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비가 많이 내린 날씨, 거기에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연휴, 그리고 이번 해 내내 나를 괴롭혀온 업계의 트렌드와 일들 때문에 점심때가 되자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면 조금 더 긍정적인 마음이 마구 솟아나오는 걸 알기에 일단 gym으로 갔다.  그날의 루틴이었던 chest와 back, shoulder, 그리고 ab/core를 각각 여섯 종류씩 해주고, 원래는 트랙을 뛸 예정이었으나 비가 많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스피닝을 하기로 했다.  주중에 이런 저런 오더가 많이 도착했기 때문에 마침 읽을 책은 (늘 부족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았고, 마쓰다 신조의 '괴담의 테이프'를 골랐다.


처음 읽는 작가인데 미스터리/스릴러에서는 꽤나 알려진 일본의 작가라고 한다.  읽고 난 후의 생각이지만, 작가의 이야기 (물론 이 또한 창작이지만), 창작, 다른 이들의 경험을 버무려 있음직한 기시감을 주면서 스토리를 꾸려가는 것이 주된 방식인 것 같은데, 결국 읽는 책이나 듣고 있는 것과 현실이 묘하게 뒤틀려 현실로 나타나는 뉘앙스로 겁(?)을 주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이미 나이를 먹은 탓인지 그리 호러스럽지 않았지만, 일본작가 특유의 서리얼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갔던 것 같다.  weight training 후에 하는 cardio는 보통 50분에서 60분 정도를 한다.  러닝머신에서 뛰다 걷다를 하거나 스피닝을 하는 것이 이 부분의 루틴인데 열심히 발을 구르면서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묘한 고요함이 gym전체를 꽉 채우고 있었다.  


