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뱉은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28
경자 지음 / 고래뱃속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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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뱉은 / 경자 글,그림 / 고래뱃속 출판사

내 이름은 차마 말할 수 없어

“꺼져!”

사람이 화가 나면 머리 위로 불꽃이 튀고 연기가 피어올라요. 그게 ‘신호’가 되지요.
그 신호에 따라 검댕이들은 머리로 들어갔다가 입으로 튀어 나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 뱉은’ 말은 상대방의 얼굴에 묻어 그를 슬프고 괴롭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묻은 검댕이는 다시 떨어져 나왔습니다.
검댕이는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안녕? 내 이름은 꺼져야.”
“내 이름은 차마 말할 수 없어.”
“내가 제일 셀걸?”

하지만 사람들의 슬프고 괴로운 표정을 보니
꺼져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요.


무지갯빛 방울들

무지개 방울들이 있는
그 곳에서는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꺼져는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나 검댕이 친구들이 주위에 모여들자
무지개 방울들은 퐁퐁 소리를 내며 터졌어요.
즐겁게 웃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 버렸지요.

꺼져는 더 이상 검댕이들과 있고 싶지 않았어요.

저 멀리 어둠 사이로 다시 무지개 방울이 보였어요.
집 안에서 아빠와 딸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어요.

꺼져는 음악을 들으며 방울들과 함께 춤추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따뜻하고 행복했지요.


갑자기 나타난 남자

딩동 딩동
쾅쾅쾅
“누구세요?”
“문 좀 열어봐요!”
그 때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어요.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네.”
남자 주위에 검댕이 친구들이 잔뜩 모여있었어요.

아빠와 딸은 앞으로 남자와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과연 꺼져와 검댕이 친구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 책을 처음 아이들에게 보여줬을 때, 4살 꼬맹이는 검정색이 무섭다며 같이 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1차 설득 실패.
책을 일부러 보이는 곳에 놔두고 적응 기간을 가졌지요.

다시 도전을 시작한 책은 첫장부터 강렬했어요.
4살과 6살 아이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단어가 크게 나와 있었지요. “꺼져!”
전 그래서 “나쁜 말을 하고 있어.”라고 좀 순화시켜서 읽어줬어요.

아이들 눈에도 계속 나오는 싸우는 모습과 슬프고 괴로운 상대방의 표정은 썩 좋지는 않았었나봐요.
하지만 읽어주는 엄마인 저는 속으로 크게 반성했어요. 부모가 아이에게 혼내는 장면도 있었거든요.
우리 아이들에게 차마 그런 장면들을 설명하기엔 부끄러워서 손으로 슬쩍 가리면서 “이렇게 싸우니까 표정이 안좋다.” 하며 넘어갔지요.

그리고 펼쳐지는 무지갯빛 방울들.
검댕이 꺼져의 눈에도 아름다운 방울들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에서 방울방울 생겨났고요.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 장면을 보며 즐거운 상상을 함께 해봤답니다. 책을 가리키는 아이들의 손 끝에도, 우리가 함께 읽고 있는 이 주변에도 무지개 방울들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어요.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방울들이 왜 검댕이 꺼져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었지요.

그렇지만 검댕이 친구들이 나타나면서 무지개 방울들을 사라져 버렸어요. 꺼져는 그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어하지 않았지요.

초등학생만 되어서 나쁜 말을 하는 친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게 더 낫다는 걸 분명히 이해시킬 수 있을 거에요.
그런 친구와는 단호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더 어린 아이들을 두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은 그저 별다른 설명없이 넘어가야 했지요.

그리고 아빠와 딸이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은 참 부드럽고 포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아이들과 가끔씩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며 즐겁게 놀아봤었으니까요.

그런데 층간소음으로 저녁에 시끄럽다며 찾아온 남자는 너무나 무섭게 생겨서 제 뜻만큼 안따라오려는 아이들에게 뒷부분을 읽어주려고 계속 애썼어요.

