 년간의 독재, 군대를 동원한 국민의 학살.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곰곰히 살펴 볼 때 마다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극복한 듯 보이는 대한민국이 실제로는 과거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현정권의 인천공항, KTX 매각 건이나 최근의 지하철 9호선 사건만 봐도 이는 분명해진다. 공권력을 이용한 폭력은 물대포 진압과 쌍용 자동차 파업 해산을 보면 확실해 진다. 정치 검찰을 동원한 야권 탄압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국민은 여당을 숭배하고 있으며 그 마음을 선거를 통해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렇게 현재는 또 다시 과거를 향해 질주한다. 저자는 '아프리카 비극의 출발점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정치 문화에 있다'(176p)고 했는데 과연 여기서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대한민국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나는 정말로 자신이 없다. 


물론 이 책이 한국의 정치를 비판하기 위해 씌인 책은 아니다. 실제로 저자는 아프리카의 불우한 현실과 그 원인을 냉정하게 짚어볼 뿐 그것을 한국의 현대사와 무리하게 연결해 독자를 정치적 가치 판단의 혼란 속으로 몰아 넣지 않는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이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아마도 그 자신이 아프리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쭉 보고 있으면 그런 애정이 곳곳에서 드러나 책을 읽는 내내 진지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 우리가 아프리카를 주목하는 이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경제적 미개척지로서의 잠재력을 봤기 때문이거나 그 대륙을 남의 도움 없이는 도무지 회생 불가한 낙오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프리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가진 오래된 역사를 떠올리지 않는다. 고대 문명의 어머니 아프리카는 그렇게 기아와 내전과 부패와 가난에 압사해 버렸다. 


이 책의 부제인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는 결코 과장된 언어가 아니다. 저자는 상기되어 있되 결코 흥분하는 법 없이,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애정어린 손길로 해체한다. 아마도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 해체된 잔해 속에서, 우리는 아주 밝게 빛나고 있는 아프리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