내가 gym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고, 2008년부터는 꾸준하게 다녀봤기에 잘 알지만 gym은 아침부터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잠시도 조용할 수가 없는 곳이다.  물론 24시간 내내 영업을 하는 24 Hour Fitness의 경우에는 오전 12-2시 사이가 꽤 조용하지만, 보통 새벽 5-6시에 문을 열고 밤 10-12시까지 영업을 하는 대부분의 gym들은 weight가 움직이는 소리, 음악소리, 또 자전거나 러닝머신을 뛰는 소리 등으로 아주 잠시라도 고요한 적막감을 느끼는 것이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그런데, 그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고요함이 내가 고개를 든 그 순간 약 1분 정도가 이어진 것이다.  gym 1층은 weight room으로 엄청난 공간에 각종 바벨, 벤치, 덤벨, 기계, 스퀏렉, 등등이 펼쳐져 있고, 2층은 남녀탈의실과 요가룸, 그 나머지 공간엔 스탭핑머신, 러닝머신, 자전거 등이 셋팅이 되어 있다.  어느 한 곳도 조용할 수가 없고, 둘 다 조용한 것은 정말로 말이 되지 않은 환경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한 순간은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내가 페달을 돌리는 소리 외에는 빗소리나 음악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한 명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건 뭐지 하면서 그 서리얼함에 황당해하다가 읽고 있는 책, 그리고 그 내용을 떠올렸을때의 그 엄청난 기시감이란...내가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었을 때에는 다시 부산스러운 gym으로 돌아왔고 계단으로 사람들이 오가고, 아랫층에서는 다시 weight plate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 책을 읽고 있을때, 책에서 묘사되는 이상한 일이 지극히 우연하게도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나이를 헛으로 먹지 않았는지 무섭다기 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미래의 문학'시리즈는 고장원의 SF 가이드 총서를 읽으면서 구하게 된 SF시리즈다.  익숙한 작가도 몇인가 있지만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내온 명작과 이를 만든 작가들을 소개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임십'은 H. G. 웰스의 타임머신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재단의 인증된 후대의 시퀄이라고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주인공이 미래의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위나를 구하기 위해 다시 떠나려는 순간이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에만 해도 그 상상력의 출중함으로 말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웰스 같은 대가라도 양자역학이나 시간의 다중성, 타임패러독스 같은 개념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기에 당연히 주인공 또한 앞으로 달려가면 그가 두고 온 미래와 같은 엘로이 (일로이라고도 읽는다)와 몰록을 또다시 만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이미 미래는 바뀌어 있고 그가 만난 몰록을 닮은 생물들은 아득히 먼 미래에 살면서 매우 높은 문명과 과학을 이룩한, 인류의 까마득한 후손이었다.  그 미래에서 머물며 시간의 다중성과 오염된 과거로 인해 바뀐 미래라는 개념 등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도 잠시 이 과거에서 온 '야후'는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고 함께 올라탄 몰록과 함께 자신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지만, 과거 또한 그가 떠나온 과거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이후의 모험은 이들을 먼 과거로 보냈다가 다시 미래로 보내고 시간과 공간의 극을 돌고 돌게 하는데,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는다.  아무래도 요즘의 작가가 쓴 것이라서,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의 결말을 정해놓았던 듯한 뉘앙스가 중간중간 짜증이 나게 하지만, rich한 현대문학과 소설의 세계가 정립되어 있기에 이런 멋진 개작도 나오는가 싶어 부럽기 짝이 없다.  과거의 장편소설이나 대하소설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한국의 문학/소설계는 다양한 실험을 하고는 있지만, 멋진 장편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싶다.  한 권짜리 소설이라고 해야 글자크기와 간격을 보면 예전의 중편에 가까운데, 책을 워낙 덜 읽는 환경, 출판사의 이익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더 이상 멋진 대하소설이나 외국의 온전한 400-500, 길게는 1000페이지 가까운 이야기가 단권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외국소설을 무턱대로 찬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 많은 책을 읽고 사들여온 독자의 입장에서 말할 때 지금 한국의 소설/문학계는 확.실.히. 뭔가 묘하게 왜곡되어 있다.  거기에 소위 '문창과'라는 것이 생긴 이후, 그 탓인지 아닌지는 내가 함부로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확실히 어떤 획일화가 생긴 느낌이다.  문학상/출판사, 그리고 특정 작가출신 교수들의 분파에 따른 몇 가지 다른 작풍, 하지만 그 또한 획일화로써의 다양성.  한국소설과 문학에 애정을 갖고 꾸준히 관심을 갖고자 하여 기회가 될 때마다 근대문학을 조금씩 사들이고 현대소설을 모아들이고는 있지만, 확실히 손이 덜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단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들이고 읽었으면 좋겠다.  여기에 맞춰 한국의 작가들도 보다 더 다양한 시도, 아니 그 이상 더욱 길고 복잡한 구성을 연구하여, 좋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지난 번 이야기에서 월인과 가니메데인의 발견에 이어 이번엔 아주 먼 과거에서 돌아온 가니메데인과 지구인의 조우를 그린다. 단권으로 나온 작품인줄 알았는데 계속 이어지려는 것 같다. 아주 긴 이야기의 시작을 겨우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막 첫걸음을 걷는 듯한 생각이 든다.  아주 먼 과거, 가니메데인의 문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멀리 떨어진 항성에서 행한 실험의 결과 일단의 가니메데인들은 한 우주선에 갇혀 뒤틀린 시공간속에서 수십년간 여행을 하게 되었고, 지구인들과 만나는 시점은 그들의 시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먼 미래가 된다.  수퍼컴퓨터를 이용해서 대화도 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지구인의 과학기술은 더 큰 발전을 하게 될 것을 예측하면서, 가니메데인들은 다시 자신의 동족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이번의 이야기가 끝나지만, 읽는 내내 나를 조마조마하게했던 갈등이나 폭주는 아마도 더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계속 흥미를 주는 책.


모두 네 종류의 "Z의 비극"이 현재 서점에 존재하는데 내가 예전에 본 계림사의 책까지 모두 세번을 읽은 책.  드루리 레인의 추리이상 돋보이는 건 섬 경감의 딸 Faith인데, 결국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을 파헤치는 것도 그녀이기 때문.  추리활극은 여전히 즐!


오늘은 여기까지만 써야할 것 같다.  이번에 나온 존 그리샴의 최신작의 모티브가 되었던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기사, 그 음모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  그리고 기왕이면 지금 읽고 있는 마쓰다 신조의 '작자 미상'을 다 끝내고 싶기 때문이다.  토요일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고, 나는 늘 주말이 아쉽다.  자영업자생활 첫 두 해는 Monday blues가 없이 지나갔었는데 이젠 마치 남의 일을 하는 양, 목요일부터 즐거워지고, 일요일 오후부터 우울해지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다시 즐거움과 희망을 찾고 싶은데 time is against me 같은 느낌의 아재인 것이 현실이다.  밤엔 간만에 밀맥주를 마시면서 self위로라도 하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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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12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학생 때 글 잘 쓰는 대학생들끼리 모인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하더군요.

˝혹시 문창과나 신방과에 나오셨어요?˝

그때 기자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전 그 질문을 듣고 질문한 학생들이 ˝문창과, 신방과 학생은 글 잘 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transient-guest 2017-11-13 03:05   좋아요 0 | URL
제 편견인지는 모르지만 기술적으로는 잘 교육을 받아도 뭐랄까 창작의 다양성에 있어서는 확실히 문창과의 도입은 득보다 실이 많은 것 같아요. 뭔가 정형화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