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설레임이 적당히 오가던 마흔이 되던 해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벌써 그로부터 2년이 되는 날이다. 마음가짐이나 징조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전에 일찍 일어나 gym으로 향했다. Strength training은 하루 쉬는 날이라서, 그리고 비가 와서 아쉽기는 했지만 바깥은 맑고 쌉쌀한 가을공기를 마시며 뛰지 못하고 기계 위에서 65분간을 달렸다. '창룡전'을 읽기 위해서 cool-down으로 spin을 하려고 했으나 땀을 너무 흘렸고 속은 너무 비어있었기에, 무엇보다 가능하면 서점이 여는 시간에 맞춰 씻고 나가려고 그 정도에서 멈췄다.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마신 다음 날은 싫어하는데 이렇게 맑은 정신에 깔끔하게 운동까지 일찍 마치고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야밤의 음주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와 함께 찾아온 불청객이려니 하면서 덕분에 조금씩 더 건강하게 살아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트북은 결국 아직까지도 바꾸지 못했는데 지금의 노트북이 아직은 문제가 없이 잘 돌아간다는 점, 그리고 눈여겨 보았던 HP Spectre X360의 세일이 블프를 기한 것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새로운 사양의 제품이 나오기 전의 재고정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를 염두에 두고 구한 34인치 LG모니터는 반품하게 될 것이다. Costco는 언제나 반품이 편리하니 아침에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일찍 가서 처리할 것이다.  어제 갑자기 저녁에 시간이 나서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 덕분에 정말 많이 밀려 버렸다.  


지금의 '세련된' 눈으로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문체, 말투, 구성이지만 여기에 모인 이야기들은 한국 근대문학의 여명기, 역사속에서는 암흑기를 지나던 일제강점기에 갓 태어나던 한국의 SF의 시작을 보여주는 귀한 사료들이다.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이의 작품도 있고 번안소설로만 알려진 채 출전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이야기도 있는데 하나 하나 약간의 감동을 받아가면서 읽어내려갔다. 근 백 년이 다 되어가는 이 작품들의 출간시기를 생각하면서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한 그림으로 떠올랐는데 그런 의미에서 묘한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이공계의 전문가 혹은 그들 이상의 학력과 지식으로 무장하고 bottomless한 자료와 정보를 토대로 거의 실사에 가까운 이론이 등장하는 현대의 SF와 비교하면 우습기 그지 없고 과학의 '과'자도 모르는 듯한 구성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SF가 자생하는 것도 자리를 잡는 것도 무척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무시를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니까. 유치한 짓이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으로 바뀌도록 시간을 주고 내버려두기에는 한국의 정세도 사람도 모두 그저 급하고 참을성이 없었고, 형편도 엉망이었을 테니까. 80년대까지도 무려 사유재산인 대본소의 만화책을 공무원이 주기적으로 압수해서 길바닥에서 태워버리면서 '유해도서'를 소각한다며 뉴스와 신문지상에서 취재되어 방송되던 곳이 한국이니까.  다른 이야기지만 진시황이 최초의 중국통일이라는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역사에서 최고의 폭군으로 남게 된 중요한 이유가 분서갱유가 아니던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만화책을 수거해서 태워버리던 행위는 군사정권 내면 깊숙히 자리잡혀 있었을 나치스의 총통제에 대한 갈망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 읽을만한 SF를 많이 출판해주고 있는 '아작'의 책이다. 이미 구한 것들을 제외하고도 대략 오십 권 정도는 사들여야 '아작'의 책도 많이 따라잡게 된다. 하나씩 구해서 보관하면 언젠가는 좋은 사료로 남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미야모토 테루를 가장 그답게 보여주는 것은 단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데, 과연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은 이야기들을 여럿 모았다. 직간접적으로 작가가 겪은 일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도 하는데 사소설의 전통이 지배적인 일본의 문단을 생각할 때 별로 특별한 건 아니라는 생각.  나에게 미야모토 테루는 '빨간 책방'의 이동진이 좋아하는 작가라는 것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미야모토 테루를 떠올리면 이동진 DJ와 슬프게 아름다우면서도 이상한 어떤 작품을 생각나게 한다.  이야기는 무척 쉽게 읽을 수 있는데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건 일차 북송에 즈음해서 북쪽으로 가는 걸 택한 재일조선인들을 바라보는 일인들의 시선과 사회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재일조선인들이 굳이 북쪽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북측의 선전과 꼬임으로만 알려져 있고 조총련=빨갱이라는 정도가 공식이지만 지금와서 보면 여기에는 아직 남한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비사가 있을 것 같다.  양쪽이 같은 독재정치를 하던 시절이었고 당시만 해도 경제력에 있어서는 오히려 북쪽이 더 앞서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을 생각해도, '북송이 유일하게 고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작중대화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 재일조선인들을 일본에서 몰아내기 위한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협잡도 한 몫을 했을 것이지만, 나는 남한정부의 적극적 내지는 방조와 묵인을 통한 역할이 궁금한 것이다.  


