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항아리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 프랑시스 잠의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겨울을 눈 앞에 둔 11월 넷째 주 토요일은 평화롭게 흐르고 있다. 

하루 종일 잿빛 가을 하늘은 따뜻한 햇살을 허락하지 않았고, 스산한 바람은 마음까지 움츠러들게 했다.

마무리 되어 가는 한 해... 늦가을의 쓸쓸한 정취를 사랑하지만, 보내야 하는 시간들은 늘상

많은 후회와 안타까움을 남긴다.

견뎠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한 달간의 혹독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평온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기억들은 시간 속에 묻어두고... 나에게 현재 주어진 상황들을 바라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남편과 자주 가는 카페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일상의 소소한 일을 나누었다.

남편은 민규와 함께 대천에서 가을 바다를 보고 온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는 어느새 아주 오래 전... 어느 가을에 맞닿아 있었다.

 

20대의 젊음과 풋풋한 수줍음을 간직한 두 사람...

그들이 만났던 아름다운 가을과 처음 함께 간 바닷가...

쉼 없이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

함께 서 있던 바위 위까지 밀려온 밀물로 난감해 하는 모습들...

그리고 맑은 웃음소리들...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들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것은

서로에게 큰 축복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들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시간들과 만났다.

커피를 마시며, 새로 산 시집을 함께 뒤적였다.

나는 프랑시스 잠의 시를, 남편은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읽었다.

 

 

 

모든 것은 순간적이고,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먼 훗날...내가 했던 치졸하고 유치한 이 생각들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길 바란다.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나고, 밥을 먹고... 서로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그것이 가장 인간적이고 위대한 일이다.

그래서 프랑시스 잠의 시는 겸손하고 위대하다.

언제나 변함없이 나와 함께 있어 준... 나의 책들,,, 그들의 위로에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토요일... 오랫만에 설탕을 듬뿍 넣은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메리카노가 도회적이고 세련된 맛이라면,  일회용 맥심커피는 촌스럽지만 정겨운...그리고 가끔 못견디게 그리운 옛 친구 같은 맛이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내가 보낸 일주일의 삶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바로 어제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심지어 지난주에 했던 기억들과 중첩이 되면서 혼란스러움마저 느꼈다.

오후와 저녁은 늘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니 특별히기억될 것이 없다.  하지만 오전에는 약속이나 내가 개인적으로 해야할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시간들이니 조금씩은 변화가 생긴다.  
차분하게 기억속에 잊혀져가는 시간들을 다시 돌려보자,,,
월요일 오전은 자주가는 카페에 앉아 수전손텍의 일기를 읽고 잠깐 서점에 다녀왔다.
화요일에는 혼자 시내 서점과 카페에 다녀왔다.
수요일에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시내에 나가 혼자 커피를 마셨고,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었다.
목요일 오전에는 전화로 친구와 폭풍 수다를 떨었고,  예배모임에 참석했다.
금요일에는 친한 언니와 함께 시내서점에서 만나 책을 봤고,  꼬물거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어울릴법한 매운 칼국수를 먹었다.
역시 머릿속으로만 더듬을때는 떠오르지 않던 파편된 기억들이 글로 정리하니 하나의 장면으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난 이번주에 네 번 서점에 다녀왔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그리고 중고서적을 통해 10권의 책을 구입했다.  최근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보는 작가는 파스칼 키냐르인데 은밀한 생,  심연, 세상의 모든 아침,로마의 테라스, 옛날에 대하여, 섹스와 공포,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빌라 아말리아 그리고 떠도는 그림자들을 구입했다.
번역된 책은 거의 다 소장한 편인데...문제는 아직 제대로 읽은 책이 한 권 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무모한 욕심은 늘 화를 부르지만 책에 대한 나의 대책없는 과도한 욕망은 늘 멈춰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키냐르를 전작 독서하겠다는 발칙한 계획까지 세워본다.  기약없는 계획이고 약속이지만이런 내가 밉지 않고 싫지 않다.

알라딘 중고서적에서 우연히 발견한 비행공포도 잠깐이지만 나를 기쁘게 했다.  서가를 헤매던 중 우연찮게 눈에 띈 책인데 얼마 전 친구가 읽기를 권한 책이라 반가움이 컸다.  그리고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새책만큼이나 깨끗한 책을 구입했고, 나머지 돈으로 내가 책만큼 사랑하는  커피를 마셨다. 

로맹 가리의 소설 두 권...자기 앞의 생과 새벽의 약속 그리고 정말 충동구매해 버린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의 명시 1,2권
질문의 책 이후에 정말 오랫만에 시를 읽었다.  프랑시스 잠의 시....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첫 장에서 이 시를 읽는 순간 나는 시인의 겸허한 삶의 태도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시들이 너무 궁금했다.

이번주에 나는 수전손택의 일기 다시 태어나다를 읽고 있고,  자투리 시간에는 녹색평론과 한겨레 21를 뒤적이고 있는 중이다.
독서에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집중해야만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
문태준 엮음, 박정은 그림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늦가을에 잘 어울릴법한 시집 한 권,,,일러스트가 너무 예뻐서 절로 손길이 갔다. 한 편의 시에 어울리는 해설이 있어 이해가 쉬운 반면...해설이 때로는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내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읽었다. 읽고 나니 따뜻한 위로를 받은 기분~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순한 열정 (양장)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추천을 받아 구입해 놓은 후...꽤 오랫동안 책꽂이에 갇혀있던 책을 꺼내 들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나라와 국경을 초월해 보편적이구나...한 사람을 향한 사랑의 열정에 휩싸였던 아니 에르노의 마음을 100배 공감하며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이야기..우리는 끊임없이 희망의 공을 쏘아올리지만...그 공은 자꾸만 추락한다. 달나라를 소망했던 난장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아들에게 꼬옥 읽기를 권유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