그리고 뒤에 나오는 반전같은 결말이 가슴 속에 확 다가왔습니다. 장면은 층간소음으로 대립하는 것이지만, 실은 아이들이 뭔가 잘못을 했을 때 제가 꼭 그 남자처럼 변하곤 했었거든요.
이 결말은 저처럼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 꼭 봐야하는 것 같아요. 반성 또 반성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 아이 그림책이 아니라 어른 그림책이구나 싶었네요.
특히나 어린 애들은 엄마아빠의 말을 그대로 따라해서 말조심해야 하는데, 다시 한번 저를 부끄럽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든 책입니다.

제 주위에 검댕이들이 많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지만,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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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무늬 -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을 껴안고 누워 있으며 생각한 것들
이다울 지음 / 웨일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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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울 - 천장의 무늬 / 웨일북


 

 

내 어머니, 나의 그녀 역시 저자처럼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은 다 잘했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테니스를 10년 넘게 치셨다. 그러던 분이 어느 순간부터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나의 그녀는 이런 말을 했었다.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나서 뼈라도 부러지고 어딜 다쳤으면 사람들이 많이 아프구나 알아주기라도 하지, 겉으로 봐선 성한 몸뚱이로 아프다 아프다 하니, 다들 ‘멀쩡한 얼굴로 어디 가서 아프다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런다. 그게 제일 듣기 싫구나.”
이 책을 본 순간 나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원인을 모르는 통증을 앓고 있는 저자는 어떻게 생활을 해왔는지 어떻게 버텨왔는지 몹시도 궁금해졌다.


작가 소개

#이다울
지망생을 지망하는 지망생 지망생.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웹 사이트에 수필 <등의 일기>를 셀프 연재하다 <<천장의 무늬>>로 출간했다. 대안 교육장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쓰고 찍고 그리는 것으로 관찰한 것들을 기록한다. 글과 그림, 사진 등의 기록을 pul-lee.com에서 감상할 수 있다.


목차



이 책의 매력

심하게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저자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썼을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궁금하면서도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아픈 이들을 대변하며 상황을 직시하고 주변에서도 이해해달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아프지만 열심히 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응원해달라는 것일까.
그러나 그 어설픈 의문은 책을 읽기 시작하며 저멀리 사라졌다. 이 책에서 아픈 저자는 매일 누워만 있고 매번 병원만 다니는 생활만 적은 게 아니었다. 저자는 통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줍잖은 위로도 바라지 않았고, 애써 씩씩한 척 하지도 않았다.

기록. 그 말처럼 자신을 관찰하고 덤덤하면서도 때론 생생하게 통증과 함께 하는 삶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동거하는 생활, 피임 걱정, 따뜻한 나라로의 해외 여행, 가족사, 다니는 병원과 먹는 약, 우울증 같은 기분의 변화 등 저자는 아픔을 가진 환자이지만 그렇다고 우울한 채로 사는 모습만 드러내지 않는다.

이 책의 매력은 솔직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프고 힘들다고 크게 울고 소리지르고 상대방과 싸우기도 하는 모습들을 과감없이 밝히고 있다. 이는 자신을 무조건 약자로 대해주고 배려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으니 칭찬해주라는 것도 아니다.
관찰하고 그것을 기록하여 보여준다는 것은 저자가 겪고 느끼고 생각한 바가 꾸밈없이 드러남으로써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인상 깊은 부분

굴뚝

소제목을 보고는 전혀 내용이 짐작되지 않는 이 에피소드는 저자가 3년 전 버스 정류장에서 한 여인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먼저 저자에게 말을 걸었던 중년의 여인은 대화 도중 혼잣말을 했었다.
그리고 3년 뒤에 전철역에서 다시 마주친 여인은 저자와는 달리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고 대화를 했으나 또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같이 전철을 타고 가면서 좀더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여인은 꾸준히 하나의 말을 혼잣말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에게는 통증과 아픔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크게 소리지르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여인의 혼잣말이나 저자의 혼잣말은 마음 속에서 삭혀지지 못하고 결국엔 터져 나와버리고 마는 말인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그런데 나는 세상을 떠도는 수많은 혼잣말과, 말로서 불쑥 튀어나오는 옛 기억의 모습이 그 속담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으로 삼켜지지 못한 말들이 침과 함께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음속 아궁이에서 뜨거운 불을 때다 결국 입으로 피어오르는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133~137쪽)

