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더 행복하기로 했다 - 내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법
카트리나 온스태드 지음, 김태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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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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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글러브>는 ‘일요일 밤은 새로운 월요일 아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많은 직장인들이 일요일 밤부터 수신함에 들어온 이메일들을 처리하면서 월요일 아침처럼 일하는 현실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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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집었을 때만 해도 산뜻한 표지 때문에 유유자적한 주말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득할 거라 생각했다. 시원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민트색 바탕에 노오란 튜브를 끼고 수박을 깨물고 있는 여자의 모습의 표지는 누가 봤어도 ‘나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어요’의 느낌이었다.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멋들어지게 주말을 보내는지. 어떤 방법으로 주말을 보내야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책 안에는 혐생(혐오스러운 인생)에서의 주말이 우리에게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과 같은 주말을 얻기 위해 이루어진 역사에 대한 다소 ‘딱딱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생각한 내용과 다소 달라 책을 덮을까도 했지만 일단 읽기로 마음먹었기에, 무라도 베자는 심정으로 찬찬히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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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가는 단지 일에서 다른 대상으로 주의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좋은 주말은 아름다움에 민감하다. 좋은 주말은 무목적성을 받아들인다. 좋은 주말은 수백만 개의 다른 길을 헤매지만 언제나 속도를 늦추고 현대 생활의 급한 흐름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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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전회사에 다닌다. 정비가 있을 때나 비상상황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야간, 주말 할 것 없이 불려나온다. 더욱이 언제 비상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주말에 멀리 나가지도 못한다. 집을 지키는 강아지마냥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TV를 보다가 연락이 오면 회사에 나오기 바쁘다. 그래서인지 주말내내 연락이 없다고 하여 오롯이 쉬는 느낌이 아니다. 주말이 꼭 내게 할당된 시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게 육, 칠년을 지냈다. 이제는 주말이 (있지만) 없는 삶에 익숙해질 때도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주말에 무엇인가를 하고 싶고 오롯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다. 급박한 흐름에서 벗어나 내 나름의 길과 흐름,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는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크게 분출되었다. 그래서 가끔 주말에 휴대폰을 아예 꺼버리는 때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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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현재의 정의에 맞는 ‘주말’‘이라는 단어는 1870년에 <푸드 저널>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토요일에서 월요일까지 이어지는(돈과 예금이 유지된다면 더 길게 이어질 수 있음) ’주말‘은 발산의 시간이다. 여기서 ’발산‘은 ’이돌‘ 혹은 ’활동‘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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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그간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실려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와 달리, 타인에게 봉사하고 취미활동을 하며 주말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 같은 이야기에 는 공감을 가장한 슬픔이, 나와 다른 삶에는 부러움을 가장한 시샘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어떻게 나도 주말을 보내야할지가 조금 더 명확하게 그려졌다.

 

저자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일들을 주말만이라도 조금 내려놓기를 바란다. 가상의 SNS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직접 누군가 만나 이야기하고, 주중에 하던 청소나 빨래를 좀 내려놓기를 바란다. 또한 휴대폰을 멀리하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교감하라고 일러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보다는 사랑하는 연인과 마음껏 사랑을 하라고 외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주말과 더 사랑하고 교감하며 행복해질 수 그는 말한다.

 

서로의 표정과 몸짓을 살피며 대화할 수 있는 ‘교제’를 하고 보상이 아니라 재미를 주는 자신만의 ‘취미’를 가지며 미술관처럼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주는 ‘여유’와 무언가를 새로이 구상하는 ‘창작’ 그리고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을 느껴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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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보상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 하는 활동이다. 일 중심 문화에서 취미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청교도들은 '나타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잡지는 수예와 악기가 유용한 취미라고 소개했다.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매주 그저 즐거움만 열심히 좇는 것은 조금 게을러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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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기왕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으니 무라도 썰어보자는 심정이었는데, 이 책을 덮는 순간에는 이제부터 행복한 주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그득했다. 일단 나에게 있어 최악의 주말과 최고의 주말이 어떤 것인지 가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취미 활동을 좀 다녀보기로도 마음먹었다.

 

자, 이제 나의 주말은 다시 시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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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시골 살래요! -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딸의 편지
ana 지음 / 이야기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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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오늘 그랬던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고, 내가 쓰는 물건들을 잘 알고 제대로 쓰며 행복해하는…. 그런 소소한 것들이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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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도심지로 집중되면서 좁디좁은 곳에서 갑갑하고 빡빡하게 지내는 현대인들이 더욱 늘고 있다. 성공의 척도는 도심에 위치한 대기업의 어디쯤 다니는 것으로 매겨지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선 수도권 내 위치한 대학을 다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어릴 때부터 학군이 좋은 도심의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 것이 사회 통념처럼 굳어져 있다. 태어나서 서울 땅에서 한번 살아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건, 그것이 성공의 척도를 가늠하는 현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매일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걷는다. 남보다 땀 한 방울 더 흘려야 성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친 심신을 다독여 주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주말을, 휴가를 기다린다. 시간을 들여 도심에서 벗어난 곳을 거닐며, 조금 낮아진 건물들 사이를 타고 흐르는 바람을 느끼고,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흙을 밟아보고 싶어서다. 또한 높고 가파른 건물, 하루하루 피 말리는 전쟁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살아보고 싶기 때문에서다.


