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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하우스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지난여름,
나는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나는
그를 적어도 10년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불안감이 날 엄습했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p42)
‘100명의
살아 있는 천재들’에
당당히 이름올린 노르웨이의 대표작가 욘 포세의 초기작이자 대표작『보트하우스』는
읽으면 읽을수록 참 묘하다.
이
글의 화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10년
만에 크누텐과 마주쳤으며,
그
이후 불안감이 엄습했고 이 때문에 글을 쓰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말한다.
마치
독자가 이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걸까.
이
말이 몇 번 반복됐는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비슷한 말을 하고 또 한다.
그는
크누텐을 만난 이후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나이는
이미 30살이나
됐는데 안정적인 수입도 없이 어머니의 연금에 의지한 채 소일거리나 하며 살고 있다.
그나마도
크누텐을 만난 이후 방 안에서 틀어박혀 외출조차 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크누텐은 음악교사로 일자리가 있고 아내와 두 딸까지 있다.
크누텐과
나의 처지는 만나지 않은 10년여간
더 이상 같은 친구라 볼 수 없을 만큼 그 격차가 커졌다.
크누텐과
나,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런데
크누텐은 그냥 걸어가 버렸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p138)
어쩌면
이 둘은,
애당초
같은 친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크누텐은
언제나 앞섰고,
나는
그 뒷모습을 항상 지켜봤다.
내가
관심 있는 여자들의 시선은 크누텐을 향했고,
그녀들의
마음을 쟁취한 것도 언제나 크누텐이었다.
정확히
어떤 계기로 크누텐과 나의 사이가 10년
동안이나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벌어졌는지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보트하우스에서
우정을 키웠던 두 소년의 우정이,
고작
여자 하나로 영영 회복될 수 없을 만큼 틀어질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내가 납득하지 못 한걸 수도 있다.
『보트하우스』의
구성은 특이한데 1부는
‘나’의
시점에서,
그리고
2부는
‘크누텐’의
시점에서 같은 상황을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2부를
굉장히 흥미롭게 봤는데 이것이 크누텐의 시점에서 바라본 건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혹은 믿고 있는 ‘크누텐’의
시점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크누텐의
생각이라기엔 그가 나에게 열등감을 가질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책은 특별히 큰 사건은 없다.
하지만
불안감에 시달리는 나의 진술 때문인지 무언가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조마조마함의 연속이다.
보트하우스
안에 들어가면 안 돼.
크누텐의
아내가,
들어가선
안 돼.
꾸물거리지
말구요,
그녀가
말한다.
(p128)
이
책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인물은 크누텐의 아내다.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나에게 접근한 걸까?
크누텐에게
낚시를 가자는 나의 제안에 그녀는 손수 보트를 몰고 온다.
크누텐과
결혼 해 두 딸까지 둔 가정있는 여자가 벌인 일이라기엔 너무 대담하다.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화자는
그처럼 끔찍한 불안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모든
일의 원인이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인물이다.
크누텐에
비해 언제나 뒤처지기만 했던 내가 그녀의 관심에 어쩔 줄 몰라 한 건 당연한 이치일 수 있다.
마을
무도회에서 제 아내를 찾는 크누텐에게 거짓말까지 할 정도로 나는 그녀의 접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잃는다.
그런다고
선을 넘는 담대함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철부지를 그녀는 바로 알아본다.
지금까지
소설에서 반복의 효과가 이렇게 대단한지 미처 알지 못했다.
왜
그에게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작가라고 찬사를 보내는지 한 권의 책을 통해 당당히 보여줬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사건들의 연속인데 그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정말 탁월하다.
내가
마치 소설 속 화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일관되지만
요동치는 인물들의 심리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보트하우스’
그곳은
학창시절 크누텐과 나에게 말 못할 비밀의 장소였고,
성장한
그들에게는 더 은밀한 장소가 된다.
휴가차
고향을 찾은 크누텐과 그의 아내,
그리고
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벌어지는 잔잔하지만 무언가 섬뜩한 기묘한 소설이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소설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