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2 수능대비 한국문학 필독서 2
이광수 지음, 송창현 엮음 / 넥서스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고등학교 시절, 익히 들어왔고 하도 많이 봤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건 단지 ‘무정’이라는 제목뿐이었다. 주인공인 형식은 물론, 영채와 선형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책머리에 이 책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줄거리, 인물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가 나와, 그것을 전부 읽어보았음에도 불구, 책의 이미지가 하나도 그려지지 않았다. 아뿔싸.

 

나 그 시절에, 정말 공부한 거 맞아?라고 자조적인 한 숨이 새어나왔다.

 

입시라는 명목 하에 필요한 부분만 읽고 내려갔던 것을 깊이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오만을 되짚고 반성하는 의미로, 이번에는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읽기로 마음 먹었다. 너무도 유명한 이 소설 ‘무정’에 대한 기억을 한 조각이라도 끄집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책의 초입부에는 사실 한숨이 났다.

 

생각해보라. 1917년에 <매일신보>에 발표한 연작소설을 묶은 책이다. 생각해 보면 100년이나 지난 글이니 얼마나 고루하겠는가.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들이 오가기도 하고 문장 자체도 촌스럽다. 마치 줄을 그어가며 의미를 파악하고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사실 2, 3일간은 책의 속도가 영 진전되지 않아 읽다 덮었다를 반복했다.

 

그런 마의 구간-수학의 정석처럼 되풀이하던 구간-이 지나자, 책은 그야말로 술술 읽혔다. 그때서야 고리타분하다 느꼈던 부분들이 제 각각 의미를 갖고 다가왔다.

 

세 인물이 머릿속에서 뛰놀고 다녔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서두에서 밝히듯 일제 식민지이다. 그러한 시대에서 계몽을 꿈꾸는 새로운 가치관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세 인물을 애정에 빗대어 과감 없이 보여준다.

 


-
"돈만 있으면 사람의 몸은커녕 영혼까지라도 사게 된 이 세상에 세상 사람들이 돈을 귀히 여김이 그럴듯한 일이라 하였다.
-

남녀사이에서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보이는 형식이란 캐릭터는 사실 보는 내내 답답했다. 하지만 그는 개화기 지식인의 표본적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지도자의 모습도 가지고 있어 말미에는 캐릭터에 대해 다소 이해가 갔다.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생을 사는 영채 –그녀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가문이 몰락하자 기생이 된데다, 겁탈을 당하기도 하며, 이를 비관해 자살하러 갔다가 신여성으로 바뀐다-는 보는 내내 그녀의 굴곡진 삶에 안타까움이 일었지만 결국 그런 것들을 다 이겨내고 멋진 여성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니 뭔가 뿌듯함이 밀려왔다. 선형의 경우, 부잣집 딸로 자라난 피동적 인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녀의 사람 역시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가져 이해가 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읽어왔던 소설의 결론은 긍정적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결국 긍정적이지 못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무정’에 대한 어떠한 기억도 끄집어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이번에 책을 읽으며 무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 톨도 빼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목만 기억하던 무정에 의미를 부여한 좋은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