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이재웅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9.9 






 이 소설은 이복 누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을 여읜 소년이 누나와 그녀의 정부가 사는 집에 얹혀 살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5살에 가출해 17살엔 룸살롱에서 인간 접시로, 19살엔 스트리퍼로, 23살엔 사창가를 전전하다가 그 다음해엔 자신의 빚을 갚아준 정부의 노예가 되어 아파트 단지에서 전문적인 매춘부로 지내고 있는 누나는 소년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까? 소년은 처음 누나가 빚을 갚는 '용도불명'의 방에 있는 각종 도구를 바라보며 정확히는 몰라도 대강은 무슨 행위를 위한 방이고 누나가 무슨 일을 하는지 유추한다. 딱히 충격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이러한 주인공의 담담한 시선에서 충격을 받는다. 소년은 자신을 늙은 소년이라 말하고 그 늙음의 기원이자 스승을 굳이 꼽자면 바로 '가난'이라 말한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아도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누나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세상 사람들이 누나가 다리 벌려서 받은 돈으로 키운다고 욕하는 걸 주인공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이미 폭력에 길들여졌고 하염없이 울고 동생의 정서를 걱정하며 정부인 곽호와 대립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소년은 혐오감과 안쓰러움을 느낄 뿐이다. 소년은 자신은 늙었다고 하지만 충격에 내성이 생겼을 뿐,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고 해결 방안이라고 제시하는 것도 현실적인 구석이 없으며 충동적이라 그가 겉늙었을 뿐 아직은 소년이긴 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현재로서 모든 비극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곽호를 죽이면 다 해결될 일이지만,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순수하게 느껴졌으니까.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고통스러운 장면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던 소설이다. 주인공의 누나를 자신의 전용 매춘부로 두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어코 '쪽바리들의 정액받이'로 넘겨버리겠다고 말한 곽호가 천벌을 받긴 할 것인지, 무력하지만 행동의 귀추 하나하나가 주목됐던 송봉권이나 작중 내내 끊임없이 수모를 겪던 소년의 누나와 소년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섹슈얼한 묘사가 있을수록 불쾌함과 비참함을 더하는 것은 직전에 읽은 <O 이야기>와 가장 다른 부분이었고 이 작품이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다소 전형적일지언정 하등 가볍거나 흥미 위주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가난한 여성은 몸을 팔고 가난한 남성은 살인을 저지른다... 상투적인 설정과 전개지만 이 소설은 세상이 그 꼬라지로 돌아가는 원인과 가난한 당사자들이 세상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소년이 희망을 품지 않는 이유 또한 개연성 있게 풀어낸다. 

 글쎄,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누나를 향한 여성 독자들의 감상은 과연 어떨는지 궁금하다. 그저 그런 섹슈얼한 캐릭터라기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고 자애로워 나는 그녀에게 동정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타의와 더불어 자의로 인해 빚을 산더미처럼 불렸고 치명적인 오판으로 인해 매춘부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체념한 모습에 대해선 약간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두 번 다시 그쪽 일을 하지 않겠다 마음 먹어도 오래도록 몸에 익은 일과 어수룩한 경제 관념, 대인 관계 때문에 금방 빚에 허덕이는 모습, 심지어 주인공의 누나는 '사랑'에 너무 쉽게 빠져 풀릴 일도 그르쳐버린다는 단점 또한 갖고 있다. 물론 그 모든 걸 자업자득이라 말하기엔 수업료를 지나치게 잔인한 방식으로 지불하고 있지만...... 특유의 무력한 모습 때문에 동정 이외의 감정을 품기가 어렵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강점이자 단점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보면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한 캐릭터는 바로 곽호다. 그는 돈을 중요시하고 돈을 위해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이 다 그런 법'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진정 쓰레기 같은 인물이다. 그 나름대로 세상을 거칠게 적응하며 살아왔을 테니 그런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됐겠지만, 세상 핑계를 대면서 자신도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 주인공 남매를 괴롭히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이 책을 둘러싼 사람들의 감상을 둘러보니 곽호도 은근히 동정하게 되는 캐릭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기껏 누나의 빚을 없앤 다음에 다시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행보를 보인 쓰레기에게 도대체 어떻게 동정을 느끼는지 이해가 참 안 됐다. 자신의 사랑을 외면하고 돈을 들고 튄 누나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고 쳐도,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것은 어른으로서 보여야 할 태도가 아니었을까? 만약 그럼에도 누나가 곽호를 배신했다면 또 모를까, 자신이 갚아준 돈 그대로 자신에게 도로 갚으라고 태세를 전환하는 것은 악마도 고갤 저을 모습이라 생각됐다. 곽호가 빚을 갚아주자 그의 청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던 누나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결국 원흉은 곽호 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세상이 다 그런 법이라고 자신을 벌레 보듯 쳐다보는 소년의 시선에 응수하지만, 소년에게 죽임을 당할 빌미를 스스로 제공하고 그래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최악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본인은 알고 있을까? 아마 알고 있을 테지만, 다 떠나서 주인공의 누나를 향한 사랑이 배신당한 것을 배로 갚아주기 위해 그녀를 일본에 팔 계획까지 세운 것은 명백히 욕심 어린 행동으로 느껴졌다. 그야말로 소년으로선 이 세상은 증오하지 않고 싶어도 증오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계기였고, 소설의 결말은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소년의 심상이 조만간 일을 내리란 암시를 준다. 스스로는 늙은 소년이라 칭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소년다웠던 주인공이 과도를 품고 곽호를 죽이려는 모습에선 그나마 남아있던 순수함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의 고통스런 전개와 수위, 새삼스럽고 단선적인 주제의식은 여운보다 후유증을 크게 남긴다. 가난한 사람의 절망스러움이야 문학에서 한두 번 다뤄진 것도 아니고 도대체 답이 없는 이야기를 다 읽고서 세상을 전처럼 평안하게 바라보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난 이 책을 첫 번째 읽었을 때 남긴 포스팅의 부제를 '몰라선 안 될 불쾌함'이라 적었지만 사실은 이런 이야기는 모르고 싶은 불쾌함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렇기에 이만큼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끈질기게 풀어내고 완결을 낸 저자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명확하게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직접 작품에 등장시키며 그걸 찾아 읽는 독자들의 존재가 이 세상을 조금은 더 괜찮게 바꾸지 않나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든다. 곽호는 '세상이 다 그런 법'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엔 많아져야 한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고, 적어도 아이들에게 일부러 세상이 더럽다는 사실을 몸소 가르쳐주지 않는 어른이 돼야 한다고 단호하게 읊조리게 됐다.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난 이미 늙은 소년이었다. 나는 믿어야 할 말과 믿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할 줄 알았고, 항상 그러려고 노력했다. 누가 그것을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배웠다. 굳이 그 스승을 지명해야 한다면 ‘가난‘이었다. - 17p



