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드 THAAD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면#1 : 제연합에서 신라 진흥왕의 배신으로 한강하류지역을 잃어버린 백제는 성왕의 뒤를 이은 의자왕이 신라 김춘추의 사위가 있던 대야성을 무너뜨림으로서 복수극을 시작한다. 이에 김춘추 또한 복수를 다짐하고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연개소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며 오히려 감금당했다가 풀려난다. 결국 신라가 손을 뻗은 곳이 당나라. 당나라를 섬기고 싶으나 백제가 길을 막고 있다는 이유 그리고 고구려에게 굴욕을 겪고 있던 당의 배경이 맞물려 나당 연합이 형성된다. 이에 한반도는 당에 의해 백제에 이어 고구려까지 멸망하게 된다. 하지만 당은 한반도에서 물러나지 않고 한반도 안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으며, 이에 신라는 고구려 유민을 도와 당을 물리치게 되고 남북국 시대, 즉 신라와 발해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장면#2 : 광해군이 인조반정에 의해 쫓겨난 이유는 인목대비의 폐서인과 화기도감 그리고 명에 대한 배신 등이 그 이유였다. 강홍립의 청에 대한 항복사건 이후에 반정이 논의된 것을 보면 인조반정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주자의 나라 명에 대한 배신 그리고 오랑캐인 청에 대한 굴복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소중화에 빠져 자기만의 논리에 만족하며 자기들의 배를 불리고 있던 그들과는 달리 광해군은 정확히 시대적 흐름을 읽고 예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던 현군이다. 서인의 소중화 논리를 등에 업고 왕이 된 인조는 당연히 어버이 나라인 명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실리가 아닌 권력과 명분만을 추구하게 되고 그 결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거기에 삼전도비를 세우게 된다.

    

 

장면#3 : 북한이 20161월 핵실험 그리고 2월에 미사일 발사실험 그리고 한국의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다시한번 한반도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미국의 사드를 한반도에 설치하는 문제가 다시 언급되면서 북한 뿐 만아니라 중국과도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무기를 팔아서 나라를 운영한다고 할 정도로 세계 무기판매량이 많은 미국과는 사드 문제 그리고 사드 도입으로 인해 야기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북한과의 갈등보다 더 큰 갈등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한국전이후로 한국의 우방으로 자리매김한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와 경제교역에서 있어서 미국보다 큰 비중으로 차지하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역사는 반복된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과거의 경험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얻어 더 나은 미래를 향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역사로부터 제대로 배우고 학습해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시키고 있는가? 언제나처럼 21세기인 현재에도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 덕택에 열강들의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거기에 북한이라는 변수까지 있으니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 하지만 당의 이익이나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닌 광해군처럼 한반도라는 배를 안전하게 항해하는 데에만 모든 전력을 쏟는다면 분명히 최선의 답안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이덕일 / 김영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 TV에서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큰 주류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일종의 야사처럼 과거의 일을 재미있게 풀어 낸 것들이라 아마 큰 인기를 큰 것이리라. 이덕일 공저의 책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시리즈도 서프라이즈 프로그램과 같은 류의 책이다. 다른 점은 TV프로그램처럼 단순히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라는 점이다.

 

