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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빵집
김혜연 지음 / 비룡소 / 2018년 7월
평점 :
여전히 그 날의 기억은 쓰리고 아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고 그 날을 돌이켜 봐야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갈무리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 날이 있고 며칠 안 되어, 안산에 차려진 찾은 합동 분향소를 찾았다. 울컥 차오르는 미안함과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오열하고 고성이 오가는 틈바구니 속에서 찬찬히 배에 올랐던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얼굴을 보았다.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그냥 울었다.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한 채,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저 바라보았다.
분향소를 나오는 길에 숨을 쉬는 것조차 미안해서, 그래서 더 열심히 살겠다했다. 내 안에 잠식해있던 나태를 버리고 차마 꿈 한번 펼쳐보지 못한 이들의 삶을, 그 미련한 꿈을 충만히 펼쳐보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 ‘우연한 빵집’은 그 날의 사고를 통해 잃은 누군가의 친구, 부모, 선생님의 이야기다. 그 날 이후 벌어지는 그들의 삶의 변화와 앞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윤지’가 있다. 윤지는 밝고 맑고 꿈이 많은 아이다. 그리고 그 날을 통해 우리가 잃은 아이다.
이야기는 윤지를 중심으로 그녀의 남지친구인 태환, 절친인 진아,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던 그녀의 엄마와 이름도 없는 ‘빵’집을 경영하는 이기호-그는 윤지에게 빵을 가르친 스승이자, 그 날 선생인 친구를 잃었다-, 그리고 군대에서 오빠를 잃고 빵집에서 충동적으로 알바를 하게 된 하경으로까지 뻗어 나간다.
책 전반부는 ‘상실감’으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자들이 겪는 허무와 미안함, 기억하지 못함에 대한 속죄 등으로 채워진다. 그들은 책 속속에서 아픔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남겨진 삶에 대해 방황하고 힘들어한다.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그들은 ‘윤지’가 좋아했던 ‘빵’집으로 모여든다. 우연이 되었든, 일부로가 되었든 말이다.
이 이름 없는 ‘빵’집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기술된다, 이곳은 소설가를 꿈꾸던 기호가 운영하는 곳으로, 그의 아버지가 하시던 곳 –그가 소설을 쓰기 위해 집을 뛰쳐나온 사이에 나이가 많은 아버지는 돌아가셨다-이다. 그는 빵이 공기를 통해 부풀어 오르는 과정 등을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그가 어릴시절 심심해할 때머더 레고 대신 부모님이 던져준 반죽을 가지고 놀았던 탓이다. 소설가에 대한 꿈을 접고 그는 아버지가 남겨준 레시피를 기반으로 ‘빵’집을 운영하게 되고 그를 통해 희망을 선사한다. 물론 직접적인 희망을 선물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숫기도 없고 남들과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다. 그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빵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기회, 그리고 앞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준다.
이야기는 희망적으로 끝맺음한다.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이들은 차츰 본인만의 방식으로 아픔을 이기고자 한다. 이기호 역시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쓸 용기를 낸다. 제목은 ‘우연한 빵집’으로 말이다.
작가가 적은 후기에서처럼 이 소설은 사실 크게 극적으로 일어나는 갈등이나 나쁜 사람이 없다. 고만고만하게 아픔을 안고 가는 이들끼리 서로 보듬고 껴안아준다. 극적이지 못해 다소 지루할 수 있겠지만 이를 소설적 우연을 통해 새로운 인물을 개입시켜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한다. 더욱이 어려운 소재임에도 어디로 치우치지 않고 잘 풀어낸 것 같아, 마지막까지 읽기 편했다.
각설하고 소설을 읽으며 그때의 마음들이 다시 되살아나서 좋았다. 삶에 치여 나도 모르게 놓고 살던 열정 비슷한 것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다시금 다가왔다. 그날 그때 마음 먹었던 것처럼 내 안에 잠식해있던 나태를 버리고 충만하게 살아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