난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어.

그건 자유를 원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에요. 억지로 자유를 찾을 필요는 없어요. - 122p



맞아요. 사탄의 마음이에요. 나는 사탄이 좋아요. 사탄은 맨날 지고, 욕만 먹고, 쫓겨 다니기만 하잖아요. 선생님은 맨날 천사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천사는 가난하지도 않고, 더러운 옷도 입지 않고, 저 하늘 위에서 웃을 일밖에 없는데 왜 제가 천사를 좋아해야 하죠? - 25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 이야기
폴린 레아주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9 






 <O 이야기>는 에로티시즘 문학 사이에서 전설로 꼽히는 작품이며 <어린 왕자>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힌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출간 이후부터 끊임없이 '예술이냐, 외설이냐' 라는 논란에 시달림에도 <어린 왕자> 만큼 읽힌 것이 의아하게 여겨질 사람이 있을 듯한데, 나는 호불호가 심히 갈릴지언정 특정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기에, 또 반대로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오히려 화제를 낳아 여러 나라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았을까 싶어 그렇게 놀랍게 들리지 않았다. 

 한편 아흔이 넘은 나이에 자신이 이 작품의 저자라고 밝힌 폴린 레아주, 본명 안느 데클로스는 이 작품을 예술이냐 외설이냐, 반페니즘 작품이냐 아니냐에 대한 숱한 논란에 대해 '그저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환상'이라고 답했다. 역자의 후기에서도 나오는 표현이지만 정말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는 게, 확실히 에로티시즘은 판타지다. 이 작품의 주인공 O의 내면을 보면서 제대로 깨달았다. 


 작품의 주인공 'O'의 이름을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갔다고 한다. 구멍Orifice, 물건Objet, 오르가슴Orgasme... 다 일리가 있지만 나는 O가 알파벳이 아닌 그냥 구멍 그 자체(O)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O 이야기>는 말 그대로 구멍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O가 자신의 애인 르네에 의해 성노예로 전락해 온갖 구멍이 학대당하면서 시작된다. 비밀스런 사교클럽 루아시에 입성한 O는 성의 남자들로부터 항문이 좁다며 꾸지람을 듣는다. 마치 그녀가 기본 소양도 갖추지 못했다는 듯 아주 혹독한 관심을 받게 된다. 

 이 상황에 대한 묘사가 가관이면서 인상적인데, 일단 애인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르네라는 남자는 O의 항문을 넓히자는 다른 남자들의 얘기에 좋으실 대로 하라고 말하고, 어떤 남자는 너무 넓어도 곤란하다고 말한 뒤 도구를 이용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O의 항문을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은 넓이로 넓혀버린다. 

 초반부터 너무 수위가 센 말을 하는 건가 싶지만,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나중에 O가 겪을 일에 비하면 항문 정도는 정말 애교에 불과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너무 좁아도 너무 넓어도 곤란하다는 말은 이 작품의 분위기나 문체에도 해당된다. 강간, 학대 등의 장면을 거침없이 묘사하면서도 정작 어휘는 차분한 편에 속한다. 가령 신체 부위에 대해 ㅂ, ㅆ, ㅈ으로 시작하는 저속한 단어를 구사할 법도 하고 남성이 O를 비롯한 여성들한테 하는 말도 그대로 적을 수 있음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저속한 말을 했다' 정도로 에둘러 서술하는 등 이른바 절제미가 느껴졌다. 그렇게 표현을 절제하고 직접적인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어 더 야하게 읽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소설이 적어도 초반부부터 중반부까진 단지 외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문학, 예술의 묘미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이 작품은 야동을 보는 감각으로 자극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론 그 맛을 알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문장도 길고 가독성도 떨어지고 서사보다 묘사의 비중이 훨씬 커 문장을 빠르게 훑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그저 역겨운 소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은 역겹지만, O가 성노예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몰입하며 내제화하는 등 나름대로 자기합리화하는 과정이 담긴 중반부까지는 역겨운 동시에 독특하고 흥미로운 지점도 상당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왜 그녀가 르네를 애인이라 존경하며, 그런 찌질한 고자질쟁이의 어떤 면모에 반했는지 - 재력 때문인가? 그렇다기엔... - 직접적인 에피소드는 다뤄지지 않아 결국 O의 복종 어린 태도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상황에 본능적으로 저항하면서도 점차 변화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고 심상치 않게 묘사해 이래저래 읽는 맛은 상당했던 작품이다. 

