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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행복
김미원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평점 :
#불안한행복 #김미원
수필집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삶의 관한 생각을 풀어놓는 책이라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은 분들의 경험 속에 녹아내린 지혜는 그저 쓰윽 읽히지는 않아요. 때로는 공감되지만 때로는 아리송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깊이가 다른 경험치에서 오는 차이일 수도 있고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기엔 아직 어릴 수도 있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작가님의 삶의 지혜를 다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삶을 먼저 살아온 연장자의 혜안을 느끼고 싶어서 이 책을 시작해 봅니다.
작가 #김미원
2005년 수필가로 등단해 수필집 <즐거운 고통>, <달콤한 슬픔>을 냈다. <즐거운 고통>으로 남촌문학상과 조경희수필문학상 신인상을 받았고, <달콤한 슬픔>이 세종우수도서에 선정되었으며 서정주문학상을 받았다.
차례
인상깊은 내용
<운다고 사랑이>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아버지 인생론 중에 ‘제비뽑기론’이 있다. 우리는 살면서 제비를 뽑으며 살아가는데, 어떤 때는 좋은 제비를 뽑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재수 없는 제비를 뽑기도 한다. 핵심은 이 제비가 확률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좋은 제비를 뽑으면 다른 사람이 나쁜 제비를 뽑을 확률이 높아지고, 내가 나쁜 것을 뽑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 좋은 기회가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제비를 뽑은 형제가 나쁜 제비를 뽑은 형제를 빚진 마음으로 도우며 우애 있게 살라고 하셨단다. 이 관계는 형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리라." (14~15쪽)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돈 있는 사람들은 계속 돈을 벌어들이고, 돈 없는 사람들은 교육 수준부터 부족하여 평생을 힘들게 허덕이며 살기도 하니까요. 늘 남보다 뒤쳐지고 인생이 쉽게 풀리는 일 없다고 한탄하는 시간이 많았었습니다. 어쩌다 찾아오는 행운은 ‘겨우 이 정도야?’라고 치부했었고요.
하지만 이 제비뽑기론의 확률을 읽으며 나의 행운은 또 다른 이들이 불운으로 가게끔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겸손해져야 하겠구나 싶어요. 나만 못난 것도 아니고, 영원한 불행도 없지요. 마음에서 확률 놀이에 사로잡혀 세상을 차갑게 바라보면 마음만 더 시려지는 고통만 낳을 뿐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바꿔주는 말 한마디를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이제,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희어지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읊었던 이백을 떠올리고, 태아에게서 죽음을 보았던 릴케를 떠올린다. 내가 우울한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기억하면서 삶이 더 행복해졌다. 한시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연필로 진중하게 꼭꼭 눌러 쓴 일기장처럼 인생을 살 수 있다. 어느 한 순간도 흘려보내지 않고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 정직하게, 에두르지 않고. 돌아가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아름다운 것들은 넘쳐나지 않은가." (30~31쪽)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에서 비슷한 내용을 읽었어요.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하건, 하루를 흥미로운 것과 좋아하는 것, 아이디어, 비전, 추억 들로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길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현재를 살기를 원할 것이다.’
왜 이렇게 생 앞에 닥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지, 삶이 짧은 순간에 주어지는 게 중요해지는 건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삶과 죽음은 흔한 질문이지만 답을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앤 라모트 작가나 김미원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두었다고 생각한다면 생의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하든 소중하고 가치있다고 여길 것이란 걸. 어떤 생각을 하든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며 날카로운 상처를 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지요.
삶이 더 행복해지고 한시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졌다는 작가처럼 우리네 삶도 이렇게 간절해지고 소중하며 생기있게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안한 행복>
“눈물은 사라져가는 숙명을 가진,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다. 약한 것, 흘러가는 것, 지는 것, 부서지기 쉬운 것, 남루하고 쓸쓸한 것에 대한 연민이다. 세상을 본 만큼, 세상을 돌아다닌 만큼, 책을 읽은 만큼, 사람을 만난 만큼, 경험한 만큼, 꼭 그 만큼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93쪽)
...
눈물을 흘리고 나면 눈동자도, 마음도 순해져 살아갈 힘을 얻는다.” (94쪽)
커갈수록 ‘울지 마라’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울어도 누군가가 달래주지만, 자라면서 눈물을 남 앞에서 보이면 나 자신도 당황스럽고, 보고 있는 남도 어쩔 줄 몰라하지요. 마음 속에 담긴 연민이나 슬픔을 눈물로 털어내는 건 되도록 혼자 있을 때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은연중에 남 앞에서 울지말라는 교육을 받았나봐요. 그건 나약해지지 말라는 뜻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강하고 승자가 되어야지, 눈물을 흘리며 연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주입식 교육을 누군가에게서 배웠을까요. 우리네 부모님, 아니면 선생님, 아니면 친구가 경쟁자가 되면서 그렇게 눈물을 마음에 꾹꾹 눌러담게 되었나 봅니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순해진다는 말을 읽고서야 비로소 편한 숨이 내쉬어집니다. 내가 누군가를 동정하거나 연민할 위치에 있는 존재인가? 무엇을 위해 눈물을 흘린 건지 내면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여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눈물의 순기능은 마음 한켠에 와닿습니다.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는 호르몬의 3년밖에 안 되는 유효 기간이 지나서도 부부가 사랑을 이어가는 것은, 그리고 곁에서 서로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것은 의지와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140쪽)
“같은 곳을 바라보고 힘들 때는 노를 대신 저어주고 서로 의지해가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네 짝을 밝은 눈으로 찾길 온 맘 다해 기도한다.” (165쪽)
사랑의 유효기간 3년은 많이들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 <중경삼림>에서 금성무가 맡은 캐릭터는 ‘내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지요. 불타오르는 열정의 시기가 지나고나면 부부 사이에는 이제 ‘전우애’나 미운 정’이 남아 관계를 지탱해준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을 합니다. 무엇보다 결혼을 해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한다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으려면 상대방에 대한 믿음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튼튼히 다져진 이후에 쌓아지는 것이겠지요. 돈이 없거나 불안하고 절망적인 순간에 마주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함께 헤쳐나가려고 마음먹을 수 있는 건 뜨거운 사랑은 아닐지라도, 또한 ‘사랑’이 아닌 감정으로는 답이 안나온다고 생각해요. 동정과 연민으로는 평생 함께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사랑이 있기에 확신과 헌신도 뒤따라올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작가님의 에세이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보게 합니다. 운에 대한 생각이나 죽음 앞에서 생에 더 충실해져야겠다는 다짐은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삶을 살아가게 해줍니다.
또한 여기에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다룹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있지만, 엄마로서 딸과 아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의 부모님의 고백처럼, 다정한 위로처럼 마음을 따스하게 해줍니다.
작가님과 어린 독자들은 경험과 연륜에서 오는 차이가 있다해도 이해하기 어렵다가 아니라 그 생각들을 함께 나누며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수필 한권을 읽으며 마음 한편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불안한 행복>을 추천합니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지만, 솔직한 저의 견해를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