나도 혼잣말을 잘하는 편이다.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 참으로 뜨끔했다. 누군가에게 나도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 혼잣말이라는 게 가슴 속에서 응어리졌다가 결국 입의 굴뚝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말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가슴에 서늘하게 꽂혔다.
누구나 끙끙대고 말하지 못하는 불편하고 힘든 생각들이 있다. 마음의 아궁이는 언제든 뜨겁게 불을 땔 수 있는 것이다. 혼잣말을 한다고 이상하게 쳐다볼 것만은 아니다.


통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저자는 4년간 통증에 시달렸고 계속 시달리고 있다. 다만 아픈 몸으로 살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아픈 몸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누워만 있을 때는 쉬라는 말이 너무 싫었고, 조금만 몸 상태가 나아지면 움직이고 싶고 그렇게 했었지만 그것이 통증을 더 악화시킨다는 걸 체득한 뒤에는, 이제 쉴 때는 쉬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인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되도록 약을 챙겨 먹으며,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땐 바로 실행하기보다는 메모해 두었다가 몸의 상태가 더 좋아졌을 때 움직인다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한번도 아프지 않기란 어렵다. 아주 강건한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에는 몸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의지만으로 다시 해결이 안될 수도 있다. 최근 들어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처럼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필요한 게 아픈 걸 이겨낼 수 있다는 굳은 다짐과 앞으로도 굳건히 헤쳐나갈 용기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는 뭔가 부족하다면 저자처럼 지금의 사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덤덤하지만 천천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은 문화충전200% 카페에서 추천받고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지만,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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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 오십이 되면 다르게 살고 싶어서
최성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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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연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육아 시작하며 일을 그만두었고, 어느 정도 아이들을 키우고 나니 다시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경력 단절로 인해 능력은 부족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칠 때, 과연 나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 오십이 되면 다르게 살고 싶어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그 동안 해 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을 선뜻 시작한 저자의 용기가 부럽기도 했고, 또 노동자의 일은 경단녀인 저에게도 맞는 일일지 궁금해지기도 하여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자 소개

이러한 놀라운 생각을 하고 선뜻 행동에 옮긴 저자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저자는 대학교 때 피아노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연극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기도 하고 희곡도 쓰고 연출도 하고 연극 음악이나 무대 영상을 만들며 라이브 연주도 하고 최근에는 요가 강사일을 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입니다.

목차

 


노동의 시작, 그 산뜻함에 대하여

저자는 이 노동이 신성하다거나 몸을 낮추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시작은 돈을 벌기 위함이었지요. 산뜻하고 깔끔한 이유였습니다.
또한 이것은 수긍이 가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더 나은 월급을 주는 곳으로 선택했다는 당당하고 솔직한 저자의 자신감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독자들에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노동에 어떤 포장을 해대지 않는 것에도 사람들은 열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새로운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

저자는 자신이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새로운 세계가 내 사고의 지평을 열어줄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청소일을 시작할 수 있었겠지요. 고학력에 평소 몸을 위주로 하여 고된 일을 해보지 않은 중년의 여성이 시작하게 된 이 일은 어지간히 용기가 없으면 끝까지 버텨내기 힘든 일입니다.

저자와 함께 청소를 했던 십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언니들이 청소를 ‘해준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바로 공감이 되었어요.
저는 여고를 다니면서 한 학년 내내 화장실 청소 담당이었어요. ‘내가 이걸 치우지 않으면 화장실에 들어오는 친구들이 기분이 나빠질거야, 그러니 내가 해줘야지.’ 저도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었습니다.