 O를 비롯해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은 채찍질을 당한다. 진짜 채찍 말이다. 별 대단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은 아니다. 다릴 오므렸거나 남자들 앞에서 말했거나 남자들과 눈을 마주쳤거나... 이유는 사소하고 폭력적이며 일부 남성은 잘못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 등 한마디로 채찍질 하고 싶어서 채찍질하는 것이라 이해하면 편하다. 남자들은 여성들이 채찍에 맞는 걸 즐기기보다 고통을 호소하고 제발 멈춰달라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즐기며 둔부에 채찍 자국을 남기고 싶어한다. O는 기가 막히게도 자신이 채찍에 맞는 걸 황홀하게 바라보는 애인의 표정에 황홀함을 느끼며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한다. 


 루아시에서 성노예로 재탄생한 O는 파리로 돌아와 애인과 그의 이복형제인 스티븐 경이 공동 소유하는 여성이 된다. 웃긴 것은 두 남자는 그녀에게 언제든 떠나도 좋지만, 그녀가 승낙하면 자신들의 지도 하에 지금까지 받은 교육 그 이상의 교육이 실시된다고 한다. 정말로 그녀가 떠난다고 하면 보내줄지도 의문이지만 - 안 그런다에 건다. - 이미 두 남자가 원하는 답이 뭔지 아는 O는 두 남자가 공동 소유하는 여성이 될 것을 어렵사리 승낙한다. 

 하지만 O는 얼마 되지 않아 자위를 하라는 스티븐 경의 명령에 불복한다. 루아시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자위가 뭔 대수인가 싶지만, 사실 O는 르네를 비롯해 남자들이 명령을 했기에 다릴 벌린 뿐이라고 자위해왔지, 실제로 자기 스스로 성욕이 발동돼 자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랑과 복종을 헷갈리는 게 아니냐고 질책하는 스티븐 경은 - 이런 사람이 '경'이라 불리는 것이 정말 소름 끼치는 일 아닌가? - 스스로 가공할 수준의 주인임을 미리 공언한 대로 O가 스스로의 성욕을 인정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점점 그녀를 몰아붙인다. 

 결국 구멍도 활짝 열리고 채찍질을 견디는 것도 모자라 명령하면 언제든 자위하겠다고 직접 말하는 지경에 이른 O는 이전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주체적인 성노예로 거듭나게 된다. 처음 만났을 당시엔 수동적이었던 O는 스티븐 경과 대화를 할 때마다 겉돌았지만, 시간과 공을 들인 보람이 있게 O는 이 다음부턴 상당히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게 된다. 


