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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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렵다'는 생각이 1년에 한 권의 시집을 만나는 일조차 저어하게 하는 듯하다. 그런데 문보영 시인이 색다른 일기 에세이를 출간하였다는 소식에 '시인이 쓰는 일기는 어떨까?' 호기심이 일렁였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2023년 가을, 한국 시인으로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에 참여하게 된 문보영 시인이 아이오와에서의   색다른 경험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지게 된 이야기를 그녀의 감성으로, 언어로 기록하였다. 시를 접하기 전에 산문으로 만난 그녀는 참 독특하고 위트 넘치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아이오와? 어, 드라마 [무빙]에서 류승범이 자란 곳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역시나였다. 작가 또한 그 얘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옥수수밭과 참혹한 아이들이 전부였던 그곳이 문보영 시인에게, 나에게 어떤 공간으로 재형상화될지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작가들의 모임이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지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고, 3달여의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살았던 공간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어울려 프로그램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간과 감정을 담았다. 일상의 무언가(사건, 사물, 사람)를 보고 각자 글로 풀어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이어져 평상시 가졌던 글의 탄생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희석되기도 했다. 언어, 글, 책, 쓰기에 관한 색다른 시도들과 생각들을 IWP 활동을 기록한 이 책으로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3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 중 1명인 문보영 시인은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정착하여 또 다른 언어로 창작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탈출 작가와 비탈출 작가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돌아본다. 아이오와가 너무 좋아 떠나기 싫어 눈물 흘렸던 그녀, 영어로 시를 짓고 번역하며 즐거워했던 그녀, 들판에 나무의 길을 천천히 홀로 걷기를 좋이 했던 그녀가 떠올라 한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탈출한 언젠가가 당연하게 다가왔다. 



You think out of box.

넌 지금까지 사람들이 세상을 본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한정되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나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소화하고 토해내던 문보영 시인이 아이오와와 IWP를 통해 테두리를 인지하고 정체성에 대한 입체적인 탐구를 감각적으로 접하고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자유를 느끼게 되면서 서서히 변하게 되는 소소한 기록들이 사랑스럽다. 그녀가 보여줄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에 몸에 온기가 퍼져 나간다. 




그녀가 쓴 산문은 일상적 언어 위에 그녀의 감정 필터가 살짝 덧씌워져 명랑하고 즐거웠다. 전망이 없는 방을 배정받은 작가들이 창밖으로 보이는 '종이컵'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는 와중에 길고 긴 글로 매니저를 설득하여 전망 좋은 방으로 배정받은 에피소드가 한 예이다. 탈출에 대한 내재된 욕구를 살짝 보여주는 이 이야기에서 두 개의 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처음 본 방에서 멈추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햇살에 푹 담갔다 건진 방'이라는 표현에 햇빛이 방 안의 모든 것들을 감싸 안아주는 광경이 절로 떠오르니 역시 그녀는 '작가'였다.



한국에서 웅크리고 살았다는 그녀는 아이오와에서 똑같이 웅크리고 살았지만 보상받는다고 느꼈다. 한국에서는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아이오와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아 변하지 않기로 했단다. 현실과 여행의 차이일 수 있고,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들의 한정과 차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녀의 웅크림을 백번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나 또한 아이오와의 'ㅇ' 음절에 무장해제되기로 한다. 






미국의 외딴 마을 아이오와의 외지고 낡은 하우스 호텔 - 하물며 철거 예정 -에서 다운타운으로 가는 길이 4가지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빠른 길이며 대다수가 걷는 길을 '삶의 길'로 '스트레스 존'이라 부른다고 한다. 평지를 걷고 언덕을 오르는 3번 길을 문보영 시인은 애용한다. 그리하여 '달의 영역(moon zone)'이라 이름 붙여진 그 들판을 걸으며 나무를 관찰하는 자신을 쫓겨난 자 아니 빠져나간 자라 말한다. 다 바라보는 삶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작은 모서리에서 고즈넉하게 살기를 바라는 그녀가 보였다.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엑스포닉 작가와 이민자들과 아이오와에서 보낸 날들이 그녀를 자유롭게 이완시켜주는 기적을 지켜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닥터 두리틀]의 소년 토미 스투빈스와 앵무새 폴리네시아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여기서도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대체되면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문보영 시인의 말처럼 번역을 하다가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람의 언어를 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폴리네시아는 두리틀에게 말들의 의미를 배웠다. '소리만 내다가 비로소 말을 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와닿았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몰라서, 광둥어와 만다린어를 잘 몰라서 '자유롭다'고 느꼈던 그녀가 '이해하고 싶다'고 변화하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살고 싶어 하네. 삶의 방향이 변하는 순간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녀의 변화와 탈출을 응원한다. 그러기 위해 그녀가 아이오와에서 깨우친 대로 지우기 전에 예전 작품들을 탐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보영 시인이 최승자 시인의 아이오와 산문집 [어떤 나무들은]을 통해 모든 게 다 지나가버린 자리에서 다시 읽기, 과거를 다시 살기를 하듯 나는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으로 아이오와 시절 이전의 문보영 읽기를 시작하련다. 그래야 언젠가 엑스포닉 작가로 마주하게 될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언어로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이를 발견한 그 순간을 행복한 순간이라, 항복한 순간이라 표현해도 다 괜찮다 느껴지니, 문보영 시인에게 설득당하고 있는 중이지 싶다.






