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기사단의 검
폴 크리스토퍼 지음, 전행선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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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템플기사단의 검]은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작가 폴 크리스토퍼에 대한 기대나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템플기사단이라는 제목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성단기사단 그리고 프리메이슨. 이들은 여러 영화나 책을 통해서도 검증되었듯 대단히 흥미로운 소재거리이기에 그들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일은 마치 추리소설풀이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템플기사단의 검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검이 가지는 중요성은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점층적으로 응집력있게 몰아가는 시간적 추적이 있어야 했는데, 소설에는 그것이 빠져 있었다. 극적인 긴장감과 속도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댄 브라운의 소설에 있었던 그것이 이 책에는 빠져 있었다. 실제로 흥미로울 수 있는 소재였는데, 몇 가지 이유로 이 책은 읽는 동안 약간의 지루함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약간 지루하더라도 캐릭터가 명확하다면 그래도 책은 끝까지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닥터 홀리데이와 페기 블랙스톡은 그다지 매력적인 화자로 와닿지 않았다. 김전일이나 유가와 교수 혹은 인디아나 존스, 로버트 랭던 등은 이야기의 재미를 배제해 두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하나의 브랜드 네이밍 가치를 지닌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이 어떤 사건에 뛰어들든 그들이 빠져드는 사건들이라면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힘. 캐릭터의 힘을 작가는 잊어버린 것일까. 

템플기사단의 검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호기심으로 다가섰다가 약간의 실망감으로 읽기를 끝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발 작가의 다음 작품은 이 두가지 만큼은 재미를 기대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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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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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헌사를 읽으며 생각했다. 이것조차 소설의 일부일까. 아니면 정말 진실함이 묻어난 헌사일 뿐일까. 책의 첫장은 보통 "...에게 바칩니다"라고 간략히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파울로 코엘료는 헌사를 한 장 반이나 작성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 구구절절하게 적어야 했을까. 

헌사를 보면 십 년 전, 영적 탐색을 목적으로 한 순례의 길에 대한 후회가 담겨져 있다. "시간 낭비"라는 단어를 써 가면서. 람이라는 단체를 떠날 생각까지 했던 그에게 마스터는 순례의 길을 추천했는데, 그 길에서 페트루스를 만났다. 그리고 처음의 후회와는 달리 그 깨달음의 의미를 알게 되고 쓴 책이 출판되었을때 페트루스는 연락을 거절했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세월의 힘에 못이겨 연락이 끊긴 것인지는 정확치 않으나 저자는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가 장장 한장반이나 되는 페이지 속에 설명되어져 있다. 그래서 이 헌사가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순례자의 길은 고난와 가난이 함께 하는 길이다. 알고자 떠나는 길이 아니라 깨닫고자 떠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처음엔 그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저 칼을 찾기 위한 목적성 여행을 떠났으며 그것으로 인해 여행길이 내내 짜증스러웠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아주 사소한 결정 하나라도 당신 인생에 관해 다른 사람이 결정하도록 용납할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아내의 말을 빌어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고집스러운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로마의 방랑자"라고 불리는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가는 길, "수상가"라고 불리는 예수의 성묘로 향하는 길, "순례자"라고 불리는 사도 야고보의 성 유골에 이르는 길. 이 세가지 순례길 중에 그는 순례자의 길을 택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온통 검에 대한 생각뿐이었고 그 본질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다. 검은 하나의 결과일 뿐인데,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 길에서 깨달음을 발견해냈다. 순례자의 길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기적에 가까운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의 삶은 같아 보이면서도 결코 같지 않아졌다. 이것은 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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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로베르토 파치 지음, 전영미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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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ave. 콘클라베는 "열쇠로 잠긴 방"이라는 뜻이다. 라팅어로, 가톨릭 교회의 교황 선출 선거 방식을 의미하며 선거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곳에서 선거를 진행한다.  이미 콘클라베는 대중들 앞에 많이 드러나 있다. 여러 작가들에 의해 소설화되고 영화화 되었기 때문이다. 굴뚝으로부터 흰연기가 나올때까지 수차례 계속되는 검은 연기의 향연. 그 지루함이 끝나고나면 가톨릭은 가장 지지받는 수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흔히 종교라고 하면 순교와 희생, 봉사를 떠올리기 쉽상이지만 이젠 종교도 정치권력이 배여있는 집단임을 어른이 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모임 속에는 반드시 그 권력구도가 생성되며 종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어른이 되어 있다. 