청소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

저자의 글에는 촌철살인같은 말들이 많습니다. 청소를 하며 느낀 점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평소에 저자가 얼마나 진중한 생각을 하며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고 여겨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이 있기에 기사로 연재도 가능했겠지요.
제가 청소를 하고 있었어도 이런 생각을 품을 수 있을까 감히 비교해보자면 전혀 아니다입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 독자들도 저처럼 함께 열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일을 했더라도 이만한 깊이의 성찰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저자는 청소노동자의 일을 몸소 겪으면서 그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궂은 일을 뒤에서 묵묵히 하는 이들 덕분에 삶은 더 깨끗하고 편해지고 있지만, 노동자라는 이유로 윗선에서는 은연중에 타인에게서 그들을 보여주기식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여성 청소 노동자들에게 ‘아줌마’는 안되고 서로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부르라는 지시가 내려온 에피소드를 보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그 표현을 어색해하지만, 윗선에서는 보여주기식의 지시가 내려온 것이지요.
이는 흡사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휴게실이나 창고에서 고객들이 있는 문쪽으로 나올 때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삿말과 함께 허리 숙여 인사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전 그 모습을 보고 진정 누구를 위한 인사이고 호칭인지 조금 불편했었습니다.
그리고 유니폼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노동자들은 편하게 입던 작업복을 단지 윗선에서 보기엔 색이 촌스럽다는 이유로 그들의 눈에만 화사하게 보이는 불편한 디자인의 작업 유니폼으로 바꿔서 제공이 되었습니다. 일하는 이들의 고충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는 이들도 노동자의 옷차림을 신경쓰지도 않지만 이 역시 보여주기식으로 불편함을 밀어붙인 것입니다.
또한 안타까웠던 것은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행태였는데, 뭐만 없어지면 미화사무실로 전화가 온다는 에피소드는 낮은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얼마나 하대하고 존중하지 않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과 같았습니다.

한편으로 저자는 청소노동자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들을 날카롭게만 보고 있지 않는 것은 같은 일을 하면서 오는 인간적인 유대감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이 아무렇게나 옷을 입지 않는 에피소드에서는 출퇴근 시간만이라 하더라도 단정한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려 한다는 것임을 이해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주변인물에게 지대한 관심어린 시선을 쏟는 그들에게, 그 관심이 적대적이지 않고 따뜻하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걸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청소노동자들이 고된 노동과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지만 그러한 따스함으로 감싸 안으며 대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부분

1부. 겨울
몸이 하는 일을 마음이 모르게 할 수는 없다

청소는 사물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인데...
사람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금 상기했다.
언니들은 청소를 ‘한다’기 보다는 ‘해준다’고 여긴다. 공간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돌본다는 마음이 있다.
몸이 하는 일에 마음을 담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것보가는 훨씬 건강하지 않은가?
청소일을 제대로 하려면 마음를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9~32쪽)

3부. 여름
“네가 일을 느리게 해서 모두가 다 불편해!”


노동하는 내 몸이 상하지 않게 보호하면서 청소도 깔끔하게 하려면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일에 몰두하다 보면 속도가 붙어서 자기도 모르게 자꾸 빨리하게 된다. 천천히 일하는 것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후로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보다 정해진 시간에 끝내는 게 더 중요해졌다.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뭔가 뒤바뀐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하는 대로 맞추기는 했지만 마음 속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강도 높게 일을 한 다음 쉬는 것과 쉬는 시간은 없어도 여유 있게 일하는 것, 어느 쪽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일까?
‘천천히’ 일할 권리
빠른 속도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세상을 병들게 한다.
누군가를 배려할 때 우리는 결코 빨리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천천히’는 가장 따뜻한 사랑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106~110쪽)

4부. 가을
“딱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시키는 일만 하면 속 편할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라서 그렇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을 위한 일인지, 다른 일들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전체 계획 속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알면서 할 때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그냥 할 때, 일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느낌과 생각을 하나도 표현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니 오죽 답답하랴.
지시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 간에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데에서 느꼈던 좌절감을 그들은 그렇게 표현했다.
(132~133쪽)



