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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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부터 최근에 출판된 중세 컬렉션까지 방대한 지식과 깊이 있는 사유에 항상 놀라움에 빠지게 만드는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철학자, 기호학자이자 역사학자, 그리고 소설가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유작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사전 지식이 많지 않아 어려웠던 20세기 이탈리아의 혼란한 정국에 대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에서 오는 혼란을 잠시 접어두면,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 속에 권력과 언론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어 내고 있어, 그의 전작들에 비해 이번 0는 비교적 쉽게 읽히는 책이다.
 
0호는 대필과 삼류잡지의 기사를 쓰며 살아 온 글쟁이 콜론나가 새로 발행되는 도마니신문의 주필 시메이가 발행을 준비하는 1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기록하는 책의 대필 의뢰를 받아 준비호인 제0호의 편집장으로서 지낸 2달 동안의 이야기이다. 헌데 이 도마니라는 신문. 애초에 창간을 준비하긴 하지만 끝내 창간되지 않을 신문이라고 못을 박고 시작한다. 게다가 대필하는 준비과정을 기록한 책 역시 출판하지 않을 예정인 책이다. 창간을 준비하지만 창간하지 않을 신문과 대필을 의뢰하지만 발간되지 않을 책. , 신문이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여진다는 사실을 전제해보면 무척이나 역설적인 말이다.
 
엉터리 같은 날조 기사와 부패함, 신문사의 자본을 대는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의 득실에 맞추어 선정하는 기사들과 편협한 관점.
삼류글쟁이 콜론나, 세속적인 주필 시메이, 그리고 6명의 기자 브라가도초, 마이아, 캄브리아, 루디치, 팔라티노, 코스탄차와 함께 제0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저널리즘의 모습은 정의로움, 공정성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들을 만드는 것입니다.”(P85)
 
신문들은 뉴스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뉴스를 덮어서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X라는 사건이 벌어지면, 신문은 그것을 다루지 않을 수 없어. 하지만 그 뉴스를 거북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면 같은 호에 독자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할 만한 충격적인 기사들을 싣는 거야. ......(중략) 그러면 X라는 사건의 기사는 정보의 큰 바다에서 익사해 버리지.’ (P251)
 
동일한 소재에 대해서도 각 언론사의 기사를 잘 살펴보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와 방향성이 제각각이다. 뉴스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말에 무척이나 공감이 간다. 끊임없이 음모론을 제기하는 브리가도초의 모습 역시 낯설지 않다. 소설 속의 나쁜 저널리즘은 허구의 유럽 어느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나라 저널리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씁쓸해진다.
 
비밀이 없는 나라, 모든 일이 모두가 다 알도록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콜론나와 마이아가 가고자 했던 그 나라는 아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콜론나는 이야기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산 줄리오섬은 햇살에 다시 빛날 것이다.’ 라고. 타락한 저널리즘의 세계 속에서도 이제 고인이 된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마지막 문장은 햇살이 빛나는 내일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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