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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처음 나와 닮은 아이를 손에 조심스레 안고 가슴으로 부비기도 하고 입술을 갖다 대어보기도 한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나의 아이.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해 주고 싶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부모의 눈은 나의 아이와 남의 아이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하는 만큼의 성장과 성과를 해 주기를 바라며 나의 자녀로서 뿌듯함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만나는 명절이나 친구, 지인들과 작은 모임에서는 언제나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리지만 관심사는 그의 전교 등수, 다니는 학교의 레벨 그리고 다니는 직장의 인지도 등이다. 현대의 우리는 타인과의 경쟁과 거기서 얻어지는 성과가 나를 평가하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런 숫자로 평가되는 결과물들이 나의 존재를 형성해 간다.
우리는 이들 주류들의 삶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아벨처럼 신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 카인처럼 낙인찍힌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결과 언제나 우리의 눈과 마음은 주위의 그 누구를 향해 있으며 그처럼 되기를 바라며 에너지를 소모한다.
“거기 내 친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두 손은 물건처럼 돌이나 열매들처럼 생명 없이 고요히, 창백하고 까딱도 없이....그렇지만 맥없이 눌어진 것은 아니고 숨겨진 강한 삶을 에워싸고 있는 단단하고 훌륭한 껍질 같았다.... 지금 그가 완전히 자신 속으로 들어가 버렸음을 나는 전율처럼 느꼈다. p. 88-90”
헤르만 헤서의 데미안처럼 우리는 외부의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부의 나 자신을 봐야한다. 자신과의 대면이 죽음과도 같은 고독과 얼음장과 같은 차갑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따뜻함을 가지고 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없다. 내면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 나가다 보면 원천적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이 자아가 곧 우리 자신이며 이 자아가 하고자 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나도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에로, 어쩌면 ‘무’에로 던져졌다. 그리고 측량할 길 없는 깊은 곳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뜻을 마음속에서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p.172”
원초적 자아는 불완전하고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단련하고 조련해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낸다면 진정한 나로서 나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동시에 상류층, 하류층, 우파, 좌파 등의 상하, 좌우의 끼리끼리의 연대가 아닌 진짜 일체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사랑과 행복, 그리고 편안함을 느끼며, 인류는 다시한번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