  지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고정된 지식으로 수학과 과학 같은 경우와 같이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학문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검증 가능한 학설이 나올 때와 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큰 변화 없이 정답이 정해져 있는 지식이다. 다른 하나는 가변적인 지식이다. 사회, 역사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한다. 정확하게 정해진 답이 없으니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며 새로운 유물이나 유적 등에 의해 언제든지 기존의 믿음이 바뀔 수 있다. 현재 교육시스템은 대학에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평가 가능한 교과내용을 우선적으로 교육시키고 있다. 고정적인 지식을 묻는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교과는 고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역사와 같은 교과는 단순히 시대 순으로 외우고 인과관계를 무시한 사건들만의 나열로 전개된 수업을 듣다보니 맥락을 상실한 역사를 머리에 주입한다. 그리고 논쟁적인 주제들조차 답이 정해져 있어서 답 이외의 것들은 언제나 무시되고 틀렸다고 간주된다. 좋은 예가 광해군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과거에는 조 나 종을 붙이지 못하고 군으로 강등될 정도로 그 평가가 좋지 않았다. 실제로 역사시간에도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광해라는 영화나 최근에 화정이라는 드라마에서처럼 그 평가는 변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탕평책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영조, 그의 아들 사도세자에 대한 평가 또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우리는 변화하지 못한 역사교육의 틀에서 정확한 답만을 찾아서 열심히 암기하고 외우고 있다. 그러니 중국의 동북아 공정, 그리고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그들이 틀렸다고 분노하고 욕하고 소리치지만 정작 어떻게 이야기하고 주장해야 될지를 모른다. 물론 이런 것들은 전문가들의 몫이지만 나와 같은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는 바른 우리의 역사를 알며 역사에 대한 유연한 사고를 가져서 그릇된 역사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맞설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긴 역사를 자랑스러워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역사를 의논하고 생각하고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대중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깨부수기이다. 그럼으로써 좀 더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좀 더 유연한 눈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거기에 재미가 가미되어 있으니 금상첨화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리 녹록한 책은 아닌 것 같다. 기본적인 교양서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사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지 않고 짧은 단편이야기들처럼 논쟁이 되는 사건들 중심으로 서술되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의 황제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박영규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제 강점기이전의 우리역사는 고종에서 끝난 것처럼 인식된다. 그래서 망국의 모든 책임을 고종에게 전가하지 그의 아들 순종에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사실 마지막 황제가 순종이라는 사실조차도 거의 기억에 없다. 그 만큼 마지막황제 순종은 왕으로서의 그의 위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다룬 것이 길 위의 황제이다. 대한제국의 황제임에도 일본을 받들기 위해 도쿄를 방문하는 그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거의 열흘 만에 겨우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자, 궁인들이 내게 상복을 입혔다...... 나는 또 혼절하고 말았다.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곳은 깊고 푸른 물 속이었다. 물고기들이 빠른 몸짓으로 내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벗은 몸이었다. 몸을 자세히 살펴보니, 팔도 다리도 잘려나가고 없었다. 그저 다른 물고기처럼 몸을 흔들어 움직여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움직여도 제자리였다. 그 때 거대한 물고기의 아가리가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그리고 내 고샅을 물어뜯었다... p .37-38” 왕 임에도 팔과 다리가 다 잘려나가 왕이라는 명분뿐인 직함만 끌어안고서 언제나 자신에게 달려와 물어뜯을 거대한 물고기에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순종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선의 왕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그는 그런 치욕과 모욕을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순종)와 은이는 내(고종) 생명줄이야. 비록 내가 죽어도 너희가 있어 대한의 황실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이 내겐 있어. 세상의 모든 아비에게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자식이다. 네겐 너를 포함한 모든 자식이 나의 유일한 무기다. 세상의 그 어떤 무기보다도 힘 있는 무기는 바로 생명이다.........너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신민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모두 지금 너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너의 숨소리 하나하나가 바로 그들의 희망이며 목숨줄이다. 네가 먹는 밥은 곧 모든 신민의 밥이며, 네가 마시는 공기는 모든 신민의 공기다. 그러니 너의 목숨은 모든 백성의 목숨이다.... p.99-100” 왕이면서 왕이 아닌 자, 그러면서도 왕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자. 그가 바로 순종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지 못해 한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망국의 마지막 왕으로서의 그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사건 중심의 역사서는 사람을 놓치기 쉬운 다큐멘터리와 같다. 딱딱하며 사람냄새가 없다. 하지만 인물중심의 소설은 TV 프로그램 인생극장과 같이 사람 냄새나는 역사를 보여준다. 같이 웃고 울며 시대에 분노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과 일치되면서 나의 삶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해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경 고종황제 -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고종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고종 자신에 대한 것들보다는 흥선대원군 그리고 명성황후에 대한 것들뿐이다. 고종도 왕으로서의 분명한 역할과 사명이 있었을 진데 우리는 언제나 명성황후에 눈물 흘리며 흥선대원군에 답답한 만을 토로하는가? 하지만 언제나 고종은 나약하고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는 군주로 기억되어 있다. 과연 우리는 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럼 질문을 바꾸어 고종이 왕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만든 것들이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머릿속에 품고서 책을 읽어 나가도 보니 세 가지 정도가 떠올랐다.