추천하고 싶은 이들

이 책은 예술활동을 하던 저자가 50이라는 나이에 돈이 필요해서 과감하게 청소노동자의 일을 하며 느낀 바를 적은 것입니다.
저처럼 경력단절의 여성이라면 솔깃한 이야기에요.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고민인 사람들도 있겠지요. 이건 단지 직업 체험이 아니라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살이가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청소노동을 찬양하는 글도 아니고 이 일은 해볼만하다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 세계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의 일을 시작해야 할 때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와 기대를 가지고 해나갈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책입니다. 용기가 필요한 당신이라면 과감한 선택을 하고 그 속에서 내면의 세계를 넓히고 성찰한 이 책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를 추천합니다.



이 책은 문화충전200퍼센트 카페의 추천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딱일년만청소하겠습니다 #최성연 #위즈덤하우스 #문화충전200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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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 읽기
손문숙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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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독자인 저에게 ‘그녀들의 책 읽기’라는 제목은 많은 호기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녀들은 누구일까? 사적인 그녀들의 책 읽기란 무엇일까? 이 책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에 맴돌면서 책을 얼른 펼치게끔 만들었어요.


이 책을 쓴 저자와 동료들은 같은 직장에서 독서 토론 모임을 하는 여성들입니다. 흔히 토론이라 하면 하나의 논제를 두고 의견을 찬반으로 나누어 서로 경쟁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는 그런 찬반 토론이 아니라, 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식인 비경쟁 독서 토론을 하며 그동안 독서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들과 저자가 느낀 개인적인 사유를 담아서 에세이로 엮은 책이에요.

성인이 된 후에도 이러한 독서 토론은 왜 필요할까요? 그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는데요. 토론식 읽기는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그림책부터 시작해서, 학교에 들어가면 대학 입학의 최종 목표인 수능과 관련한 고전과 현대 문학도 상당히 많이 읽게 되지요.
이러한 양으로 승부하는 책 읽기 또는 어린 나이에 접하는 책 읽기는 얕은 지식으로 인해 깊이 있는 독서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에 이러저러한 경험치가 쌓이고 연륜이 생기면, 그 때 접하는 책 읽기는 배경 지식부터 달라져서 이해의 결이 달라지지요.

이 책에서는 중년의 여성들이 독서 토론 모임을 통해 얻는 효과를 밝히고 있습니다.
육아와 직장을 병행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여자들에게는 독서를 통한 자아 성찰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의 긍정적인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
여자들이 독서 토론을 하면 인생에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시기에 자아를 긍정적으로 형성할 수 있고 타인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며 자신의 고정 관념을 깨고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8~9쪽)


차례 구성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주제는 인간, 죽음, 여성, 사회입니다. 각각의 대주제에 맞는 도서를 6~9권 정도 선정하였는데, 작품의 줄거리에 더하여 사회 현상, 문화 현상까지 끌어오거나 비판하기도 하며 여러 사람이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깨달은 바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1. 인간 - 태어나서 사는 동안의 예의

1장에서는 <데미안>, <달과 6펜스>, <필경사 바틀리>,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 <여행의 이유>,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총 6권의 책을 두고 자유롭게 토론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거대하고 억압적인 부정적인 패거리 사회에서 개인적이고 자율적이며 가치있는 인간 개인을 알아가고 찾아내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요.
그러한 토론의 내용에는 현재의 사회 문제나 현상들을 같이 다루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이는 <담론>에서 길어 올린 많은 문장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55쪽)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 신영복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한 일화, 저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등의 저자의 생각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선 2016년의 촛불집회라는 사회 현상을 제시하며 그것은 인간으로서 책 읽기를 통해 세계관의 인식을 변화시켰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신영복 작가의 말처럼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의 필요성을 통해 책 읽기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죽음 - B와 D 사이, 그 어디쯤

