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읽지 못한 비즈니스 명저 8
시부이 마호 지음, 황혜숙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초베스트셀러 경제서 8권'을 한번에 읽어주는 벼락치기 특강!  
 
  '비즈니스맨의 책읽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불안한 국내외경기에 맞서서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바쁘게 근무에 열중하고 나면 입에서 단내가 나고, 신체의 배터리는 방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릴 지경이다. 그렇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와 '최신경제지식'을 토해 내는 경제경영서를 무시할 수도 없다.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시간을 쪼개고 쪼개 잠들기 전까지 눈비비며 읽어줘야만 한다. 하지만 필독서라고 알려진 세계적인 석학들의 책들은 왜 그렇게 하나같이 두꺼운 지 족히 500 쪽을 넘어서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읽기만 해도 벅차다. 그래서인지 지인들의 집을 방문해도 큰 맘먹고 사놓고는 완독은 커녕 절반도 읽지 못해 책장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책들이 한 두 권은 꼭 있다(나도 물론이고). 누군가 그 책 이야기를 하면 "응, 나도 그거 샀는데...아직 못 읽었어." 식의 대답만 할 뿐, 가뭄에 콩 나듯 읽어 그 내용을 이해하기는 더욱 힘들다. 비즈니스맨들에게 그런 책, 한 두 권은 꼭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  
 
  며칠 전 신문을 펴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채 읽지 못한 비즈니스 명저들이 포함되어 한 권으로 만들었다는 어느 기사를 읽었기 때문인데, 그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니 8 권의 베스트셀러 비즈니스 명저에 내가 산 책이 여섯 권이 들어 있고, 그중에 읽지 못한 세 권이 책이 들어있었다. 한편으론 부끄럽고, 반면 호기심을 자극했다. 제목도 명쾌하다. 시부이 마호의 책, [끝까지 읽지 못한 비즈니스 명저 8], 원제는 [大人のたしなみビジネス理論一夜漬け講座, 2006 : 어른의 교양비즈니스이론 - 벼락치기 강좌] 이다.
 




