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보쟁글스
올리비에 부르도 지음, 이승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았고, 슬그머니 다가온 막바지 상황이든, 현실에 대한 끝없는 조롱이든, 관습과 시계와 계절에 대한 주먹감자든, 남들의 수군거림이든, 어느 하나 후회하지 않았다." - P136 에서

 

우리는 누구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산다. 내 삶의 이야기, 지독하게 공부해서 일류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멋진 배우자와 함께 자식낳고 여유롭게 살다 가는 것 따위의 흔해빠진 이야기에 매몰된 그런 삶이 아닌 나만의 배역, 그래서 내가 온통 미쳐버릴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산다는 것 말이다. 정말 이런 나만의 이야기를 살아본 적이 있는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자문하게 된다.

 

미친듯이 춤을 추는 여자, 남자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듯한 달콤한 광기를 발산하는 그녀가 자신의 운명임을 느낀다. 그녀의 광기를 먹여 살릴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써진다. "그녀는 내 삶을 영원한 난장판으로 만듦으로써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소설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의 아들, 한 가족의 삶, 바로 그네들 "광란의 오페레타'의 기록들, 인생의 무대에서 배역을 마음껏 즐기는, 의미로 가득한 연기를 해 낸 후 무대에서 퇴장한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파티와 춤, 그리고 그네들의 삶에 배경음악처럼 '니나 시몬''미스터 보쟁글스'가 흐르고, 진실보다 항상 나은 작은 거짓말들이 광채를 발하는 순간들의 역사이다. 이 광채의 실체는 사랑이리라. 절대적인 내 편, 작은 거짓과 자신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멀쩡함이란 책략을 사용하는 인습에서 벗어난 광기, 삶에 대한 적극적인 자유의 모습 그것일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뒤집힌 글자를 쓰는 아이에게 말한다. "어머니는 내 거울 글씨를 아주 좋아했고 ~ (중략) ~ '정말 놀라워요. 매일 내 이름을 거울체로 써주면 좋겠어요! 이런 글씨체는 보물이에요. 황금만큼 귀한거니까요!'"

 

또한 아이와 가족의 동거자인 일명 아가씨(쇠재두루미)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게 "아드님, 아가씨와 손과 눈과 마음으로 말하세요. 남들과 소통할 때, 그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어요! " 새와 소통하려는 것, 미친듯이 춤을 추는 것, 생명인 꽃을 팔고 돈 받기를 거부하는 것....이 미친 짓인가? 아니면 생명과 존재에 대한 사랑인가? 광기는 사랑과 아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그런 엄마가, 아내가 발작을 시작했다. "몇 년에 걸친 파티와 여행과 기벽과 기상천외한 즐거움을 보낸 지금 나는 아들에게 모든 것이 끝이고, 매일 병실에서 헛소리를 하는 엄마를 바라보아야 하며, 엄마는 정신병자이며, 우리는 엄마가 영원히 잠들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야 한다고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이 고통의 시간조차 그네들로부터 사랑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 발길질을 한 방 먹여야죠!" 그래서 아빠는 "이성(理性)이라는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 정신병원에 지내던 엄마를 탈출시키기 위해 아들과 기막힌 유괴탈출극을 감행한다.

 

이 연극은 마지막으로 오직 아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픈 엄마와 아빠의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때론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사랑이 그 실체이곤 한다. 이쯤에 책장을 잠시 덮어두어야 하는 문장들에 이른다.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진실과 이별, 사랑의 본질과 마주할 때의 그 아릿한 통증과 뜨거워진 눈시울 때문이다. 격한 감동? 그저 내 미흡한 표현력이 별다른 어휘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겨놓는 수밖에...

 

"나는 이게 끝이라는 걸 알았고, 이제야 엄마가 내 침대에서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울었고, 펑펑 울었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뜨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러워 울었고, 또 엄마가 말한 해결책이 자신이 사라지는 것임을, 우리와 이별하는 것임을, 골방에서 비명을 질러대며 우리를 더 이상 괴롭힐 일도, 당신의 끝없는 집착과 비명과 소란을 더 이상 감당 할 일도 없도록 훌쩍 떠나는 것임을 일찍 깨닫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워 울었다. 난 그냥 모든 걸 너무 늦게 깨달아서 울었다. 단지 내가 눈만 떴다면, 엄마에게 대답을 했다면, 같이 자자고 손만 잡았다면, 엄마가 미쳤든 안 미쳤든 멈마가 좋다고 말했다면 엄마는 분명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고,..... P160 에서

 

이제 여자와 남자는 삶의 풍성한 의미와 사랑을 남긴 채 무대 아래로 퇴장한다. "엄마없는 새날을 원치 않았고,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빠는 덧창을 닫고 새날을 묵혔다." 그리고 가족의 삶이 빼곡하게 적힌 아빠의 작은 수첩만이 쓸쓸히 아이를 기다린다. "터무니 없는 일이지만 삶이란 종종 그렇다는" 것을 알린채. 치열하게 자신들만의 삶을, 배역에 몰두하고, 온통 사랑인 존재를 남긴채. 삶의 의미란 사랑이 아니냐고, 스스로 배반해야만 역설적으로 살아남는 그런 삶이 아닌 광란의 오페레타 그것이라고. 삶의 이야기는 이렇게도 써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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