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탄생 - 소리와 듣기에 대한 폭넓은 역사적 탐험
데이비드 헨디 지음, 배현.한정연 옮김 / 시공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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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샤먼의 신비로운 주문에서 전쟁의 총소리, 시민의 함성, 마침내 현대의 기계 소음에 이르기까지]
  
원제는 'Noise', ‘소음’이다. 단순히 소리가 아닌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소음들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소음이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의미한다. 하지만 소음이 단순히 사람들이 싫어하는 소리이기만 한 것일까? 라는 의문에 단순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요즘 카페에서 공부나 해야할 일들을 처리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너무 조용한 독서실이나 혼자만의 공간보다도 약간의 소음이 있는 공간이 더 집중이 잘 된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존재한다. 한때 집중력 향상, 질 좋은 수면 등을 위한 백색소음 어플이 유행하기도 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의 소음은 사람의 안정감을 유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이 책은 부제 ‘소리와 듣기에 대한 폭넓은 역사적 탐험’에 걸맞게 선사시대 소통을 위한 소리에서부터 라디오의 등장,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배경음악까지 풍부한 소리의 역사를 담고 있다. 단순히 소리의 역사가 아니라 소리와 함께 걸어온 인류와 자연, 소통과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문자가 있기 전 소리로 소통하던 선사시대의 소리,
구전으로 시작된 일리아드에서부터 로마의 웅변가와 콜로세움에서 울려퍼진 군중의 소리에 이르는 웅변의 시대,
종교적 힘과 세속적인 통지자의 힘을 보여주는데 이용되었던 종, 찬송가. 신과 사탄의 소리,
계급과 지배, 권력에 따른 다른 소리들, 노예들의 음악과 반란의 북소리를 담은 권력과 반란
철도, 기계,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소음들, 기계의 부상
그리고 라디오, 다양한 기기들을 통해 우리 주변에 끝없이 울려 퍼지는 소리들. 증폭의 시대까지
책 속에서 6장으로 구성된 챕터를 통해 시대 순으로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소음의 역사는 흥미로운 주제가 많다.
  
선사시대 동굴유적지 동굴 내부에 다양한 동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위치와 공명, 음향의 실험을 통해 그림과 흥미로운 음향효과가 일어나는 위치가 일치한다는 실험결과나 ‘말하는 북’이라는 북을 통해 먼 거리를 빠르게, 그리고 복잡한 문장의 내용을 전달하는 문자가 없는 가나 아샨티족의 생활방식 에 대한 이야기들은 기나긴 역사를 가진 소리의 소통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나치가 선동의 수단으로 많이 이용했던 라디오의 발명은 소리에게 있어 큰 변화의 순간이었다. 수 백킬로가 떨어진 곳에 있는 수 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획일화를 유도할 수 있는 힘은 이전에 소리가 가지고 있던 힘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켰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세상은 소리로 가득하다. 자연 속의 생명의 소리, 도시의 기계음, 사람의 소리, 우리는 너무나도 다양한 소리에 항상 둘러 쌓여있다. 평소 무심히 들리던 주변의 소음들은 불편할 때도 있고, 때로는 힘이나 위안이 될 때도 있다.   
그 가득찬 소리들이 ‘인류가 역사를 통틀어 낸 모든 소리에는 그게 어떤 소리든 온갖 의미가 담겨 있고, 그 소리들은 우리를 다른 생명체와 직접 이어주고 있다’는 책 속 저자의 글에 문득 지금 내 주변에 들리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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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로 읽는 한국 현대사
정운현 지음 / 인문서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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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에서 북미 정상회담까지, 속보와 이슈로 읽는 현대사 150

'호외'라는 단어를 백과사전에서 검색해보면 [신문사가 중요한 뉴스를 속보하기 위해 정기간행 외에 임시로 발행한 인쇄물] 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1970년대까지 속보로서 주요한 기능을 가졌던 호외는 라디오와 TV의 등장으로 점점 사라져갔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실시간 기사 검색과 속보 확인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어딘가 낯선 단어처럼 들린다. 저자는 단순한 속보의 기능이 아닌 역사의 기록으로서의  호외의 또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지난 역사 속에서 호외는 대사건의 색인과도 같다(p6)
18762월 강화도 조약부터 5.16 군사 쿠테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186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까지 총 86건의 호외를 통해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여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준다.

1894조선신보에서 청일전쟁이 임박했다는 첫 호외가 조선인에 의해 발행되고, 그 후 일제강점기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 속보에서 일장기를 말소하여 폐간조치를 당하는 등의 일제의 탄압과 해방 후 유신시대의 언론탄압을 버텨나가며 1900년대 속보로서, 그리고 역사의 기록자로서의 호외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손으로 써 등사본으로 제작하는 필사본 호외를 냈던 독립신보가 임시정부 내각 명단을 급하게 발표하면서 이름을 잘못 기재해 발행한 오보나, 독립운동가들의 투쟁, 순국 기사가 보도 금지로 몇 개월 후에나 호외로 보도되는 열약한 환경 속에서도 호외는 존재했다.