  이 책은 전 세계 1,000만 부 이상 팔린 최고의 베스트셀러 8권 즉, <NEXT SOCIETY>,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행동경제학>, <웹 진화론>,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 <블루오션 전략>, <The Goal>, <부의 미래> 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들은 당장에 필요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경영을 생각하거나, 사업을 구상할 때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 담겨 있어, 직장인이라면 꼭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게는 채 끝내지 못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와 [The Goal], 그리고 [부의 미래]가 포함되어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흥미로웠다. 게다가, [행동경제학]과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는 관심에 없던 책이라 새로운 책을 만나 어떤 책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저자 스스로도 이 책을 쓰기 위해 여러 번을 다시 읽기를 반복했고, 그런 중에 저자의 국적도, 책의 주제도 다양한데도 신기하게 내용이 서로 연결된 부분이 많은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이 책을 소개한다면 [세계적인 경영석학들의 명저 8권의 리뷰모음]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소개하는 책마다 저자를 간단하게 알리고, 책의 전체적인 개념과 핵심내용들을 해석했다. 그에 어울리는 쉬운 사례들을 들어 최대한 간결하고 알기 쉽게 설명했다. 이 책을 쓰기 위한 저자의 원칙이 '어려운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보다 재미있게' 라는 것이 무색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경영구루 '피터 드러커'의 <NEXT SOCIETY> 에서는 그에 대한 정의를 '넥스트 소사이어티는 지식사회다. 지식이 중요한 자원이 되며, 지식근로자가 중심인력이 된다.' 고 밝히며 시작한다.이미 일어나고 있는 특징적 변화 즉, 인구 구조의 변화(출산율 저하), 노동력의 다양화(노령화, 비정규사원화와 업무의 아웃소싱), 제조업의 지위 변화(금융서비스업에 밀리는 제조업 등) 가 큰 요인이 되어 넥스트 소사이어티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넥스트 소사이어티의 특징은 는 경계도 없고, 신분 상승이 자유로우며,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사회이고, 그 중심이 되는 지식근로자의 특징은 성별에 관계없고, 전문 영역 내에서의 이동이 수월하며,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의사결정에 의해 업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금전적인 안정보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더 만족을 느끼고, 일에 대하여 삶의 보람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런 지식사회에서 최고 경영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언제 명령하고 언제 파트너가 될지를 아는 것, 기업지배 구조가 변화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늘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는 것,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모두 함께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짐 콜린스의 대표적인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는 그의 전작前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이 위대한 기업이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설명했다면, 이 책은 미국의 여러 상장기업 중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업을 선정하여 그 속에서 그들의 공통점인 '도약의 법칙'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관성바퀴(플라이휠 Fly-wheel)의 개념'으로 집약된다고 말한다. 그 개념의 핵심은 관성바퀴가 움직이기까지의 축적 단계와 가속도가 붙어 힘차게 회전하는 돌파단계, 그리고 그 도약의 과정은 '규율이 있는 인재를 모아, 규일있는 사고방식을 가르쳐 규율있는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도약하는 기업에는 오직 회사만을 위해 야심을 품는 단계5의 경영자가 항상 있는데 이들은 겸손, 신중함, 불굴을 정신을 지니고 있으며 해야 할 일을 금욕적인 자세로 실행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 도약하는 기업은 그들만의 [고슴도치 컨셉]이 있는데 이는 '고슴도치와 여우의 동화' 에서 처럼 경영의 기본인 선택과 집중과 관련해서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작전을 펼 수 있는 고슴도치가 자원이나 다른 힘을 불필요하게 분산시켜, 결정적인 수준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여우보다 낫다는 뜻이다. 이들 도약한 기업의 전략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경제 엔진을 움직이는 것, 깊은 열정을 가진 일인데 이 전략 속에서 스스로 규율을 지키는 인재를 모아 철저히 고슴도치 컨셉에 의해, 일관된 시스템 속에서 규율있는 행동을 취한다면 어느 기업이라도 '도약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된 명저중 백미는 바로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일 것이다. 저자 스스로도 가장 어렵고, 소화해 내기 힘들어 맨 나중에 읽게 되었는데, 오히려 앞에서 읽은 책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이 책을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다고 고백할 정도로 편하게 읽히면서도 심오하고 깊은 뜻을 지닌 앨빈 토플러의 글 속에서 그만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토플러 부부는 이 책의 '부'에 대해서 "부란 돈을 대신한 말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오해하는 일이 많지만 실제로 돈은 부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부의 원천은 욕구다. 어떠한 종류의 욕구라도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부다. 갈망을 해소해주는 것이 부다. 부는 광범위하게 정의하면 경제학에서 '효용'이라 부르는 무언가를 단독이나 공유의 형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어떤 형태의 만족을 주든지 혹은 어떤 형태의 만족을 주는 다른 형태의 부와 교환할 있는 것이다." (p 199) 라고 말한다. 즉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만이 '부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있는 어떤 욕구를 채워주는 모든 형태의 것을 부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부가 전에 쓴 책 '제 3의 물결' 에서 처럼 세 가지 부의 물결을 타고 있으며, 현재 세계의 곳곳에서는 물결과 물결이 부딪히며 물보라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물보라가 거세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가장 먼저 제3 물결, 즉 지식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나라이지만 제 2물결의 저항세력에 의해 여러 면에서 저지당하거나, 1,2,3차 부의 물결이 물결이 혼재하여 이들의 충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고심중인 중국, 그리고 그것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세계의 시선들이 이를 말한다고 책은 전한다.
 
부富의 제 3의 물결을 일으키는 세 가지 요인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식이 있는데, 그 중에서 지식은 '정보를 모아 더 폭넓고 수준 높은 패턴을 만들어 그것을 다른 패턴과 연관지은 것'을 말한다. 이 지식은 어떤 사람이 사용할 때 다른 사람이 쓸 수 없는 자산이나 자원인 '경합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쓸 수 있는 '비경합재'이므로 부의 제 3의 물결의 자원이 지식이라면, 이는 희박한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무궁무진한 지식이라는 자원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제 3의 물결의 부 중에는 비금전 경제에서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혹은 만족을 얻기 위해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생산 소비활동이라 하는데, 그와 같은 개인 혹은 집단을 프로슈머Prosumer 라 한다. 이들의 활동은 가사노동, 자녀양육, 간호, 자원봉사등과 함께  DIY로 목제품을 만드는 일등도 포함된다. 나아가 정보 혁명을 뒷받침하는 프리웨어, 블로그, 위키피디아 등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생산 소비활동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생산 소비활동이 제 3물결 속에서 금전 경제와 함께 서로를 강화하면서 부를 창출해가고 있다. 이와 함께 지식자본이나 사회자본, 인적자본, 문화자본, 논리자본, 환경자본, 그리고 특히 월급을 받지 않는 생산소비자의 기여등이 합쳐져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자본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은 제 3물결의 변화가 자본주의를 재조명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행동경제학>, <웹 진화론>,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 <블루오션 전략>, <The Goal> 등의 책에서 놓쳐서는 안될 핵심개념들 즉, 가치혁신, 전략 캔버스, 액션 프레임워크, 기업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제약조건을 관리하는 5단계 시스템, 스루풋 회계, 손실회계성, 보유효과, 불평등 회피성과 간접적 상호성, 롱테일, API공개, BOP시장 등의 경제 핵심 용어들이 소개되고, 쉽게 설명된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데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소개되는 책 한 권을 읽는 시간의 절반 가량). 그래서 과연 내가 비즈니스 명저 8권의 내용을 훑은 것인가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물론 저자의 역량에 의한 리뷰인 만큼 이것으로 8 권 모두를 소화했다고는 볼 수 없겠다. 또한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설명하다 보니 저자들의 박식한 지식과 풍부한 사례들은 모두 생략되어 아쉬움도 없잖다. 하지만, 최고의 비즈니스 명저들 속에 숨어 있는 핵심적인 내용과 개념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짚을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겠다. 아직 못 다 읽은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알지 못했던 두 권의 책도 이 기회에 함께 읽어야 겠다는 계기를 심어주었다.
 
