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3
다야마 가타이 지음, 오경 옮김 / 소화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일본 문학에 있어 몇 가지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자연주의의 일본식 수용, 극 사실주의의 리얼리즘, 특히 작가 자신의 사생활을 소재로 한 사소설(私小說)의 본격화를 알린 작품으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적나라한 자기고백의 이야기는 사실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측면에만 몰입하여 자연주의가 지극히 왜곡된 형식으로 받아들여진 것인데, 따라서 사회와 개인의 유리(遊離)화를 가속시켜 내면에 침잠한 고립된 개인이란 편협성이란 한계를 노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국내에도 잘 알려진‘다자이 오사무’나 올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니시무라 겐타’의 사적경험의 노출인 전형적인 사소설과 이 작품은 한 통속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약하긴 하지만 사회와 완전히 결별한 것은 아니어서 신구의 대립과 같은 근대조건과의 갈등을 하나의 축으로 함으로써 개인의 내부 의식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차이를 발견 할 수 있다. 이처럼 초기 사소설은 사생활과 사회와의 적절한 시선의 양립이 있었으나 점차적으로 사회와는 단절하고 오직 개인의 내적 경험으로 숨어들어간 것은 일본인들 특유의 정신적 구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서평:“일본특유의 문학양식인 사소설(私小說) 로 본 일본인의 문화코드” 참조)

‘이중성’이라는 독특한 구조

사소설이라는 개인의 심경(心境)을 소재로 한다는 특이성 때문에 등장인물에서 타인의 비중은 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나(私: 와타구시)’의 이야기이기에‘나’라는 인물을 좇는 것은 불가피하다. 소설은‘다야마 가타이’ 자신인 소설작가‘도키오’이고, 그의 내적 경험의 일기이자 수기로 읽힌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인 외적인 언행과 내적인 심정이 항시 일치할 수 없으며, 그것은 곧 분열된 이중의 인간을 보여 준다. 삼십 육세의 소설가, 아내와 세 명의 자녀를 둔 가장, 그런 그를 숭배하는 문학 지망생인 십 구세 여성을 문하생으로,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부부생활의 건조함으로 신음하던 남성이 깨어난다.

그는 여 제자,‘요시코’의 근엄한 스승으로, 온정어린 보호자이자 분별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선생의 외연을 갖는다. 그러나 구시대의 여성인 아내와는 달리 당대의 신교육을 받은 소위‘하이칼라 여성(신 여성)’인 요시코는 여인으로서의 설렘과 육체적 긴장이라는 신선한 자극으로서‘나’를 이끄는 대상이다. 따라서 도키오의 내연은 온통 여자에 대한 들끓는 애욕과 성적 충동으로 무성하다. 즉 내면의 소용돌이치는 중년 남자의 추악한 성적 욕망과 외면인 사회적 체면과 스승으로서의 관습적 태도라는 이중성이 끊임없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것이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바로‘나’인 도키오의 내면은 독자만 알고 있는 것이지, 소설 속의 인물들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오직 작가는 독자를 위해서만 자신의 내면을 사실 그대로, 완전히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인데, 어쩌면 이러한 요소가 유독 엿보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을 매료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여 제자 요시코에 대한 육체적 갈망의 실현과 억압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구조를 시종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상황마다에 내심을 위장하고 이기심을 감춘 채 행동하는 위선의 내용들만 변 할 뿐인데, 이것을 보는 독자는 자기 욕구와 지켜야 할 사회적 관습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진실된 면모에 야릇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것과 옛 것의 대결

이처럼 구시대를 상징하는 아내와 신문명을 의미하는 여 제자 사이의 갈등은 문자 그대로 구와 신의 대결이자 전통적 관습과 근대의 신문명과의 갈등이기도 하다. 일견 도키오는 신여성인 요시코의 자유분방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환심을 사고, 신뢰를 주기위한 기만에 불과하다. 그녀를 온통 자기만의 소유로 하기위한 정치적 술책에 불과한 것이지만 요시코의 애인이 등장하자 이 책략으로서의 외형은 급격하게 전통적 관습으로 회귀한다. 남자를 그녀로부터 떼어내기 위한 방책으로서 신사상과 구사상의 편의적 이용을 오가는 것이다.

여기서 심리적 배신을 느낀 도키오는 요시코의 낙향을 도모함으로써 구시대의 비판은 실패하고 만다. 1907년에 발표된 작품이니 메이지(明治)유신 이후에 걷잡을 수 없이 밀어닥친 근대화의 조류는 당대인들에게는 혼란스러움,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결국 위축된 개인들은 사회와의 투쟁에서 물러나 신변으로 시야를 좁힌 관조의 리얼리즘으로 숨어드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 폭로라는 위험천만한 작업을 통해 리얼리즘이란 극단적 사실주의의 예술적 집념을 불태웠던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라는 문학사(文學史)적 위치만큼이나 이 작품의 문학성도 제법 견고하다. 부분적으로 현대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과장이나 주인공의 비판력 결여와 같은 조잡한 일면이 있으나 그것은 사소설이 지니는 고유의 한계이자 특성이라는 측면에서 관대함을 갖게 한다. 아무튼 2011년‘니시무라 겐타’의 사소설로 인해 내 독서가 여기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문학에 대한 시야 확장인 것은 분명하다. ‘나’의 소설이 지니는 사실성의 득과 실을 이해했다면 그게 답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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