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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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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이야기들은 도처에 영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도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란 한 순간에 사람의 두뇌를 압도하다가도 다음 순간엔 까맣게 잊히곤 한다. 그러나 준비가 된 사람은 영감이 머리를 스치는 그 찰나의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도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떻게 이런 황홀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탄생했을까?'하고 놀라게 된다. 누군가의 머릿속 집에서 뚝딱뚝딱 만들어진 이야기가, 세상을 좀더 밝게 비추는 것이라면 더더욱 감탄을 그치지 못하게 된다. 독자들의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이 이 책은 유명 작가들의 소설이 시작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저녁을 먹고 슬슬 졸음이 몰려오던 순간에 번뜩 스치는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팔꿈치' 환영에서 시작된 이야기-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늘어지게 지루한 순간은 또 있다. 모처럼 간 여름 휴가에서, 내내 비가 내리는 바람에 따분한 휴가를 보내던 중, 우연히 그린 지도 하나에서 시작된 이야기- 윌리엄 포크너의 <보물섬>

이런 섬 이야기를 읽고 나서 '섬'이라는 공간에 영감을 받아 쓴 이야기 -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자신의 경험을 쓴 이야기들도 허다하다.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르테르나크는 실제로 아내를 두고도 문예지 사에서 만난 편집장 이빈스카야의 아름다움에 빠져 불륜을 저질렀고, 연이어 이빈스카야의 임신과 유산, 주위 사람들의 비난, 모든 이야기를 소설로 집필하였다.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은 파티에서 만난 르프로이와 첫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졌지만, 그가 부유한 여성과 결혼하고 변호사로서 성공하려는 야망을 가진 데 비해 그녀가 가난했으므로 헤어져야 했던 소녀적 풋사랑을 소설로 썼다. 


생업과 집필 작업을 동시에 수행한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일터를 떠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펜을 들 수 있었던 작가들도 있다. 과로로 심신이 피곤해지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그런 노고가 아깝지 않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지금부터 소개할 작가들에게 직업이 없었다면, 문학계의 전설로 남을 그들의 작품도 존재할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흔히,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작가의 상상력으로 지어낸 개연성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있을 법한 일이지만, 허구적인 이야기. 언뜻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기에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주위 사람의 삶을 이야기로 짓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 위해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이야기로 만든 이도 있다. 어쨌든 이들은, 어떤 순간에도 애정을 가지고 대상의 속까지 꿰뚫어 볼 만큼 깊이 관찰을 한다. 물론 어느날 갑자기 글을 써서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소설가들은 꾸준히 문학을 읽고 쓰고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다만 우연히 마주친 마법 같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언젠가 나의 작은 호기심과 푸석거리는 상상력을 충만하게 빛으로 채워준 소설들의 어릴 적 모습을 들춰 보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연애 이야기도 '어디서 어떻게 만났어?'하고 묻고 싶어지는 것처럼 그 무한한 꿈을 안겨 준 소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덮을 때 쯤엔 '작가들도 결국 보통 사람들과 다름 없이 고뇌하고, 사랑하고, 좌절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지어진다. 50여 편의 소설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가운데, 내가 읽고 알고 있는 소설은 열 몇 편밖에 되지 않아서, 다른 고전들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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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정호승.안도현.장석남.하응백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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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세계로 여행한다. 내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낯선 세계. 그 속에서는 '나'가 아닌 '우리'의 말들이 살아나고, 그 말들은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실어 나른다. 다시 돌아오는 무엇을 기다리거나 그러다가 지쳐 쓰러지거나 그 모두 사랑에 빠졌을 때 겪어내야 할 몫이다. 덧없는 사랑의 찌꺼기 같은, 온갖 그리움과 절망과 슬픔은.. 감추어 둘 만한 삶의 보석이 된다. 


시인에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눈과 영혼이 있다. 그래서 시를 읽는다는 것- 시인들의 언어로 세상을 보고 느끼는 일-은, 피상적인 것만을 좇는 철 모르는 나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그들은 희망을 위해 절망을 노래하고, 미래를 위해 과거를 짚어 보는 사람들이니까. 


이 책에는 정호승, 안도현, 장석남 시인, 그리고 하응백 문학평론가가 삶의 어떤 순간에 우연히 만났던 시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자 열 편 남짓한 짧은 글을 실었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시인들이기에 시인이 사랑하는 시는 어떨까, 호기심의 눈이 뜨였다. 잔잔하면서도 쉼 없이 파장이 일어나는 신비로운 호수처럼, 그들이 써 내려간 이야기 위에는 보이지 않는 파문이 퍼져나와 가을날 빛처럼 주위를 환하게 만들었다.


