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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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여류작가를 꼽자면 누가 뭐래도 박완서 작가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껏 박완서 작가님이 펴낸 책의 서문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펴낸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은] 그녀의 문학 전반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동안 다작 작가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책이 출간된 지 미처 알지 못했었다. 


1976년 출간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부터 2010년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까지, 늦은 등단이었지만 작가로 살았던 시간만큼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질주해왔다. 그래서인지 군데군데 집필 활동을 하면서 지쳤던 마음도 절절히 내보인다. 첫 작품집을 낸 설렘부터 또다시 책을 낸 것에 대한 기쁨까지! 그녀의 인생 중반기는 작가로 시작해 작가로 끝났다. 


내가 알던 것보다 정말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던 것도 느꼈다. 콩트, 단편, 장편, 동화, 수필까지. 펜만 있다면 그 어떤 글이라도 마법처럼 써냈다. 그 삶이 쌓이고 쌓여 작가의 집필 의도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서문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냈으니! 서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작가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 어떤 상황에서 펜을 잡았는지 그 상황이 그려진다. 다작 작가인 만큼 작가님의 모든 책을 읽어볼 순 없지만 '서문'만으로도 문학 인생의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싶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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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강영혜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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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강의는 재미없구먼.” (p14)

 

성격 고약하기는 이 세상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경제계의 거물, 휠체어 탐정 고즈키 겐타로, 일본의 스무 번째 여성 재판관으로 명망 높은 고엔지 시즈카. 면전에 대놓고 독설을 날리는 겐타로식 화법에 이 둘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천성은 제법 죽이 잘 맞는 환상의 콤비를 탄생시킨다. 이름하여 실버 콤비!

 

신망 두터운 시즈카는 여느 때처럼 대학 기념 강연에서 강의를 하는데 난데없이 겐타로로부터 강의가 재미없다는 공격을 당한다. 겐타로와 시즈카의 세대는 청빈하게 살라고 배워 왔지만 유감스럽게도 빈곤은 범죄를 낳는 온상이라는(p12) 씁쓸한 현실을 열정적으로 전파하는 그녀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일까. 연상 여성에게 약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은 믿을만한 것인가?

 

대학 내 갑작스러운 폭발로 발견된 한 남자의 시체. 숙련된 직공으로 겐타로도 기억하던 그는 자신이 직접 설계했던 대학 기념비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현지 경찰도 당해낼 도리가 없는 폭주기관차 겐타로는 그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일처리 방식에 브레이크를 걸기위해 덩달아 시즈카도 엮인다. 폭리를 취하는 중간업체의 수수료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추악한 탐욕이 부른 비극 앞에서 망자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노인이 울고 있다. 불합리와 악랄과 기댈 곳이 없음에 분노해 비관하고 있다. (p91)

 

현역에서 은퇴해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은 사기에 취약하다. 당한 쪽이 어리석다며 피해자를 탓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시즈카는 마땅히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작정하고 노인들에게 사기를 친 주식사기단의 악랄한 수법에 법이 그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함을 한탄한다. 자신만은 특별하다 믿는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드는 사기꾼들을 법이 처벌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로 바뀔 때 몰려오는 씁쓸함을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을까. 두 콤비의 활약에도 범인을 검거했을 때 통쾌하지 않는 건,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나라는 늙는 것, 약해지는 것을 악덕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을까. 예전이라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성숙의 증거이고 약해지는 건 비호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p156)

 

사람을 쓸모로 나누고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이 시대, 돈 앞에서는 사람의 목숨도 한 낯 종이조가리보다도 못 한 존재가 된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냉철하게 지적하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통찰력이 빛나는 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은 늙고 약한 것이 죄악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말한다. 오히려 탐욕의 노예가 되어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안위보다는 제 뱃속 챙기기를 우선하는 현대인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책에서 늙고 약한 자들은 언제나 범죄의 표적이 된다. 그들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저항할 힘조차 없다. 우리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결코 입 밖으로 꺼내 인정하지 않는 씁쓸한 현실을 지적하며 궁극적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책에서는 겐타로와 시즈카같은 정의롭고 현명한 노인들이 문제를 해결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분들을 쉽게 만나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숙제를 풀어야 하는 건 현재를 살아야 하는 우리의 몫으로 남은 것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치매 노인이라면 감금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합리화 시킬 수 있는가? 불법외국인 노동자의 처우는 어떻게 대해야할지, 인종과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다움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길지를 고민하는 이 시대의 초라한 민낯이 드러난다. 정의도 법률도 동포애도 가난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슬프게도 가난이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p323).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땅에 숨 쉬는 모두가, 가난 때문에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삶을 사는 세상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지만 묵직한 울림을 남기는 책이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마주해야 하지만 두 분의 유쾌한 입담에 미소짓게 만드는 마약같은 책이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팬이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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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하우스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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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나는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나는 그를 적어도 10년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불안감이 날 엄습했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p42)