어설픈 실용서 몇 권을 들고 시간과 열정을 허비하느니 이 한 권을 제대로 소화한다면 시간과 비용의 경제적 이익을 확실히 얻을 수 있겠다. 지금껏 비즈니스 명저들을 사 놓고 너무 어려워서 읽기를 포기했거나, 시간이 없어 아직 읽지 못했다면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또한 [제대로 만들어진 경제서 리뷰]로도 손색이 없는 만큼 각종 레포트나 보고서, 리뷰를 써야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메뉴얼이 될 것 같다. 200여 페이지의 얇은 책이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영양가 풍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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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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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보는 분위기의 특이하고 멋진 독서기讀書記 !
 
 
  책을 읽게 되면서 생긴 않좋은 버릇이 한 가지있는데, 그것은 질투다. 마치 말로는 차마 다 할 수 없는 생각과 알게 된 무엇을 쏟아붓는 듯 종이에 빽빽하게 새겨놓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배움과 깨달음을 경험함과 동시에 '그들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는 의문과 가능하다면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황금알을 품는 거위처럼 그 속은 여느 장기臟器 와 다를 바 없음을 뻔히 알지만, 그것만은 나도 알지만 말 그대로 멋진 책을 만나면 항상 느끼는 않좋은 버릇이다.
 
  좋은 책을 쓰는 그들은 날 때부터 재능이 특출했을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잘 배운 것일까? 그들은 무슨 책을 읽고, 어떻게 책을 읽을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멋진 말을 만들고,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흔드는 것일까? 이 모든 것들이 멋들어진 책을 만날 때면 책 속에 거는 혼자만의 독백이었다. 최소한 그들의 서재만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들을 짐작할 수 있을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사람(그 깊이와 정도는 확실히 차이가 나지만)을 만났다. 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직접 그들을 파헤쳤다. 하지만 그녀 또한 파헤쳐져야 할 또 다른 대단한 독서가다. 생각하며 살아가기 위해 책을 읽는지, 책을 읽기 위해 살아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책과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이랑 수다 떨기, 책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사랑하기, 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따라 하기, 책에 나오는 음료와 음식 먹어보기, 책에 나오는 음악 찾아 듣기, 책이 알려주는 장소 가보기, 읽었으면 행동하기 등등 '책 행동학'을 즐기며 사는 여인, 정혜윤이다. 침대의 가장자리 네 켠에 책을 꼽아 놓고는 손가는 대로, 닥치는대로 읽으며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의 [침대와 책]이라는 책을 이미 쓴 바 있는 그녀가 이번에는 독서가로 알려진 어떤 이들을 찾아가 그들을 만나 이들의 삶에서 책과 조우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를 담아 또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침대와 책]에서 그녀와 함께 했고, 지금도 함께 하는 책들의 이야기로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면 이 책은 사람과 책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울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엮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책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제목 스스로가 책의 서문을 대신하는 듯 하다.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가 그것이다.
 


