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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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글은 사건과 사건들 간에 연계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은 앞 내용의 연장선이며 다음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일종의 복선으로 작용한다. 각 단락들의 글들이 서로 연결되어 반죽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을 때에야 전체적인 글의 내용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나 조서라는 책은 기존에 내가 읽은 책들과는 전혀 다른 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머릿속에 그려질 듯이 세세하게 주인공의 일상적인 것들을 묘사하는 동시에 그의 내면의 모습을 혼란과 어지러움의 현란한 형용사들을 이용해 나타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글을 읽다가도 잠깐씩 멈칫하게 되고 다시 앞을 보게 된다. 도대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부분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읽었던 앞부분과 관련된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다. 개를 따라 다니며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도 그와의 유일한 대화상대인 미셸과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식이다. 이 책은 주인공의 눈으로 그려진 하나하나의 사건들과 생각들의 모음이지만 서로 다른 것을 보는 것들이라 도저히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책이었으며, 당장이라도 책장을 덮고 싶었다.

 

그나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은 마지막 정신병원에서 주인공과 의사 견습생들 간의 대화이다. 코기토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현상과 사건들이 아닌,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서 눈으로 보이지 않고 만져볼 수 없는 이성에 의해 이해 될 수 있다. , 우리의 감각으로 느끼는 현실은 진짜를 본떠서 만들어진 복사본 일 뿐이다. 진실과 진리는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귀를 막았을 때만 보인다. 결국 주인공 아담은 실어증에 걸려 현실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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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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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나와 닮은 아이를 손에 조심스레 안고 가슴으로 부비기도 하고 입술을 갖다 대어보기도 한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나의 아이.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해 주고 싶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부모의 눈은 나의 아이와 남의 아이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하는 만큼의 성장과 성과를 해 주기를 바라며 나의 자녀로서 뿌듯함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만나는 명절이나 친구, 지인들과 작은 모임에서는 언제나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리지만 관심사는 그의 전교 등수, 다니는 학교의 레벨 그리고 다니는 직장의 인지도 등이다. 현대의 우리는 타인과의 경쟁과 거기서 얻어지는 성과가 나를 평가하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런 숫자로 평가되는 결과물들이 나의 존재를 형성해 간다.

 

우리는 이들 주류들의 삶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아벨처럼 신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 카인처럼 낙인찍힌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결과 언제나 우리의 눈과 마음은 주위의 그 누구를 향해 있으며 그처럼 되기를 바라며 에너지를 소모한다.

거기 내 친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두 손은 물건처럼 돌이나 열매들처럼 생명 없이 고요히, 창백하고 까딱도 없이....그렇지만 맥없이 눌어진 것은 아니고 숨겨진 강한 삶을 에워싸고 있는 단단하고 훌륭한 껍질 같았다.... 지금 그가 완전히 자신 속으로 들어가 버렸음을 나는 전율처럼 느꼈다. p. 88-90”

 

헤르만 헤서의 데미안처럼 우리는 외부의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부의 나 자신을 봐야한다. 자신과의 대면이 죽음과도 같은 고독과 얼음장과 같은 차갑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따뜻함을 가지고 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없다. 내면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 나가다 보면 원천적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이 자아가 곧 우리 자신이며 이 자아가 하고자 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나도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에로, 어쩌면 에로 던져졌다. 그리고 측량할 길 없는 깊은 곳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뜻을 마음속에서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p.172”

 

원초적 자아는 불완전하고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단련하고 조련해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낸다면 진정한 나로서 나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동시에 상류층, 하류층, 우파, 좌파 등의 상하, 좌우의 끼리끼리의 연대가 아닌 진짜 일체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사랑과 행복, 그리고 편안함을 느끼며, 인류는 다시한번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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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3인류 5~6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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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시작으로 동부 아프리카에서 인류는 시작되었다. 이후 인류는 아프리카를 벗어난 유럽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뻗어 나갔다. 그 와중에도 인류는 진화를 거듭해서 지금의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 이른다. 호모 사피엔스의 성장은 동시대에 존재했던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의 멸종과 동시에 지금은 존재하는 않는 거대 종 들의 파괴를 이끌었다. 호주의 디프로토돈, 아메리카의 매머드, 곰 크기의 설치류, 말과 낙타 떼, 대형 사자 등의 멸종이 여기에 속한다. 곧 인류의 성장은 다른 종의 죽음과 환경의 파괴를 이끌면서 이루어졌다.