로베르토 파치의 소설 [콘클라베] 속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가장 희생적이면서 믿음,소망,사랑을 실천할 하나님의 숭고한 종을 뽑는 의식이 아니라 저마다 자신들의 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추기경을 천거하고 반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이래서는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하베무스 파팜이 공표될리 없었다. 

127명의 추기경들이 모두 투표를 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그럴 수 없는 것이 80세 이하의 추기경들이 모이다보니 건강상의 이유를 핑계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인원들도 속출했다. 124명이 투표해 참석했던 11회차 투표 결과도 무산되면서 12회차 투표를 준비하던 추기경들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탈리아에서 교황이 선출되어야 한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해오던 알폰소 체리니 밀라노 대주교나 교회에서 반대하는 마술에 심취한 레오폴드 탄자니아 주교, 회의에 불참하곤 하는 압둘라 조셉 레바논 주교 등등 많은 개성있는 대주교들이 모인 가운데 의견일치의 길은 멀고도 험해 보였다. 

하지만 콘클라베 도중 이상현상들이 계속되고, 결국 투표절차 없이 만장일치로 에토레 말베치 토리노 대주교가 교황으로 선출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기적같은 장면을 상상했었던 것 같다. 투표도 없이 모두의 마음에 신심이 일어 동의하는 장면. 하지만 반대로 그 장면이야말로 글로 읽는 순간 가장 모순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종일관 지루하게 이어지던 콘클라베의 끝이 결국 이렇다니...허무감까지 밀려왔다. 댄 브라운 식의 종미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좀 더 숭고한 결말을 기대했었는데, 역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기에 작품에 대한 실망이 밀려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자로서는 절대 알 수 없을 콘클라베에 대한 좋은 지식들을 이 책을 통해 얻는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상상이 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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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교향곡
조셉 젤리네크 지음, 김현철 옮김 / 세계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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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신이 인류에게 저지른 범죄가 있다면
그것은 베토벤에게서 귀를 빼앗아간 일이다."
                                                                    -로맹롤랑-

그가 청각을 잃었기 때문에 악성이 더 뛰어나졌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몇 번 쯤은 꼬집어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장애가 있어도 뛰어넘을만큼의 천재라면 정상적인 귀를 가졌을때엔 얼마나 더 대단한 것들을 토해낼 수 있을 것인지는 간과해버린 어리석음 때문이다. 우리는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은 늘 모른다. 눈으로 보면서, 귀로 들으면서, 코로 맡으면서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먹고 마시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느낌들이 예술가들에겐 그저 지나치는 하루의 일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 공감각적인 기능들이 그들의 예술혼을 불태운다는 사실을 평범한 사람들이 알리가 없다. 그런데 그는 귀를 거세당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음악을 들을때마다 애잔하다. 

조셉 젤리네크는 후작 [악마의 바이올린]을 통해 알게 된 작가였다. 하지만 그 작품보다 전작인 [10번 교향곡]이 훨씬 더 흥미롭다. 지루한 부분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한 모르는 이야기가 뇌를 자극시킨다. 

베토벤. 그의 불행한 일생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위인전을 통해서, 각종 책과 영화를 통해서도 알려졌던 사생활. 하지만 정작 알려진 것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도 미스테리한 일이다. 그 많은 여인을 사귀었으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의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쩌면 단 하나의 인물이 아닌 여러명일지도 모를 그녀 또한 그녀를. 게다가 그의 조카가 그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설은 이젠 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 가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잘 알려진 한 작곡가의 삶에 어떤 흥미로움이  더 있다고 조셉은 그를 모델로 삼았을까. 

그는 "누구를"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을 목표로 했기에 성공한 셈이다. 그의 10번 교향곡. 그것을 둘러싼 비밀과 진실에 관해서. 우리는 이쯤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의 음악에 대해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책 속으로 고개를 파묻게 된다. 푸욱-.

서른 다섯의 다니엘 파니아구아는 역사음악학 교수이며 베토벤이 전공인 사람이다. 그의 논문은 언제나 베토벤을 향해 열려 있고, 이번 사건 또한 베토벤이 연류된 사건이기에 그는 뛰어들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 이 소설에서 베토벤이 프리메이슨이였는지 일루미나티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를 위한 작곡이었는지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10번째 교향곡의 원본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누구의 손에 있는지가 범인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사실 베토벤을 좋아하지 않거나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장치들이 책 속에는 가득했다. 살인사건이나 사라진 악보를 찾는다는 설정은 목마른 미스터리를 채우기에, 애너그램과 알베르티의 암호바퀴,트리토누스는 지적호기심을 채워줄만 했다.

