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부모의 성을 모두 쓴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몇가지 상념들...

1.
성차별성 철폐의 이유인가?

2.
아버지의 성을 먼저 쓰는가? 어머니의 성을 먼저 쓰는가?
그 순서가 있다면 이 것도 성차별의 단초가 되지 않는가?

3.
현행법상 어떻게 받아 들여지는가?

전산처리등 행정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쪽성을 성으로 보고 다른성과 이름을 합쳐 이름으로 처리하면 된다
즉 이 송희일, 김 조광수 식으로,
현행법이나 전산처리는 모두 4글자로 된 이름을 하자 없이 받아 들여 처리한다.

4.
간단한 집합론을 들춰보자
아버지 성의 집합을 F 라 하고 어머니 성의 집합을 M 이라 할때
부모성을 동시에 사용하는 1세대의 성은 FM 이 된다.
2세대에서는 아버지의 성 FM과 어머니의 성 F'M' 를 합쳐 FMF'M' 가 된다
3세대에서는 FMF'M'fmf'm'
실제적으로 두 집합은 동일함으로 2의 n 세대 승이 된다.
그리하여 8대 정도 지나면 성만 256글자가 된다.

단지 1세대만이 실용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2세대 부터는 어느쪽 성을 포기하여야 하는가?

5.
가장 묻고 싶은 것이다.
과연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땡땡 2007-08-0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 저는 부모성 함께 쓰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콕 찝어 답변을 요청하셨으니 어쭙잖게 함 해 보자면... 흠흠;

1.
성차별성 철폐의 이유인가?
: 그렇죠. 시작은 90년대 중후반, 호주제 폐지운동과 맞닿아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90년대 중반에 하이텔에 '신정모라(요샌 무슨 인터넷 신문에 글 쓰시는 것 같더군요)' 씨가 등장하면서부터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호주제 폐지운동에 앞장선 '고은광순' 씨가 더 유명하지요. 호주제가 부계 성만 쓰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부모 양성을 같이 물리면 호주제도 유명무실해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한 축, 그것과 상관없이 왜 아빠 성만 써? 하고 생각한 (친)여성주의자들이 한 축 있지 싶습니다.

2.
아버지의 성을 먼저 쓰는가? 어머니의 성을 먼저 쓰는가?
그 순서가 있다면 이 것도 성차별의 단초가 되지 않는가?
: 처음에는 아버지 성-어머니 성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말씀하신 대로 왜 아빠 성이 먼저야?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 둘 늘면서 어머니 성-아버지 성, 이렇게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자기 맘' 또는 '부르고 듣기 더 좋은 순서'로 부릅니다.

3.
현행법상 어떻게 받아 들여지는가?
전산처리등 행정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쪽성을 성으로 보고 다른성과 이름을 합쳐 이름으로 처리하면 된다
즉 이 송희일, 김 조광수 식으로,
현행법이나 전산처리는 모두 4글자로 된 이름을 하자 없이 받아 들여 처리한다.
: 부모성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명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현행법상으로는, 즉 국가에 등록된 이름은 '아버지 성-이름'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 성-어머니 성 이름' 식으로 이름을 붙여 주더군요.

