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가평전 1,2>를 구입했다. 가격이 거의 9만원을 호가하고 소생 경제가 이미 북풍한설 몰아치는 황량한 겨울 벌판과도 같이 된지가 오래지만 소생이 비록 끼니를 거르고 옷을 헐벗게 입는다 하더라도 이 서책을 구하지 못한다면 어찌 모범장서가라고 하겠는가 이말이다. 뭔 말인지.... 하여간에 출간되자마자 구입했다. 이제 실물을 끌어안고 쓸고 닦고 어루만지며 어여뻐하니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모르겠고 옷을 벗고 있어도 추운줄을 알지 못하겠다. 뭐 이미 식후이고 또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소생의 심사가 몹시도 흐뭇하다는 말씀이다.

 

원제는 <뛰어난 건축가, 화가, 그리고 조각가들의 삶>이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평전으로 미켈란젤로의 제자이자 16세기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의 작품이다. 바사리 자신 역시 화가이자 건축가였다. 하지만 바사리는 그의 미술 작품보다는 이 책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또 하나 바사리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피렌체에 있는 바사리 통로. 베키오 궁전에서 우피치 미술관을 거쳐 아름다운 베키오 다리를 지나 피티 궁전에 이르는 800미터 가량의 비밀 주랑이다. 메디치 가문의 주문에 따라 바사리가 설계한 이 주랑은 백성들의 폭동을 대비한 메디치가의 도피 통로였다. 비밀통로는 비밀통로여서 통로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다. 메디치 사람들은 이 비밀통로의 창문을 통해서 피렌체 사람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위대한메디치가의 몰락은 아마도 이 비밀 통로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그런데 베키오 다리 위 2층의 바사리 통로의 작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아르노 강의 풍경은 역시 일품인 것이다.

 

이건 뭐 여담인데, 2차대전 당시 피렌체에서 퇴각하던 독일군이 아르노 강의 다른 다리는 모두 파괴했지만 베키오 다리만은 남겨두었다고 한다. 이유는 히틀러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무슨 결재문서 남아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어쨋건 오늘날의 우리가 14세기에 건설된 아름다운 베키오 다리를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다 총통각하 덕분인지도 모른다. 다리가 파괴되면 당연하게 다리 위 2층의 바사리 통로도 파괴되었을 것이다. ‘각하 덕분에 이런 좋은 구경을 하게 되었어요총통께 감사의 말씀이라도 올려야할지 모르겠다. 바사리 통로는 예전에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구경할 수가 있다고 한다. 통로의 벽에는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에도 이 바사리 통로가 등장한다.

 

오래전에 나온 이근배 역의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은 이미 절판된지 오래고, 얼마전에 올재에서 역시 이근배 역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1,2>가 나와서 얼른 구입했는데 아시다시피 올재의 책은 부담없는 가격의 보급판이어서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역시 미술가들의 평전임에도 도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또 내용을 조금 읽어보니 이 책은 바사리 작품을 완역한 형태가 아니라 평전의 방대한 분량을 감안하여 그 일부분을 선택하여 수록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조르조 바사리로 표기하는 것을 올재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르조 바자리로 표기해 놓아서 이게 또 얼토당토 않게시리 그러면 본문의 번역상에도 약간의 이상한 해석도 있지 않을까하는 되도않는 걱정을 조금쯤 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평소에도 걱정이 많으신 나귀님께서 우려하신 바, 한길사의 본 도서는 이미 오래전에 나왔던 이근배 번역본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서 이에 미술전문가의 해설을 붙여 재출간하는 것이다.(물론 수많은 작품의 도판들이 추가되었다) 소생도 나귀님의 말씀대로 전문번역가가 번역하고 미술전공자가 감수하는 형식으로 새롭게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검색해보니 이근배는 생화학자다. 1914년생으로 평양의전을 나와 일본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역임하였고, 40세가 넘어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하바드의대 등에서 유학했다. 르네상스 고전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59년 귀국해서 20여년에 걸쳐 원고지 18,000매 분량의 바사리 작품을 완역했다. 1978년에 번역을 마쳤으나 한동안은 선뜻 맡아줄 출판사가 나서지 않아 묵혀두었다가 1986년에야 탐구당의 호의로 500부 한정으로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7년 세상을 떠났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전문번역가의 번역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선생의 위업을 폄하하거나 감히 얕잡아 보는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60년대 당시 생경한 미술고전 번역이라는 분야에서 선구에 홀로 서서 용기와 끈기로 이루어낸 노작에는 열렬한 감사와 깊은 존경을 표할 따름이다.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바사리의 이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영미독 3개국에서만 번역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건 그런고 이건 또 좀 다른 이야기인데, 이 책이 한 권에 사만오천냥이나 하고 총 6권으로 나온다고 하니 계산해보면 27만원이다. 끼니를 거르는 것도 하루이틀이고 맨날천날 벗고 살수도 없으니 바사리의 평전을 완비하는 데는 애로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어찌 눈물콧물 없이 그냥 공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있겠는가. 종국에 이르러서는 책장을 뜯어 풀죽을 쑤어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생이 요즘은 부르크하트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를 읽고 있는데(읽기 시작한지 한달이 넘었는데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래도 지금은 354쪽을 읽고 있다. 역시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나 유럽미술사, 서양중근세사 등등 뭐 이런데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뭐 이러쿵 저러쿵 쿵쿵짝짝 박차에 맞춰 혼자 깨춤을 춰본들 이런 물건이 나왔으니 좋든 싫든 구입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소생이 무슨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호사가의 취미로 책을 읽고 장서가의 욕심으로 책을 구입하고 있는 그런저런 형편으로 아직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지도 않았지만(사실 언제 읽을지 알수도 없고, 어쩌면 이 책은 완독보다는 사전 형식으로 사용이 유용할 것이다.) 어쨌든 실물을 받아보니 도판이 풍부하고 판형이나 조판도 깔끔하니 무척 마음에 든다. 쓸고닦고 물고빨고(... 이건 아니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하였다. 소생이 오랜만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참!! 나귀님게 땡스투 했어요 호호호