Iowa is generous enough to forget things

and supportive enough to remember things.


아이오와는 네가 그걸 잊도록 널 관대하게 만들고,

네가 그걸 충분히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거구나.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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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가 기록한 참여정부의 결정적 순간들
이정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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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다. '바보 노무현' 그 누구보다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했던 그분을 떠나보낸 지가 그렇게 오래되었구나. 이런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 최근 출간되었다.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이정우 저/ 한겨레출판





노무현이 대선 후보였을 때부터 함께 한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 (명예) 교수가 저술한 참여 정부 회고록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크호스 노무현 후보가 절대 우위로 점쳐졌던 이회창 후보를 이기고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강렬한 사건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 정부는 지독히도 사랑받거나 지독히도 미움받았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소신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분은 아름다웠다. 



요즘 들어 인간미 넘치고 소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쩍 그리웠는데 이렇게 회고록으로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비통했다. 



이정우 전 정책실장이 담은 참여 정부의 1000일은 기억 속 노무현과 알지 못하는 노무현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어느 쪽에서도 끈끈한 지지와 신임을 받지 못했던 외로운 싸움꾼 노무현을 좀 더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새길 수 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에 진심이 녹아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공격과 비난을 무던히도 받았다. 하지만 기억 속 그분은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탄 채 쌍꺼풀 수술해서 커진 두 눈으로 있는 힘껏 웃어주신다.









노무현 대통령이 첫 장관 연수회에서 국정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 한 기조연설이 기억에 남는다. 개혁 정부가 되기 위한 과제들 - 정치 개혁, 정부 개혁, 언론 개혁, 교육 개혁, 권력 기관 문제 -을 하나하나 거론하였다. 그리고 장관 ·위원장 ㆍ 수석들에게 "38명의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 한다. 하지만, 선거로 국민의 주권을 행사한 이후에는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에게 그 힘을 위임한다. 대표들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를 쫓다 보니 그분이 짊어진 국민의 염원과 안녕이 잘 보였다. 얼마나 치열하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싸워왔는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욕먹어도 좋으니 다음 정권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




출범부터 쉽지 않았던 참여 정부는 언제나 정공법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품을 알 수 있었다. 대북 송금 특검법, 화물연대 파업과 노사 갈등, 철도 구조개혁, 교육 개혁, 한미 간 BIT, 신행정수도, 부동산 개혁 등 결정적 순간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모진들의 대화가 육성으로 지원될 만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눈앞의 성과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펼치고자 한 진정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1000일의 기록이었다. 




"경기는 나쁘다가도 살아난다. 

근본과 원칙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가야 한다.

3개월, 1년, 총선으로 결판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고, 자리에 상관없이 귀담아듣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은 언론에 비친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이정우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채로운 모습과 참여 정부의 정책 논의·수립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한 자산이다. 특히나 현대사는 지금을 이해하고 풀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정우 회고록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또한 그 길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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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비밀 레시피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6
부연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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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비밀 레시피/ 부연정 저/ 자음과모음




악마의 레시피

환상적인 맛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런 다정한 악마가 운영하는 가게라면 꼭 단골이 되고 싶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인간과 나름의 해법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데몬'이 운영하는 식당 '악마의 레시피'로 얼른 떠나보자. 






"인간, 영혼을 달래는 음식을 먹고 싶지 않나?"