 중반부 이후부터 이 소설은 급격히 외설에 가까워진다. 처음엔 이 작품을 '남자 잘못 만나 성노예로 전락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루아시에서의 고분고분한 태도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탓에, 혹은 목숨이 아까워 자기 감정을 속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왔음에도 어딘가에 신고도 않고 도망을 칠 생각도 않고 아무것도 강제하는 것도 없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는 남자들의 말에도 O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랑을 위해 이 모든 시련을 견디겠노라는 그녀의 태도에 연민을 느꼈다. 사랑이 원래 바보같은 것이고, 전부를 주고도 아쉬워하는 것이라지만 이건 지나치다고, 그녀가 그걸 언제쯤 깨달을 것인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이야기는 '성노예로서의 자질을 자각하지 못했던 주인공이 능력 있는 주인을 만나 잠재력이 개화되는 묘한 성장담'으로 읽히기 시작했는데... 그렇다 보니 솔직히 말해 O가 어느새 더는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이 작품 속 남자들의 언행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길에서 엄청나게 애교를 부리는 개냥이를 보는 기분으로 O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게 됐다. 가령 스티븐 경의 명령을 받들어 모델 자클린의 육체를 탐하거나 루아시와 비슷한 성격의 사교클럽 사무아에서 인체 개조를 당하고, 스티븐 경의 사유재산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의 몸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음모가 깎이면서 스티븐 경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하거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경멸하는 여성들에게 O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은,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지만 '귀여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O가 귀여웠다. 그리고 동시에 가여웠다. 공교롭게도 발음이 비슷한 이 두 단어는 내가 생각했을 때 종이 한 장의 차이만 있을 뿐 꽤나 비슷한 개념이지 않은가 싶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개처럼 사람 손을 타는 모습을 보면 우린 귀여움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굶주렸으면 본성과 반대로 행동할까 싶어 가여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겐 O의 모습이 딱 그랬다. O가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자세히 그려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전까진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는 문란한 성생활을 가졌을 뿐인 O가 사랑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해 남자들한테 휘둘리게 된 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책의 묘사에 따르면 O의 복종하는 성향엔 천부적인 요소도 없잖아 그녀 스스로 어떤 취급을 당할지 알고 있음에도 반항하지 않는 모습은 어떤 의미에선 읽는 이의 죄책감을 덜어내기도 했다. O가 르네나 스티븐 경에게 언젠가 버림받을 것이고 '사랑'은 단지 그녀의 일방통행적인 감정일 뿐, O를 취하는 남자들은 그녀를 쉽게 자기 입맛대로 구슬릴 수 있는 일종의 마법의 단어 정도로 '사랑'을 입에 담는 것이 너무나 뻔히 보여 불쾌하고 탄식을 자아냈지만, 정작 당사자인 O는 학대당할수록 '행복하다'고 말하니 원... 그렇다 보니 읽을수록 O의 다소곳한 태도가 순수하게 남성으로 하여금 가학성을 유발하는 감이 다분했는데, 그녀의 모습에서 더는 안쓰러움도 귀여움도 아닌 흐뭇함을 느끼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 적잖은 충격을 받기까지 했다. 아, 이러니 19금 판정을 받은 건가?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이 여성의 본성은 복종을 원하며 그 내면을 잘 드러낸 소설이라 인용하고, 어떤 사람들은 천인공노할 안티 페미니즘 소설이라 경멸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피학성애를 실천하는 페미니즘 소설이란 궤변을 늘어놓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예술이냐 외설이냐 이전에 그저 판타지다. 루아시에 간 O가 애인이 기대하는 그 이상의 엄청난 피학성을 내재했다는 것도 판타지고 나중에 등장하는 자클린이나 자클린의 이부동생 나탈리가 O와 결이 다를 뿐 마찬가지로 성노예의 소질이 있으며 그런 여성이 너무 타이밍 좋게 자주 등장하는 것 - 뿐만 아니라 피임이나 위생이나 성병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는 것도 작위적이기 그지없었다. 유일하게 현실적인 장면을 꼽자면 스티븐 경이 르네로부터 O의 항문 단독 사용권을 양도받자 그녀의 항문이 찢어지지 않을지 걱정하는 정도다... - 모두 판타지다. 현실에 O 같은 여성이 있을 수 있어도 이를 개인의 성향으로 이해해야지 여성 전체가 그렇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은 작품의 본질에서 벗어난 차원의 해석이라 생각된다. 

 한편 이 소설은 저자가 자신의 애인으로부터 '여성은 절대 사드처럼 소설을 쓰지 못할 것'이란 말에 자극을 받아 썼다는 말과 자신의 애인에게 보내는 일종의 지독한 연애편지라는 말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퍽 성공을 거뒀다고 본다. 정작 저자의 애인이라는 장 폴랑이란 작자는 자기 애인이 <O 이야기>의 저자인 줄은 모르고 죽었다지만 생전에 이 작품을 아주 극찬했다는데, 남성의 가학성을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 발달시키기까지 하는 이 소설을 '연애편지'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정말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성욕이 충만한 남성이 O 같은 여자를 만났다면? 그녀를 딱 잘라 거부할 수 있는 남성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연애편지로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좋은 소설, 문학, 예술이라 봐야할는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 독자들은 장 폴랑이 아니니까. 우리에겐 이 소설이 외설로 그치지 말고 좀 더 완성도 있는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소설에 정식 후속작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허무한 결말이지만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엔 엄연히 <루아시로의 귀환>이란 정식 속편이 있고, 그 작품에서 O는 역시나 스티븐 경에게 버림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고 스티븐 경은 그걸 허락한다고... 한다. 역자 후기에서 소개된 후속작의 결말은 예술로 시작해 외설로 끝난 <O 이야기>의 단점을 잘 보완해준단 생각이 들었다. 

 O가 언젠가 버려질 것이라 불길한 예감만 들게 하고 끝낸 책의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다소 전형적이고 교훈적이더라도 한결같이 사랑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관철한 O가 끝에 가서 지난 날을 후회한다든지, 아니면 끝까지 노예로서 자부심을 가지며 후회 없이 자살할 것인지 그 여부까지 묘사됐더라면 이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고차원의 예술로 승화되지 않았을까? 지금 이 상태로는 외설적인 성격이 강한 채로만 끝이 나 아무래도 감상에 제한이 걸려버리게 된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니 후속작이라도 꼭 출간됐으면 좋겠는데,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역자가 후기에서 이 작품이 충분한 각광을 받아 속편까지 완역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날은 아주 요원해 보인다. 19금 판정을 괜히 받은 작품이 아닌 지라 아마 이대로 각광을 받지 못한 채 묻힐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참 아쉽다. 이렇게 몰입되고 결말이 궁금한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눈치는 보이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294페이지가 아니라 2940페이지였어도 괜찮았을 만큼 몰입도 하나는 압도적이었는데, 이는 내가 남성 독자니까 할 수 있는 말일 듯하다. 