 

‘100명의 살아 있는 천재들에 당당히 이름올린 노르웨이의 대표작가 욘 포세의 초기작이자 대표작보트하우스는 읽으면 읽을수록 참 묘하다. 이 글의 화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10년 만에 크누텐과 마주쳤으며, 그 이후 불안감이 엄습했고 이 때문에 글을 쓰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말한다. 마치 독자가 이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걸까. 이 말이 몇 번 반복됐는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비슷한 말을 하고 또 한다. 그는 크누텐을 만난 이후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나이는 이미 30살이나 됐는데 안정적인 수입도 없이 어머니의 연금에 의지한 채 소일거리나 하며 살고 있다. 그나마도 크누텐을 만난 이후 방 안에서 틀어박혀 외출조차 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크누텐은 음악교사로 일자리가 있고 아내와 두 딸까지 있다. 크누텐과 나의 처지는 만나지 않은 10년여간 더 이상 같은 친구라 볼 수 없을 만큼 그 격차가 커졌다.

 

크누텐과 나,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런데 크누텐은 그냥 걸어가 버렸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p138)

 

어쩌면 이 둘은, 애당초 같은 친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크누텐은 언제나 앞섰고, 나는 그 뒷모습을 항상 지켜봤다. 내가 관심 있는 여자들의 시선은 크누텐을 향했고, 그녀들의 마음을 쟁취한 것도 언제나 크누텐이었다. 정확히 어떤 계기로 크누텐과 나의 사이가 10년 동안이나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벌어졌는지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보트하우스에서 우정을 키웠던 두 소년의 우정이, 고작 여자 하나로 영영 회복될 수 없을 만큼 틀어질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내가 납득하지 못 한걸 수도 있다. 보트하우스의 구성은 특이한데 1부는 의 시점에서, 그리고 2부는 크누텐의 시점에서 같은 상황을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2부를 굉장히 흥미롭게 봤는데 이것이 크누텐의 시점에서 바라본 건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혹은 믿고 있는 크누텐의 시점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크누텐의 생각이라기엔 그가 나에게 열등감을 가질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책은 특별히 큰 사건은 없다. 하지만 불안감에 시달리는 나의 진술 때문인지 무언가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조마조마함의 연속이다.

 

보트하우스 안에 들어가면 안 돼. 크누텐의 아내가, 들어가선 안 돼.

꾸물거리지 말구요, 그녀가 말한다. (p128)

 

이 책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인물은 크누텐의 아내다.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나에게 접근한 걸까? 크누텐에게 낚시를 가자는 나의 제안에 그녀는 손수 보트를 몰고 온다. 크누텐과 결혼 해 두 딸까지 둔 가정있는 여자가 벌인 일이라기엔 너무 대담하다.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화자는 그처럼 끔찍한 불안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모든 일의 원인이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인물이다. 크누텐에 비해 언제나 뒤처지기만 했던 내가 그녀의 관심에 어쩔 줄 몰라 한 건 당연한 이치일 수 있다. 마을 무도회에서 제 아내를 찾는 크누텐에게 거짓말까지 할 정도로 나는 그녀의 접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잃는다. 그런다고 선을 넘는 담대함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철부지를 그녀는 바로 알아본다.

