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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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돌아가지 마.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얘기한다. 상황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기억하는 것과 다를 거라고.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물론 맨 마지막 충고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는 자꾸 되살아나는 성향이 있다. 꼭 맛없는 카레처럼 (P16)

 

사실 나는 무서운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포물 장르를 거의 접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무더운 여름이 되면 To Do List를 체크하듯 공포소설을 찾아보곤 한다. 오래전 지금처럼 무더운 한여름에 오싹함에 자꾸 뒤를 돌아보며 ‘링’을 읽고 있었다.

 

<애니가 돌아왔다>는 데뷔작 ‘초크맨’으로 압도적 신인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등장한 C.J.튜더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워낙 극찬을 받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후속작에 대한 걱정도 조금은 있었는데, 공포와 스릴러를 잘 버무린 이번 책 역시 전작과는 또 다른 흡입력과 즐거움으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탄광산업이 쇠퇴해 침체된 분위기가 감도는 영국의 작은 소도시 안힐에서 줄리아라는 여교사가 아들 벤저민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함몰시켜 무참하게 살해하고 엽총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벤저민의 방에서 발견된내 아들이 아니야.’라는 줄리아의 마지막 메시지.

 

누군지 알 수 없는 이에게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라는 의문의 메일을 받고 조는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침묵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또 다른 살인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하나씩 하나씩 베일을 벗어나간다.

 

동생 애니의 실종과 돌아온 후의 기묘한 냄새와 이상하고 괴이한 행동들.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 소중한 그의 동생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와도 같이 변한 애니는 돌아온 지 얼마 후 교통사고로 아버지와 함께 사망한다.

애니의 실종과 관련된 조의 친구 스티븐, 크리스, 닉, 마리 사이의 과거 속 비밀과 성인이 된 조의 현실적인 문제가 얽히고 설키며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씩 들어나면서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소설의 매력과 오싹하게 만드는 강렬한 공포가 교차해 책에서 손을 땔 수 없게 만든다. 한없이 정의롭지도, 끝까지 이기적이지도 못한, 죄책감, 이기심, 현실적인 면이 마구잡이로 섞인 듯한 ‘조’라는 캐릭터는 이야기에 매력을 더한다.

 

타인을 괴롭히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든지 이기적일 수 있는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흔히 귀신, 유령이라고 칭하는 미지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두려움도 커진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은 결코 틀린말이 아닐지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매혹적인 스토리, 거듭되는 반전, 오싹한 공포까지. 스릴러&공포 소설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애니가 돌아왔다>는 왜 저자를 ‘영국의 여자 스티븐 킹’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게 해주어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하는 저자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역시나 더운 여름밤에는 공포와 스릴러소설이 제격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시간은 치유의 힘이 엄청나다고 한다. 이 말은 틀렸다. 시간은 지우는 힘이 엄청날 따름이다.
무심하게 흐르고 또 흘러서 우리의 기억을 갉아먹고,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고 뾰족한 조각들만 남을 때까지 불행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조금씩 깎아낸다.
무너진 가슴은 다시 맞출 수 없다. 시간은 그 조각들을 거두어 곱게 갈 뿐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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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화학자 2 - 명화에 담긴 과학과 예술의 화학작용 미술관에 간 지식인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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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에 대해 예전 예술적, 인물적, 시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던 것을 넘어 좀 더 다양한 시점을 통해 보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미술을 보는 즐거움이 더욱 넓어졌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시리즈는 약 12년 전 1권이 출판되고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 6년 전 개정판 출간되었고, 드디어 이번에 두 번째 이야기로 우리 앞에 돌아왔다. 1권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이번 2권 출간이 더 기대되었다.

 

예술과 거리가 먼 분야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과학이다. 화가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세계를 표현하는 미술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화학이 만나면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이 책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이야기하듯 미술에 사용되는 재료들의 많은 부분이 화학작용을 통해 만들어지고, 과학의 발전과 함께 재료도 점점 더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으며, 원근법, 명암법 같은 수학적, 과학적 원리가 미술 속에 다양하게 녹아있다. 미술과 과학은 생각보다 가깝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있는 고흐의 해바라기의 일부가 갈색으로 시들고 있는 것은 해바라기의 밝은 노란색을 얻기 위해 쓴 크롬 옐로라는 염료가 개기환경과 외부 조명에 의해 변색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혀졌다. 아마 고흐 자신도 오랜 시간과 빛의 화학 작용이 작품의 색을 변색시킬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라바조의 입체적이고 강렬한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가 빛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빛에 대한 과학적 원리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하여 테네브리즘이라는 명암법을 통해 드라마틱한 작품을 만들어내 우리를 그의 그림 앞에 한없이 멈춰서있게 만든다.