 

    

 

 

 

 

 

 

 

 

 

 

 

 

 

 

 

 

 

 

 

 

 

 

 

 

 

 

술탄 메흐메트2세의 초상화를 그린 젠틸레 벨리니 편의 내용이다.

한길사 판과 올재 판 해석을 비교해 보시라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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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26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생화학자시면서 이런 쪽에 관심이 많으시다니,
과연 능력자시군요. 저는 부러워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근데 올재판이 좀 싸지 않나요?
암튼 축하드립니다!^^

붉은돼지 2018-05-27 17:39   좋아요 0 | URL
올재는 한번에 보통 4-5권씩 나오는데 가격은 대충 13000원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한권에 삼천원 정도이죠....
싼 값에 일단 나오면 무조건 사모으고는 있는데 이게 또 세월 지나니 양이 좀 됩니다.~

oren 2018-05-26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책이 있는 줄도 새까맣게 몰랐는데, 아무튼 ‘모범장서가‘ 분들께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식인 듯하군요.^^ 그런데, 붉은돼지 님께서 요즘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를 읽고 계시다니 괜히 반갑습니다.^^ 저는 니체가 쓴 책 속에 부르크하르트가 소개된 걸 보고 일부러 그 책을 찾아 읽었는데,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이 어찌나 매력적으로 소개되어 있던지, 그 책을 읽는 동안 그런 도시들(로마, 폼페이, 나폴리, 피렌체, 베네치아 등등)을 다시 가고픈 열망이 치솟아 올라 괴로워 죽는 줄 알았답니다.^^

붉은돼지 2018-05-27 17:48   좋아요 0 | URL
저는 부르크하르트의 책을 브로델의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를 읽다가 소개를 받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브로델의 책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지루하더군요. 그래도 무슨 운동하는 자세로 꾸준히 읽고는 있습니다. 저도 부르크하르트의 책을 읽다가 프란체스코의 고향인 아시시 이야기가 조금 자세하게 나와서 예전에 아시시의 아테나 신전인가 조그만 그리스식 신전 옆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아내와 딸래미와 저녁먹던 기억이 나고....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과 또 골목의 은은한 가로등 불빛 등등도 생각이 나서...아! 언제 또 가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transient-guest 2018-05-30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헉 이런 지름신유발이라니요..ㅎ 저도 나귀님서재에서 걱정하시는 글을 본 것 같습니다만, 그나저나 이거 또 군침이 흐르네요..ㅎㅎ

붉은돼지 2018-05-30 20:24   좋아요 1 | URL
책이 간지가 납니다. 저는 뭐 예전부터 구하고 싶던 책이라 구입했습니다만....나중에 6권 완비하면 완성체 사진을 또 한번 올려보겠사옵니다.

bella40 2018-05-30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같은 고수 독자가 계시니 참으로 안심되고 위안 받습니다. 저는 이 책 해설 쓴 고종희입니다. 35년간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연구했는데 바사리없이는 불가능했죠. 한국에서 도판, 해설 갖춘 바사리 저서가 출판되었다는 것 자체로 문화적 자부심 가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와 역자 이근배 선생 가족 관심 없이는 나올 수 없었답니다.

붉은돼지 2018-05-30 20:34   좋아요 0 | URL
아이쿠! 교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댓글을 남겨주시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교수님의 저서 <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여행을 떠나다>도 제가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음...
이번에 이런 책이 나와서 저로서는 몹시 반가웠습니다. 후속 편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