 
  이 책은 특별한 독서기다.
 지금껏 나온 여느 독서기와는 다르다. 완전 다르다. 한 순간을 '성공'이라는 한 단어(자화자찬의 성공이라면 절대로 쓸 데 없고, 타화타찬의 그것이라봐야 1분의 가십꺼리가 '성공'이 아니던가? 세치 혀를 통해 나오는 순간 그것은 빛이 바래는, 그래서 성공이란 단어는 스스로건 타인이건 절대로 세상에 나오면 안되는, 머리속에서 느껴지는 단어인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단어처럼..) 로 뭉뚱거려진 몇 몇의 인물들을 싸잡아 '나의 성공에는 이러이러한 책이 있었다' 혹은 '최근에 읽은 책은 이러이러하다'고 마구 적어놔 독자를 유린하는 것들과 다르다. 
게다가 녹취록 또한 아니다. 세간의 입에 떠오르는 '화제의 인물'을 찾아 그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받아적는 글로 읽는 인터뷰 또한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의 본업은 라디오 교양프로그램의 프로듀서. 특히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고 있다. 아마도 멋진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책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책을 좋아한 만큼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도 만난 적이 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하지만 인터뷰라는 [듣기위주의 일방적인 대화형식]때문에 자신의 소회는 말하지 못했으리라. 그 소회가 쌓이고 쌓여 병이 되었을까? 이 책에서는 인물들의 이야기중에 언급되는 책 속에서 떠오르는 자신의 책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 속에서 나는 듣지도 보지 못한 수많은 책들이 소개되는데(정말이지 난 서점에서 그 책을 온전히 내 힘으로 찾으라고 해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언급된 생소한 이름의 책속에 있는 글귀들은 멋들어지고, 아름답다. 그들이 그리고 그녀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이 책은 특이한 평전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은 어떤 이의 인생을 책으로 엮어본 작은 전기 정도가 될 것 같다'고 고백한 것 같이 단순한 독서기는 아니다.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그리고 저자 11 명인 듯 12명이 자신의 삶을 둘러보고 그 순간에 함께 했던 책과 책 이야기를 엮었다. 한 권의 책이 그들의 인생을 바꾸기도 했고, 또 다른 책을 만나는 계기를 던져주기도 했고, 지금의 자신이 있게 했던 책들도 있었다. 평범한 듯 비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을 새로 고쳐보고, 새로 알아보게도 했다. 무엇인가 이루고 있는 그들의 삶에 함께 동반하고 있는 책들을 만나는 경험은 특별했다. 특히 군인에게 총알일 수 있는 글쓰는 작가들이 말하는 그들이 사랑한 책이란,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작가와 글귀를 만나기란 그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행운이겠다 싶다. 내게는 행동하는 지식인 진중권을, 그리고 사랑하는 명배우 문소리를 다시 보게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책 혹은 책읽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지금껏 먼 산 보듯 그림 훑듯 종이에 새겨진 활자를 눈으로 찍었던 것은 아닐까? 책을 읽는다고 하면서 오롯이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제대로 읽는 Reading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쫓아 단순히 Seeing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지금껏 즐겨왔다고 여겼던 책읽기를 돌아보게 한다. 책 속의 숨겨진 주옥같은 글귀를 기억하고, 저자의 전작全作을 쫓아 그들의 그림자를 따라 밟기도 하고, 책 속의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으며 온몸으로 체감할 줄 아는 그들이야말로 '책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그들의 소중한 인터뷰 대화들을 약간은 숨겨진 듯 뭍은 듯 반짝거리는 빛을 발하는 은빛으로 담았다. 이야기의 무게에 대한 그녀만의 예우로 느껴졌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글귀를 옮겨적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한 권을 모두 옮겨적어야 할 판국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그들이 뱉어낸 이미 읽고 소화해 낸 한 권의 책들이 내게는 앞으로 읽고 싶은 180여 권의 화두頭 로 남겨졌다(210여 권의 책중에서 읽은 것이라곤 20여 남짓. 그것도 동화와 최근의 책들 뿐이었다. 이 책들은 대체 어디에 숨겨져 있었던가?).
 
  "책을 읽기는 하는데, 머리속에 남은 것 같지도 않고...어떤 때는 읽었던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조금 읽는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이 책에서 만난 이들의 글을 보니 숨이 턱 막힌다. 과연 그들이 인터뷰 속에서 이렇듯 책을 말하고, 소중한 글귀들을 읊조렸단 말인가? 그리고 저자는 그들의 말에 꼬리를 물고 또 이 책과 같은 생각을 했단 말인가?
 20여 년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복성고조를 보면 주인공 성룡과 원표가 어마어마한 적을 만나 열심히 싸웠지만, 무참하게 매를 맞는다. 뒤로 물러나 서로 어깨를 마주하고 적을 보며 원표가 말한다. "저놈, 고수다." 그러자 성룡이 말한다. "아냐, 고고수야." 그러자 둘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합창한다. "토끼자(도망가자) !" 지금 내 마음이 그와 같다. 이것은 서점에 들렀을 때 '내가 읽어야 할 책들은 10년 전과 똑같이 아직도 많구나' 하는 중압감과는 또 다르다. 뒷걸음치며 도망가고 싶다. 그래서 다시 처음 책을 뽑아든 그때로 돌아가 책을 읽고 싶다. 한 권의 책을 만나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이 말하는 책에서 또 다른 책을 배우고, 저자가 펼치는 이야기 중에서 책읽기의 참맛을 느끼게 되었다.
 
