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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 시장은 경제를 운용하는 도구일 뿐인데, 그것 자체가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도구가 스스로 목적이 되면 우리는 가치 전도의 현상을 겪게 된다. 예전에 한 대선 후보급 정치인이 자신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 사람의 정치에 대하 순수한 열정과 마이 웨이에 대한 당당함은 존중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한국에서 살아가고 살아왔으며,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의 생활과 한 나라의 안녕일것인데, 그 사람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유시장경제제도라고 믿고 있는듯 했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자신은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겠다는 투사와도 같아

보였다. 종교의 광기가 무서운것처럼, 이데올로기에 의한 광기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음을 떠올린다면 섬뜩할수도 있는 멘트였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 도처에 깔려 있는 듯 하다. 사회의 정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법률과 경제제도, 규칙 조례가 오히려 인간의

다양성과 아이디어를 짓밝고, 획일화된 제도 안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사회로 서서히 조여가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의 가격은 알지만, 어떤 것의 가치도 모른다"고 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무언가가 빠진채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은 지울수가 없다.

 

네이버 웹툰 "가우스전자"에서 패러디된 내용처럼, 모기업의 전자제품을 사고 모기업의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모기업의 마트에서 물건을 사며,

모기업에서 건설한 주택에서 거주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분은 어떠한 생각을 했는가?

 

#2

 

이 책은 진보적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라즈 파텔이 지은 책이다. 모기지로으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와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경제적 이슈들, 식량문제 및 기업의 성격, 공유지의 문제를 차례대로 설명하고 있다. 개별적인 이슈들이 혼재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는 어려울수 있으나, 글 전반에 깔려져 있는 진보적인 그의 경제관을 기반으로 한다면, 통일성 있는 구조아래서 이슈들을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책 안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으로 인클로져를 들수 있는데, 이는 영국 산업혁명 당시 공유지에 대한 사유화의 진행 정도로 이해하면 될듯하다.

물론, 그안에 얽혀진 거대 자본가와 정치권의 암묵적 합의와 당시 영국의 사회경제적 단상까지 고려한다면 매우 논의할게 많겠지만 공유지의

사유화라는 개념에서 접근한다면 조금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을 듯 하다.

 

네델란드, 에스파냐, 영국, 미국으로 건너오는 세계 경제의 패권의 흐름 안에는 이러한 인클로져의 개념이 반드시 자리잡고 있다. 산업 혁명의

인클로져가 영구 내부에서의 경제적 획일화의 과정이었다면, 1,2차대전시대의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 대한 열강의 침탈은 세계를 대상으로

한 인클로져 과정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즉, 담비사 모요가 말했던 사회적 총요소생산성의 증가가 사회 전체의 부와 지식의 증대, 삶의 향상이 아닌, 일부 계층과 일부 국가에 의한

울타리치기 작업의 결과로 이러한 부가 특정 섹터에만 집중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한때, 풍부한 어획량으로 유명했던 파키스탄의

해안이 군부의 자금 확보를 위한 해외 트롤어선의 무차별적 승인으로 인한 어획량 감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때, 바다가 먹여 살려줄 것이라는 옛 파키스탄의 속담은 과연 미래에도 유효할 것인가?

 

#3

 

기후 변화는 따로 떼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깔끔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기후변화는 특정한 경제개발의

경로와 전 지구적으로 뒤얽힌 화석에너지 공급 시스템이 드러내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이 두가지는 인간 행동과 물리적 물질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기술이 서로 상승 효과를 일으키고 뒤얽히는 패턴의 복한적인 연쇄를 형성한다.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는 이런 복합적이니 시스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전지구적으로 얽혀있는 환경 문제를 겨우 단하나의 협정서와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의 확립과 같은 정치적인 규제의 발의만으로 해결될 것이라

믿는 건 지나친 희망사항이다. 이미 전세계적인 환경 문제는 경제, 사회, 문화사회적 제도와 지금 내 앞의 밥벌이와 생활 패턴과도 연계되어 있는

문제다.

 

하나를 해결하면, 연쇄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파급효과를 일으키며, 우리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 그것이 특히 선순환적 구조가 아닐

경우 오히려 더 큰 해악으로 다가온다. 최근의 소비자 대출 규제가 오히려 당장 필요한 서민들의 자금줄을 막아버린 결과처럼 말이다.

 

#4

 

책의 마지막에는 저자가 반지의 제왕과 아틀라스를 소개한다. 저자는 두 권다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난 여기에는 분명히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저자는 반지의 제왕을 보고 몽상가적 환타지라고 언급했다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자, 사회적으로 결여된 가치에 대한

중요함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수 있으며, 아틀라스의 경우 지나친 포퓰리즘과 선동적 문화에 대한 경고장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바라는 불교적 통찰도 한때 동아시아에서 왕권과 귀족의 결탁을 가능케한 도구로 이용된 전례가 있음을 상기한다면, 모든 일에는 야누스적인

측면이 있음을 다시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장난으로 떠벌리는 게 아니라, 그 순기능이 나타나게 하며, 선순환 구조로 바뀔수 있는

시기적절한 판단과 행동력을 기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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