갑자기 까마귀가 말을 걸어온다면? 게다가 식당을 추천해 준다며 황당한 안내를 시작한다면 깜짝 놀랄 일이다. 하지만 만년 오등 수영선수 이세현은 홀린 듯 따라간다. 열심히 훈련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오등을 한  세현이는 지금 이 순간 깊은 좌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소리를 삼킨 소년>으로 청소년 문학에 발을 내디딘 부연정 작가는 인간의 부정적 감정을 마력의 원천으로 삼는 악마가 현대 사회에서 존재 자체가 점점 잊혀 소멸되어가는 와중에 마력이 약한 후계자가 인간계에서 식당을 연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음이 여린 악마가 책으로 배운 요리로 인간의 영혼을 달랜다. 악마의 의미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악마의 레시피'를 방문한 열여섯 살 중학생 세현, 지영, 민준이의 사정과 고민들을 살피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민과 감정들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맛있게 드셨으니, 손님께 환상을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는 생존을 넘어 치유와 행복을 향유하게 한다.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으로 온몸의 감각을 깨워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더욱이 추억이 어린 음식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데몬은 각 인물에 알맞은 음식을 제공하고 '환상'을 보여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게끔 도와준다. 음식과 추억과 대화 그리고 있음 직한 미래(환상)가 어우러져 인물들이 고민과 감정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지레짐작으로 커지는 불안, 두려움, 슬픔, 죄책감 등 형태를 갖추지 않고 뭉뚱그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억누르기에 바빴던 속마음을 똑바로 마주하고 달라진다. 이렇게 한 뼘 더 성장한 아이들이 짓는 밝은 웃음에 전염된다. 




말을 하고 나자 감정의 형체가 더욱 또렷해졌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막연하던 감정이

단어로 정의되고 나서야 형태를 갖추는 경우가.





지금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 스스로 답을 찾고 자신의 라인에서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인생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 자신에게 적당한 속도로 결승점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친구든 연인이든,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어. 자기한테 집중하는 사람이 더 멋있지."





<악마의 비밀 레시피>는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맛있는 책이다. 아직은 서투르고 모르는 것투성이인 우리가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그 시간을 맛있게 그려내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이상한데 맛있는 데몬의 요리뿐 아니라, 데몬과 파주주가 보여주는 케미와 마계의 이모저모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로 놀라게 하지만 그만의 비밀 레시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데몬과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충성심 넘치는 까마귀 파주주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서 지친 마음을, 포기하고픈 마음을 달래고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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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최초의 여성 노동 운동가 강주룡 여성 인물 도서관 7
김미승 지음, 클로이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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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최초의 여성 노동 운동가 강주룡/

김미승 글/ 클로이 그림/ 청어람주니어




유구한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암흑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기는 '일제 강점기'다. 나라 잃은 민족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퍽퍽하고 고달팠을지 오늘의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그 시기에 많은 여성들이 노동자가 되었다. 신발 ·양말 ·방적 ㆍ 방직공장 등에 취직해서 여공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 어려웠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는, 여성이라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과 차별을 당했다. 점차 여성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여성 노동 운동이 활발해졌다. 









체공녀 강주룡. 여성 노동 운동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그녀의 강단 있는 여정은 깊은 울림을 준다. 이번에 청어람주니어 출판사에서는 역사의 책갈피에 숨어있는 옛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 인물 도서관' 시리즈 일곱 번째 도서로, 일제 강점기 최초의 여성 노동 운동가 <강주룡>을 출간하였다. 



1901년 조선에서 태어났지만,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1932년 젊디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강주룡'을 통해 여성 노동과 여성 노동의 역사를 살피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고무공장 여공,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높고 푸른 권리를 외치다.




표지 그림은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꼿꼿이 서있는 강주룡으로, 다부진 입매에 비장함이 서려 있다. 그녀의 눈빛은 죽음도 불사르는 각오로 당당하게 빛나게 있다. 



일제 강점기 최초의 여성 노동 운동가 <강주룡>

인물 소개 - 인물 관계도와 연표 - 인물 이야기 - 그때 그 사건 - 인물 키워드 - 한눈에 살펴보기

로 구성되었다. 








간략한 인물 소개는 '강주룡'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강주룡이 굶주림과 가족이 가장 큰 관심사였던 아이에서 나라의 독립을 열망하는 독립투사로,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부르짖는 노동운동가로 변모하게 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지난 윤희순 의병장 이야기에서 체감했던 일제 강점기 시대에 우리 민족의 설움과 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해진 차별과 괴롭힘, 무시는 활자를 뛰어넘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주룡의 가족이 고향을 등지고 만주 서간도에 정착하기까지의 고단한 생활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가족을 위해 최부자 댁에 허드렛일을 나가는 주룡,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이와 혼인하게 된 친구 덕이.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먹는 입을 덜기 위해 시집보내고 시집가는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참담하기 그지없다. 모던 걸이 되고 싶어 했던 덕이는 그렇게 떠났다.








