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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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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작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출판
와이즈베리
발매
201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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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감독
양우석
출연
송강호, 시완, 곽도원, 김영애, 오달수
개봉
2013 대한민국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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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을 보았다. 그냥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몇달 전에 보았던 <언어의 정원>이나 오늘 본 <어바웃 타임>처럼 화려한 영상미나 가슴 따뜻해지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냥, 그냥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의 평과 사람들의 기대치, 그리고 송강호 배우의 연기력도 영화관람의 선택에 어느 정도 작용했음은 부인하진 않겠다.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소재로 하여 만들어졌다. 부산 지역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독서모임을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 의도적으로 - 조작하고 날조한 사건인 <부림 사건>이 영화의 중심부에 서 있는데, 그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문재인 변호사 등이 이들의 변호를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송 변호사의 인생관의 변화와 부림사건 피해자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함께하는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영화속에서의 송 변호사는 우리가 말하는 깡으로 버틴 사람이었다. 상고 출신이었지만 그 비난을 다 속으로 끌어안고 앞으로 나간 사람이었다. 막노동을 하면서 훗날 자신의 가족들이 살 집을 마련하는 장면과 이를 다시 찾는 장면이 오버랩될때 가슴이 뭉클해졌고, 차 경감과 법정에서 맞장 뜰때는 통쾌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닫혀있던 신념의 가치를 <부림사건> 피해자들을 향해 열었고, 이를 말로 행동으로 법정에서 소리쳤다는 사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뜨겁게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건 나에 대한 자그마한 부끄러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송 변화사를 지지하기 위한 부산의 수많은 변호인들의 이름이 호명되면서 그 끝을 마무리하는데 인상적이면서 따뜻했다. 오늘 보았던 <어바웃 타임>의 마지막 역시 따뜻한 일상의 나날들로 영상을 채워주었지만 부재(??)로 인한 으스스함이 나를 덮쳐왔다면 어제 보았던 <변호인>은 안에서부터 채워지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지은 <안티프래질>에서 말하는 개념과 딱 어울리는 사람은 바로 영화 속 송 변화사였다. 삶의 어려움과 일상의 빈곤함이 덮칠 때 그는 이를 악물고 더 강해졌다. 시대가 변하고 시장의 흐름이 바뀌는 틈을 놓치지 않고 큰 돈을 벌었다. 그리고 폭압적인 힘과 권력 앞에서 그는 더 단단해졌고, 신념의 가치로 무장했다. 때리면 때릴수록 커지는 헤라클레스가 만난 사과처럼, 책속의 안티프래질이라는 단어처럼. 신체적으로 프래질하지만 성품은 강인했던 - 군인들 앞에 서 있던 - 어느 할머니의 모습과 변화의 물결을 새로운 기회로 역이용하는 역사속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안티프래질>은 오직 금융 경제 분야에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상과 인생관, 정치와 사회적 역학관계,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책에서는 질리도록 <안티프래질>을 강조하는데, 이는 변화와 충격, 그리고 자신에게 내리치는 힘과 고통 앞에서 더 단단해지고 이를 에너지로 삼아 더 성장하는 모든 물적, 정신적 개념을 통칭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우리 주변의 - 안정된 사회의 시스템이라는 보호 아래 - 수많은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물질 문명은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지만 <블랙 스완>과도 같은 급격한 변화와 힘 앞에서는 너무나도 연약하게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IMF와 미 금융위기를 통해 목격했다. 더 나은 사회와 진실로 견고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프래질>함이 아닌 <안티프래질>함을 우리 모두 갖춰야만 하는 것이다.

 

허나 아직 우리 사회는 그러질 못한 듯 싶다. <안티프래질>함을 갖춰야 할 사람들은 비방과 선전 앞에 나약해지고 쉽게 굴복한다. 일상의 편안함과 현실이란 벽 앞에 순응하고 만다. 반면 <프래질>했던 그들은 더욱더 견고해지는 것 같다. 아무리 떠들어대도 그때 뿐이라는 걸 체득했고, 왼쪽을 보려할 때 오른쪽에다가 섬광탄을 터뜨리는 기술을 이젠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어떠한 목소리도, 시대의 변화도 그들 앞에서는 <프래질>한 바람에 지나지 않는 듯 싶다. 저자는 윤리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가 긴장한다고 한다. 자신이 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과연 내가 정말 그러한 사람인지를 반문해 볼 수 있는가? <안티프래질>이라는 말은 비단 나쁜 변화와 힘의 압력에만 적용되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이는 결과를 설명하는 단어라기 보다는 과정을, 행동을 설명하기에 앞서 행동을 유발하는 의식 체계에 관한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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