 

 

첫째, 고종은 준비된 왕이 아니었다. 그는 철종이 후사 없이 죽게 되자 조대비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도움으로 갑자기 왕좌에 앉았다. 왕이 된 후에도 거의 모든 정치를 아버지가 관리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는 한나라의 왕으로서 분명한 통치철학, 그리고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섭정아래에서 그리고 왕비인 명성황후의 도움으로 실수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그는 정치를 배워갔다. 태평시대였다면 충분한 시간과 여력이 있었겠지만 난국의 시대에 그런 것은 사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종의 무능력을 탓하기보다는 그런 시대에 준비되지 않은 왕이 된 그의 불운을 탓해야 되지 않을까?

 

둘째, 인조반정이후에 권력의 중심에는 노론이 있었다. 명에 대한 사대는 그들에게 있어서 바꿀 수 없는 진리였다. 광해군이 반정에 의해 물러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명과 오랑캐인 후금사이에서 후금을 선택한 그의 정책 때문이니 그들에게 조선의 왕보다는 명의 황제가 우선이었다. 그들의 맹신은 그들 뿐 만아니라 조선의 눈을 가려 조선을 맹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유교만을 숭상해 서학을 오랑캐의 학문이라 하여 반대했으며 일찌감치 망한 명에 대한 충성으로 주위정세에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가리고 정치를 하고 이들을 등에 업고서 어떤 왕이라도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분열이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중요한 매 순간마다 갈등을 일으킨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갈등이라는 것은 분명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결과를 이끌어 내야하는 순간에는 최선의 합일점을 찾아서 문제해결에 힘써야 한다. 하지만 고종시대의 양반과 정치인들은 그들의 논리에 매몰되어서 다른 누구의 주장도 의견도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 흥선대원군 vs 명성황후, 개화파 vs 위정척사파, 급진개화파 vs 온건개화파 등의 갈등은 단결을 필요로 할 시점에 분열과 위기만을 조장했다.

 

위의 세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종황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려고 노력했다. 서양의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영선사, 수신사, 신사유람단, 보빙사 파견. 국력의 보강을 위해 신식군대 양성(물론 임오군란이라는 결과를 야기했지만 군대의 개혁을 필요한 시점이었다), 대한 제국선포를 통해 왕이 아닌 스스로를 황제로 칭함으로서 조선이 자주독립국가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또한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특사를 파견하고 이에 분노한 일본에 의해 퇴위를 강요받고 순종에게 왕위를 이양하게 된다. 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고종황제에게 망국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흥선대원군 

서원철폐, 비변사폐지, 삼정이 개혁, 서원철폐, 경복궁중건

 

병인사옥(천주교박해) 병인양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 신미양요

 

고종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최초의 불평등조약)

 

세계와 소통노력 : 수신사(일본)- 김홍집 조선책략 입수

통리기무아문(외교와 국방전문기구)

신사유람단(일본)

영선사()

조미 수호 통상 조약 :

(일본견제하기 위한 미국과의 불평등조약) 보빙사

 

임오군란 : 신식군대 vs 구식군대 흥선대원군 재등장, 청의 개입으로 흥선대원군 을 톈진으로 납치. 일본은 손해배상을 이유로 조선과 제물포조약 체결

 

갑신정변 : 김옥균을 포함한 급진개화파의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한 거사

한성조약(조선과 일본), 톈진조약(청과 일본)-

 

거문도사건 : 고종은 청나라와 일본이 충돌할 때 조선의 보호를 조건으로 러시아와

영흥만 조차에 합의. 러시아는 부동항 확보. 이에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 러시아의 남하 경계. 러시아의 영흥만 포기.

