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 17 - 완결
사쿠라이 가몬 지음, 미우라 츠이나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2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1 





 2015년에 1권을 접한 이후로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 완결을 보게 된 <아인>은 마무리까지 깔끔하고 완벽했다. 죽지 않는 인간 '아인'이라는 흥미로운 설정, 떡밥을 적재적소에 깔고 지루하지 않게 회수하는 밀도 있는 서사, 입체적이고 신선한 캐릭터 묘사, 죽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한 아인들의 미친 액션과 책략, 그리고 인간이란 단지 죽지 않고 살아있을 뿐인 존재가 아닌 주체적이고 진지하게 삶의 문제를 돌파해나가는 존재임을 피력하는 주제의식이 대단히 좋았다. 주인공부터 냉소적이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의 작품이지만, 도리어 이성과 감정의 대비를 통해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그 질문을 죽지 않는 인간인 아인들을 통해 풀어낸 것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조금 흥미로운데, 원래 이 작품은 스토리 담당 작가인 미우라 츠이나와 작화 담당 작가인 사쿠라이 가몬의 공동 작품이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스토리 작가가 고작 5화만 그리고 하차하자 나머지 부분을 작화 담당인 사쿠라이 가몬이 이어나가게 됐다고 한다. 협업 관계에서 한 명이 이탈하면, 게다가 남은 쪽이 작화 담당이라면 그냥 접는 것이 상식인데 사쿠라이 가몬이 그대로 이어서 간 걸 보면 그 작가에게 스토리텔러로서의 잠재력이 있음을 편집부는 알아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이판사판이었는데 초대박이 난 것일 수도 있고. 


 내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이 작품의 대다수의 팬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스토리 작가가 하차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말한다. 당사자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또 원래 구상했던 스토리도 나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선 사쿠라이 가몬의 냉소적이고 액션이 가득한 버전 외엔 다른 <아인>을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이미 오래 지난 일이니 '만약'을 가정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고. 아무튼 1권에서 느낀 인상에 비해 3권부턴 냉소적이다 못해 소시오패스로 거듭난 주인공 나가이 케이는 '인간은 언제부터 아인이 되는가' 라는 작품 전반에 녹아든 질문과 아주 잘 어울리는 캐릭터인 지라 어쩌면 도박이었을지 모를 사쿠라이 가몬의 단독 연재는 그야말로 대성공이라고 극찬해도 하등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인간은 언제 아인이 되는가. 죽기 전에 아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세계관의 상식에 비춰보면 죽은 다음에 부활하는 순간에 아인이 된다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겠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아인은 갓 아인이 됐을 무렵이랑 점점 아인에 익숙해지는 모습과 비교하면 확실히 인간과 아인은 별개의 생물이란 주장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도 고통은 그대로기에 인간을 대놓고 적대하지 않고 눈의 띄지 않게 공생을 추구하지만, 타인과 원만히 지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고통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은 확실히 인간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아인이 아닌 보통의 인간이 훨씬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 미쳤거나 일그러진 심성을 가졌고 이러한 모습들엔 동정의 여지가 있는 뚜렷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천성적으로' 그따위인 유형이 많아서 죽어서 아인임을 알게 되는 아인들과 비교했을 때 도대체 누가 인간이고 인간이 아닌지 구분 짓기가 상당히 애매해진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를 증명하는 나가이와 사토는 굉장히 특이한 유형이고, 온갖 더러운 일을 일삼는 청부업자이지만 동료끼리 의리가 있는 히라사와, 마나베 같은 검은 양복의 사내들, 혼수 상태에 빠진 연인을 치료하기 위해 아인을 이용하려는 토사키의 연민 어린 모습과 아인임에도 혹시 다음엔 부활을 하지 못할까봐 '리셋'을 두려워하는 나카노 등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모두 그들의 소속, 과거에 저질렀던 일, 그리고 종족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단정 짓기엔 너 나 할 것 없이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일련의 사건을 수습하고 사토를 막은 나가이는 이전에 오구라에게 말한 대로 '사람은 변하지 않음'을 완결까지 관철시킨다. 억지를 부린 측면도 없지않지만 그의 본성은 분명 바뀌지 않았다. 바뀌기엔 너무 늦었을 수도 있고. 중요한 건 그 미치도록 이해타산적인 부분을 어쨌든 굉장히 옳은 일에 써줬고 나가이의 성격상 악행에 자신의 두뇌나 아인으로서의 능력을 쓸 것 같지도 않고 애당초 그만큼 욕심이 많다거나 절박한 상황에 처할 만큼 자기관리에 소홀한 인물이 아닌 터라 소시오패스임에도 이 세상에 긍정적인 의미에서 필요한 일을 많이 해내줄 듯하다. 