하느님이 주는 시련을 신자들이 오히려 감사해하듯, 그녀는 자신을 함부로 취급하는 걸 즐기는 애인의 뜻을 충실히 배려하면서 마냥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 120~121p



살아 계신 신의 손 안에 떨어지는 것이 무섭도다

‘천만의 말씀! 정말 무서운 건 살아 계신 신의 손 밖으로 떨어져나가는 것이지...... - 138p



즉, 고문을 당한다는 생각 자체가 즐겁다가도, 막상 고문을 당하는 순간에는 그걸 면하기 위해 온 세상을 팔아 치워도 시원찮을 것 같다가, 급기야 고문이 끝나면 모든 걸 견뎌낸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데, 그 기분은 고문이 잔혹하고 길어질수록 배가되기 마련이다. - 22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신박진영 지음 / 봄알람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9 






 어디 가서 대놓고 말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난 공창제를 찬성했고 그 이유에 대해 얘기할 때 항상 '필요악'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담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과연 성매매가 '필요'악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과 마주해야 했으며, 끝까지 다 읽으니 설령 성매매가 없어지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더라도 금지시키는 방향으로 일을 도모해야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남자는 짐승이고 성욕은 본능이니 성매매를 못 하게 하면 성범죄자가 된다는 말에 진정 분노하고 저항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머릴 한 대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에서 나오는 한스 란다 대령은 '인간이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냈을 때 어느 정도로 유능해질 수 있는지 총통(히틀러)께 증명해왔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성매매에 대해 논할 때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거나 자유로워지는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어느 정도로 막장으로 치닫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평생을 거의 성매매 피해 여성을 위한 삶에 매진했던 저자 신박진영 씨의 힘있고 확신에 찬 문체, 일목요연하고 핵심을 잘 드러낸 글은 내 가치관을 바뀌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내가 공창제를 찬성했던 이유 중 필요악이라고 여겨서 말고도 종사자들이 '성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공창제가 필수적이란 어림짐작도 한몫했다. 하지만 저자는 성매매는 노동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진정한 '성진국'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나 독일이 공창제를 했음에도 침해되는 성노동자의 권리나 여전히 만연한 성차별, 그리고 그만큼 투명하게 공창제가 시행되기엔 현실적인 여건이 부족하다는 사례도 든다. 현실적인 여건이란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저열함을 가리키는 말일 터다. 공창제가 시행된들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이 유지될 리 만무하다. 이는 여성 징병제가 양성평등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반박할 수 있는 근거기도 하다. 여성은 약하니 남성이 아무렇게나 착취해도 되는 존재라는 인식에 변화가 없으면, 여자도 군대를 간들, 창녀가 성노동자로 호칭이 바뀐다 해도 젠더 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수 없다. 한마디로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저자가 롤모델로 가장 많이 언급한 나라는 스웨덴을 위시한 북유럽 국가들이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2부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데, 바로 성매매 여성이 아닌 성을 구입하는 남성만을 처벌하는 법이다. 그 소설이 집필된 당시엔 아직 그 법이 통과가 된 직후거나 이제 곧 시행될 예정이라고란 언급돼서 실제로 그 법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알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귀추가 궁금했는데 저자의 말을 들어보니 좋은 효과를 낳았던 모양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놀라운 한편 참 부끄러웠다. 이런 대안이 있고, 또 알고 있었음에도 공창제를 필요악이란 이유로 찬성해왔다니... 


 스웨덴이 성을 구입하는 남성을 처벌하는 법을 제정할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성매매 금지법이 발의 및 시행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이 극심했으며 그들은 주로 성매매가 더욱 음지로 들어가 감시와 처벌이 어려워질 것이란 논리를 내세웠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으나 한 가지 의문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그 전엔 음지에서 성매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이 들었음에도 나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 같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니 내가 얼마나 무지했고 관심이 적었으며 성매매 금지법이 우리나라 같은 성매매 공화국에서 통과됐다는 것이 실로 기적 같은 일이었음을 진작 알아보지 못했는지 그저 민망할 따름이었다. 

 자본주의의 원리로 인해 성매매가 어디까지 악독하게 여성들의 몸과 마음을 착취할 수 있는지 저자가 직접 조사해온 풍경들, 그리고 한국 남성의 절반 가량이 성매매 경험이 있고 관여했다는 주장은 솔직히 바로 받아들이기엔 아연실색한 내용 천지였다. 내가 성매매 경험이 없는 나머지 절반에 해당해서 그랬던 걸까? 나 또한 저자가 언급했던 '남성 혐오 조장하려고 하는 말이죠?' 란 말처럼 너무 비현실적인 통계라 아니냐며 따지고 싶었다. 성매매 업계의 막장스러움에 한 번도 눈길을 준 적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책의 후반부엔 결국 어떤 이유에서건, 자의든 타의든 빚이 있든 뭐든 성매매 여성이 처한 상황은 당사자인 여성들이 해결할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는 사회의 분위기에 일침을 가한다. 진지하게 따지면 과연 당사자를 여성이나 포주에 한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칫 이러한 주장은 '설령 성매매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들 남자라면 절반 가까이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 당사자'라는 극단적 주장을 낳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할 수 있으나 저자의 논조는 그렇게 강경하지 않았다. 대신 성매매를 개인의 문제 내지는 비극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할 뿐이었다. 