주룡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최전빈과 혼인하였다. 서로를 지극히 아끼는 부부였던지라 그녀는 독립운동에 뜻을 품은 남편을 따라나섰다. 나라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해본 적 없던 그녀는 독립운동까지 하게 되었지만 여자인 주룡이 나서서 하는 것을 전빈이 탐탁지 하지 않아 홀로 돌아왔다. 그러나 남편 전빈은 독립운동 중 죽고 말았다. 



시댁에서 쫓겨나 부모님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온 주룡은 가장으로서 평양의 고무공장에 취직한다. 헤어졌던 친구 덕이를 극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고, 공장에서 마음 맞는 동료들을 사귀게 되면서 고된 공장생활에 서서히 익숙해져간다. 하지만 감독의 횡포는 점점 심해지고, 주룡은 덕이와 함께 '노동자의 권리'를 공부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와 횡포를 감내해야 했다. 감독이라는 지위로 여공들을 희롱하려 하거나 벌금 제도를 이용해 노예처럼 부리는 작태에 울분이 터졌다.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여공들은 아이를 업고 일을 했고, 그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갈 여유도 없이 일을 했다. 이토록 비참한 작업환경이라니 말할 수 없이 비통했다.








대공황의 여파로 어려워진 경기를 이유로 고무공장 사장은 임금 삭감을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강주룡과 그의 동료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아사 동맹을 맺고 단식 투쟁까지 벌였다. 이들이 보여준 용기가 얼마나 무겁고 뜨거웠을까. 그들이 배고픔을 잊고자 더 크게 외치는 "임금 삭감 철회"가 지금 내 귓가에도 들리는 듯하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살아오면서 제일 행복했던 때를 서로 이야기 나누며 마음을 가득 채운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바라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감독 마음대로인 벌금 제도로 깎이는 월급 대신 일한 만큼 받기를 바라는 노동자들이었다. 





아이 낳기 전후 삼 주간 휴식과 생활을 보장하라!

아이 젖 먹이는 시간을 자유롭게 보장하라!

비인간적인 벌금 제도를 없애라!





여성 노동자들의 굳은 연대와 단합을 무참히 짓밟은 조선인 사장의 만행은 일제 강점기의 쓰라린 고통이다.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조선인을 괴롭혀 자신의 부와 안위를 지키려는 그들은 인면수심의 파렴치였다.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에 오를 수밖에 없을 만큼 상황은 절박하게 돌아갔다. 과연 그녀의 이야기에 세상은 귀 기울여주었을까? 여공에 대한 대우는 달라졌을까?









오늘날 우리가 강주룡이 고공 시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절실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 여공들이 왜 많아졌는지 그리고 강주룡을 비롯한 수많은 여공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일제 강점기 최초의 여성 노동 운동가 <강주룡>에서 찾을 수 있다. 






 

'그때 그 사건', '인물 키워드', '한눈에 살펴보기'는 강주룡이 주도한 '평양 고무공장 총파업'을 비롯한 여성 노동 운동의 역사와 노동운동가에 대한 정보를 잘 정리해 주고 있어서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한 학기 한 권 읽기] 독후 활동지를 활용하여 책을 더 깊게 만날 수 있다. 인물 관계도, 가로세로 낱말 퍼즐, 독서 퀴즈, 독서 토의 ·토론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다. 눈으로 읽는 독서에 그치지 않고, 다채로운 활동으로 생각의 깊이를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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갬빗 : 훔쳐야 이긴다
케이비언 루이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비룡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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갬빗:훔쳐야 이긴다/ 케이비언 루이스/ 비룡소




"아무도 믿지 마라"



페이지터너, 500 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읽게 만드는 책  [갬빗 : 훔쳐야 이긴다]

아마존 선정 '2023 최고의 영어덜트 소설'이라는 명성을 뒷받침하듯 우리 집 십 대 청소년들에게도 호평 일색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독서가 이 책을 통해 상위권으로 올라올 수 있으려나 희망을 불러 넣을 정도로 집중해서 읽는 모습이었다. 



영화화가 확정된 [갬빗 : 훔쳐야 이긴다]는 화제성, 대중성이 강한 작품이다. 

우선, 청소년의 흥미와 관심을 끄는 소재가 시선을 잡아끈다. 10대 천재 도둑들이 한자리에 모여 벌이는 기상천외한 도둑질 대회 '갬빗'이 이 소설의 주 무대다. 