흔히 음악은 시와 결부시키지만  소설 속에서 음악은 하나의 약속이고 수학이었으며 문학이엇다. 그것이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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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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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카나에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백]의 다음 편.
[고백]이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면 다음 작품들은 시시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필력이 살아있다면 다음 작품들 역시 매력적일 것이다. 라는 이유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기다린 것은 새로 몰두할 작가였다. 그리고 [속죄]가 번역되었다. 

그녀의 속죄는 이언 매큐언의 작품과는 다르다. 어린 소녀의 잘못으로 어긋난 운명을 맞이했던 비운의 연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작 [고백]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들려주는 15년 전 범죄는 소녀들이 얽힌 범죄였다. 다만 고백에서는 "재수가 없었을 뿐.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내겐 그럴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라며 자기합리화를 했던 등장인물들이 풀어내는 "나의 이야기"였다면 속죄에서는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모두 나의 잘못이야"라고 자책하며 살아온 4소녀의 성장기가 담겨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 운명이 잔인하게 엇갈렸을 뿐이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나약한 인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 명은 살해되었고, 4명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했다. 그래서 이야기가 엮어졌다.

에미리는 도쿄에서 왔다. 집앞에 나가면 5분 이내 모든 것이 펼쳐졌던 편리함을 뒤로하고 아무것도 없는 시골로 향해야 했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그것이 그녀의 두번째 불행의 시작이었다. 첫번째 불행의 시작은 출생의 비밀에 있었고...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던 중 낯선 남자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한 채 죽었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에. 집에 있던 프랑스 인형처럼 가녀리고 숫기없던 사에는 에미리의 시체와 남겨졌고 풀어헤쳐진 에미리가 불쌍하게 느껴져 그애의 옷을 간추려 주었지만  이 날의 정신적 상처로 인해 결혼할때까지도 여성이 되지 못했다. 겉만 자란 소녀인채 에미리의 사촌에게 시집갔지만 그는 변태성애자였고 결국 남편을 죽였다.

마키.수영장에서 서바이벌 나이프를 들고 학생들을 향해 돌진하는 남자를 저지했지만 결국 언론은 그녀를 살인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 일이 그녀가 학부모 임시총회를 열게 된 계기이며, 그자리에서 15년전부터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사건에 대한 고백이 이어진다.  도망갈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후회와 함께 왜 남자를 저지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라면서...

유카.  형부의 아이를 뱉 유카는 출산직전이다. 어릴적부터 병약하면서도 영악스러웠던 언니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치 못한 채 자란 유카. 그녀에게 잘해준 어른은 딱 한 사람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따뜻하게 손잡아주었던 경찰관 아저씨였는데, 그 때문인지 경찰관에게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품게 된 유카. 형부가 경찰이라는 사실과 언니에 대한 반항심이 불러일으킨 그 하룻밤이 출산이라는 결과로 다가왔다. 하지만 유카도 결국 속죄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형부를 죽여버렸으니까.

아키코. 남자같던 아키코에게 에미리는 함께 공유할 것이 많은 친구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날 죽어버렸다. 비참하게. 그리고 아키코의 인생도 변했다. 히키코모리처럼 은둔생활을 하던 아키코는 오빠의 재혼과함께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는데, 새언니의 딸이 그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날 와카바를 만나러갔다가 그녀는 봐버렸다. 의붓딸 와카바를 성폭행하고 있는 오빠를. 그리고 그는 에미리의 살인범과 겹쳐지면서 아키코는 오빠를 죽이게 된다. 어린날의 트라우마는 이토록 강하게 4명의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미리 어머니가 밝히는 출생의 비밀과 범인. 존속살인이라는 것 외에도 범행방법이 성폭행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역시 4명이 걸어온 속죄의 세월이었다. 딸을 잃은 어머니가 내뱉은 분노의 저주가 그들의 삶의 행복을 앗아가버렸다. 그리고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버렸다. 지독하게 꼬여진 만남과 운명들. 누가 잘못한 것일까.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가난한 남자도, 연인을 잃고 딸을 그 아버지에게 잃은 어머니도, 친구의 죽음 앞에서 비겁했던 4명의 소녀들도 다들 희생자일 뿐이었다. 

[속죄]가 아닌 [고백]이라고 이름붙어도 좋을 미나토 카나에의 후작.
이젠 그녀의 다른 책인 [소녀]와 [N을 위해서]가 서둘러 번역되길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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