P.S : 저자인 정혜윤 님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어느 도서행사의 공식석상이지만, 그녀는 특별히 초대되었기에 식전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터라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온 청자빛의 무릎 짧은 원피스와 귀여운 모자가 그녀의 모습과 참 어울렸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운치있는 책 표지를 주목하니 랜턴에 비친 책을 무릎을 앉고 쳐다보고 있는 소녀가 아마 저자인 듯 싶다. 표지속 인물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책을 많이 읽는 그녀는 말도 잘하고 책 속의 소녀만큼 미인이었다. 그녀는 많은복을 받은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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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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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인들의 유토피아, 그곳에서 한국의 미래를 살피다.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의 책을 대하게 된 것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물론 중고교 시절에 책을 아예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꼭 읽어야지'하고 마음에 두었다가 읽은 책이 없다는 것이다. 하숙생활을 했던터라 동급생의 하숙집에 놀러 갔다가 한 두 권 빌려봤던 식으로 책을 읽었다. 당장 생각해 봤을 때 정확히 책제목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뿐이었으니 아예 읽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그렇게 짧은 독서력으로 대학을 들어갔으니 나도 한심하지만, 당시 대학입시제도 또한 한심하기 그지없다. 
 


  내가 다닌 대학교 주변엔 서점이 세 군데가 있었다. 물론 학교내 학생회관에도 한 군데가 있었지만, 그곳은 대학교재와 문방구를 겸한 곳이라 제외한다. 학교 정문앞에 있던 OO서점은 중고책방으로 주로 대학교재와 교양과목의 교과목을 주로 사던 곳이다. 변변ㅎ지 않은 인테리어에 누런 박스에 책을 넣고 바닥에 깔고 파는 방식으로 책을 취급했는데, 박스에는 빨간 매직으로 500원부터 차례대로 가격이 적혀 있었다. 외국서적에서부터 해묵은 잡지 심지어는 무단복제해서 제본까지한 선배들의 책들도 팔았으니 가히 만물상이 따로 없다. 그곳에서 10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A서점이 있었는데, 이곳은 사회과학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엔 책들이 있고 반대쪽엔 테이블 두어 개가 있어 사회과학(엄밀히 이야기하면 운동권) 동아리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하던 곳이다. 데모가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전경과 형사들이 제일 먼저 급습하는 그곳이라 '오해받을까 두려워' 몇 번 들어가지 못했지만 대학가의 서점다운 열정과 향기를 풍기던 곳으로 기억된다.
 
 마지막 한 군데가 단골집이던 OO글방. 우연히 알게 된 글방사장님 동생과 친해져 주말만 되면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책꽂이 한 칸 한 칸을 습격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함께 문을 닫고 글방앞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꼼장어를 나누며 책과 인생,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정말 행복해 했던 기억이 든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옆 대학 여학생을 좋아해 한 쪽 눈은 책에 한 쪽 눈은 그녀를 보느라 부사장 형님은 날 항상 '도다리눈깔'이라고 흉을 보곤 했다. 그곳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책을 샀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많은 기억들이 있다. 내 젊음의 휴식처는 책방이었다.
 
 
  

  

 
  이젠 세 곳 모두 편의점과 소주집 그리고 일년 마다 간판을 바꾸는 프렌차이즈 점포로 모두 바뀌어 버렸다. 지난해 오월 대동제에 초대되어 갔을 때 교내서점을 빼곤 서점이라곤 눈씻고 봐도 이젠 없다. 대학가에 더 이상 서점은 없다. 만약 아직 대학교 주변에 서점이 있다면 그대학은 명문대학이라고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는데야 어쩔 수 없지만 텁텁한 입맛이 나는 건 감출수가 없다. 
 
  요즘은 모두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듯,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구입한다. 출판사는 자구책을 찾아 파주로 들어가 둥지를 틀었고,서울 청계천에 마지막 살아남은 중고책방 몇군데는 이젠 책을 팔기보다는 추억을 파는 곳이라고 해야 할 듯. 책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만 이런 현실에 대해 애석해 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하지만 지난 해 부터 일어난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은 늦은 감이 없잖지만 반가운 일이다. 일본은 초,중,고교생의 67% 아침독서 10분 운동으로 독서를 권장하고 있고, 영국은 일찌기 1991년부터 영유아들에게 책꾸러미를 선물하는 북스타트 운동이 시행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독서문화가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하는 이때에 그 대안을 제시해주는 책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보고자 했다.
 
  이 책은 미술평론가인 정진국씨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유럽의 책마을을 탐방하고 신문에 기고한 글과 사진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으로 6개국 24곳의 책마을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개되는 곳 모두가 시골 깊숙히 박혀 있어 그곳을 찾아 헤맨 듯 그의 노력이 곳곳에 뭍어있는 책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책마을이란 단어 자체가 동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멀게 만 느껴졌던 나에게는 책 속에 숨어 있는 그림같은 책마을들의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건물 한 쪽에 조그마한 간판과 진열대, 혹은 상자 속에 책을 담아서 주인을 기다리는 서점들의 모습은 우리가 즐겨 찾는 현대화된 대형서점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 있음을 보여준다. 내나이보다 오래된 책들에서 품어져 나오는 눅눅한 종이 냄새와 빛바랜 표지의 책들, 그리고 수십 년동안 그것들의 주인인 것 같은 넉넉한 서점 주인들의 모습이 사진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눈에 보이는 듯 각국 책마을의 셈세한 묘사와 외국도서에 대한 깊은 조예 그리고 그들의 현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의미깊은 인터뷰는 유럽에서 공부하고 생활을 했던 저자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박식함과 책에 대한 사랑에 찬사가 연이었다.    
 