책은 가볍고 작은 판형이지만, 읽는 속도가 더디다. 그들이 너무 많은 감상을 실은 탓에, 문장에 비친 온도로 나의 모습을 나의 요즘을 투영해 보느라 책장 넘어가는 진전이 쉽지만은 않다.  네 사람 각자가 써 내려간 에세이에, 품고 있는 시를 세어 보면 스무 편 남짓이다. 이 중에서 김수영의 '거미'나 기형도의 '포도밭 묘지 I', 정호승의 '밤 지하철을 타고' 같은 시들은 새롭게 다가왔다. 아, 이런 시가 있었나.... 싶게 곱씹게 된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 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

                                      -김수영, '거미'




주인은 떠나 없고 여름이 가기도 전에 황폐해버린 그해 가을, 포도밭 등성이로 저녁마다 한 사내의 그림자가 거대한 조명속에서 잠깐씩 떠오르다 사라지는 풍경속에서 내 弱視의 산책은 비롯되었네. 친구여, 그해 가을 내내 나는 적막과 함께 살았다. 그때 내가 데리고 있던 헛된 믿음들과 그 뒤에서 부르던 작은 충격들을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 있네. 나는 그때 왜 그것을 몰랐을까. 희망도 아니었고 죽음도 아니였어야 할 그 어둡고 가벼웠던 종교들을 나는 왜 그토록 무서워했을까. 목마른 내 발자국마다 검은 포도알들은 목적도 없이 떨어지고 그때마다 고개를 들면 어느 틈엔가 낯선 풀잎의 자손들이 날아와 벌판 가득 흰 연기를 피워올리는 것을 나는 한참이나 바라보곤 했네. 어둠은 언제든지 살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만 골라 디디며 포도밭 목책으로 걸어왔고 나는 내 정신의 모두를 폐허로 만들면서 주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림이란 마치 용서와도 같아 언제나 육체를 지치게 하는 법. 하는 수 없이 내 지친 밭을 타일러 몇 개의 움직임을 만들다보면 버릇처럼 이상한 무질서도 만나곤 했지만 친구여, 그때 이미 나에게는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 정든 포도밭에서 어느 하루 한 알 새파란 소스라침으로 떨어져 촛농처럼 누운 밤이면 어둠도, 숨죽인 희망도 내게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네. 기억한다. 그해 가을 주인은 떠나 없고 그리움이 몇 개 그릇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될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짧은 촛불들을 태우곤 했다. 그렇게 가을도 가고 몇 잎 남은 추억들마저 천천히 힘을 잃어갈 때 친구여, 나는 그때 수천의 마른 포도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놀라운 空中을 만났다. 때가 되면 태양도 스스로의 빛을 아껴두듯이 나 또한 내 지친 정신을 가을 속에서 동그랗게 보호하기 시작했으니 나와 죽음은 서로를 지배하는 각자의 꿈이 되었네. 그러나 나는 끝끝내 포도밭을 떠나지 못했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기척없이 새끼줄을 들치고 들어선 한 사내의 두려운 눈빛을 바라보면서 그가 나를 주인이라 부를 때마다 아, 나는 황망히 고개 돌려 캄캄한 눈을 감았네. 여름이 가기도 전에 모든 이파리 땅으로 돌아간 포도밭, 참담했던 그해 가을, 그 빈 기쁨들을 지금 쓴다 친구여. 
                                                                                                            -기형도 '포도밭 묘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시인들이지만, 시를 통해 살아 있는 그들의 심장, 그 결을 따라 읽게 된다. 사라지지 말아야 할 이름들, 흔히 지나치기 쉬운 삶의 부스러기들이야 말로, 진정 삶을 빛나게 해주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사랑을 잃은 사람이 불쌍한가, 시를 잃은 사람이 불쌍한가. 


책을 다 덮고 보니, 표지 아래 켠에 써 있는 문장이 낯설게 다가온다. 

'시인은 청춘에 만들어진다' 

시로 맺어진 사람들의 열정이 가을밤을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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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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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야, 인생아, 나는 늘 늦게 깨닫지만, 그래서 후회도 많이 하지만, 가끔은 너희들의 뒤통수를 보며 웃기도 한단다. 안 잡을게. 그러니 뒤통수에 머리 길로도 괜찮아."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소설가 김연수는 꼭 마라톤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기를 하면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수백 가지'라고 생각하고, '매일 1시간씩 달리게 되면 인생을 압축적으로 맛보게 된다.'고 말한다. 


- '아휴, 또 달려야만 하는 것일까? 정말 달리길 잘했군. 아아아, 너무 힘들어. 오늘은 여기서 그만 뛸까? 결국 끝까지 왔군. 달리기를 정말 잘 했어.' 달리기를 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는 순간순간 조금 전의 자신을 배반하는 생각들이 오간다. 1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나'로 분리됐다가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달리기는 내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해 준다. 