 

지금까지 소설에서 반복의 효과가 이렇게 대단한지 미처 알지 못했다. 왜 그에게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작가라고 찬사를 보내는지 한 권의 책을 통해 당당히 보여줬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사건들의 연속인데 그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정말 탁월하다. 내가 마치 소설 속 화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일관되지만 요동치는 인물들의 심리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보트하우스그곳은 학창시절 크누텐과 나에게 말 못할 비밀의 장소였고, 성장한 그들에게는 더 은밀한 장소가 된다. 휴가차 고향을 찾은 크누텐과 그의 아내, 그리고 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벌어지는 잔잔하지만 무언가 섬뜩한 기묘한 소설이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소설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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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하지 않는 힘 - 나한테 너그럽고 남에게 엄격한 사람을 위한 심리학
대니얼 스탤더 지음, 정지인 옮김 / 동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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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판단 영역을 벗어나는 판단까지 내린다. (p12)

 

심리학책을 많이 읽진 않지만 그래도 명색이 심리학도다보니 보통 사람들보단 심리학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고 있다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놀라움을 자아내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스탠퍼드 감옥 실험과 같은 심리학 실험들이 가진 오류에 대해서도 배우다보니 사람의 특성을 알아듣기 쉽고 명확하게 정리할 수 없다는 점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대니얼 스탤더의판단하지 않는 힘나한테 너그럽고 남에게 엄격한 사람을 위한 심리학이란 부제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귀인오류를 설명한다.

 

기본귀인오류는 한 개인의 행동이나 그에게 일어난 어떤 결과를 설명할 때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데(p50), 내적 귀인(기질적 귀인)’외적 귀인(상황적 귀인)’으로 나뉜다. 내적 귀인은 개인의 특징이나 태도, 감정, 기호, 동기, 능력, 미흡함 등 기질적 요인의 원인적 역할을 성급하게 과대평가 하는 것으로, 건방진 멍청이 같으니식의 설명이(p50) 좋은 예가된다. 외적 귀인은 상황적 요인이나 구체적 상황들이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다(p50). 갓길 운전자를 봤을 때 그 차에 응급환자가 있거나 기름이 다 떨어진 경우를 고려하기 보단 운전자의 도덕성에만 초점을 맞출 때 외적 귀인오류에 빠지기 쉽다.

 

AB를 함축하더라도 BA를 결론 내리는 것은 역오류가 된다. B에는 다른 원인들이 있을 수 있다. (p140)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믿는 그 원인이 사건의 중대한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점을 간과하고 스스로 납득하기 쉽게 원인을 일축할 때 귀인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그 사건에 사람이 관여된다면, 그 사람의 개인적 성향 내지 환경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한다. 하지만 사람의 언어적, 비언어적 행동은 결코 한 개인의 보편적 성향을 뜻하지 않는다. 911과 통화에서 저 친구는 나쁜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다. 흑인처럼 보인다 말한 후 흑인 소년을 쏘아 죽인 짐머만을 저 녹음테이프의 진술만으로 인종차별주의자라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역 신문에 도시 갱들이 사용하는 손 제스처를 취한 채 사진을 찍었다해서 그들은 갱이 아니다. 추도식에서 웃음기 없는 얼굴로 다른 어딘가를 바라보았다(p151)해서 결례를 범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한 사람에게 맹비난을 가하곤 한다.

 

강력한 상황들이 대부분을 압도할지언정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p298)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피해자가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방관자 효과를 저자는 전면 반박한다. 그는 논문을 통해 사람들의 수가 증가할수록 피해자들이 한 사람 이상에게서 도움 받을 확률이 실제로 증가함을 보였다(p303). 심지어 상황 맥락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압력을 가할 때조차 죄 없는 사람을 돕는 영웅들이 존재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p313). 개인의 힘을 강조함으로써 책 전체의 맥락, 즉 행동의 결과가 상황의 힘을 과소평가 한다는 주장을 다소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지만 막강한 권력 앞에서도 모두가 비굴해지지 않듯, 어떤 상황에서든 개인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시킨다.

