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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무늬 -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을 껴안고 누워 있으며 생각한 것들
이다울 지음 / 웨일북 / 2020년 9월
평점 :
이다울 - 천장의 무늬 / 웨일북


내 어머니, 나의 그녀 역시 저자처럼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은 다 잘했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테니스를 10년 넘게 치셨다. 그러던 분이 어느 순간부터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나의 그녀는 이런 말을 했었다.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나서 뼈라도 부러지고 어딜 다쳤으면 사람들이 많이 아프구나 알아주기라도 하지, 겉으로 봐선 성한 몸뚱이로 아프다 아프다 하니, 다들 ‘멀쩡한 얼굴로 어디 가서 아프다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런다. 그게 제일 듣기 싫구나.”
이 책을 본 순간 나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원인을 모르는 통증을 앓고 있는 저자는 어떻게 생활을 해왔는지 어떻게 버텨왔는지 몹시도 궁금해졌다.
작가 소개
#이다울
지망생을 지망하는 지망생 지망생.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웹 사이트에 수필 <등의 일기>를 셀프 연재하다 <<천장의 무늬>>로 출간했다. 대안 교육장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쓰고 찍고 그리는 것으로 관찰한 것들을 기록한다. 글과 그림, 사진 등의 기록을 pul-lee.com에서 감상할 수 있다.
목차

이 책의 매력
심하게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저자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썼을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궁금하면서도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아픈 이들을 대변하며 상황을 직시하고 주변에서도 이해해달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아프지만 열심히 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응원해달라는 것일까.
그러나 그 어설픈 의문은 책을 읽기 시작하며 저멀리 사라졌다. 이 책에서 아픈 저자는 매일 누워만 있고 매번 병원만 다니는 생활만 적은 게 아니었다. 저자는 통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줍잖은 위로도 바라지 않았고, 애써 씩씩한 척 하지도 않았다.
기록. 그 말처럼 자신을 관찰하고 덤덤하면서도 때론 생생하게 통증과 함께 하는 삶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동거하는 생활, 피임 걱정, 따뜻한 나라로의 해외 여행, 가족사, 다니는 병원과 먹는 약, 우울증 같은 기분의 변화 등 저자는 아픔을 가진 환자이지만 그렇다고 우울한 채로 사는 모습만 드러내지 않는다.
이 책의 매력은 솔직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프고 힘들다고 크게 울고 소리지르고 상대방과 싸우기도 하는 모습들을 과감없이 밝히고 있다. 이는 자신을 무조건 약자로 대해주고 배려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으니 칭찬해주라는 것도 아니다.
관찰하고 그것을 기록하여 보여준다는 것은 저자가 겪고 느끼고 생각한 바가 꾸밈없이 드러남으로써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인상 깊은 부분
굴뚝
소제목을 보고는 전혀 내용이 짐작되지 않는 이 에피소드는 저자가 3년 전 버스 정류장에서 한 여인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먼저 저자에게 말을 걸었던 중년의 여인은 대화 도중 혼잣말을 했었다.
그리고 3년 뒤에 전철역에서 다시 마주친 여인은 저자와는 달리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고 대화를 했으나 또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같이 전철을 타고 가면서 좀더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여인은 꾸준히 하나의 말을 혼잣말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에게는 통증과 아픔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크게 소리지르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여인의 혼잣말이나 저자의 혼잣말은 마음 속에서 삭혀지지 못하고 결국엔 터져 나와버리고 마는 말인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그런데 나는 세상을 떠도는 수많은 혼잣말과, 말로서 불쑥 튀어나오는 옛 기억의 모습이 그 속담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으로 삼켜지지 못한 말들이 침과 함께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음속 아궁이에서 뜨거운 불을 때다 결국 입으로 피어오르는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133~137쪽)
나도 혼잣말을 잘하는 편이다.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 참으로 뜨끔했다. 누군가에게 나도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 혼잣말이라는 게 가슴 속에서 응어리졌다가 결국 입의 굴뚝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말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가슴에 서늘하게 꽂혔다.
누구나 끙끙대고 말하지 못하는 불편하고 힘든 생각들이 있다. 마음의 아궁이는 언제든 뜨겁게 불을 땔 수 있는 것이다. 혼잣말을 한다고 이상하게 쳐다볼 것만은 아니다.
통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저자는 4년간 통증에 시달렸고 계속 시달리고 있다. 다만 아픈 몸으로 살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아픈 몸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누워만 있을 때는 쉬라는 말이 너무 싫었고, 조금만 몸 상태가 나아지면 움직이고 싶고 그렇게 했었지만 그것이 통증을 더 악화시킨다는 걸 체득한 뒤에는, 이제 쉴 때는 쉬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인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되도록 약을 챙겨 먹으며,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땐 바로 실행하기보다는 메모해 두었다가 몸의 상태가 더 좋아졌을 때 움직인다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한번도 아프지 않기란 어렵다. 아주 강건한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에는 몸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의지만으로 다시 해결이 안될 수도 있다. 최근 들어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처럼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필요한 게 아픈 걸 이겨낼 수 있다는 굳은 다짐과 앞으로도 굳건히 헤쳐나갈 용기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는 뭔가 부족하다면 저자처럼 지금의 사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덤덤하지만 천천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은 문화충전200% 카페에서 추천받고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지만,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