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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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 한 여자의 몸속에 거꾸로 들어있다.”

 

이 발칙한 말을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추상하고 추론하는 자의식으로 충만한 태아, “나는....있다.” 라는 자기 존재를 알리는 소설의 가공할 첫 문장부터 호기심으로 지적 흥분을 고조시키지 않는가? 소설은 이처럼 처음부터 마지막 한 문장에 이를 때까지 미학적 유희(遊戱)의 세계를 유영케 하며, 결코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소설의 내러티브는 마치 영원한 전희(前戱)만 있는 쾌락의 정원 같기만 하다. ‘매큐언의 섹시한 이야기 솜씨가 그야말로 유감없이 발휘된 예술적 모방의 극치라 해도 거리낄 것 없을 것이다.

 

삶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 고통을 겪다니,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머니 트루디의 지속적인 염분 섭취로 고통스러워하는 태아의 철학적 항변이다. 그러곤 역경은 우리에게 의식을 강요했고,....그렇게 경험된 감각들은 자아창조의 시작점이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양수 속에 들어있는 나는 어머니의 행동으로 반영되는 존재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언어, , 색깔, 모양,,,,을 듣고 추상하고 사색하며, 게다가 탯줄을 목에 걸어 자살을 감행하는 행동까지 한다. 물론 어머니 배의 예기치 못한 눌림에 의해 좌절되기는 하지만.

 

또한 이렇듯 가끔은 예기치 않은 파동으로 벽에서 귀가 떨어져 듣지 못하기도 하지만 는 음모의 속닥거림을 엿듣게 된다. 진실하지 못한 트루디,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 동생인 클로드를 욕망한다. 클로드와 공모하여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트루디. 삼촌과 어머니의 계획을 아버지에게 알려야 하지만,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선 태아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랑이 식고 결혼이 무너지면, 그 첫 희생자는 기억이지....(중략)...그래서, 난 망각의 바람에 맞서 진실의 작은 촛불을 켜고 그 빛이 얼마나 멀리까지 닿는지 보고 싶어.” 태아의 아버지, 존 케언크로스가 아내에게 찾아와 재결합의 호소를 하지만, 어머니와 삼촌은 부동액 에틸렌글리콜을 그가 좋아하는 스무디에 믹스해 독살의 실행을 마무리하기 위한 계획으로 머리가 바쁠 뿐이다.

 

그리곤, 트루디, ‘의 어머니는 더러운 돼지우리로 내려가 멍청한 연인과 오물 속에서 뒹굴며 똥과 황홀경 속에 누워 집을 훔칠 계획을 세워서 착한 남자에게 끔찍한 고통과 굴욕적인 죽음을 안겼다.” 'To be or Not to be', 존재와 비존재를 망설이던 그 모든 전환과 수정, 오해, 통찰의 실수, 자기소멸의 시도, 수동적인 슬픔 끝에결정을 내린다. “이제 그만, ....” 삶의 세계로 나갈 것인지, 아닌지를.

 

소설의 내러티브는 바로 이 결정을 위한 과정의 기록물이다. 삶이란 것이 살아낼 가치, 의미가 있는 것인지, 결국 검지의 길게 자란 손톱으로 양막(羊膜)을 찢고 세상으로, 거친 물질계의 장벽을 헤치고 삶의 세계, 존재의 세계로 나간다. 의식을 가질 한 번의 확실한 기회를 갖기 위해서. 그 결과의 세계, 내러티브의 마지막은 혼돈이다. 비록 혼돈이 이 세계의 정의이지만 가 동경하던 의식의 세계는 매혹적인 것이기에.

 

이언 매큐언이 쓴 햄릿21세기 판본은 이렇듯 'To be'에 방점을 둔 다른 결과에 이른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전이(transference)’를 떠올리게 하는 내러티브와 플롯은 텍스트는 기존의 내용을 대체하기보다는 새롭게 추가하는 과정을 통해서, 진실의 위상이란 곧 완결 없는 텍스트라는 사실을 예증한다고 했던 프로이트를 상기하게 된다. 내러티브들의 다양한 종결과 열린 상태, 이것이야말로 정신과정의 역동성 아니겠는가?

 

모두에서 기술했듯이 소설이 온통 전희(前戱)처럼 느껴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피터 브룩스정신분석과 이야기 행위에서 섹슈얼리티(sexuality)에는 앎을 향한 충동, 모든 종류의 지식적 행위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역동적인 호기심이 포함되어있다.” 라고 썼다. 이보다 섹시한 소설이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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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1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넛셸>에 많은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예전 작품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시 비청출어람인가 봅니다. 햄릿도 다시
읽어 보려고 빌렸네요.

필리아 2017-06-20 13:44   좋아요 0 | URL
전 자궁속 존재의 ‘결정‘에 대한 궁금증으로 내내 고조되어 있었거든요. 작품 전체의 구조적 측면에서 발단-전개 따위는 모두 없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애무만 잔뜩 있는, 그런데 탁월한 기술로 말이죠, 일종의 페티시즘이라 할까요? 결정적인 것이 없어서 맥 빠질수도 있고, 또는 이것자체가 좋은 것일수도 있어서, 독자들마다 다소 상이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