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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황제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박영규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평점 :
일제 강점기이전의 우리역사는 고종에서 끝난 것처럼 인식된다. 그래서 망국의 모든 책임을 고종에게 전가하지 그의 아들 순종에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사실 마지막 황제가 순종이라는 사실조차도 거의 기억에 없다. 그 만큼 마지막황제 순종은 왕으로서의 그의 위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다룬 것이 길 위의 황제이다. 대한제국의 황제임에도 일본을 받들기 위해 도쿄를 방문하는 그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거의 열흘 만에 겨우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자, 궁인들이 내게 상복을 입혔다...... 나는 또 혼절하고 말았다.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곳은 깊고 푸른 물 속이었다. 물고기들이 빠른 몸짓으로 내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벗은 몸이었다. 몸을 자세히 살펴보니, 팔도 다리도 잘려나가고 없었다. 그저 다른 물고기처럼 몸을 흔들어 움직여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움직여도 제자리였다. 그 때 거대한 물고기의 아가리가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그리고 내 고샅을 물어뜯었다... p .37-38” 왕 임에도 팔과 다리가 다 잘려나가 왕이라는 명분뿐인 직함만 끌어안고서 언제나 자신에게 달려와 물어뜯을 거대한 물고기에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순종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선의 왕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그는 그런 치욕과 모욕을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너(순종)와 은이는 내(고종) 생명줄이야. 비록 내가 죽어도 너희가 있어 대한의 황실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이 내겐 있어. 세상의 모든 아비에게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자식이다. 네겐 너를 포함한 모든 자식이 나의 유일한 무기다. 세상의 그 어떤 무기보다도 힘 있는 무기는 바로 생명이다.........너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신민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모두 지금 너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너의 숨소리 하나하나가 바로 그들의 희망이며 목숨줄이다. 네가 먹는 밥은 곧 모든 신민의 밥이며, 네가 마시는 공기는 모든 신민의 공기다. 그러니 너의 목숨은 모든 백성의 목숨이다.... p.99-100” 왕이면서 왕이 아닌 자, 그러면서도 왕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자. 그가 바로 순종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지 못해 한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망국의 마지막 왕으로서의 그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사건 중심의 역사서는 사람을 놓치기 쉬운 다큐멘터리와 같다. 딱딱하며 사람냄새가 없다. 하지만 인물중심의 소설은 TV 프로그램 인생극장과 같이 사람 냄새나는 역사를 보여준다. 같이 웃고 울며 시대에 분노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과 일치되면서 나의 삶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