 

그렇다고 미술을 과학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지만은 않는다. 엘 그레코, 마사초,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고야, 터너, 밀레, 고흐, 클림트 같은 위대한 화가들의 삶의 이야기, 작품에 대한 시대적, 도상학적 이해를 통해 과학적이면서도 인문적이고 예술적인 시선으로 화가와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쿠르베의 자서전과도 같은 그림들 속에 담긴 그의 일상과 생각, 그림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카라바조의 삶, 밀레의 만종에 얽힌 이야기들. 뭉크의 ‘절규’에서 보여주는 하늘 색을 밝혀낸 노르웨이의 기상학자들, 그림에 대한 표절 논쟁들. 다양한 관점들이 화가와 작품을 좀 더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그림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전혀 다른 무언가가 보이고, 몰랐던 이야기가 들린다. 분야의 편견 없이 이성과 감성 모두를 통해 바라보는 미술은 한 방향에서 바라볼 때 보다 훨씬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아마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가 매번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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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십니다, 맥주 - 이왕이면 지적이고 우아하게 한잔합시다
이재호 지음 / 다온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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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더욱 맛있어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더불어 요즘 마트의 맥주 코너에 가면 예전과는 다르게 세계 여러 나라의 맥주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규모 브루어리가 늘어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맥주의 종류는 약 십만 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새로운 종류의 맥주들이 많아져서 고르는 재미도 늘었지만 반대로 라벨만으로 그 맛과 스타일을 짐작할 수 없어서 다양한 맥주 진열대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진다.

 

그런 고민을 해결해주고 더 맛있게 맥주를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을 만났다.

열렬하게 맥주를 사랑하는 저자는 6년이 넘는 시간동안 650여 종이 넘는 다양한 맥주를 시음해보고, 관련 지식을 쌓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맥주의 맛을 느끼고 이해하며 테이스팅 노트를 만들어 맥주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블로그 <지프리의 맥주일주>를 운영하는 맥주 애호가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맛있는 맥주’에 대한 유일한 기준이 존재할까? 나는 맛있는 맥주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에 부정적이다. ...(중략)

못난 맥주는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맥주는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P24)


맥주의 재료, 공정과정 등의 기본 배경지식, 맥주의 역사, 스타일별 맥주를 분류하여 그 특징과 추천 맥주를 소개하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알지 못했던 다양한 매력과 이야기를 가진 맥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과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어떤 것이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된다.

 

라거와 에일 정도로만 구별했던 맥주가 페일 라거, 앰버 라거, 페일 에일, 포터, 스타우트, 밀맥주, 벨기에 에일, 수도원 맥주, 와일드 에일, 하이브리드 맥주 등의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하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복비어, 벨지안 화이트, 람빅 같은 접해보지 못했던 무수한 종류의 맥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영국식과 미국식 페일 에일의 차이, 독일 옥토버페스트를 상징하는 메르첸 비어, 맥주 마니아들 사이에서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베스트블레테렌12’에 대한 소개나, 양조장 폭발 사고로 파산 위기에 놓인 람빅 양조장을 자원봉사와 구호금을 통해 구해낸 람빅 애호가들의 이야기들은 맥주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시킨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있는 맥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팁, 맥주 테이스팅 등에 대한 소개를 통해 단순히 맥주를 즐기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맞는 자신만의 맥주를 찾을 수 있도록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맥주도 취미가 됩니다]라는 첫 번째 챕터 제목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기분으로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각 스타일 별로 추천을 토대로 좀 더 다양한 맥주를 즐겨보고, 나와 맞는 맥주, 음식별로 어울리는 맥주를 찾아보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읽다보면 저절로 맥주가 마시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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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 - 석기 시대부터 부동산 버블까지, 신경인류학이 말하는 우리의 집
존 S. 앨런 지음, 이계순 옮김 / 반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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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생활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의식주’이다. 옷과 음식 그리고 집은 우리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문화인류학 교수이자 신경인류학자인 존 S. 앨런은 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 집의 진화와 집이 우리에게 어떤 느낌과 영향을 주는 존재인가에 대해 진화적, 인지적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종(homebodies)이다.

(중략) 우리는 보다 근본적으로 집에 마음을 둔다(homeminded).