건지섬.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차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건지섬에 독일군이 진주한다. 점령당했다는 걸 제외하고는 크게 전쟁의 참화를 겪지는 않았지만 점령은 5년이나 이어졌고 규율과 통제를 좋아하는 민족에게 총칼로 지배를 받으면서 사소한 위반으로도  대륙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이송이 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물자는 늘 부족했는데 무엇이든 생산된 것은 독일군의 군량이 대기위해 징발되었고 남은 것이 섬사람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로 돼지를 잡아 간만에 신나게 파티를 하고 돌아오던 시간은 점령군이 공표한 통금시간대. 살금살금 걸어도 부족할 판에 술에 취한 누군가의 고성방가로 딱 걸려든 그 때 늘 용기와 열린 마음을 보여주었던 누군가가 기지를 발휘하여 북클럽미팅이 늦어졌음을 핑계로 무사히 넘어갔고, 그 순간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희한하고 긴 이름의 북클럽이 태어난다.  


전쟁이 끝난 후 작가로 인기를 얻고 있는 한 여자가 우연한 기회에 건지섬의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게 되면서 전쟁 중 이들이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기 위해 직접 건지섬으로 넘어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겪으면서 편지로만 읽던 단편적인 과거와 현재가 만나게 된다. 끝까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지켜보았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어 슬펐다면 사회가 가한 제약을 당당히 이겨낸 사람들이 있어서, 그리고 돈 많은 남자의 트로피가 되지 않고 진실한 끌림에 따른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았다.  잔잔한 편지형식의 이야기로 감동을 받는 건 '체링크로스 84번지' 이후로 두 번째가 된다.


그 기괴한 설정, SF와 판타지는 물론이고 각종 만화책과 영화, 소설을 즐겨온 나로써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다종의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관. 지구인종이 지금에서 더 진화를 해도 도달하기 어려울, 완전히 다른 바탕에서 출발한 듯한 '현재'의 세계. 지성의 유무를 바탕으로 '시민권'자격을 부여하는 법률에 따라 구성된 다종인류사회. 여기까지 쓰고 배터리가 다 되었기 때문에 결국 다음 날 이어서 쓰게 되었다. 

지성체의 꿈과 사고를 빨아먹고 껍데기만 남기는 괴생명체의 분비물로 마약을 만들어 팔던 조직에서 흘러나온 이 천적이 없는 생명체의 애벌레가 한 과학자의 연구과정에서 우연히 부화하고 동족을 구출한 뒤 일어난 소동을 해결하는 과정이 1-2권에 걸쳐 나온다. 다차원에 걸쳐 존재할 수 있는 이 생명체와 그나마 대등하게 싸우는 건 이 세계의 관리자이자 감시자와도 같은 직조자라는 거대한 다차원형 생명체인 거미. 이 직조자의 도움과 일단의 로봇지성체들의 도움을 받은 주인공일행과 괴생명체의 대결이 작품의 클라이맥스. 지성체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덕분에 다영한 이종생명체들이 한 도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오가며 살지만 천국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혼란스러운 세계관은 무척 독창적인데, 판타지버전으로 보면 '오버 더 호라이즌'과 후속작에서 비슷한 세계관을 그려낸 걸 제외하고는 이런 건 없겠지 싶었는데, 방금 생각해보니 Star Wars의 세계관이야말로 이런 다종인류의 공생이 아닌겠는가. Star Wars에는 확실히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쿵푸/사무라이 여기에 서양인이 보는 허구적인 동양의 신비, 그리고 SF를 적당히 버무린 정도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모리 오가이의 책은 몇 권을 과거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쓰메 소세키도 그렇고 일본의 근대문학과 출판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의 근대문학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다. 우리에겐 사실상 도둑질을 당해버린 1900-1945년 사이의 시기는 결국 식민지조선이라는 한계와 일제시대를 통해서만 가감해볼 수 있는 시절이기 때문에 더더욱. '아베 일족'이라는 단편에서 다뤄진 일본무사계급의 완고함과 유연성의 결여는 멋있다기 보다는 우습기 그지 없는데 정말 쓸데없는 명분과 형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300년을, 아니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일인들의 무의식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슬퍼해야 하는건지 고민을 하게 된다.  '도련님의 시대'에서도 다뤄진 모리 오가이의 에피소드에서 온 것이 분명한 독일유학시절의 사랑 이야기에서는 당시의 궁핍한 유럽의 하층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데 실제로는 좀더 복잡하고 더 진지한 상황에서 모리씨가 어떤 선택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소설이라는 어떤 큰 얼개의 영향이 너무도 강력한 탓에 일본의 소설, 특히 근대소설을 읽다 보면 그 많은 작가와 작품이 모두 일견 비슷하게 느껴진다. 좋은 도구이자 벗어나야할 한계가 아닌가 싶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 단지 등장인물들의 삶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수준으로 스토리를 즐길 수는 있겠지만 그러기엔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에피소드라서 도대체 '아쿠타가와상'의 수상요건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망작인간이 유명한 작가출신이라는 것도 황당하지만 심사위원이었다는 것은 황당함을 넘어선 블랙코미디 같다. 하루키는 영영 받을 수 없게된 상이라서 더더욱 그들이 내세우는 전통이 무엇이든 이 상에 대한 respect는 하기 어렵다. 특별히 페미니즘과도 관계가 크게 없어 보이는데 이런 면으로도 조금은 부각을 시킨 상품성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력과 '외모'를 내세운 마케팅, 그러니까 작가에 대한 관심에 기댄 바가 더 큰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 '상'의 전통이라는 것이 일본바둑계의 그것처럼 발전적이지 못하고 폐쇄저인 가치와 형식에 얽매여 있지는 않은 것인지 궁금하다.


