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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8.5
<도깨비불의 집>은 전작 <유리 망치>와 비교하면 깊이는 아쉽지만 다채로운 설정과 두 주인공의 진보된 케미로 중무장한 밀실 추리소설 단편집이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 중 흔치 않은 단편집인데, 항상 벽돌에 준하는 두께의 책을 쓰는 저자지만 단편에도 의외로 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단편의 분량 안에서 캐릭터들의 매력과 신박한 트릭, 작가 본인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 설정까지 빠짐없이 잘 담겨져 짧은 분량의 단편들임에도 하나 하나 묵직하게... 아니, 빽빽하게 읽힌다.
물론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여자 주인공인 아오토 준코는 전편보다 못 미더운 인물로 묘사되고 - 그놈의 거미를 무서워하는 캐릭터성 때문에... 그래도 세 번째 수록작에선 아오토가 탐정에 소질이 없는 것이지 변호사로선 결코 만만찮은 인물임이 그려져 체면치레는 했다고 본다. - 몇몇 트릭은 신박하기보단 허무하거나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설정은 너무 작가의 취향이 반영된 나머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없으면 한없이 지루하게 읽혀질 수 있다. 내 경우엔 아오토가 허당끼 있는 캐릭터로 그려진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작가의 그릇된 성 고정관념을 엿볼 수 있는 요소라며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독자도 있을 테고 트릭이나 설정에 대해 작가가 공을 들인 것과 별개로 설명이 독자에 따라선 불충분할 수 있다는 것 등 작가나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기대는 접고 책장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우선 표제작이자 첫 번째 수록작은 '도깨비불의 집'이 가장 평범하고 재미도 없었으며 명백하게 전작 <유리 망치>보다 완성도가 떨어졌다. 결말은 나름대로 충격적이었지만 전개가 지루했고 더 나은 결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수록작인 '검은 이빨'은 일종의 안락의자 탐정물로 느닷없이 혼자서 공포와 싸우게 된 아오토 준코의 남다른 집념과 활약이 돋보였다. 특히 첫인상엔 그저 불쾌했던 거미가 후반부엔 가엾게 느껴지고 역시 기시 유스케의 작품답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장기판의 미궁'은 장기에 대한 기시 유스케의 취향이 한껏 드러나는 작품으로 장기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부정이라는 흥미로운 대목이 없었다면 쉬지 않고 나오는 장기 용어 때문에 완독하기 버거웠을지 모르겠다. 트릭의 난이도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오토 준코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이었는데 엄연히 에노모토 케이가 주역인 에피소드임에도 그의 존재감이 이 여성 캐릭터들에 밀리는 인상을 받았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쉽게 잊히지 않을 듯하다.
마지막 수록작인 '개는 알고 있다'는 이 책에서 가장 이색적인 작품으로 기시 유스케의 정신 나간 개그 코드가 단연 돋보였다. 개를 키웠던 사람으로서 공감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많고 트릭보다 트릭이 밝혀지는 장면도 실소를 유발하며 아오토 준코의 허당 같은 면모도 정점을 찍어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게 읽을 수 있던 작품이다. 내내 심각한 작품만 읽다가 마지막에 웃으면서 책장을 덮으니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 기억엔 다음 작품인 <자물쇠가 잠긴 방>도 마지막 수록작이 코미디였던 것 같은데... 그 작품도 기대된다. 마지막엔 코미디로... 꽤 괜찮은 구성인 것 같다.
신용을 얻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어버리는 건 한순간이군요. 그건 개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300p
이미 동기가 충분하다니, 그건 경찰들이 쓰는 말 아닌가요? 조서를 쓸 때 동기라는 항목이 비어 있으면 곤란하니까 뭐라도 채울 거리가 있으면 좋다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진정한 동기는 하나입니다. 그걸 밝히는 건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인간성에 대한 문학적 탐구뿐 아니라 동기의 내용에 따라서는 형량에도 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 3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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