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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 ㅣ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강영혜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당신
강의는 재미없구먼.”
(p14)
성격
고약하기는 이 세상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경제계의 거물,
휠체어
탐정 고즈키 겐타로,
일본의
스무 번째 여성 재판관으로 명망 높은 고엔지 시즈카.
면전에
대놓고 독설을 날리는 겐타로식 화법에 이 둘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천성은 제법 죽이 잘 맞는 환상의 콤비를
탄생시킨다.
이름하여
실버 콤비!
신망
두터운 시즈카는 여느 때처럼 대학 기념 강연에서 강의를 하는데 난데없이 겐타로로부터 강의가 재미없다는 공격을 당한다.
겐타로와
시즈카의 세대는
청빈하게
살라고 배워 왔지만 유감스럽게도 빈곤은 범죄를 낳는 온상이라는(p12)
씁쓸한
현실을 열정적으로 전파하는 그녀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일까.
연상
여성에게 약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은 믿을만한 것인가?
대학
내 갑작스러운 폭발로 발견된 한 남자의 시체.
숙련된
직공으로 겐타로도 기억하던 그는 자신이 직접 설계했던 대학 기념비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현지
경찰도 당해낼 도리가 없는 폭주기관차 겐타로는 그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일처리 방식에 브레이크를 걸기위해 덩달아 시즈카도 엮인다.
폭리를
취하는 중간업체의 수수료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추악한 탐욕이 부른 비극 앞에서 망자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노인이 울고 있다.
불합리와
악랄과 기댈 곳이 없음에 분노해 비관하고 있다.
(p91)
현역에서
은퇴해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은 사기에 취약하다.
당한
쪽이 어리석다며 피해자를 탓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시즈카는 마땅히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작정하고
노인들에게 사기를 친 주식사기단의 악랄한 수법에 법이 그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함을 한탄한다.
자신만은
특별하다 믿는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드는 사기꾼들을 법이 처벌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로 바뀔 때 몰려오는 씁쓸함을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을까.
두
콤비의 활약에도 범인을 검거했을 때 통쾌하지 않는 건,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나라는 늙는 것,
약해지는
것을 악덕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을까.
예전이라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성숙의 증거이고 약해지는 건 비호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p156)
사람을
쓸모로 나누고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이 시대,
돈
앞에서는 사람의 목숨도 한 낯 종이조가리보다도 못 한 존재가 된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냉철하게 지적하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통찰력이 빛나는 『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은
늙고 약한 것이 죄악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말한다.
오히려
탐욕의 노예가 되어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안위보다는 제 뱃속 챙기기를 우선하는 현대인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책에서 늙고 약한 자들은 언제나 범죄의 표적이 된다.
그들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저항할 힘조차 없다.
우리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결코 입 밖으로 꺼내 인정하지 않는 씁쓸한 현실을 지적하며 궁극적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책에서는
겐타로와 시즈카같은 정의롭고 현명한 노인들이 문제를 해결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분들을 쉽게 만나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숙제를 풀어야 하는 건 현재를 살아야 하는 우리의 몫으로 남은 것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치매 노인이라면 감금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합리화 시킬 수 있는가?
불법외국인
노동자의 처우는 어떻게 대해야할지,
인종과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다움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길지를 고민하는 이 시대의 초라한 민낯이 드러난다.
정의도
법률도 동포애도 가난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슬프게도
가난이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p323).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땅에 숨 쉬는 모두가,
가난
때문에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삶을 사는 세상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지만 묵직한 울림을 남기는 책이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마주해야 하지만 두 분의 유쾌한 입담에 미소짓게 만드는 마약같은 책이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팬이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