독립운동과도,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문학과도 관계가 깊은 이 월북작가의 에세이. 선전과 금액을 맞추려는 노력이 어찌하여 맞아떨어진 결과로 구매하고 읽은 책. 일단 사용된 언어와 문체가 지금의 기준으로는 무척 옛스러운 탓에 신선함과 함께 구리구리함을 어쩔 수가 없었던 책읽기였다. 몇 가지 책에 대한 좋은 말은 남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못하겠다.










열린 결말이라는 걸 좋아할 수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 재미있는, 하지만 끝내 맺지 못한 이야기. 중국선가의 세계관에 일본을 적당히 버무려 빚은 십이국이라는 이계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재미있고 또 재미있지만 끝을 볼 수 없어 허망하고 또 허망한 이야기.  Steampunk의 세계관처럼 뭔가 retro스러운, 현대인이 쓴 선가에 기초한 세계.


어찌어찌 적당히 그간 쌓인 것들을 정리한 듯. 어제부터 12월 한 달간 하루에 책 한권 읽기를 시작했고 이틀째인 오늘까지는 일단 각각 하루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진짜 도전은 일과 운동과 가정사를 병행하는 틈에 시간과 집중 및 여유를 찾아야 하는 평일의 하루 한권 읽기가 되겠다.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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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8-12-03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열심히 운동도 하시고 또 열심히 읽고 계시는군요..모든 성취의 기본은 꾸준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저는 운동은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ㅜㅜ 책은 그래도 꾸준히 읽기는 하지만 뭐라도 끄적이는 것은 요즘은 왠지 또 귀찮아져서..... 쓸데없이 고양이 사진이나 올리고 있습니다..ㅎㅎㅎ

transient-guest 2018-12-03 13:20   좋아요 0 | URL
달리 방법이 없으니 하던 걸 계속 합니다 ㅎㅎ 늘 건강하세요

stella.K 2018-12-03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쪽도 비가 왔군요.
이쪽은 비가 제법 오는 게 꼭 봄비 같습니다.
비가 그치고나면 엄청 추워질 겁니다.

12국기는 저도 지난 달 언젠가 님께서 써 놓으신 글을 읽고
우선 두 권 사 놓고 그냥 보관중에 있습니다.
아, 근데 열린 결말 저도 별로 안 좋아하는 장르인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고민되네요.ㅋ

그런데 제목이...
사람이 몇 살을 살던 지나놓고 나면 그 나이도 젊었는데
할 때가 있더라구요. 나이는 그런 건가 봅니다.
현재는 너무 많고, 과거는 젊고.ㅋ

transient-guest 2018-12-04 02:57   좋아요 1 | URL
십이국기는 조금 읽어보시고 결정하셔도 될 듯합니다. 여긴 겨울에는 계속 비가 와야 가물지 않는 곳이라서 일단 비가 오면 반갑습니다. 물론 요즘은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무척 춥네요. 나이란게 늘 그렇죠.ㅎㅎ 저는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이는 먹어가네요. 여전히 좋아하는것들은 그대로 다 좋아하고 즐기는데 말이죠..ㅎ

2018-12-03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04 0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