4.
간단한 집합론을 들춰보자
아버지 성의 집합을 F 라 하고 어머니 성의 집합을 M 이라 할때
부모성을 동시에 사용하는 1세대의 성은 FM 이 된다.
2세대에서는 아버지의 성 FM과 어머니의 성 F'M' 를 합쳐 FMF'M' 가 된다
3세대에서는 FMF'M'fmf'm'
실제적으로 두 집합은 동일함으로 2의 n 세대 승이 된다.
그리하여 8대 정도 지나면 성만 256글자가 된다.
단지 1세대만이 실용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2세대 부터는 어느쪽 성을 포기하여야 하는가?
: 부모 성 함께 쓰기와 관련해 가장 흔한 질문인데요, 아직 세대가 많이 지나지 않아, 더군다나 제도적으로 부모 성을 함께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룰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성-어머니의 어머니 성'을 하나씩 따서 쓰자는 게 대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들인 경우 '아버지 쪽 할아버지 성-어머니 쪽 할아버지 성(두 자에서 네 자-양쪽 모두 두 글자 성일 경우-)'을 주고 딸인 경우 '아버지 쪽 할머니 성-어머니 쪽 할머니 성'을 주자는 얘기가 있고요, 아이들이 고르게 하자는 얘기도 있습니다. 또 뭐가 있지? 부모가 합의하게 하자도 있었던 듯. 어쨌든 256글자 성은 안 나오게 하려고 머리들 많이 썼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
가장 묻고 싶은 것이다.
과연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 일단 이건 부모 성 함께 쓰시는 분들이 답하셔야 할 문제라 제 답변이 매우 부실할 거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최소한 저한테는 진정성 이전에, 별로 효과 있어 보이지 않아 부모 성 함께 쓰기 안 합니다. 남들한테 저를 아버지 성-이름으로 소개하지만 아버지(만)의 혈통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고, 아버지 성을 쓰는 것이 제 존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또 사실 전 부모 성 함께 쓰기가 호주제랑 큰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성을 안 쓰는 게 호주제 폐지(이미 없어졌지만)나 혈통주의를 없애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요즘은 아예 성을 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들도 늘었습니다. 이를테면 '이송희일' 대신 '희일'이라고 하는 거죠. '김조광수' 대신 '(김조)광수' 이렇게 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뭐, 제가 성에 별 관심을 갖지 않으니 제가 만나는 사람이 두 성을 쓰든 세 성을 쓰든 시비 걸고 싶지도 않습니다. 본인이 두 성을 다 쓰겠다는데 진정이냐 아니냐 묻는 것이 오히려 좀 우습지 않을까요?(이 '운동'이 '취향'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여전히 대략 '취향'의 관점에서 보고 있으므로 이런 대책 없는 반문을;;;) 그런데 어쨌든 도리어 제가 가장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진정성 말씀이신가요? 양계혈통 계승? 성차별 철폐?

파비아나 2007-08-06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아는 분 맞으시죠?
이름 자주 바꾸지 말아주세요.흑흑

chika 2007-08-0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응가자세로 앉아있는 저 처자를 모르옵니다. ㅡ,.ㅡ

땡땡 2007-08-07 00:23   좋아요 0 | URL
저 이미지는 알라딘이 하루에 한 번씩 맘대로 바꾸는 줄로 아뢰오.

chika 2007-08-07 23:59   좋아요 0 | URL
지금은 널부러진 강생이.... ;;;;

마늘빵 2007-08-08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파비아나님만 눈치챈게 아니었어. -_- 자꾸 술래잡기 하실래요?
 


난 세상 모든일이 정치와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작금의 이무기 사태 역시 명백한 정치적 행위이다.

현재 이무기 사태는 정치행위 공급의 기득권층과 그 정치행위의 수요자 사이에서의 괴리로 벌어짐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무기 사태의 원형은 몇년전 벌어진 노무현 탄핵 정치 이벤트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사태를 구성하는 각 케럭터들을 잠시 검토 하여 보자

[노무현 사태]
기득권층 -> 딴나라,메주등이 주축이 된 정통 정치업 종사자들로서 평소엔 서로 적대시 하는 관계임에도 그 이벤트에서는 혈맹이 됨.

타도 대상 -> 정통성이 결여 되고, 정치학으로 볼때 정치인도 아닌 무대뽀 노무현씨

이벤트 진행 -> 정치라는 것은 당연 국민들을 수요자로 한다는 것을 완전 망각한 기득권층, 그 전문 지식으로서 국민들을 계도, 국민들이 매우 잘못된 짓을 하였고 이제 그들이 바로 잡을것이라 하였으나, 그걸 못 알아들은 무식한 국민들의 광적 대꺼리로 인해 도려 그들이 추락함

즉 국민들이 정치인들에 항거함.

[이무기 사태]
기득권층 -> 충무로, 고결하신 평론가 등 업계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정통 영화업 종사자들로서 예술가임을 공히 자처함.