 
 
 
 
 
 
  저자는 책을 써낸 저자가 큰 몫을 차지 하지만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업자와 관계자들의 숨은 공덕, 그리고 그들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을 쓰는 저자와 번역자, 그리고 출판관계자들의 수고와 노력이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대우해줄 수 있는 나라가 문화강국이 될 수 있다고 또한 저자는 말한다. 그들의 시작은 높은 집값으로 많은 작가와 출판인들이 농촌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곳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책마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마을 경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문화운동의 성격까지 띠게 된 그곳들을 보면서 출판사들이 이제야 지방도시에 자리를 잡은 우리와 비교할 때 책마을이 들어서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이 자생적인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책마을이 생기지 않는다면, 정부주도적 일환의 사업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겠다 싶다.

시류를 틈탄 베스트셀러의 양산과 그들을 쫓는 독서가들, 그리고 여전히 3D업종으로 여겨지는 중고서점에 대한 편견등은 우리 독서문화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책마을에 동참하겠다고 짐을 싸서 낙향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하는 의문도 없잖다. 우선은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알 것 같으니 남이 의문이고, 가뜩이나 푸대접받고 있는 우리 출판인과 책관련사업 종사자들 또한 지금의 대우로서는 되지 않을 일로 보인다. 역시 멀고 먼 남의 남의 나라이야기인가?
 
 
 
 
 
 여행하듯 인터뷰하듯 써내려간 저자의 글과 사진을 보고 있자니 깊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지방에 이런 책마을이 생긴다면 난 그곳을 찾아갈까?' 이 책을 통해 정말 책에 미친 사람들, 그리고 책을 진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책이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책들의 수호천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책이 읽히지 않으면 또 다른 이름의 나무의 시체일 뿐. 나이를 많이 먹은 책들이 아직도 사람들의 손에서 사랑을 받는 곳, 책과 독서인들의 유토피아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 한 권의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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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의 다카포
호란 지음, 밥장 그림 / 마음산책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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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알려준 책리뷰 고수 [호란] !
 
  가수 '호란'이라는 이름을 알기는 공교롭게도 어느 남성잡지에 매달 실리는 컬럼에서였다. 최신의 트렌드와 문화의 선두주자임을 앞다투어 자랑하는 매체들임에도 카탈로그를 보는 듯한 광고와 패션 일색의 내용에서 책에 대한 대접은 한페이지에 대여섯 권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정도. 그나마 소개해 주는 것만도 어딘가 싶을 정도다. 게다가 '이 책을 읽기는 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성의없는 책소개는 오히려 책을 고르기에 반감을 가질 만큼이다. 패션잡지에서 좋은 책을 소개받기란 어쩌면 '우물에서 숭늉찾기 인지도 모른다'고 위로하면서도 항상 마득찮은 감을 버리지 못하던 터였다.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남성잡지(매월 멋들어진 몸매를 자랑하는 남자 연예인을 표지모델로 하는 잡지여서 오히려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후문이 있다)임에도 많은 판매부수를 자랑한다는 이 잡지의 뒷부분을 보면 한 권의 책(주로 소설)을 소개하고, 한 페이지 가득 '화려한 리뷰'를 만날 수 있는데, 그 리뷰를 쓰는 이가 '호란'이었다. 영화나 IT제품의 리뷰를 본 적은 많았지만, 신문의 주말판 별지에서 보도자료를 보고 베낀 듯, 기자의 이름만 빌린 듯 확인불가해 감히 '리뷰'라 말하기 어려운 것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펜을 가지고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사람이 독자로서 책을 읽고 제대로 써 내려간 '어른의 독후감'을 만나기는 처음인 듯 했다. 특히 가수라는 그녀의 직업을 알고 난 후엔 '입만 살아있는 치들'로 여겨왔던 나의 연예인에 대한 편견 또한 제동을 걸게 했던, 말 그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치 '책'이라는 풀장에 푸욱 빠져서 마음꺼 헤엄치다 나온 듯 그녀의 리뷰를 읽노라면 책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과 느낌을 알 듯 하고, 그녀가 풀어놓은 책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듣노라면 그녀가 헤엄쳤던 풀장의 물은 진탕 헤엄을 쳐서 모두 밖으로 튕겨버렸던, 모두 마셔버렸던 한 방울도 남지 않았을 것처럼 모두 흡수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녀가 읽고 난 책을 다시 편다면 무제 연습장처럼 활자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리라...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리뷰를 읽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큰 자극이 되었고,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나의 생각을 담아 글을 쓴다는 것은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녀의 책을 읽고 이렇게 리뷰를 쓰게 되는 것도 어쩌면 그녀의 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책 [호란의 다카포]의 책출간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만나는 책이었음에도 몇 권의 책을 통해 만나는 작가를 만나는 듯 익숙하고 반가웠다. 정방형에 가까운 핸디사이즈의 크기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삶과 즐거움 그리고 책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책의 내용이 압권이었다. 가수인 그녀가 생각하는 음악과 음악하는 즐거움에서는 '천직을 만난 사람의 행복감'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 듯했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재능'에 부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남성잡지에서 읽은 바 있는 그녀의 리뷰는 덧대어  'p.s.'라고 해서 칼럼에서 못다한 책 속 이야기와 느낌을 만날 수 있었다.
 
