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델라스 웨이 - 넬슨 만델라의 삶, 사랑, 용기에 대한 15개의 길
리처드 스텐절 지음, 박영록 옮김, 넬슨 만델라 서문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어둑해진 저녁이 밤 10시가 되면 관리사무소는 문을 잠근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24시간 근무 체제이기에 새벽에도 어느 때라도 문을 두드리면 나가야 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거나 소란이 있으면 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문을 잠근다는 상징적인 행동이 휴식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가 된다.
그 시간이 되면 난 사무실의 불을 모두 끄고, 책상에 앉아 인터넷으로 구입한 조그만 스텐드에 불을 킨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 이곳에서 조용히 불을 키고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긴다.
근데 말이다. 일주일 전이었다. 노트북에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서평을 쓰고 지우고 속에 갑자기 잠근 관리사무소의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다. 마치 자기 집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그는 책상 앞에 있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이 시간에 누가 관리사무소를, 게다가 잠근 문을 어떻게 풀고란 생각에 어이가 없어서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 책상 앞까지 온 그는 나에게 말했다.
“루쉰p, 잊지 말아요. 첫 번째 법칙.”
그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스탠드 불빛으로 비추는 그는 주황색 꽃이 들어간 알로아 하와이 티셔츠를 입고,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채 미소 짓고 서 있었다.
‘첫 번째 법칙? 첫 번째 법칙이라니 이 사람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다급한 나는 지레 짐작으로 외쳤다.
“저기요, 당신 누구죠? 혹시 당신 만델라에요? 흑백 통합의 상징 만델라냐구요?”
고요한 사무실에 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질문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은채 그는 나에게서 서서히 멀어졌다. 양 손으로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며 어깨를 들썩이며 깡총 걸음으로 관리사무소 문을 향해 등을 돌린 채 걸어갔다.
문을 앞에 둔 그는 나를 획 돌아보며 양 손을 번쩍 들며
“우문투 응긍문투 응가반투!”
라고 크게 외쳤다.
그러면서 그가 문을 열자 갑자기 너무나 환한 햇살이 어두운 관리사무소를 비추었다. 난 눈이 부신 밖을 향해 나아가는 그에게 말했다.
“대답해 줘요. 당신이 그가 맞는지! 만델라!”
“으어어!”
내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외친 ‘만델라’가 현실에서는 ‘으어어’로 들렸다. 스탠드를 킨 채 잠들어 있었다. 내 눈 앞에는 켜진 채 깜박이는 노트북 모니터와 오로지 티셔츠에 흘린 침 자국만 나의 잠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가 만델라였나?’
눈부신 햇살이 비추던 밖은 여전히 어둡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자, 훅하고 찬 공기가 확 느껴졌다. 경비 초소까지 걸어가 보았다. 불 꺼진 그 안에는 소파에 누워 열심히 주무시는 경비 반장님의 얼굴이 보였다.
경비 반장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도대체 무슨 황홀한 꿈이기에 저리 침을 흘리시며 아빠 미소를 짓고 계실까?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첫 번째 법칙?'
녹색 표지의 만델라스웨이의 책을 폈다.
만델라의 첫 번째 법칙, 두려움이 없다고 해서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델라는 용기를 선택의 방식으로 본다. 두려움 없다는 것은 바보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용기라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만델라의 용기에 대한 해설이다.
그런가? 난 두려워하는 것일까? 난 매번 서평을 쓸 때마다 두렵다. 루쉰 선생은 ‘무덤’이라는 책의 서문에 자신의 책이 서점에 수북이 쌓여 있는 책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셨다. 나 역시 내가 쓰는 이 서평이 수 많은 서평의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인 아닌가? 도대체 두려움에 떨며 내가 왜 이걸 쓰고 있는 것일까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기가 선택의 방식이라면 써야 한다는 것일까? 만델라는 말한다. 용기가 있어서 용기 있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용기는 선택일 뿐 두렵다면 용감한 척이라도 한다. 그러면 용기가 있어 보이고 또 용기도 생긴다. 그런 것이다.
두렵다. 쓰는 것이 두렵다. 그래도 써서 올려라. 용기 있는 척이라도 하며 써서 올려라.
그럼 다시 시작한다. 만델라스웨이의 서평을.
어느 화창한 겨울의 오후, 난 헌 책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날 나는 본 매장에서 전집 창고로 이동 중 이었다. 폐지총각이라는 닉네임을 얻고 할머니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아가는 나의 모습은 참으로 간지 났다.
손수레는 책이 가득 실려 있고, 헝클어진 머리, 밀지 않은 턱수염, 양 쪽 무릎이 구멍이 난 청바지. 무엇하나 폐지총각으로써 부족함이 없었다. 퍼펙트하다고 할까?
본 매장에서 전집 창고에 가기까지는 차도 들어오지 못 하는 달동네 주택가 골목길을 빠져 나가야 했다. 손수레를 드리프트하며 주택가의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한 길을 요령껏 빠져 나가던 중 저 멀리 골목길의 끝 쪽에 여학생 두 명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교복을 입은 이 여학생 두 명은 청순한 긴 생머리에 치마를 한껏 치켜 올려 있었고, 날씨가추운지라 위에는 따뜻한 오리털 잠바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 청순한 여학생들이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입에 다가 자꾸 무언가를 가지고 가는 것이 나에게 보였다. 그녀들의 입 끝에서 보이는 그 희미한 불빛, 그것은 나 역시 자주 만나는 삶의 희망, 담배 불 이었다.