이와 더불어 최근 20~30대에게서 귀농바람이 불고 있다. 높은 스펙들로 중무장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보지만 갈수록 성공의 문턱이 높아만 가는 취업난에 허덕이다, 그런 경쟁에서 벗어나 조금 여유롭게 주변인들과 오순도순 살아보고픈 청년들이 늘어나서다. 이 책은 그런 젊은 친구들의 바람과 맞닿아있다. 바쁘게 쳇바퀴 같은 삶을 살기보다 주변인을 챙기고 오순도순 살아가며 본인이 소작한 것들을 바라보며 삶의 행복을 느끼는 것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아나씨는 해외에서 석사까지 졸업한 공부장이다. 그녀는 서울에서 12년을 살았다. 하지만 서울이 매력적인데 반해 ‘그곳에서 지내는 삶’이 본인에게는 맞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한다. 화려하고 빛나보이지는 않지만 소담한 하루의 기쁨을 완연하게 느끼고 싶어서다. 그녀는 시골살이에 앞서 6주간 귀농체험을 하기 위해 ‘농촌생활 체험학교’에 등록한다. 이 책은 귀농체험이 이루어지는 순천에서 합숙하며 지내던 와중,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보낸 편지 글로 이루어져 있다.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남자 5명, 여자 4명으로 이루어졌던 동기는 다음날 남자 4명, 여자 4명, 총 8명이 된다. 오리엔테이션 다음날 남자 동기 한명이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8명의 동기 중 아나씨는 막내다. 30대 중반. 그녀를 보며 동기들은 의아해 한다. 아직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도전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뛰어야 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말하는 ‘도전’이나 ‘열정’에는 맞지 않다. 그녀가 생각하던 바람과 열정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소 동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고, 내가 쓰는 물건들을 잘 알고 제대로 쓰며 행복해하는 ‘자신만의 삶’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총 26장의 이야기는 매일 일어나는 귀농체험에 대한 소개와 도심지에서 느꼈던 감정들과 상반되게 시골에서 느끼게 된 생각들을 엄마에게 오롯이 전달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시끄러운 도심에서 탈출해 귀농에서 생활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하고 생각을 하던 와중이라 그런지 이 책에 실린 그녀의 감정들은 하나하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항상 즐겁고 행복한 일이 다가 아님을. 그곳도 사람 살아가는 곳이라 생활하는 것이 꿈꿔왔던 것만큼 아름답고 행복한 것만은 아닌 사실도 꼬집어주었다. 혹시나 나처럼 귀농생활에 대해 아름다운 꿈과 희망만 가지고 아무 것도 준비하고 있지 않은 입문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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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빵집
김혜연 지음 / 비룡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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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 날의 기억은 쓰리고 아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고 그 날을 돌이켜 봐야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갈무리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 날이 있고 며칠 안 되어, 안산에 차려진 찾은 합동 분향소를 찾았다. 울컥 차오르는 미안함과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오열하고 고성이 오가는 틈바구니 속에서 찬찬히 배에 올랐던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얼굴을 보았다.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그냥 울었다.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한 채,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저 바라보았다.


분향소를 나오는 길에 숨을 쉬는 것조차 미안해서, 그래서 더 열심히 살겠다했다. 내 안에 잠식해있던 나태를 버리고 차마 꿈 한번 펼쳐보지 못한 이들의 삶을, 그 미련한 꿈을 충만히 펼쳐보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 ‘우연한 빵집’은 그 날의 사고를 통해 잃은 누군가의 친구, 부모, 선생님의 이야기다. 그 날 이후 벌어지는 그들의 삶의 변화와 앞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윤지’가 있다. 윤지는 밝고 맑고 꿈이 많은 아이다. 그리고 그 날을 통해 우리가 잃은 아이다.


이야기는 윤지를 중심으로 그녀의 남지친구인 태환, 절친인 진아,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던 그녀의 엄마와 이름도 없는 ‘빵’집을 경영하는 이기호-그는 윤지에게 빵을 가르친 스승이자, 그 날 선생인 친구를 잃었다-, 그리고 군대에서 오빠를 잃고 빵집에서 충동적으로 알바를 하게 된 하경으로까지 뻗어 나간다.