 물론 성매매를 체제적 문제라 인식하고 변화를 꾀하기엔 근 100년 동안 남성 주도하여 이룩된 성매매 사업이 워낙에 번창하여 현실적으로 무척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때문에 개인의 문제로 여기거나 개인에게 손가락질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성매매 방지법 자체가 기적으로 여겨질 만큼 이 책엔 역겹고도 절망적인 성매매의 뿌리 깊은 역사가 열거돼 감히 개선해볼 엄두가 생기긴커녕 방관으로도 벅차지 않은가 하고 나약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저자라고 이 짧은 분량의 글로 많은 사람의 인식이 바뀌고 태도가 바뀌리라고 진심으로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정말 잘 쓴 글이지만, 정말 잘 쓴 글만으로 세상이 바뀌기엔 이 세상이 결코 녹록지 않다. 지옥을 성큼성큼 들어가 성매매 피해 여성과 마주하는 일에 매진한 저자이니 '글로 세상을 바꾼다'는 순진한 감상을 안고서 글을 집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부제인 '상식의 블랙홀'이라는 말처럼 적어도 상식이 빨려들어가는 사태만은 막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블랙홀 자체를 와해시키긴 힘들고 그 힘을 같이 내줄 사람을 불러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옆에서 빈정대거나 헛소리로 앞을 막아서는 사람을 줄이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닌지 생각해봤다. 나는 아마 저자가 행동할 때 빈정댄 사람이었을 텐데, 이젠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가치관을 바꾼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 성매매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기엔 가해자로도 피해자로도 피해자의 주변 사람으로도 경험한 적이 없기에 저자처럼 직접 행동하며 성매매를 반대할 일은 어지간해선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말이 저자에겐 썩 달갑지 않게 들리겠지만, 이 책의 내용만 읽고서 행동으로 이어지기엔 아직 궁금한 점이 한가득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다음부터 성매매 여성이 등장하는 책을 연달아 읽게 됐다. 그런 책들을 연달아 읽는 것은 여러모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궁금했던 부분들을 따로 떼서 사유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그 책들에 대한 포스팅은 차차 올릴 것이다.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지만 이 책들이야말로 읽는 것보다 감상을 남기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시키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 사회가 만들고 재생산하는 이러한 통념이다. 남자는 짐승이고 성욕은 본능이니 성매매를 못 하게 하면 성범죄자가 된다는 말에 진정 분노하고 저항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 38p



거대 규모의 성매매 시장은 남성들에게 ‘돈만 있으면 너도 주인님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대체 누구의 주인인가. 성 구매자는 섹스에서 소외된 시장의 노예일 뿐이다. - 123p



적절한 규제 없이 약자가 보호받는 시장이 역사상 존재는 했었는지 묻고 싶다. 모든 노동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온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수많은 법률이 있어도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음을 우리는 보아왔다. - 200p



성매매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계급 구조를 집약한 거대한 착취의 시장이다. 성별과 자본과 인맥으로 인간의 급을 나눠 위력을 행사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산업이다. 이 폭력에서 자유로운 사회 구성원은 없다. - 24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인 17 - 완결
사쿠라이 가몬 지음, 미우라 츠이나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2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1 





 2015년에 1권을 접한 이후로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 완결을 보게 된 <아인>은 마무리까지 깔끔하고 완벽했다. 죽지 않는 인간 '아인'이라는 흥미로운 설정, 떡밥을 적재적소에 깔고 지루하지 않게 회수하는 밀도 있는 서사, 입체적이고 신선한 캐릭터 묘사, 죽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한 아인들의 미친 액션과 책략, 그리고 인간이란 단지 죽지 않고 살아있을 뿐인 존재가 아닌 주체적이고 진지하게 삶의 문제를 돌파해나가는 존재임을 피력하는 주제의식이 대단히 좋았다. 주인공부터 냉소적이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의 작품이지만, 도리어 이성과 감정의 대비를 통해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그 질문을 죽지 않는 인간인 아인들을 통해 풀어낸 것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조금 흥미로운데, 원래 이 작품은 스토리 담당 작가인 미우라 츠이나와 작화 담당 작가인 사쿠라이 가몬의 공동 작품이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스토리 작가가 고작 5화만 그리고 하차하자 나머지 부분을 작화 담당인 사쿠라이 가몬이 이어나가게 됐다고 한다. 협업 관계에서 한 명이 이탈하면, 게다가 남은 쪽이 작화 담당이라면 그냥 접는 것이 상식인데 사쿠라이 가몬이 그대로 이어서 간 걸 보면 그 작가에게 스토리텔러로서의 잠재력이 있음을 편집부는 알아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이판사판이었는데 초대박이 난 것일 수도 있고. 