2장에서는 <아픈 몸을 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죽음의 에티켓>, <삶의 한가운데>, <자기 앞의 생>, <페스트>의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을 다루며, 아픔과 고통이 주는 긍정적인 가치와 행복과 성장,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생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질병과 그에 수반되는 고통은 코로나19 사태도 큰 영향을 끼쳤기에 함께 언급됩니다. 최신의 사회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 독자인 저도 함께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자기 앞의 생>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프랑스 원제는 앞으로 남아있는 삶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는 핏줄로 이어지지 않았어도 가족이 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공개입양한 우리나라 연예인 부부의 이야기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결국에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야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며, 그들이 핏줄로 이어있지 않더라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돌봐주며 나아가 공동체 안에서의 연대감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3. 여성 - 깨어나고 있는 힘

3장에서는 <자기만의 방>, <82년생 김지영>, <딸에 대하여>, <페미니즘의 도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책들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페미니즘의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글을 쓰는 이 책의 저자와 독서 토론을 함께하는 주체들이 모두 여성이기에 페미니즘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독자인 저 역시 여성이니까요.
이번 장에서 지향하는 페미니즘은 초창기의 페미니즘과는 다르며, 또 달라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페미니즘 담론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성만을 위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이야기하여야 양성적인 담론을 담아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도 대학교 1학년 때 한 학기 동안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교양 수업을 들었었어요. ‘페미니즘’이 뭔지 스무살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어보기도 했고, 조별 과제로 우리나라 작가의 단편 작품으로 역할극을 해보기도 했어요.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그 때 배웠을 때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진일보하진 않았어요. 때로는 남여 성별로 나뉘어 혐오를 일으키는 과열화된 양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3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적 약자도 포용하고 남성도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는 의견은 여실히 와닿습니다.




4. 사회 - 타인에게 공감하는 우리

4장에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밤 산책>, <소년이 온다>, <거짓말이다>, <빅토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모멸감>,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아픔이 길이 되려면> 총 9권의 책을 두고,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차별에 맞서 도덕성과 양심을 살리고, 성숙함을 가질 것을 대안으로 제시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각각의 장들은 대주제로 구분되는 것 같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1장에서 인간이라는 대주제는 전체주의에 묻히지 않으려는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하나의 인격체에 대한 탐구라면, 4장에서 사회라는 대주제는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이 고통 속에서도 성장할 줄 알며 약자들과 연대감을 가지며 공동체 속에서 소신있는 시민 의식을 가져야 함을 이야기한다고 봅니다.




이 책의 매력


이 책은 하나의 도서를 선정하여 읽은 뒤 여러 사람들이 줄거리와 그와 관련된 사회 문화 현상들을 같이 이야기 나누고 토론하며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고등학생이 논술을 대비하거나 교양있는 성인의 자기계발, 생각하는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봅니다.
고등학생의 경우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이 책에서처럼 깊고 넓은 통찰력을 갖기에 쉽지 않습니다. 또한 혼자서 생각한 것과 여러 사람의 의견이 공유된 결과물은 깊이의 차이가 다르지요. 그러므로 어른들이 독서 토론한 책이지만, 학생들의 논술 대비용으로 오히려 더 좋은 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양을 넓히기 위한 입문 도서로서, 자기계발을 위해서도 활용할 만하고요. 타인의 생각을 공유하는 방법은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교양을 넓히는 자기계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시사적인 내용들이 함께 언급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더하여 또다른 생각거리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입니다. 토론하였던 책을 찾아 읽으며 다른 매체인 영화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찾아내 비교할 수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서두에 나온 것처럼 이 책을 읽는 것 자체로 독서 토론 모임의 긍정적인 효과를 느낄 수 있고, 독서 토론의 힘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 혼자서만 생각을 정리하였거나 다른 이들과 교류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코로나19 사태로 외부로 돌아다니지 쉽지 않은 현재의 상황 속에서 온라인 독서 모임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이 책의 매력에 공감하신다면 <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읽기>를 추천하는 바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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