    

 

200년 만전에 등장한 호모사피엔스 이후 현재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는 새로운 인류의 멸망 위기와 새로운 진화의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베르나르의 소설 3인류는 새로운 위기에 봉착한 인류의 몸부림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인류의 타고난 욕망과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판타지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앞으로의 인류의 성장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인류의 시작이 자연의 파괴와 같은 종의 멸종을 가지고 왔지만 그것은 의도했기 보다는 종의 진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는 인류의 죽음과 어머니 자연의 파괴는 과연 어떤가? 그것은 지구와 함께 살아가려는 공생보다는 우리만 잘 살아가 보겠다는 이기심과 지구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3인류에서 저자는 말한다. 인류는 기원은 지구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구에서 자라고 지구에서 멸망하게 될 거라고... 그럼으로 우리는 지구가 내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녀가 만들어내는 몸부림에 관심을 가지며 그녀가 토해내는 아픔에 동정심을 발휘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현 인류의 생존과 진화는 지구의 소통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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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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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리영희선생님은 신문광고나 책 등에서 등장하는 활자적 인물(?)이었다. 큰 관심도 없었으며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우연찮게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대화식으로 편찬되어 그의 사상과 인물됨을 잘 보여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당시의 시대상황, 그 속에서 살아간 모든 이들은 위대하고 대단하지만 특히 리영희 라는 인물의 삶은 위인전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삶이었다.

    

 

1. 뚜렷한 소신이 있다. 최근에 에셈블리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정치를 다루는 것이었는데 정말로 현대 정치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진상필은 국회의원이란 용어 뜻 그대로 국민을 대신해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치인으로 느낄 수 있는 물욕, 명예욕 등을 인간으로서 갈등은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소신을 유지해 나간다. 리영희라는 이름을 가진 이 분 또한 그런 소신과 지조가 있다. 권력에 눈 감지 않고, 물욕에 귀를 막지 않았으며,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나 존재할 법한 그런 인물을 대화라는 책에서 발견했다.

    

 

2. 학자로서의 자존심과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다. 시대의 아픔을 말하고 떳떳이 비판하며 언제나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학자로서의 모습은 현재의 지식인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특히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지식의 전달 (전환시대의 논리 등과 같은 책들), 그에 따른 후대의 사고의 변화,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시대의 변화에 밑거름이 되었다. 교수라는 직책을 이용해 학생들에게서 신체적 욕구, 물질적 욕구를 얻으려고 저지른 몇몇 몰상식적인 교수들의 행동들이 매스컴에 등장할 때마다 그들의 학자로서의 자존심과 의무감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3. 배움에 목말라 했다.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난 적도 없지만 지금처럼 올바른 정보를 얻기가 힘든 적도 없었다. 무분별한 정보를 사실인 양 검토하거나 확인해 보지 않고 주어 담아서 퍼뜨린다. 또한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은 늘어났음에도 제대로 된 지식과 정보를 접해 본 적은 없다. 시험이라는 틀에 갇혀서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 지식과 정보는 죽은 것으로 여기는 시대적 풍조, 그리고 배움의 시기를 특정 시간으로 한정지우려는 지금의 모습은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책을 구입해 배우고 연구하려는 의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달플 수밖에 없는 감옥 이라는 공간에서도 더 읽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모습에서, 가지고 있음에도 생각할 줄 모르고 채울 줄 모르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보게 된다.

 

 

그가 가지고 있던 폭넓은 사상과 깊이 있는 사고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진실을 파헤치고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인내와 노력 그리고 시대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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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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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집불통이고 융통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인간이다. 도저히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인물임에도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러지 않고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으며 그렇게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왜 우리는 그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일까? 그리고 왜 그를 미워할 수 없을까? 오베라는 인물이 항상 이야기하는 원칙이라는 것이 그 답이다. ‘원칙은 기본적으로 따라야할 규칙임에도 나에게만 변화 가능한 가변적인 원칙으로 바뀌어 있다. 인도 위에 버젓이 주차해서 보행자가 차도로 가야하는 상황에서 타인을 욕하지만 내가 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경우로 자위한다. 하지만 오베는 다르다. 원칙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누구나가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심장의 문제로 쓰러져 생사의 위험에 있는 순간에도 엠블러스가 절대로 주택가 (residential area)로 오지 못하게 부탁한다. 그에게 원칙은 가변적이지 않는 불변의 것이다. 수시로 말을 바꾸고 줏대 없는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역사적 고물이다. ,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말로만 모든 것을 떠들어 대는 세상에서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과 정이 있는 인물이다. 항상 투덜거리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걱정과 관심이 있다. 자살을 하러 가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주고도 기자와의 인터뷰에는 관심 없는 모습. 추위에 죽을 뻔한 고양이를 집에서 키울 수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는 모습 등은 겉으로는 온갖 아양과 주책을 떨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결국 그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었지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함께 변해버린 우리의 본래 모습을 오베 라는 인물이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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