 나는 단언컨대 나가이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자기가 이대로 냉정하게 살아도 되는지 반성하는 것은 좋은 자세라 생각한다. 반성 없는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탈선뿐이다. 하지만 그 모든 반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차갑고 사교성은 없고... 쉽게 말해 싸가지 없는 인간쓰레기라 할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이 세상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시오패스라 위험하진 않으냐고? 악행을 직접 저지르기까지 소피오패스는 그저 유형에 불과할 뿐 범죄자는 아니다. 소시오패스 성향을 보인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인물을 재단하는 것은 아인이 죽지않는다는 이유로 '인류 발전을 위해 그들은 실험 동물로 쓰는 것이 경제적이다, 마침 인간처럼 감정이 없기도 하고' 라며 말하는 것과 같다. 그보단 차라리 히라사와처럼 소시오패스건 뭐건 그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고 힘들여 바뀔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이 모두 같이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 훨씬 이로운 일이지 않을까? 

 소시오패스냐 사이코패스냐, 내가 그 부분에 그리 정통하지 않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고 있다.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그 성향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조금씩 갖고 있다. 나가이가 논리적으로 나카노의 감정적인 부분을 반박하거나 당당하게 타인이 죽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 사토가 테러라는 이름의 게임을 즐기는 모습은 남다른 쾌감을 안겨주는데 <아인>이 크게 흥행한 것을 보면 이는 비단 나만이 느낀 특이한 감상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폭력성은 있고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무책임해지고 싶어진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사이코패스인 것이고 소시오패스인 것이고 아인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인이란 죽지 않는다는 걸 자각한 뒤가 아니라 주변에 무책임해졌을 때 진정한 아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작품을 읽는 동안 생각해봤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인은 한 명, 바로 사토다. 그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감각으로 살육을 저지르고 테러 행위를 벌이고 지겹다고 간단히 작전을 관두고 동료들을 버리는 모습은 실로 무책임 그 자체다. 현실 감각이 없는 인간들이 이토록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의 무책임함을 보여주지 않나 싶은데, 그의 액션이 쾌감을 선사해주는 한편으로 분노를 유발하는 이유가 바로 무책임한 모습 때문임을 최후반부에 나가이가 제대로 지적한다. 

 물론 사토는 기절한 상태라 듣진 못했겠지만, 아인이기에 가능한 책략과 액션을 사토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채롭게 구사한 나가이는 사토에게 '그럼에도 자신은 진지했기에 내내 게임하는 태도인 당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뼈가 있는 말을 던진다.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가려는 - 징병제가 있고 국가 차원에서 프로게이머를 육성한다는 이유로;; 이 작품 속 한국은 이 작자에게 박살이 날 뻔했다... - 사토를 나가이가 굳이 필사적으로 막아선 이유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였다. 나가이는 실패를 거듭했으나 늘 진지했고, 자신의 진지함이 무시당하는 기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토는 그런 나가이의 집념에 유달리 당황한 눈치였는데,모든 가능성을 동원해 사토를 막아내고 감정을 해소하는 나가이의 모습이 그렇게 속시원할 수가 없었다. 


 한 번 펼치면 멈추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완결이 워낙 깔끔해 살짝 시원섭섭한 감이 있어 외전이라도 나왔으면 좋겠지만... 이 작품의 냉소적인 느낌을 생각한다면 외전은 사족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대신 나는 완결의 아쉬움을 본편의 몇몇 장면을 생각이 날 때마다 보는 것으로 달래려고 한다. 전권을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아마 두고두고 찾아볼 듯하다. 어쩌면 영원히 소장할 수도 있을 정도로 <아인>은 깊이가 있는 작품이니까 말이다. 

나는... 목숨을 걸 수가 없어. 목숨 외의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계산이 안 맞잖아... - 2권 File:07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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