"홍대 구석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다듬으며,
가끔 한 번씩 스트레칭을 해주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
 
다카포. 처음으로.
나의 오랜 혼자놀기의 산물인 책 이야기들"
 
  이 책을 쓰게된 이유와 과정, 그리고 제목을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같이 즐길 시간은 부족한데, 무엇이든 원하면 얻을 수 있는 '유혹많은 세상'에서 '한 권의 책을 읽기'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오죽하면 책이 제 모습을 버리고 '컨텐츠'만 빠져서는 유체이탈해서 e-book에 담기겠는가?) 하물며 내가 읽은 책에 대해 그 감상을 '리뷰'나 '서평'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큰 맘 먹지 않으면 좀처럼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즐거울 수 있다면' 가능해진다. 책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다음 장을 넘기고 싶은 충동이 일 만큼 나에게 '딱'맞는 책을 만나고, 그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무심하게 책꽂이에 꼽기는 너무 '헛헛'하다. 누군가에게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책을 통해 얻은 느낌을 말하고 싶을 때, 하지만 딱히 그런 상대가 없거나 상황이 여의치 못할 때 '책리뷰'가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읽은 책 목록'이 아니라 허접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중한 '독서노트'가 될 수 있다. 얼마전 어느 행사에서 소설가 김영하씨는 '책리뷰를 쓴다는 것은 책과 자신의 마음을 한데 어울리게 해서 새로이 만들어지는 또 한 권의 책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녀만의 혼자놀기 산물이었던 책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이 되었고, 또 다른 책읽기라는 혼자놀이를 즐기는 이들에게 선물이 되었다. 책을 만든다는 것은 산모의 산고産苦만큼이나 괴로운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녀는, 그녀만큼은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었으리라.
 
  야릇한 이름, 몽환적인 노래의 음색만큼이나 느낌있는 글들이 가득찬 책이다. 솔직 담백하고 당당한 그녀의 글에서 간혹 독자를 의식해서 무언가를 부연하고 해명하는 식의 글을 만난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는 연예인으로서의 그녀를 만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그녀를 만나고 싶었으니까. 그녀는 강호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림고수들의 존재를 '뒤통수 한구석에 묵직하게 의식'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녀가 이미 고수임을 내게 확인시켜주는 시금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 다시 그녀가 책을 낸다면 난 기꺼이 그 책을 찾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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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책읽기 - 지식을 경영하는
스티브 레빈 지음, 송승하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이렇게 재미있고, 알차게 만들어진 [독서법에 대한 책]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다 !
 
  '왜 이런 책을 이제야 읽었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자문自問 했던 말이다.
너무나 세월이 오래되어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고등학교시절 늘 지니고 다녔던 굵디 굵은 [성문종합영어]의 [제 2과 동사의 시제편, 단문해석]에 실린 '버트런트 러셀B. Russell'의 글 중에 "내게 양서良書를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을텐데..." 라고 비슷하게 한 말처럼 좋은 책을 만나고, 좀 더 책을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던 내게 이런 책을 이제야 만났다는 것은 반갑기에 앞서 아쉬움이었다. 지난 해 3월에 출간되어 지금 3쇄본을 만난 것이고, [(The)Little guide to your well read life / Leveen, Steve]이라는 원제목의 원서 또한 2005년에 나왔으니, 여느 책에 비하면 그리 늦은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지난 해에 나왔을 때 왜 진즉 만나지 못했는지 머리통을 '콩콩' 찍고 싶은 마음 뿐이다.
 