 내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이 작품의 대다수의 팬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스토리 작가가 하차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말한다. 당사자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또 원래 구상했던 스토리도 나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선 사쿠라이 가몬의 냉소적이고 액션이 가득한 버전 외엔 다른 <아인>을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이미 오래 지난 일이니 '만약'을 가정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고. 아무튼 1권에서 느낀 인상에 비해 3권부턴 냉소적이다 못해 소시오패스로 거듭난 주인공 나가이 케이는 '인간은 언제부터 아인이 되는가' 라는 작품 전반에 녹아든 질문과 아주 잘 어울리는 캐릭터인 지라 어쩌면 도박이었을지 모를 사쿠라이 가몬의 단독 연재는 그야말로 대성공이라고 극찬해도 하등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인간은 언제 아인이 되는가. 죽기 전에 아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세계관의 상식에 비춰보면 죽은 다음에 부활하는 순간에 아인이 된다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겠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아인은 갓 아인이 됐을 무렵이랑 점점 아인에 익숙해지는 모습과 비교하면 확실히 인간과 아인은 별개의 생물이란 주장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도 고통은 그대로기에 인간을 대놓고 적대하지 않고 눈의 띄지 않게 공생을 추구하지만, 타인과 원만히 지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고통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은 확실히 인간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아인이 아닌 보통의 인간이 훨씬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 미쳤거나 일그러진 심성을 가졌고 이러한 모습들엔 동정의 여지가 있는 뚜렷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천성적으로' 그따위인 유형이 많아서 죽어서 아인임을 알게 되는 아인들과 비교했을 때 도대체 누가 인간이고 인간이 아닌지 구분 짓기가 상당히 애매해진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를 증명하는 나가이와 사토는 굉장히 특이한 유형이고, 온갖 더러운 일을 일삼는 청부업자이지만 동료끼리 의리가 있는 히라사와, 마나베 같은 검은 양복의 사내들, 혼수 상태에 빠진 연인을 치료하기 위해 아인을 이용하려는 토사키의 연민 어린 모습과 아인임에도 혹시 다음엔 부활을 하지 못할까봐 '리셋'을 두려워하는 나카노 등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모두 그들의 소속, 과거에 저질렀던 일, 그리고 종족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단정 짓기엔 너 나 할 것 없이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일련의 사건을 수습하고 사토를 막은 나가이는 이전에 오구라에게 말한 대로 '사람은 변하지 않음'을 완결까지 관철시킨다. 억지를 부린 측면도 없지않지만 그의 본성은 분명 바뀌지 않았다. 바뀌기엔 너무 늦었을 수도 있고. 중요한 건 그 미치도록 이해타산적인 부분을 어쨌든 굉장히 옳은 일에 써줬고 나가이의 성격상 악행에 자신의 두뇌나 아인으로서의 능력을 쓸 것 같지도 않고 애당초 그만큼 욕심이 많다거나 절박한 상황에 처할 만큼 자기관리에 소홀한 인물이 아닌 터라 소시오패스임에도 이 세상에 긍정적인 의미에서 필요한 일을 많이 해내줄 듯하다. 


 나는 단언컨대 나가이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자기가 이대로 냉정하게 살아도 되는지 반성하는 것은 좋은 자세라 생각한다. 반성 없는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탈선뿐이다. 하지만 그 모든 반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차갑고 사교성은 없고... 쉽게 말해 싸가지 없는 인간쓰레기라 할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이 세상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시오패스라 위험하진 않으냐고? 악행을 직접 저지르기까지 소피오패스는 그저 유형에 불과할 뿐 범죄자는 아니다. 소시오패스 성향을 보인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인물을 재단하는 것은 아인이 죽지않는다는 이유로 '인류 발전을 위해 그들은 실험 동물로 쓰는 것이 경제적이다, 마침 인간처럼 감정이 없기도 하고' 라며 말하는 것과 같다. 그보단 차라리 히라사와처럼 소시오패스건 뭐건 그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고 힘들여 바뀔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이 모두 같이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 훨씬 이로운 일이지 않을까? 

 소시오패스냐 사이코패스냐, 내가 그 부분에 그리 정통하지 않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고 있다.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그 성향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조금씩 갖고 있다. 나가이가 논리적으로 나카노의 감정적인 부분을 반박하거나 당당하게 타인이 죽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 사토가 테러라는 이름의 게임을 즐기는 모습은 남다른 쾌감을 안겨주는데 <아인>이 크게 흥행한 것을 보면 이는 비단 나만이 느낀 특이한 감상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폭력성은 있고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무책임해지고 싶어진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사이코패스인 것이고 소시오패스인 것이고 아인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인이란 죽지 않는다는 걸 자각한 뒤가 아니라 주변에 무책임해졌을 때 진정한 아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작품을 읽는 동안 생각해봤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인은 한 명, 바로 사토다. 그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감각으로 살육을 저지르고 테러 행위를 벌이고 지겹다고 간단히 작전을 관두고 동료들을 버리는 모습은 실로 무책임 그 자체다. 현실 감각이 없는 인간들이 이토록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의 무책임함을 보여주지 않나 싶은데, 그의 액션이 쾌감을 선사해주는 한편으로 분노를 유발하는 이유가 바로 무책임한 모습 때문임을 최후반부에 나가이가 제대로 지적한다. 

 물론 사토는 기절한 상태라 듣진 못했겠지만, 아인이기에 가능한 책략과 액션을 사토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채롭게 구사한 나가이는 사토에게 '그럼에도 자신은 진지했기에 내내 게임하는 태도인 당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뼈가 있는 말을 던진다.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가려는 - 징병제가 있고 국가 차원에서 프로게이머를 육성한다는 이유로;; 이 작품 속 한국은 이 작자에게 박살이 날 뻔했다... - 사토를 나가이가 굳이 필사적으로 막아선 이유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였다. 나가이는 실패를 거듭했으나 늘 진지했고, 자신의 진지함이 무시당하는 기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토는 그런 나가이의 집념에 유달리 당황한 눈치였는데,모든 가능성을 동원해 사토를 막아내고 감정을 해소하는 나가이의 모습이 그렇게 속시원할 수가 없었다. 


