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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술, 한국의 맛 - 알고 마시면 인생이 즐겁다
이현주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1월
평점 :
술
빚는 일의 고된 수고와 설렘을 안다면 함부로 술과 자신을 천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p336).
전통주
읽어주는 여자 이현주 작가의 『한잔
술,
한국의
맛』을
읽으며 지금껏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한국의 전통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술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잔의 전통주에 깃든 역사와 의미,
정성을
안다면 단순히 흥을 내기위해 술을 마신다는 것이 얼마나 실례인지 느낄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 취하기 위해,
기분
좋기 위해 마시는 소주와 맥주,
분위기
내기 위해 마시는 와인과 칵테일 정도로 술을 치부했다.
한국의
전통주는 막걸리,
동동주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 28가지
각기 다른 색을 뽐내는 전통주를 만나며 우리 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다.
워낙
술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다보니 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 전통주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을 읽으며 술의 향기에
취해본다면 참 좋겠다.
술이
품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술에 자신을 져버리는 일은 없을 텐데,
올바르지
못한 주취문화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은 증류주,
약주,
탁주,
세
종류의 전통주를 소개한다.
사실
용어의 정의를 정확히 알지 못했었는데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알고 있던 술의 상식을 쌓을 수 있었다.
와인을
증류하여 나무통에 숙성시키면 브랜디가 되고 맥주처럼 맥아와 곡류를 발효시킨 양조주를 증류하여 나무통에 숙성시키면 위스키,
용설란을
발효한 풀케를 증류하면 멕시코의 대표적인 증류주인 데킬라가 된다(p131).
한국의
위스키라 칭할만한 붉고 달달한 감홍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상에 올린 안동소주,
명인의
손에서 일 년을 준비해야 마실 수 있는 죽력고는 대표적인 증류주 중 하나다.
탁주와
약주 같은 발효주를 증류하여 만든 증류주는 대체로 도수가 높지만 오랜 기간 보관이 가능하며,
오래
숙성시킬수록 그 풍미가 깊다.
다른
나라의 증류주인 브랜디,
위스키,
데킬라는
알면서도 우리나라의 증류주가 이리도 많은지 몰랐다니,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이현주
소믈리에는 우리 전통주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
술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어떤
상황에서 누가 마셨을까 역사적 기록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더해 술을 소개한다.
홍랑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감홍로,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끝내 좌절됐던 그 순간 전봉준 장군이 마셨을법한 죽력고.
역사적
사실은 아닐지라도 전통주 읽어주는 여자의 상상 속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 잔의 술에 취한다면 그 술맛이 일품이지 않을까.
술이
아니라 약으로 마신 술 –
약주
(p269)
약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일까?
어르신들이
종종 약주 한잔한다는 표현을 쓰지만 약주를 생각할 때 바로 떠오르는 술이 없었다.
이는
그 표현에 있어 약주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청주를
약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조선시대 내려진 금주령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다.
명칭에
있어 혼동이 없게 하는 건 전통주 소믈리에의 사명 중 하나다.
이현주
소믈리에의 경우 한국의
맑은 술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약주를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약주를 약재 등을 넣어 만든 술,
청주는
발효하여 거른 맑은 술로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p271).
한국의
맑은 술,
약주편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푸른 대나무통을 술병으로 쓰는 대통대잎술
십오야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하지 않던가,
담양의
한정식과 잘 어울리는 대통대잎술은 알코올도수 15도로
딱 적당히 취하기 좋은 농도다.
대나무통에
주사기를 이용해 술을 채우기에 대나무 향과 술의 풍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앉은뱅이술로 통하는 한산소곡주는
달달함이 일품인 약주다.
꿀이나
과일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쌀의 전분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인상 깊은 단맛을 낸다.
알코올
도수가 무려 18도가
되는 술이니 달콤함에 취해 겁 없이 벌컥 들이켜면 종내에 일어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p180).
자극적인
음식에도 잘 어울리기에 언제 어디서나 맛보기 좋다.
탁하게
걸러 탁주라고도 부르고 방금 걸러 신선한 술이기에 막거리라고도 부릅니다(p277)
내
얄팍한 술 지식에도 탁주를 대표하는 술은 막걸리가 바로 떠오른다.
탁주,
말
그대로 탁한 술이 아니던가.
어지간한
술은 병나발을 부는 내가 숙취에 시달려 멀리하는 술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탁주는 앞선 전통주들만큼 이건 꼭 마셔 봐야해!하는
설렘은 덜했지만 막걸리계의 아메리카노라는 송명섭이 직접 빚은 생막걸리,
사과와
벌꿀을 넣고 발효시킨 사미인주는 꼭 마셔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한잔
술,
한국의
맛』의
저자 이현주 소믈리에는 강남에 위치한 전통주
갤러리의
초대관장을 역임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통주 갤러리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니.
정말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음을 실감했다.
예약을
하고 방문하면 상설시음회에 참여할 수 있다하니,
이
책에 소개된 전통주들을 당장 마셔보고 싶어진다.
이전까지
내 버킷리스트는 전국의 지역소주를 다 마셔보는 것이었는데 이젠 전국 대표 전통주 시음도 하나 더 추가됐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전통주에 대한 상식을 키울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