얼굴에 걸맞지 않게 담배를 피며 침을 뱉고 짝 다리를 짚고 서 있는 그 여학생들을 보며 뭐랄까 애잔함이 그리고 안타까움이 마음 속 깊이 몰려왔다. 아마 남학생이었다면 폐가 썩어죽던 난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면 할수록 나는 학생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담배 피지 말라고 했다가 ’아저씨가 뭔 데 간섭이에요.‘ 라고 받아 친다면 뭐라 해야 할까?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할까? 아니야, 너무 변태적이야. 인생은 기니 담배도 길다. 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결국 그 학생들 앞까지 온 나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내 목소리에 놀란 여학생들은 황급하게 꺾여 있던 골목길의 안쪽을 냅다 도망을 쳤다. 나 역시 학생들을 쫓아서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간 순간. 아뿔싸! 오로지 아뿔싸!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골목길의 끝나는 지점에는 조금은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그곳에 20~30명의 아이들이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쭈그려 앉은 채, 어떤 아이는 서서 아주 다양한 자세로 한 군데 모여 있었다. 담배 연기가 그 골목길을 가득 채워 마치 스모그와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마치 스파르타란 영화에서 협곡을 등지고 서 있는 스파르타 장수와 그를 잡아 먹을려고 했던 페르시아 군대와의 만남 같다고 할까?
다행히 여학생들이 주로 많았고, 남학생들은 5명 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눈빛, 그 고독 속에 피어나는 담배 연기 사이를 꿰뚫는 증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손수레에 헌 책을 가득 실은 채 넝마와 같은 옷을 입고 난 스파르타 장군처럼 칼 대신 손수레를 잡은 채 그곳에 서 있었다.
내가 그 골목으로 달려들고 그 아이들을 본 순간, 그 짧은 순간에 머리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죽는구나, 여기서 죽는구나, 30살의 짧은 인생 그래도 아름다웠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데, 여기서 마무리가 되는 것인가? 내일 신문에는 ’OO동의 한 주택가 골목길에서 폐지 모으던 젊은 청년 변사체로 발견‘ 이런 기사가 실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손가락은 날 피해 도망간 여학생들을 가르키고 서 있던 순간. 그 정적을 깼던 것은 그 여학생들이었다.
‘야, 뒤에 사람들 오나봐! 튀어!’
그것은 마치 마법에 걸린 석고상 조각들의 주문을 깨는 말처럼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이 아주 재빠르게 후다닥 뛰기 시작했고, 그 연기 속을 가로 질러 나가는 아이들의 무리를 바라보면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추측하기로는 내가 온 길은 사람 하나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내 뒤로 다른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이 아이들이 생각한 것 같다. 아이들은 몇 십초 만에 사라졌지만 그 때부터 들리는 내 심장의 소리는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두려운 게 없다고 해서 용기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는 총 15개의 넬슨 만델라의 삶의 법칙이 나온다. 그 중 첫 번째 법칙이 바로 저 문장이다.
만델라는 용기에 대해 자신의 정의를 내리고 또 이 책의 저자는 왜 만델라가 그런 정의를 내리게 됐는지 만델라의 인생을 통해 그 정의를 해석해 준다. 비행기를 타면서 두려움에 떨던 만델라가 사람들 앞에서 의연하게 행동한 것, 감옥에서 압박을 당하는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던 모습 등.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만델라가 왜 용기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를 이해한다.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그 마음, 그것은 어른이기에 너희들은 담배가 안 된다는 그런 논리의 마음도 아니었다. 안타까웠다. 그냥 말이다. 그들의 청춘이 안타깝고 속상하기에 그렇게 간 것이다. 그것이 용기였을까? 아니면 두려움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었을까? 그 구분은 할 수 없지만 다만 만델라 첫 번째 법칙의 마지막 부분에서 난 조금은 이해를 했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용기는 얼마든지 낼 수 있다고 말이다. 만델라는 자신의 부인이 자기보다 더 용기가 있다고 했다. 그 차별의 체제에서 자기 대신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위대해 졌기에 작은 용기가 과대평가가 되는 경우가 있고, 평범한 삶을 살기에 큰 용기가 과소평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적어도 두려움이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다는 아니 용감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만델라의 첫 번째 법칙은 나에게도 의미가 무척이나 깊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해서 만델라의 법칙이 이어진다. 신중하게 생각할 것, 다른 사람의 장점만을 볼 것, 앞에서 이끈다는 것 등등 15개 법칙에 모두 들어맞는 이야기를 쓰다 보면 아마 이 서재에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을거란 생각에 당당하게 이야기를 줄인다. 난 외로운 건 싫으니까.
만델라가 나에게 꿈 속에서 말해 준 말은 아프리카 속담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
관리사무소의 만델라 루쉰P는 말한다.
'내 서재는 다른 사람의 서재를 통해 서재가 된다.'
그 어디에도 풀 수 없는 얘기를 이 곳에서 풀며 혼자서 웃고 있을 때 그 외로움은 참으로 고독하다. 하지만 내 이 어둠에 같이 웃어주는 서재지기들을 통해 두려워도 쓰게 되고 또 같이 웃는다.
만델라의 저 말처럼 난 그대 덕분에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기다려 주셔서. 또 완전 쓰다만 서평 썼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