시대에 따른 다양한 판형과 지면 구성의 변화, 빽빽한 한문으로, 세로줄로 된 옛 한글로, 큰 글자의 타이틀과 한문, 한글이 혼용된 책에 삽입된 다양한 호외의 사진들은 그 시대마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대한제국 때 발행된 대한매일신보의 경우는 국한문 혼용판과 더불어 민중들을 위해 순 한글판을 함께 개재했다고 한다.

호외의 원문들을 각 챕터마다 삽입해서 그 당시의 기사 원문이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있다. 호외 기사 원문을 직접 읽어보고 싶었지만 따로 기사 원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너무 작은 사이즈의 기사나 한문으로 된 기사들은 타이틀 외에 내용을 알 수가 없는 점은 조금 아쉬운 점이다.
주요사건들의 호외를 따라가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고, 최근 기사들을 보면서 그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역사의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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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들이 노래한다 -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 동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숀 탠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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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동화>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들은 항상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아름답게 끝을 맺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 알게 된 재미난 사실. 200여년 넘게 전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는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두 형제가 독일의 민담과 동화를 수집하여 만든 그림동화의 원작인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의 초판의 이야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한다. 

진짜 구두의 주인이 밝혀지고 신데렐라와 왕자는 행복하게 살지만 두 의붓언니들은 새들에게 눈이 쪼여 실명을 하고,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사악한 왕비는 뜨겁게 달아오른 쇠 신발을 신고 평생 춤을 춰야했다.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동화 ‘고양이와 쥐의 교우’ 결말 역시 아름답지 않다. 한집에서 같이 살기로 한 고양이와 쥐. 고양이가 겨울을 나기 위해 함께 산 비계를 몰래 먹어버린 사실을 알고 쥐가 항의하자, 사과는 커녕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며 고양이는 쥐를 덥썩 잡아먹는다. 우리가 흔히 동화에서 볼 수 있는 정의로움, 공정함이 아닌, 강자의 논리가 세상의 이치라고 당당히 말하는 고양이. 인간의 탐욕이나 복수에 대한 동화는 또 얼마나 많은지. 말 그대로 잔혹동화다.

섬뜩하고 재미보다는 주석과 어려운 글이 가득한 초판에서 독자층이 어린이로 바뀌고, 불쾌한 부분을 대폭 수정되고, 다양한 삽화를 첨부하면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그림동화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동화책은 항상 삽화가 글과 함께 한다. 어린 시절 동화의 내용만큼이나 삽화를 보는 것도 동화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동화책을 종종 읽곤 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숀 탠’이다. 저자의 책 ‘도착’은 무척이나 매혹적인 작품이다. 지금도 가장 아끼는 책 중에 하나여서, 이번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다.

그리고 역시 기대이상이었다. 75개의 동화를 표현한 조각들은 하나하나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동화의 전체가 아닌 짧막한 한 페이지와 조각 1점으로 구성된 페이지는 이야기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특히 모르는 작품들은 조각을 보면서 이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책 뒷 부분에 수록된 '<그림 동화> 더 읽어보기'에는 동화들의 줄거리가 요약되어 있다.  줄거리 요약을 읽고 다시 보는 조각들은 줄거리를 읽기 전, 조각과 동화의 어느 부분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숀 탠 조각품의 근간을 이루는 느낌은 '낯섦'이다.’ (P12)

각각의 조각 사진에서 오랜 시간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왜 잭 자이프스가 이 책의 서문에서 ‘낯섦’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랜 시간 알고 있던 동화들이 조각들과 함께 이전과 조금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저자의 시선에서 본 그림동화란 어떤 느낌인지 조각으로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잔혹하지만 매혹적이고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가진 조각들이 주는 즐거움에 다 읽은 후에도 페이지를 앞뒤로 자꾸 뒤적거리게 된다. 저자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책장에 오랫동안 꽂아두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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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 재즈라이프 전진용의 맛있는 재즈 이야기
전진용 지음 / 다연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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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견을 버려라!라는 표지의 문구처럼 항상 가까이 하고 싶지만 언제나 먼 곳에 있는 느낌이었던 재즈

재즈의 본질은 불확실성과 불안정을 즐기는 예술이다.(P14)

강렬하고 즉흥적인 감성에 마음이 끌려 재즈 음악을 종종 접하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재즈란 어려운 음악이다. 재즈란 어떤 음악이냐는 물음에 말문이 막히고, 방대한 재즈의 세계 속에서 어떤 재즈뮤지션의 음악이 듣고 싶은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상황이 되어 점점 멀리했던 재즈를 다시 한번 접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어렵게 느껴졌던 지금까지 접했던 재즈 관련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일단 쉽고 재미있다.
재즈의 장르와 재즈뮤지션을 한식으로 표현하여 어려운 장르가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오고, [재즈와 미국사의 연결고리][공간적 배경]을 통해 미국 역사와 재즈를 접목시켜 다양한 재즈의 장르들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과 재즈뮤지션의 삶을 연결지어 바라보는 미국사는 재즈를 더 깊게 알 수 있게 도와준다. 대항해시대, 세계대전, 냉전시대 같은 미국 역사의 주요한 순간들에 재즈가 함께 있었다. 재즈가 탄생했다고도 볼 수 있는 뉴올리언스의 여타의 지역보다 자유로웠던 분위기,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모인 다양한 나라의 이민자들이라는 다양한 조건이 합쳐져 유럽의 음악과 흑인의 리듬감, 감성이 결합된 재즈가 만들어졌다. 시대와 공간, 위대한 뮤지션이 절묘하게 하나의 장르가 탄생한 것이다.