타도 대상 -> 역시 정통성이 결여 되고, 돈만 잔뜩쓰고 영화학으로 볼때 영화도 아닌 걸 맹글어 논 영구.

이벤트 진행 -> 기득권층은 영화라는 것은 당연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관객들의 수준 낮음, 예술에 대한 몰상식등을 항상 안타까워 하던 차에 영화도 아닌 것에 무식한 관객들이 돈 낭비할까 너무도 우려한 나머지 용감하게 사실을 얘기 했으나 돌팔매질을 당함

즉 관객들이 평론가들에 항거함.

이후 이무기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지는 이미 종결된(어떤 의미에서는 아직 진행중이지만서도) 노무현 사태를 참조하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지 않겠냐는 생각이지만 교훈은 지극히 평범하다.

항상 그 업의 근본을 생각하고 그 소비자에게 겸손해야 한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형래감독이 의도하였던 혹은 그렇지 않던 디워는 몇가지 심각한 철학적논의를 야기 시킨다.
이건 베스푸치가 아메리카를 의도적으로 발견하였던 그렇지 않던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다.

대략 나열해 보면...

첫째. 인간은 신의 도구인가?
둘째. 그렇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그 운명에 따르게 되어 있는가?
세째. 정체성은 심각한 육체적 손실(즉 윤회)을 거칠지라도 유지되는가?
네째. 선이 자신의 파괴(죽음)를 원하더라도 여전히 선인가?
다섯째. 그렇다면 죽음은 그 형식에 따라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가?


나는 그다지 영화를 보지는 않지만,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은 내게 생각 할 거리를 주는가 이다.
그리고 싫어하는 영화는 어떤 생각이던 결론에다 꿰 맞추어 내게 강요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때 디워는 매우 훌륭한 영화이다.
그리고 화려한 외출은 매우 나쁜 영화이다.
내게 객관적 관점을 권유할 생각일랑 하지 마시라.
객관적 관점이란 애시 당초 존재 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 원하는 관점이 있을 뿐이다.

심형래의 미덕은 디워 역시 여전히 먼가를 강요하고 있지만 그 표현의 조잡함으로 인해 내가 그걸 충분히 무시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 더해서 심형래는 중요하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혼동 내지는 무시해 버리는 두가지 철학적 개념을 제시 해준다.

결정론과 예정론이다.
이 개념은 자유의지 문제와 곧 바로 연결되지만 이건 메가톤급 주제이니 그냥 넘어가자.
결정론과 예정론은 결국 끝에서는 매 한가지 결과로서 구분한다는 것이 실용적으로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쨌거나 죽을 것이다" 식으로 방기하지는 말자.

두 뇨자, 한뇨 이름은 듣자마자 까 먹었다. 세라는 기억한다. 하여간 터미네이터는 기억할만 하지 않은가?
조선뇨자와 미국뇨자.

결정론으로서는 미국뇨자는 자신의 장래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그저 버둥버둥 대다 스물이 되면 이무기에 잡아 먹히면 된다.
현재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현재의 연장선으로서 역시 고정불변이다.
당연히 현재가 이미 정해진것은 과거가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정론으로서 조선뇨자 역시 자신의 장래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그러나 선이던 악이던 어떤 이무기에도 먹힐것을 거부하며 자폭한다.
다음 생에서 결국은 잡혀 먹히지만 당장은 절벽 다이빙을 선택한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만 그게 과거와 현재의 필연으로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어려운가?
그렇다고 심형래를 탓하지는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ㅎㄴㄹ" 지난 뻬빠중에서..

