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이유로 이번 한 주간의 업무일정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자유도는 급격하게 올라갔지만 일을 하기에 다소 어려운 주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일요일부터 매일 술을 마실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나 이틀 열심히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는 것으로 금방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하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확실히 회복하는 속도가 더뎌지는 걸 느끼지만 아직은 그래도 술을 마신 다음 날 물을 많이 마시고 운동을 충분히 해주면 금방 생생해진다.  책은 열심히 읽고 있는데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는 못하고 그간 밀린 소설을 위주로 읽다가 최근에 배송된 몇 권의 논픽션을 한꺼번에 읽고 있다.  지금도 평균으로는 한번에 서너권의 책을 동시에 잡고 있는 것 같은데 한창때에는 못 미치지만 자영업자의 일상을 살면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쁜 결정보다 못한 것이 결정력의 부재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 "bad decision is better than indecision" 정도의 말이 의역된 것 같다. 카이사르의 암살이 일어난 직후 전국의 중심에서 권력을 쥐고 자칭타칭 카이사르의 후계자의 위치에 있었던 안토니우스가 몰락한 가장 큰 이유가 결정력의 부재였던 것으로 소설에서 묘사된다. 물론 중간에 간혹 바보같은 판단으로 유리한 상황을 단박에 불리함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었으나 안토니우스는 당시 최고의 장군이자 정치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의 커리어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 이름값에 반한 많은 사람들이 막하에 몰려들었고 그를 통해 로마권력의 중심부에 머무르길 원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옥타비아누스는 비록 카이사라의 유언에 따라 정해진 후계자였다는 점을 빼면 여러 면에서 안토니우스만 못한 상태에서 그와의 경쟁을 시작했다. 천식과 작은 몸집,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던 신체, 거기에 군략가로서의 명성도 위치도 안토니우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듣보잡이었던 그가 두 번째 삼두정을 기획하여 실현시킨 후 조금씩 권력의 정점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건 명석한 두뇌와 상황판단, 아그리파 같은 명장의 도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결단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여러 모로 불리한 조건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꾸준히 책략을 실천에 옮겼으며 유혹에도 강했던 것 같다. 어쩌면 행운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서방을 맡은 것도 안토니우스가 동방에서 업적을 이루고 로마로 귀환하지 않고 눌러앉아 술타령을 하고 클레오파트라와 함께한 덕분에 유리한 국면으로 바뀐 것도 앉아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꾸준한 책략과 앞을 내다보는 수의 결과였다.  카이사르가 죽는 것으로 사실상 끝난 이야기였지만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를 다루는 것으로 이 멋진 이야기에 걸맞는 끝맺음이 된 것 같다.  


이야기는 조금 지지부진한 면도 있었도 안토니우스의 결정장애만큼이나 옥타비아누스의 냉정함에서는 인간적인 매력이 덜 느껴진 탓에 앞서보다 약해진 강도였지만.  머리는 명석하지만 시야가 좁은 인간이 권력을 잡고 중대한 일에 있어 결정권을 행사하려고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클레오파트라를 통해 충분히 보았는데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는데 이런 기질의 사람을 적절히 리드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2000년도 넘은 옛날의 이야기가 이렇게 박진감있고 현실감있게 본 건 순전히 대단한 작가의 필력 덕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주 하는 얘기지만 이런 치밀한 대작이 나오지 못하는 한국문단의 현실이 많이 아쉽다


어린 시절, 군사정권에 의해 모두 극우보수로 키워지던 시절의 끝자락에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나는 쑨원을 손문으로 장제스를 장개석으로 표기한 위인전기를 보면서 자랐다. 손문의 삼민주의의 한계도, 개인의 삶이나 김옥균 같은 한국의 개화파처럼 일본에 대해 품었던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환상도 배우지 못했고 그저 아시아 민주주의의 시초처럼 배웠고, 장개석은 군벌출신의 독재자라는 점이 묘하게 박정희나 전두환과 맞아떨어져서 그랬는지 굉장한 인물로 묘사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장개석이 공산당에게 진 것은 오로지 부하들의 무능과 부패였고 그가 대륙을 빼앗기로 대만에서 권토중래를 꿈꾸게 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바뀐 건 나중에 나이를 먹고 책을 많이 읽으면서, 특히 '김산 평전'과 '님 웨일즈의 아리랑', '모택동 평전'같은 걸 읽으면서부터였다.  어느 정도의 skepticism을 갖고 바라본 쑨원의 이야기는 역시 환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일본에 대한 순진무구하기 그지 없는 환상, 어두운 정세판단 같은 걸 보면서 '삼민주의'라는 구호에서 껍질을 걷어내면 좀더 솔직한 그의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일본이 일찍 개화하고 좋은 운이 몇 번 겹친 끝에 서양과 대등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많은 아시아제국의 지식인들이 속았다는 생각, 그 좋은 실력을 갖고 공영을 추구하지 못한 일본의 본질적인 한계, 무엇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해온 것이란 걸 새삼 생각했다.  교양의 끄트머리에서 교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갖고 하나씩 읽어가는 이와나미신서...


다음 주 목요일까지는 금주를 강력하게 실행할 생각이다.  주말이 있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지난 5일간 술을 마신 끝이라서 일단 쉽게 결심하고 있다. 그나마 운동을 하니 버티는 것이지, 내 동기들은 이곳 기준으로는 모두 쉰살이 넘어보이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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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10-12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제가 좋아하는 술을 계속 오래오래 마시기 위해서는 술을 좀 줄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제 운동만으로는 안되고, 평소의 음주를 좀 줄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현재는 그래서 일주일에 2회정도로만 제한하자...생각중이고, 이번 주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뿌듯)

대신, 오늘과 내일 마실 예정입니다. 아주 많이요... 으하하하핫

건강합시다. 건강하게 지내야 우리가 책도 읽고 술도 마시고 하지 않겠습니까!

transient-guest 2018-10-13 01: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술을 잘 마시려면 횟수도 제한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몸관리를 잘해야 술도 마시고 책도 읽으면서 건강하게 살아가겠죠?ㅎㅎ 저는 다음 주 목요일까지 금주를 할 생각입니다. 운동은 두배로 늘리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