재즈를 한식으로 비유해서 설명하다니, 낮설지만 흥미로운 시도이다.
구수한 청국장, 루이 암스트롱, 비 오는 날 막걸리와 파전, 빌리 홀리데이, 명상과 함께하는 사찰음식, 존 콜트레인같은, 단어만 들어도 어떤 느낌인지 잘 아는 한식의 맛으로 재즈뮤지션을 설명하고 있어, 각각의 뮤지션들의 음악이 어떤 감성인진 머릿속에 이미지화되는 느낌이다.

저자가 2014년 개최했던 '서울재즈원더랜드'에서 6개월간 24회에 걸쳐 재즈 100년사의 거장들의 삶과 음악세계에 대하여 진행했던 강의를 바탕으로 이 책이 쓰여졌다고 글을 보니, 참여해보고 싶은 좋은 강의와 공연을 뒤늦게 알게 되어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든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27명의 재즈뮤지션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과 [마인드맵요약정리]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주요 명연주곡과 대표 앨범은 재즈를 접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 같다. 책 목차를 보다보니 그날 그날 잘 어울릴 것 같은 뮤지션을 정해 대표곡들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란 정해진 악보를 벗어나 뮤지션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음악이다. 루이 암스트롱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그의 대표곡인
What a Wounderful World'를 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접한 음악은 예전에 들었을때와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이 책 덕분에 들어보고 싶은 음악이, 알고 싶은 뮤지션들이 많아졌다. 재즈와 좀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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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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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부터 최근에 출판된 중세 컬렉션까지 방대한 지식과 깊이 있는 사유에 항상 놀라움에 빠지게 만드는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철학자, 기호학자이자 역사학자, 그리고 소설가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유작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사전 지식이 많지 않아 어려웠던 20세기 이탈리아의 혼란한 정국에 대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에서 오는 혼란을 잠시 접어두면,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 속에 권력과 언론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어 내고 있어, 그의 전작들에 비해 이번 0는 비교적 쉽게 읽히는 책이다.
 
0호는 대필과 삼류잡지의 기사를 쓰며 살아 온 글쟁이 콜론나가 새로 발행되는 도마니신문의 주필 시메이가 발행을 준비하는 1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기록하는 책의 대필 의뢰를 받아 준비호인 제0호의 편집장으로서 지낸 2달 동안의 이야기이다. 헌데 이 도마니라는 신문. 애초에 창간을 준비하긴 하지만 끝내 창간되지 않을 신문이라고 못을 박고 시작한다. 게다가 대필하는 준비과정을 기록한 책 역시 출판하지 않을 예정인 책이다. 창간을 준비하지만 창간하지 않을 신문과 대필을 의뢰하지만 발간되지 않을 책. , 신문이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여진다는 사실을 전제해보면 무척이나 역설적인 말이다.
 
엉터리 같은 날조 기사와 부패함, 신문사의 자본을 대는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의 득실에 맞추어 선정하는 기사들과 편협한 관점.
삼류글쟁이 콜론나, 세속적인 주필 시메이, 그리고 6명의 기자 브라가도초, 마이아, 캄브리아, 루디치, 팔라티노, 코스탄차와 함께 제0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저널리즘의 모습은 정의로움, 공정성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들을 만드는 것입니다.”(P85)
 
신문들은 뉴스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뉴스를 덮어서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X라는 사건이 벌어지면, 신문은 그것을 다루지 않을 수 없어. 하지만 그 뉴스를 거북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면 같은 호에 독자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할 만한 충격적인 기사들을 싣는 거야. ......(중략) 그러면 X라는 사건의 기사는 정보의 큰 바다에서 익사해 버리지.’ (P251)
 
동일한 소재에 대해서도 각 언론사의 기사를 잘 살펴보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와 방향성이 제각각이다. 뉴스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말에 무척이나 공감이 간다. 끊임없이 음모론을 제기하는 브리가도초의 모습 역시 낯설지 않다. 소설 속의 나쁜 저널리즘은 허구의 유럽 어느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나라 저널리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씁쓸해진다.
 
비밀이 없는 나라, 모든 일이 모두가 다 알도록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콜론나와 마이아가 가고자 했던 그 나라는 아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콜론나는 이야기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산 줄리오섬은 햇살에 다시 빛날 것이다.’ 라고. 타락한 저널리즘의 세계 속에서도 이제 고인이 된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마지막 문장은 햇살이 빛나는 내일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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