 

 

동학농민운동 : 동학농민군 토벌을 위해 청에 도움.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군 출병

  일전쟁 : 청나라의 조선 종주권 파기. 조선에 대한 일본의 독점권 인정. 랴오둥 반도, 타이완 차지-삼국간섭(프랑스, 러시아, 독일)으로 랴오둥 청에 반환.

 

갑오개혁(갑오경장) : 청일전쟁이후 일본에 의한 3차에 걸친 개혁. 군국기무처 발족.

 

을미사변 :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의 힘을 빌리려는 명성황후를 시해.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 군제개혁, 단발령 등 을미의병(단발령과 국모시해반발)

 

 

아관파천 : 고종이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거주

 

대한제국 ; 칭제건원(왕을 황제라 칭하고 연호사용), 광무개혁

 

러일전쟁: 일본의 승리 한일 의정서(일본이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보존을 보증하 며 황실의 안녕과 영토의 보존에 위험이 있을 때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반면 대한제국은 일본의 전쟁 수행에 편의를 제공한다.)

 

포츠머스 조약 : 일본의 조선지배 국제적으로 인정받음. 미국은 필리핀(가쓰라-태프트 밀약), 영국은 인도 지배를 인정받음.

 

을사조약 : 외교권 박탈 헤이그 밀사사건, 고종의 강제 퇴위, 순종 왕으로 등극

 

정미 7조약(한일신협약) : 군대해산, 경찰권, 사법권 위임

 

안중근 의사 : 이토 히로부미 저격

 

한일합방(경술국치) : 국권상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 - 모든 위대한 사상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위대한 질문 시리즈
사이먼 블랙번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1. 나는 기계 속의 유령인가?

사물과 신체의 물리적 체계에서 어떻게 의식적 경험이 생겨날까? -신체 체계는 거대한 기계다. 이 기계는 정보를 유령에게 전하고 유령에게 지시를 받아 신체를 반응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기계속의 유령). p. 16” 감각을 받아들이는 신체와 그것은 인식하는 정신이 서로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신, 즉 의식의 작용은 신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의식의 표정은 신체의 손, , 얼굴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의식=초현실적 존재보다는 의식=신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2.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분명 내부적인 성질이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 존재여부를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외부에서 자극을 받고 거기에 대한 반응은 독자적인 인간의 본성을 거쳐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충분히 인간의 본성은 주체자의 말, 행동 등을 통해 이해가능하다. 그 본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똑같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교육과 경험으로 체득하고 교정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절대적인 옳고 그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와 환경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판단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4.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플라톤에 의하면 뭔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참이라고 생각하는가, 참인가, 참이라는 생각이 정당한가를 물어야 한다. p .66” 자동차 바퀴가 세 개 인 것은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많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참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눈을 통해 직접 자동차 바퀴가 세 개인 것을 인공위성의 사진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즉 경험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참이라는 정당성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우리가 겪은 경험들은 새로운 경험들에 의해 삭제되거나 수정되어 새로운 정보로 갱신된다.

 

5. 인간은 합리적 동물인가?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라는 것은 이성적 사고를 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작가는 이성을 이론적 이성, 실천적 이성, 두 가지로 분류한다. 이론적 이성은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지침을 세우는 데 사용된다. 그것은 사태를 인식하고 인지하는 기능을 한다. 반면 실천적 이성은 어떻게 행동할지를 선택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즉 우리의 행동을 사태의 인식에 비추어 그리고 우리의 관심이나 욕망에 비추어 조정하는 것이다. p.79” 이론적 추론(이성)은 다시 선험적 추론과 후험적 추론으로 분류된다. 선험적 추론이란 굳이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미루어 알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예로, 나는 지금 임신 중이라는 말을 통해 굳이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선험적 추론이 절대적이어서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변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에 타당한 선험적 추론이라고 여겨졌던 견해가 의심스러워지면 지적인 대격변이 일어난다...... 그 결과 우리가 선험적이라고 부르는 진술과 추론은 절대적으로 옳은 게 아니라 우리가 쓸데없이 포기하지 않으려 버티는 것으로 전락한다. p 83-84” 후험적 추론이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선험적 추론보다 더 확신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