사무실에서 내가 쓰는 책상은 절대 작지 않은 사이즈의 7개 이다.
어느 책상이나 서류더미가 켜켜히 쌓여 층을 이룬다. 이 층을 조사 하는 것만으로도 최소 1년간 내가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러고 사는 내가 깔끔하며 청소하기를 즐겨하다는 괴이한 소문이 떠돌며 그걸 믿는듯 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내가 그 지성과 미모를 존중하는 그녀도 나의 본래적인 모습에 태생적으로 동참하여 심히 즐거웠다.
그러나 내가 이 혼란상을 남에게 전혀 꺼리낌 없이 보이는 반면에 그녀는 정리정돈이란 근본 모를 대중적 아젠다, 권력에 억압 당해 타인에게 노출되길 매우 꺼려 함으로서 내게 일말의 아쉬움을 안겨 주었다.

신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열역학 제2법칙이란게 있다.
이 법칙은 공학에서 나온거지만 우주의 법칙이다.  즉 진리이다.
이 법칙을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은 질서상태에서 무질서상태로 비가역적으로 이동한다"

간단하면 쉬운가?
아닐것이다.

이제 좀 더 덧붙여 보자.
"엔트로피".... 발음이 멋있는 말이다. 발음 만큼이나 용도도 멋있다.

혼돈의 정도를 표시하는 용어이다.
이 말을 넣어서 열역학 제2법칙을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다시 조금만 더 덧붙여 보자.
"닫힌 계에서는 엔트로피는 증가하며 최대 엔트로피 상태에서 평형을 이룬다"

내 사무실에다 이 진리를 적용해 보자.
"내 사무실, 즉 사면의 벽으로 닫힌 이 공간에서는 계속 어질러질것이며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난잡한 상태에 도달할때까지 어질러진다"

왜 매일 매일 청소하며 치우고 난리 치우지만 전혀 개선이 되지 않는지를 한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아무리 치우고 치워도 나날이 더 지저분해지는게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혼돈으로 달려가는 것이 우주삼라만상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비가역적이다. 즉 되돌릴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에 심적압박을 느낀다거나 자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며, 자연을 파괴하면서도 청소를 하여야 하는가?
왜 청소가 자연을 파괴하느냐고?
정기청소기는 전기를 쓰며, 전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어 지고, 발전소는 핵을 사용하며, 핵은 서서히 자연을 좀 먹어간다.

그래도 깨끗이 정리를 하여야겠다는 사람을 위해 방법을 알려 주면...
엔트로피의 증가는 막지 못한다. 유일한 방법은 엔트로피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다.
즉 닫힌 계의 규모를 줄이면 된다.

계를 줄이는것..즉 내다 버리는 것 만이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깨끗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
자연을 살리려면 인간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8-04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6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9-11-06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 8월의 레이시즌 님, 마지막 문장에서 저 빵! 터졌어요. 얼마나 진지하게 열심히 읽었다구요. 흐음- 그렇군, 하면서 말이죠. 그러니까 제가 그거라니까요. 저를 갖다 버리고 싶다구요. 큭.(이건 웃는 거 아니고 사래 걸린 거예요. ㅡㅡ')
 

플라톤이 주장하기를...
두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오감으로 접하는, 현실이라 생각하는 끝없이 변화하는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계의 이상적인 원래의 형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근본 형태인 이데아의 세계이다.

이 겁나 헷갈리는 주장을 통상 기하학으로 설명하는데...
수학적 정의의 원의 이데아가 있다.
현실에서는 완벽한 원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느 수준 왜곡된 형태의 원이 있을 뿐이다.
즉 실제의 원은 이데아 원의 모방일 뿐인것이다.

이랬더니 더 헷갈리는가?
할 수 없다.
이데아는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직접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주장하기를...
이성을 통하여서만 이데아에 도달 할 수 있다.
정신이 물질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이데아를 볼 수 있다.
정신이 물질에 속박되기 이전, 즉 영혼이 육체에 갖히기 이전, 즉 태어나기 전에 이데아를 보았다.
현실에서 알아낸 이데아는 그저 이전에 알고 있는 이데아를 다시금 기억 해 낸 것일 뿐이다.


"나는 미뇨가 미뇨임을 배울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미뇨의 이데아와  미뇨가 미뇨의 이데아를 모방한 그림자라는 것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07-08-08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간혹 등장하는 누드들은 어디서 구하시는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