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산책 - 바람과 얼음의 대륙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고경남 지음 / 북센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소아과 의사로 일하다가 문득 남극으로 떠난 저자가 그곳의 사진과 일상의 감정들을 담아 펴낸 예쁜 책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에 글의 양도 많지 않아 금방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지만 읽고 나면 다시 펴서 또 보고 싶어진다. 

남극의 붉은 석양과 금빛 물결, 시리도록 차가운 느낌의 자연에 제일 먼저 감탄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동물 애호가인 내겐 펭귄의 사진이 가장 값지게 다가왔다. 일어서 있거나, 걸어가거나 점프하는 동작들이 사람과 비슷하여 더욱 귀여운 펭귄들, 두 마리의 어른 펭귄과 두 마리의 아기 펭귄이 어울려 찍은 가족사진은 사람의 가족 못지 않게 진한 애정이 배어나온다.  남극도둑갈매기인 스쿠아에게 생살을 쪼이며 죽음을 맞는 어린 펭귄의 안타까운 사진도 있었지만, 어쪄랴! 그것이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고 생태계의 한 부분인 것을.

-직립 보행하는 펭귄들의 모습은 꼭 사람처럼 보인다. 이 녀석들, 혹시 펭귄 의상을 몸에 걸친 놀이공원의 아르바이트생이 아닐까. (p76)-

이 부분을 아이에게 읽어줬더니,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란다. '왜 난 그런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하며 감동 어린 눈물 두 방울을 찍 흘려대어 '그건 네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이야.'라며 위로하기 바빠졌다.

남극에서 살고 있는 펭귄의 종류는 다섯 가지인데, 그중 황제펭귄의 암컷은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 알을 낳고 먹이를 찾으러 간다고 한다. 수컷은 암컷이 없는 두 달간 바싹 마르며 오로지 알만 품는다. 다른 펭귄들과는 달리 따뜻한 봄에 알낳기를 거부한 황제펭귄들은 블루오션만이 살 길인 것처럼 경쟁자 없는 세상에서 그들만의 습성을 그토록 힘들게 유지해 나간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종족 번식의 가치가 힘든 생활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일까? 겉보기엔 예쁘지만, 작은 몸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황제펭귄들의 뒷면의 삶이 안스럽다.

지구상에서 그나마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곳으로 남아있는 남극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자연의 신비함을 맛보게 해준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블리자드와 오랜 세월을 견딘 크레바스는 때론 인간에게 무심하기도 하다. 그 옛날 남극을 탐험하던 스콧과 동료들의 이상과 꿈을 잠재웠듯이, 자연은 그 자체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세종기지를 비롯한 각국의 탐험단은 철저한 관리하에 남극을 보존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름다운 남극과 그곳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동식물들이 지금 그대로 청정한 환경에서 오래도록 보존되길 바란다.

-창밖의 블리자드를 바라보듯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슴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안절부절못할 필요는 없다. 누구도 블리자드에 맞설 수는 없다. 마음속을 채우고 있는 블리자드를 바라보며 자신의 불가항력을 인정하는 순간 평화가 찾아온다. (p39)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