학업에 지친 청소년에게 또래 도둑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생생한 현장 이야기는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선사할 것이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대신 자물쇠 따기, 뼈를 제자리에서 빼는 기술, 헤드록, 매듭 풀기, 심리 읽기 기술 등 속이고 훔치거나 빼앗기 위한 훈련을 하는 또래들의 모험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일탈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도둑질 대회에 초대받은 '대도 유망주'인 등장인물들이 보통의 십 대처럼 가족과 친구에 대해 고민하고 상처 입으면서도 사랑하고 기대하는 모습에서 책을 읽는 십 대 독자들은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낄 것이다. 

정체불명의 주최자들에게 초대받은 십 대 도둑들은 각자 바라는 소원을 이루고자 도전한 '갬빗'에서 단계마다 주어진 퀘스트를 개별로 혹은 팀으로 해결해나간다. 그 결과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가까워지면서 다져지는 동지애와 이해는 '우정'으로 이어진다. 






주인공 로절린 퀘스트는 유명한 도둑 가문 출신이다. 도둑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하는 퀘스트가의 일원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외부와 차단된 채 오로지 '도둑'으로 길러진다. 




"기억해 둬. 이 집을 나서면 아무것도, 아무도 없어. 
네가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야."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자라온 17살 소녀 로스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엄마를 떠나서 자신의 의지로, 힘으로 추억을 쌓고 관계를 맺고자 한다. 엄마와 함께 도둑질을 하러 가는 날을 디데이로 정한다. 그 운명의 날, 엄마가 납치되고 로스의 일생일대 계획은 어긋나고 만다. 지금은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한 엄마를 구해내야만 하는데 주위 어느 누구도 선뜻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제 로스는 익명의 인물이 보낸 '도둑들의 갬빗' 초대에 응할 수밖에 없다. 기상천외한 도둑질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로스는 아무런 정보 없이 그곳으로 향한다. 







도둑질이 가업인 세계, 이름 쓰는 법보다 도둑에 관련된 기술을 먼저 배우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도를 꿈꾸는 십 대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 [갬빗 : 훔쳐야 이긴다] -는 어른들의 세계 못지않은 권모술수와 폭력이 펼쳐진다. 하지만 가문의 명예와 가족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한 십 대들의 분투로, 범죄 서바이벌이 진행되면서 그들이 겪는 감정적 변화와 스트레스 등이 화려한 범죄 기술보다 더 크게 와닿는다. 


가업을 잇기 위해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의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나 싶었다. 물론 본인이 선택해서 그 길을 가는 도둑들도 있었지만 태어나 보니 정해진 운명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가족은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이 아이들의 마음을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랄 만큼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다양한 인종, 국적이 모인 '갬빗' 대회 출전자 중 한국 출신이 있고 더욱이 비중 있게 그려져 호감도가 상승하였다. 



영화로 제작될 만큼 갬빗 퀘스트 수준은 대단하다. 개인 소유의 의상 박물관 전시품, 이집트 파라오의 매장 석관 절도에 이어 납치까지. 세계 곳곳을 집안처럼 자유롭게 넘나들고, 아름다운 미술품과 보석 등 볼거리가 풍성한 점은 차지하더라도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로스, 노엘리아, 데브로, 경순, 마일로, 타이요, 루커스, 아드라가 보여주는 심리전과 기술은 훌륭하다. 



퀘스트 수행 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들은 독자의 안타까움을 유발하기도, 등장인물의 이면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긴장과 재미를 배가시킨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납치되었다고 생각하여 죄책감에 빠진 로스는 어린 시절 친구였지만 자신을 배신한 노엘리아와 자신에게 끊임없이 호감을 표현하는 데브로, 한 팀으로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친구가 된 경순과 마일로와 관계를 맺어가며 위기를 극복해나간다. 어려운 순간에서도 매번 기지를 발휘하고, 우승이 간절하지만 타인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은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로스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속고 속이는 치열한 게임이 펼쳐지는 [갬빗 : 훔쳐야 이긴다]

대회가 마무리되고 우승자가 호명되면서 벌어지는 반전은 케이비언 루이스 작가가 긴 여정을 함께 달려온 독자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다. 지독한 배신감에 몸부림치는 로스의 모습에 가슴이 지독히도 저리다. 이대로는 절대로 끝날 수 없는, 끝나서도 안되는 로스 퀘스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신의 탓이라 자책하며 갬빗에서 한층 성장한 로스가 마지막 순간 진실을 깨닫고 각성한 이후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벌써부터 심장이 요동친다. 로스가 훔친 마음, 로젤린 퀘스트가 진정한 승자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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