책 전반부는 ‘상실감’으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자들이 겪는 허무와 미안함, 기억하지 못함에 대한 속죄 등으로 채워진다. 그들은 책 속속에서 아픔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남겨진 삶에 대해 방황하고 힘들어한다.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그들은 ‘윤지’가 좋아했던 ‘빵’집으로 모여든다. 우연이 되었든, 일부로가 되었든 말이다.


이 이름 없는 ‘빵’집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기술된다, 이곳은 소설가를 꿈꾸던 기호가 운영하는 곳으로, 그의 아버지가 하시던 곳 –그가 소설을 쓰기 위해 집을 뛰쳐나온 사이에 나이가 많은 아버지는 돌아가셨다-이다. 그는 빵이 공기를 통해 부풀어 오르는 과정 등을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그가 어릴시절 심심해할 때머더 레고 대신 부모님이 던져준 반죽을 가지고 놀았던 탓이다. 소설가에 대한 꿈을 접고 그는 아버지가 남겨준 레시피를 기반으로 ‘빵’집을 운영하게 되고 그를 통해 희망을 선사한다. 물론 직접적인 희망을 선물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숫기도 없고 남들과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다. 그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빵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기회, 그리고 앞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준다.


이야기는 희망적으로 끝맺음한다.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이들은 차츰 본인만의 방식으로 아픔을 이기고자 한다. 이기호 역시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쓸 용기를 낸다. 제목은 ‘우연한 빵집’으로 말이다.


작가가 적은 후기에서처럼 이 소설은 사실 크게 극적으로 일어나는 갈등이나 나쁜 사람이 없다. 고만고만하게 아픔을 안고 가는 이들끼리 서로 보듬고 껴안아준다. 극적이지 못해 다소 지루할 수 있겠지만 이를 소설적 우연을 통해 새로운 인물을 개입시켜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한다. 더욱이 어려운 소재임에도 어디로 치우치지 않고 잘 풀어낸 것 같아, 마지막까지 읽기 편했다.


각설하고 소설을 읽으며 그때의 마음들이 다시 되살아나서 좋았다. 삶에 치여 나도 모르게 놓고 살던 열정 비슷한 것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다시금 다가왔다. 그날 그때 마음 먹었던 것처럼 내 안에 잠식해있던 나태를 버리고 충만하게 살아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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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2 수능대비 한국문학 필독서 2
이광수 지음, 송창현 엮음 / 넥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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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익히 들어왔고 하도 많이 봤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건 단지 ‘무정’이라는 제목뿐이었다. 주인공인 형식은 물론, 영채와 선형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책머리에 이 책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줄거리, 인물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가 나와, 그것을 전부 읽어보았음에도 불구, 책의 이미지가 하나도 그려지지 않았다. 아뿔싸.

 

나 그 시절에, 정말 공부한 거 맞아?라고 자조적인 한 숨이 새어나왔다.

 

입시라는 명목 하에 필요한 부분만 읽고 내려갔던 것을 깊이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오만을 되짚고 반성하는 의미로, 이번에는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읽기로 마음 먹었다. 너무도 유명한 이 소설 ‘무정’에 대한 기억을 한 조각이라도 끄집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책의 초입부에는 사실 한숨이 났다.

 

생각해보라. 1917년에 <매일신보>에 발표한 연작소설을 묶은 책이다. 생각해 보면 100년이나 지난 글이니 얼마나 고루하겠는가.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들이 오가기도 하고 문장 자체도 촌스럽다. 마치 줄을 그어가며 의미를 파악하고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사실 2, 3일간은 책의 속도가 영 진전되지 않아 읽다 덮었다를 반복했다.

 

그런 마의 구간-수학의 정석처럼 되풀이하던 구간-이 지나자, 책은 그야말로 술술 읽혔다. 그때서야 고리타분하다 느꼈던 부분들이 제 각각 의미를 갖고 다가왔다.

 