실천적 이성은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권위 있는 기준, 우리가 따라야 하는 명확한 행동 방침(p.87)”을 말한다. 그렇다면 실천적 이성 또한 절대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행동의 기준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동 판단기준이 현대의 행동 판단기준에 적합할 리가 없다. 그럼 여기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인간은 합리적(이성적)동물인가? 결국 우리가 이성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절대적인 확신성과 신뢰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의 의견을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6. 어떻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앞의 질문처럼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어떻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성립될 수 없다. 거짓말이라는 말뜻 자체가 없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있거나 사실인 척한다는 의미인데 합리적인 인간인 우리가 왜 스스로 거짓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즐거움과 거부감은 믿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데 자극이 되지만 이성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의 개연성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믿으려 할 뿐이다. p.101” “자기 자신의 결점과 결함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무리 약한 자부심이라도 해도 그것을 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p.102-103” 인간은 이성적 보다는 감성적인 동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7. 사회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 경제적 인간이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 곡선을 따라 정확히 수치로 표시가능하고 예측가능한 곳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인 인간은 그 시장 속에서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자기에게 최고의 이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작가는 반박한다. 시장이 자체 힘으로 무난하게 최선의 결과 향하는 능률적이고 법칙에 따라 굴러가는 기계가 아니라는 쓰라린 사실이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다. 시장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지진, 수도관 속의 급류처럼 혼란스럽고 항상 예측불가능하다.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감정과 신념이 매우 다양하며, 남들의 영향에 극히 민감하다. 합리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든 참담하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p.123”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예측가능하지도 않다. 감정적인 욕구에 따라 서로 협력할 수도, 경쟁할 수도, 그리고 연합할 수도 있다. 결국 개인의 욕구를 통제하고 개인의 도덕심과 정의감을 불러일으킬 사회(국가)가 필요하다.

 

8.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다. 같은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언어체계를 사용한다. 그 말은 언어가 품고 있는 그 의미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특별한 사항이 아니라면 같은 뜻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고의 폭과 너비 그리고 경험에는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언어라도 개인이 품는 내면적 의미는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언어의 기호적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를테면 수학에서 수식을 풀 때 풀이 과정은 개인차가 나지만 도달한 답이 서로 같다면 답이 같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우리는 서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하다.

 

9. 기계도 사유할 수 있는가?

컴퓨터는 01의 수의 배열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정확히 수치화할 수 있다. 사유라는 의미에는 추상화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는 사고도 있다는 말이다. 숫자의 조합인 컴퓨터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사유는 주체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지금의 컴퓨터는 누군가에 의해 정보가 입력되고 정보를 요청할 때에만 계산을 통해 요구하는 답을 주는 식이다. 게다가 인간 사회 안에 포함된 문화적 언어적 요소들이 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주어진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해 결론을 도출하는 컴퓨터는 존재할 수 있어도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것과 같은 로봇의 등장은 어렵다.

 

10.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상당히 이기적이고 욕망을 추구하는 동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인간은 공감, 동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로서 일생을 살아간다면 다른 이에게 영향을 줄 이유도 받을 이유도 없기 때문에 도덕이라는 단어자체가 필요 없다. ‘선하다, 악하다라는 말 자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간의 교류와 소통을 필요로 한다. 태초부터 인류가 사회라는 무리 안에서 형성한 DNA에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새겨져 있다. 무리에서 형성된 이런 도덕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행동하는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추방당한다. 인간이 선한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일 뿐만 아니라 생존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