 한 번 펼치면 멈추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완결이 워낙 깔끔해 살짝 시원섭섭한 감이 있어 외전이라도 나왔으면 좋겠지만... 이 작품의 냉소적인 느낌을 생각한다면 외전은 사족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대신 나는 완결의 아쉬움을 본편의 몇몇 장면을 생각이 날 때마다 보는 것으로 달래려고 한다. 전권을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아마 두고두고 찾아볼 듯하다. 어쩌면 영원히 소장할 수도 있을 정도로 <아인>은 깊이가 있는 작품이니까 말이다. 

나는... 목숨을 걸 수가 없어. 목숨 외의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계산이 안 맞잖아... - 2권 File:07 003



여기선, 윤리나 감정을 배제한, 압도적인 결단이 반드시 필요해. 사실이다. 너는 그럴 수 있는 놈이야.

너는 그러면 돼. - 6권 File:26 Genius...? !



[마리오]를 할 때 말이지 [피치 공주를 구하자!] 하는 생각으로 불타서 하나? 스토리는 필요하지만, [거북이를 밟는 게 재미있어서] 하는 거 아니야? - 7권 File:30 Call of Duty



모든 인간은 무의식중에 타인의 생명을 저울질하고 있어. 너도 그래. 그걸 의식적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비난할 수 없어!! - 9권 File:43 싸움



인생은 무의미해. 아무 가치도 없지. 하지만, 그저 [태어나서 죽어갈 뿐인 존재]인 인간이, 우주의 의사에 대항하여,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아? - 16권 File:75 미지를 향한 비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8.5 






 <도깨비불의 집>은 전작 <유리 망치>와 비교하면 깊이는 아쉽지만 다채로운 설정과 두 주인공의 진보된 케미로 중무장한 밀실 추리소설 단편집이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 중 흔치 않은 단편집인데, 항상 벽돌에 준하는 두께의 책을 쓰는 저자지만 단편에도 의외로 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단편의 분량 안에서 캐릭터들의 매력과 신박한 트릭, 작가 본인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 설정까지 빠짐없이 잘 담겨져 짧은 분량의 단편들임에도 하나 하나 묵직하게... 아니, 빽빽하게 읽힌다. 

 물론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여자 주인공인 아오토 준코는 전편보다 못 미더운 인물로 묘사되고 - 그놈의 거미를 무서워하는 캐릭터성 때문에... 그래도 세 번째 수록작에선 아오토가 탐정에 소질이 없는 것이지 변호사로선 결코 만만찮은 인물임이 그려져 체면치레는 했다고 본다. - 몇몇 트릭은 신박하기보단 허무하거나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설정은 너무 작가의 취향이 반영된 나머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없으면 한없이 지루하게 읽혀질 수 있다. 내 경우엔 아오토가 허당끼 있는 캐릭터로 그려진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작가의 그릇된 성 고정관념을 엿볼 수 있는 요소라며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독자도 있을 테고 트릭이나 설정에 대해 작가가 공을 들인 것과 별개로 설명이 독자에 따라선 불충분할 수 있다는 것 등 작가나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기대는 접고 책장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우선 표제작이자 첫 번째 수록작은 '도깨비불의 집'이 가장 평범하고 재미도 없었으며 명백하게 전작 <유리 망치>보다 완성도가 떨어졌다. 결말은 나름대로 충격적이었지만 전개가 지루했고 더 나은 결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수록작인 '검은 이빨'은 일종의 안락의자 탐정물로 느닷없이 혼자서 공포와 싸우게 된 아오토 준코의 남다른 집념과 활약이 돋보였다. 특히 첫인상엔 그저 불쾌했던 거미가 후반부엔 가엾게 느껴지고 역시 기시 유스케의 작품답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장기판의 미궁'은 장기에 대한 기시 유스케의 취향이 한껏 드러나는 작품으로 장기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부정이라는 흥미로운 대목이 없었다면 쉬지 않고 나오는 장기 용어 때문에 완독하기 버거웠을지 모르겠다. 트릭의 난이도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오토 준코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이었는데 엄연히 에노모토 케이가 주역인 에피소드임에도 그의 존재감이 이 여성 캐릭터들에 밀리는 인상을 받았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쉽게 잊히지 않을 듯하다. 

 마지막 수록작인 '개는 알고 있다'는 이 책에서 가장 이색적인 작품으로 기시 유스케의 정신 나간 개그 코드가 단연 돋보였다. 개를 키웠던 사람으로서 공감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많고 트릭보다 트릭이 밝혀지는 장면도 실소를 유발하며 아오토 준코의 허당 같은 면모도 정점을 찍어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게 읽을 수 있던 작품이다. 내내 심각한 작품만 읽다가 마지막에 웃으면서 책장을 덮으니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 기억엔 다음 작품인 <자물쇠가 잠긴 방>도 마지막 수록작이 코미디였던 것 같은데... 그 작품도 기대된다. 마지막엔 코미디로... 꽤 괜찮은 구성인 것 같다. 

신용을 얻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어버리는 건 한순간이군요. 그건 개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300p



이미 동기가 충분하다니, 그건 경찰들이 쓰는 말 아닌가요? 조서를 쓸 때 동기라는 항목이 비어 있으면 곤란하니까 뭐라도 채울 거리가 있으면 좋다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진정한 동기는 하나입니다. 그걸 밝히는 건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인간성에 대한 문학적 탐구뿐 아니라 동기의 내용에 따라서는 형량에도 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 30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