세 인물이 머릿속에서 뛰놀고 다녔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서두에서 밝히듯 일제 식민지이다. 그러한 시대에서 계몽을 꿈꾸는 새로운 가치관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세 인물을 애정에 빗대어 과감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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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사람의 몸은커녕 영혼까지라도 사게 된 이 세상에 세상 사람들이 돈을 귀히 여김이 그럴듯한 일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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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사이에서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보이는 형식이란 캐릭터는 사실 보는 내내 답답했다. 하지만 그는 개화기 지식인의 표본적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지도자의 모습도 가지고 있어 말미에는 캐릭터에 대해 다소 이해가 갔다.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생을 사는 영채 –그녀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가문이 몰락하자 기생이 된데다, 겁탈을 당하기도 하며, 이를 비관해 자살하러 갔다가 신여성으로 바뀐다-는 보는 내내 그녀의 굴곡진 삶에 안타까움이 일었지만 결국 그런 것들을 다 이겨내고 멋진 여성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니 뭔가 뿌듯함이 밀려왔다. 선형의 경우, 부잣집 딸로 자라난 피동적 인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녀의 사람 역시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가져 이해가 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읽어왔던 소설의 결론은 긍정적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결국 긍정적이지 못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무정’에 대한 어떠한 기억도 끄집어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이번에 책을 읽으며 무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 톨도 빼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목만 기억하던 무정에 의미를 부여한 좋은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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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무어 1 - 모리건 크로우와 원드러스 평가전 네버무어 시리즈
제시카 타운센드 지음, 박혜원 옮김 / 디오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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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 근 15년만인 것 같다. 정통 판타지로만 따진다면 이영도 작가님의 '피를 마시는 새'를 마신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특히 영미권 해리포터는 시리즈가 너무 길고 많다는 이유로 -사실 영화는 다 챙겨봤지만 책은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 반지의 제왕은 책 자체가 고루하고 재미없다는 핑계로 1권을 읽다 집어던진, 내가 말이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찌는 듯한 무더위로 짜증을 가득 짊어진 상태여서, 얼마나 재미있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 -심보가 고약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발간되자 마자 39개국과 출간 계약을 맺었다하니 그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첫 소설을 발간하는 작가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과 시샘도 작용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을 모두 뒤짚었다.

 

처음 읽을 때만 해도 '뭐야, 이거 뭐야? 뭔가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뭐 어쩌라는 거야?' 하면서 읽던 것이, 그 늪에 점점 빠져들어 결국 주말 밤낮을 새버리고 말았다.

 

판타지 소설 '네버무어' 1, 2권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주인공 모리언 크로우는 지난 연대 이븐타이드에 태어나, 저주받은 아이로 지목 받고 짧은 생을 살아야 한다. -이븐타이드에 태어난 아이들은 새 시대가 열리면 모두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짧은 삶'을 동정하지 않는다. 생은 그녀에게 야멸차기만 하다. 우박을 동반한 폭풍우가 쏟아져도 그녀 탓. 정원사가 죽어도 그녀의 탓으로 내몰며 시의 총리인 그녀의 아버지에게 배상금을 청구하기 바쁘다. 또한 할머니를 제외하고 가족 중 누구도 그녀를 반기지 않는다. 그들 조차 그녀가 얼른 죽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에 대한 부정과 사람에 대한 불신만 가득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세상을 삐뚫게 바라본다. -이는 1, 2권 소설 내내 그녀의 캐릭터로 구축되어 행동 하나하나에 표현되어 나오는데, 그럴 때 마다 주인공이 사실 너무 짜증나고 답답했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질문이 너무 많다. -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생각했던 삶보다 빨리 그녀는 죽음 앞에 서게 된다. -원래 12년의 생을 살 것이라 예상했는데 11번째 생일에 그녀는 죽음의 순간에 마주한다- 그때 두둥하고 생강색 머리의 구원자가 나타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주피터다. 그는 삶을 원하던, 그리고 어릴 때부터 많은 애정결핍으로 삐둘어진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자유국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는 모리건을 데리고 자신이 사는 자유국의 호텔 듀칼리온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단 아홉명을 뽑는 원더러스 협회에 그녀를 가입시키고자 하는데......

 

모리건은 모질게 풍랑이 일었던 자신의 삶에서 배운 것처럼 모든 상황에 의심을 먼저하고 자신을 책망한다. 하지만 그녀는 원더러스 협회 가입을 위한 4가지 시험을 통과하며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의를 키워나간다. 더불어 자신의 편도 만들고 자신의 적도 만들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돋군다. 특히 1, 2권의 백미는 자유국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원더스미스와의 만남. 원더스미스는 자유국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 조차 꺼려하고 싫어하는 악마인데 -해리포터로 따지면 볼드모트 같은?- 그는 생강머리 주피터가 모리건을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기 전, 그녀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다.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른다며 모리건을 세상의 가장 무서운 존재로 교육 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모리건이 각성하며 그를 쓰러뜨리는 것으로 일단락 되며 2부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그렇게 많은 페이지가 할당되지는 않는다. 2부를 위한 에피타이저 같은 느낌으로 둘이 설전을 벌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모리건이 원더러스 협회에 가입하는 것으로 1부의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이 책을 읽은 기억이 추후 읽을 다른 책들로 인해 차츰 지워져버리기 전에 얼른 2부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동화같은 느낌의 -약간의 공포도 뒤섞인- 판타지를 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책은 편협하게 읽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기도 했고 말이다. 여름철 휴가를 집에서 보낼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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