집은 단순히 사람이 살고 있는 여느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인지 안에서 특권적인 공간이다. 집은 편안함, 안전함, 그리고 통제의 느낌들을 불러일으킨다.'(P9~10)

 

들어가는 글에서 인간에게 있어 집이란 어떤 존재인지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현대에는 과거에 비해 학교, 직장, 다양한 사회생활로 인해 점점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혹은 여행을 떠났다 집에 돌아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저자는 1장 [집의 느낌]부터 7장 [더 나은 집 만들기]까지 총 7장을 통해 집의 느낌이 우리에게 왜 안정감과 평온함을 주고, 우리의 마음과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고,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하여 초기 유인원의 생활을 통해 집의 진화적인 기원과 생활보다는 경제적인 개념으로 변해가는 주택, 부동산버블, 노숙 같은 오늘날의 문제점을 통해 그 해결점의 실마리와 어떻게 하면 더 낳은 의미의 집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집은 어떤 구조물에 의해 정의된 장소가 아니라, 활동과 관계에 의해 그리고 기억과 정보에 의해 정의된 장소다.’ (P45)

 

집이란 주택이나 거주지가 아니다. 물질적이지만 또한 심리적인 공간이다. 초기 인류가 주택이라는 형태가 없이 생존과 양육을 위해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현대까지 구조나 형태, 구성은 계속 변화해왔지만 집이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향수병, 경제적 또는 다른 이유로 집을 잃거나 빼앗긴 사람들, 집이 없는 아이들의 위탁과 정신적 노숙의 사례를 통해 집이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집이라는 공간을, 집의 느낌을 잃었을 때 우리가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집은 나를 보호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휴식의 공간이며,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관계가 발생하는 곳이다. 가족의 단위와 집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와 형태가 변화하는 지금 ‘집’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중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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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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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자기만의 방]을 읽었다. 분량이 많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일까.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책 리스트 상위권 목록에 있지만 선뜻 읽기 시작하지 못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이번 솔출판사의 <버지니아 울프 전집> 출간을 계기로 드디어 첫 페이지를 열었다.

 

20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모더니스트, 페미니스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1927년 출간된 등대로(To the Lighthouse)는 저자의 가족과 유년시절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총 페이지의 절반 이상의 분량에 해당되는 1부 <창>은 램지 부부가 그들의 여덟 명의 아이들, 친구들과 함께 휴가를 위해 섬의 별장에서 머물던 때, 램지 부인이 어른 아들 제임스에게 다음날 배를 타고 등대를 가기로 약속을 하는 어느 하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 램지 씨, 가족과 손님을 하나로 묶고, 누구에게나 의지가 되는 가정적인 램지 부인과 아이들, 독립심 강한 여성이자 화가인 릴리 브리스코우와 램지 씨의 친구와 동료인 월리엄 뱅크스와 찰스 탠슬리 등 다양한 인물의 생각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2부 <시간이 흐르다>에서는 10년 후 램지 부인과 딸 프루, 아들 앤드루의 죽음과 별장의 쇄락함으로 세월의 흐름을 짥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3부 <등대>는 다시 그 별장을 찾은 램지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램지 씨와 아들 제임스, 막내 딸 캠은 10년 전 가지 못했던 등대로 향하고, 릴리는 10년 전 완성하지 못했던 그림을 드디어 완성한다.

 

뚜렷한 사건이나 화자 중심이 아닌 버지니아 울프 작품의 특징인 <의식의 흐름>기법을 통해 인물들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 여러 사람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어, 쉽게 읽히지 않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야기에서 튕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문장의 힘으로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다.

 

자상한 부모로서의 모습, 가정적인 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주변 모두에게 친절하고,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제각각의 모습의 애정을 보내는 램지 부인은 그 시대의 여성의 교본과도 같은 모습일 것이다. 권위적인 램지 씨조차 불안한 순간이 오면 램지 부인에게 의지하고 동정을 구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릴리에게 결혼을 계속 권유하기도 하지만 그런 램지 부인도 혼자만의 사색에 잠기는 시간, 자유로움과 모험을 꿈꾸기도 한다.

 

이야기는 램지 부인이 중심이 되었던 1부에서 3부 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릴리의 생각을 중심으로 흐른다. 가정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묶는, 누구에게나 주는 인물이었던 램지 부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홀로 자신의 힘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릴리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에서 시대와 여성을 바라보는 저자의 생각이 느껴지는 듯 했다.

 

역시 버지니아 울프는 어렵다. 헌데 다음 작품을 또 읽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마치 그녀가 그것을 한순간 명확하게 본 것처럼 갑자기 강렬하게 그녀는 그림의 한가운데에 선을 하나 그려 넣었다. 됐다, 끝났다. 그래, 브러시를 내려놓으면서, 극도의 피로를 느끼면서, 나는 드디어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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