  [책을 잘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니 마치 [비디오 잘 찍는 요령을 알려주는 비디오테이프]처럼 다소 아이러니컬한 주제이지만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좀 더 효율적인 독서법을 알고 싶어하기에 누구나 관심있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미국 국립 도서 재단의 이사인 저자 스티브 레빈은 도서용품관련 회사를 운영하면서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다독가와 양서보유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에게서 '책읽기의 노하우'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지금 듣고 있는 책읽기의 노하우를 모아 우리 고객들에게 알려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을 억지로 늘릴 수야 없지만,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책을 읽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겠다는 동기에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전한다.
 
  책읽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하나같은 공통된 질문 즉,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어떤 식으로 책을 읽나요?" , "어느 시간대에 책을 읽나요?" , "빨리 읽는 게 도움이 되던가요?" ,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내용은 어떻게 하나요?" 등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독서의 기술에 대해 저자는 수많은 독서가들과 인터뷰하고 또 다른 [독서법]에 대한 자료를 찾아 지난 수 세기 동안 뛰어난 독서가들이 써내려간 최고의 독서 방법과 바쁜 현대인에게 좋은 독서 방법을 한데 모아 책을 현명하게 읽으며 살아갈 수 있는 노하우를 이 책을 통해 소개했다.
 
  저자는 이 책을 크게 [고정관념을 뒤집는 책읽기 전략], [전략적 책읽기의 기술] , [독서효율을 두 배로 높이는 법] , [책읽기의 효과를 높이는 토론기술] , [영혼에 흔적을 남기는 책읽기]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각 부분 마다 그 속의 소제목 하나하나 마다 책읽기의 정수들이 소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와 비슷한 주제의 책을 만나게 되면 혹시 저자가 자신의 독서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독서법과 양서를 선별하곤 해서 종종 실망을 안겨주는데, 이 책은 국립 도서 재단의 이사라는 자신의 직업답게 '자체로서의 책'을 만끽할 수 있는 법을 객관적으로 제시했다는데 참 반가웠다. 
 
특히 본격적인 책읽기를 막 시작하거나, 지금껏 책을 읽어 왔지만 독서를 통한 소득에 대해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없어 그 즐거움을 아직 알지 못하는 독서인들을 감안해 많은 부분을 할애했는데,  '서점에서 내게 꼭 맞는 책을 고르는 법' , '시간이 없어도 1년에 12권 이상의 책을 읽는 법' , '짧은 시가에 원하는 정보를 끌어내는 법','자신만의 주석이 달린 독서 리스트를 만드는 법' , '행간行間에 숨어 있는 지식을 더 많이 캐내는 법' 등이 자세히 소개된다. 보통 독서법에 관한 책은 저자의 성향이나 독자의 수준에 따라 그 의견이 다를 수 있어 비판과 반론에 대한 변辯들이 나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데, 말이나 글로 대신한 수많은 위인들의 독서법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상세한 이유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이미 실행하고 있는 독서법에 대해서는 자신의 방법에 대한 객관성에 확신을 갖게 하고, 미쳐 알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독서법에 대해 반갑게 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책읽기가 이렇게 즐겁고 유익한 일이었던가?'하는 느낌을 새삼 느끼게 했다.
 
  저자는 [영원히 내 것으로 소유하는 책읽기]에서 메모의 중요성을 알리면서 책을 읽다가 나에게 느낌을 전해주는 글이나 중요하게 생각되는 글을 만나거든 소위 '책에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들'은 밑줄을 치거나 페이지를 접거나 책의 이면에 메모를 하라고 하고, 아무 표시하지 않고 온전히 책을 즐기는 '원문보호주의자'들은 따로 노트를 하거나, 접착식 메모지에 적어 책에 붙이면 좋다고 말했다. 이 책대로 말한다면 나는 '지독한 책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이라서 이 책을 덮을 즈음엔 페이지마다 온통 밑줄투성이였고, 접어진 페이지 덕분에 책의 두께는 거의 두 배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재미있고, 알차게 그리고 잘 설명된 [책읽기에 대한 책]은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정말 최고의 책이다. 지금이라도 이 책을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를 정도다.  
 
 "책 속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따라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는 엄청난 재산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 존 리빙스턴 로스는 말했고, 최고의 지성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읽는 법을 배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80년을 배웠지만 아직도 내가 다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책은 공기처럼 흔하게 흩어져 있는 것이지만 읽지 않고 두기만 한다면 '모습을 달리한 나무들의 시체'지만, 잘 찾아 읽는다면 복리이자로 불어나는 지적재산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선 '가장 효율적으로 책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을 읽자. 그리고 이런 저런 구실과 핑계로 책장 한 켠에서 먼지를 덮고 서 있는 책을 뽑아 읽자. 두가지 모두 했거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책 [보물섬]속의 소년 짐 호킨스가 되어 [서점이라고 하는 이름의 지적知的 보물 가득한 보물섬]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자! 꼭 읽기를 힘주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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