이 책의 매력이라면, 달리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 너무 뻔한 비유와 설명들이지만, 실제로 운동화를 신고, 제 발로 달리며, 땀을 흘리지 않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가슴 시원한 삶의 비밀을 그는 폭로하고 있는 듯하다. (딱히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실제로 달리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인해, 그 쾌활한 기쁨은 비밀스러워진다.)




-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힘든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근육통과 지루함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러너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달리기는 고급 예술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절망을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인간으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삶은 고급 예술이다. 



오직 달리기만으로도, 그는 많은 '생각'을 얻은 것이 틀림없다. 김연수 작가는 걷고, 달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가슴 뛰는 삶을 누리는 의무이자 특권을 결코 놏치지 않을 것이다. '지지 않는다는 말'에는 이 꾸준한 열정이 들어 있다. 



책의 모든 문장이 나로 하여금 달리고 싶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이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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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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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소설가. 국내에서는 이미,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름이다. 나로서는, 그의 대표작인 '상실의 시대'를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인데. 어디까지나 화폭 속의 사건 묘사 마냥, 냉정한 분위기의 유지로 인해, 뜨거운 감정 몰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대작에 속하는 1Q84는 단숨에 몇날며칠 밤을 지새우며 읽어내려갔으니, 소설가의 섬세한 시각과 흥미로운 사건 진행이 밤하늘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이렇게, 소설로 다져진 하루키에 대한 기대치는, 에세이를 통해서 와르르 무너져 내리곤 한다. 지극히 사변적이고, 무미건조한 스케치에 불과한. 그의 에세이에는 감동도, 짜릿함도, 통쾌함도, 한줄기 빗소리 같은 시원함도. 대체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특별한 작가임이 틀림 없지만,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서 그의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특별하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예고편이 전부인 영화 같이, 이 책은 제목이 전부인 에세이에 불과하다. 책의 표지 뒤편에는 '맥주를 못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우롱차'에 이 책을 비유하고 있으나. 우롱차 같은 고유의 향기도 깊이도, 찾아볼 수 없어서 끝까지 아쉬움이 남았다. 그동안 신간평가단을 통해 읽었던 그 어떤 에세이보다도, 영양가 없었던 책이었다. 표지의 연두색과 분홍색 폰트는 시선을 단번에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지만, 알려진 대로 <앙앙>이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들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을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하루키에 대한 이미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오래 전에 읽었던 1Q84를 꺼내 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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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언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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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은지 2주일도 더 되었는데, 정말 오랫동안 읽었습니다. 


처음 책의 첫장을 넘겼을 때, 몇 줄의 글만 읽고서도, 권정생 선생님, 그분의 이름만 들어봤지, 여태껏 책 한 권 읽지도 못 한 것이 못내 부끄러워졌습니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몽실언니'의 모습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전부인데, 오늘에서야 선생님의 책을 읽고, 뜨겁게 눈물을 흘려봅니다.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가난'이란 말이, 겨우 펼쳐볼까말까 한, 오래된 국어 사전 속의 한 단어 같습니다. 아니, 실은 그 '가난'이란 말을 날마다 살아 있는 것으로 피부에 와 닿게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들이 드러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마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 요상스런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권정생 선생님이 태어나셨던 1937년 일제강점기, 그리고 십여 년 후에 닥친 한국전쟁, 그리고 이어진 독재와 역사의 그을음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충실히 살아냈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삶에 대해 치열했고, 그만큼 순수했고, 속으로 강인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아서, 눈물을 뚝뚝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민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존경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살아보지 않았기에, 이해라기도 어줍잖습니다. 그저, 밍숭맹숭하게 흘러가면서도 타락할 대로 타락한 이 시대에 대한 반성이 조금 엮어 있기도 합니다. 


'열여섯 살의 겨울', '자연과 더불어 크는 아이들'은 몇몇 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렵다고도 했는데, 아마 한 번도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들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진지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숨죽여 읽어내려 갔습니다. 진심이 담겨 있는 글은 마음 그대로가 전해져서, 읽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덥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그 자유는 사람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보잘것없는 작은 소자도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189쪽)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기쁨과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끼는 순수한 감정 때문이다.

(280쪽)  .. 복순아, 가난할수록 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착하게 살 수 있는 권리는 아무도 못 빼앗아 간단다. 우리 못 먹고 못 입어도 꽃 한 송이 참새 한 마리도 끝까지 사랑하자꾸나.(282쪽)"


선생님, 너무 단순한 이치의 한 말씀인데, 가슴이 무너질듯 아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렇게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할, 죽을 때 묘비명에 정당히 새기고 싶은 그 하나의 가르침이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더 낮아져야겠다는 다짐만 남습니다. 안 체하지 말고, 난 체 하지 말고, '~척 하는 것'들은 모조리 집어 치우고, 순전히 정직하고 착한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이 땅에 선생님의 귀한 이야기를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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