 

저자는 400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책에서 맥락 없이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내내 강조한다. 그는 개인이 상황에 끼치는 영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으며, 사람은 대부분 귀인오류를 저지르지만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걸 언급한 이유는 노력으로써 귀인오류를 줄일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 것이 아닐까싶다. 사람인이상 어떤 사람, 상황을 판단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판단에 매우 심각한 편향과 오류가 있다면 그 판단은 잘못된 것이며, 이를 알고 있다면 최소한 고치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 심리학을 배우다보면 정말 나조차도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명확히 말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이런 내가 남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은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해와 같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한다. 적어도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모를 때가 많다(p61)는 저자의 주장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장 자크 루소가 말했듯, 판단 실수를 피할 유일한 방법은 판단하지 않는 것이라지만(p19) 어떻게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세상을 살 수 있겠는가? 다만 이 책을 읽는다면 잘못된 편향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습성만큼은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판단과잉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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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녀명란전 1
관심즉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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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 보호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마구잡이로 벌목하면 이렇게 후손이 끊겨버린다고요!” (p37)

 

억세게 운이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을 수가! 정치 법률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인민법원의 서기로 재직 중인 앞길 창창한 아가씨 요의의! 1년간 외지에서 구르고 승진을 목전에 두고 금의환향하는 길에 불의의 산사태로 목숨을 잃는다. 눈을 뜨니 그녀가 환생한 몸은 성씨집안의 여섯째 딸 성명란. 어차피 환생할거 적녀의 우아한 품위를 내뿜는 첫째 언니 화란같은 삶이면 좀 좋을까! 애석하게도 명란은 첩의 딸인 서녀, 그것도 넷째 언니 묵란같이 총애 받는 어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명란의 어머니 위이랑은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위이랑의 죽음은 석연치 않지만 첩의 치마폭에 빠져 중심을 잡지 못하는 성씨집안의 가주 성굉 때문에 결국 유야무야 묻히고 만다.

 

그녀의 이번 환생은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쁘다고 하기엔 좋았고, 좋다고 하기엔 나빴다. 위를 보자니 한참 부족했고, 아래를 보자니 그다지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p79)

 

기댈 곳 하나 없는 성명란이 홀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험난하기 그지없다. 출가하기 전까진 어엿한 아가씨로 대접받기는 하나, 그 어떤 바람막이 하나 없이 홀로 내동댕이쳐진 어린 여아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성명란의 나이 고작 다섯 살, 사랑받으며 크기도 부족한 이 시기에 애어른 요의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그녀가 택한 첫 번째 방법은 바보되기!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시전하는 적당한 고자질 스킬은 자신을 은근히 괴롭힌 적들을 곤란하게 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그런 명란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겼으니, 성굉의 적모이자 성씨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노대부인의 건강이 악화되자 그녀를 보필한 손녀딸을 뽑는데(?) 볼품하나 없는 성명란이 덜컥 당선된 것! 이때부터 은근한 권력 실세의 지원으로 고달팠던 어린 성명란은 아리따운 아가씨로 사랑 듬뿍 받으며 성장한다.

 

시도 때도 없이 이기려드는 묵란과 멍청한 여란, 애석하게도 명란의 이복언니들이다.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 자매들의 피 튀기는 싸움에서 멀어지려는 명란의 간절한 바람에도 세상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가득한 이 세상에서 당하고만 살지는 않는 서녀의 대반란! 은근한 카리스마로 사이다를 팡팡 터트리는 명란의 활약상에 가슴이 뻥 뚫린다. 명란을 한없이 귀엽게 여기는 제국공부의 미남자 제형과의 간질간질한 로맨스도 가슴 설레게 하는 서녀명란전현대의 여인이 어느 날 눈을 뜨니 고대국가에, 그것도 위태위태한 신분으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상상력을 발휘하는 재밌는 소설이다.

 

이제 겨우 1권을 읽었는데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제 발로 스포를 찾아봤다가 아직 남주는 등장도 안 했다는 것에 첫 번째 충격, 우리 명란이가 고작 애 딸린 홀아비랑 엮인다는 것에서 두 번째 충격. 남주보고 읽는 소설은 아니라는 말이 실감이 된다. 남주가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 관심즉란 작가님이 직접 해명한 글도 봤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대의 질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언제나 최선을 향해 나아가는 명란에게 이미 반했는지 다음 내용이 너무 기대된다.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녹비홍수의 원작이자 쟁쟁한 웹소설들 중에서도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한 서녀명란전! 유명한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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