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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과 광기의 시대, 그 근원에 관한 도발적인 탐구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서스테인 / 2024년 3월
평점 :
진짜 정말 책을 좋아하긴 했어도 책 읽으면서 속이 뻥 뚫리고 카타르시스까지 느낀 적은 이 책이 처음이다. 진짜 감히 나에게는 최고의 책이었다고 말해본다. 영국에서 1년 공부한 후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라 생각하고 깨끗하게 접고 들어왔는데, 저자가 영국에서 연구하고 계신다고 해서 이 나이에 다시 영국으로 유학 가서 배워야 하나 고민까지 진지하게 했다.
물론, 나와는 이 책을 읽고 '그 정도는 아닌데?' 할 수도 있다. 줄 서는 맛집도 사람에 따라서는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느 책을 읽어도 이렇게 도발적이면서도 주장이 독특하고, 그러면서도 여러 증거로 반박이 어렵게 만드는 책은 못 봤다. 그리고 주말 내내 진지하게 고민했다. 서평을 뭐라고 써야 하나. 뭐라고 써야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을까.
저자인 스티브 테일러 교수는 지난 6000년간 인류가 집단적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전쟁, 가부장제, 사회적 불평등을 주장한다. 기원전 4000년 이전에 살던 인구는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성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폭력도 거의 없는 '모성선호' 사회를 이루다가 급격히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인류가 새로이 지적 능력과 인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독립된 자아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나와 타인을 구분하고, 나와 자연을 구분했으며, 성별과 특징이 다른 사람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물론 독립된 자아와 인식의 발달로 과학과 문명도 발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아가 독립되면서 우리는 타인을 죽이기 위해 전쟁을 하고, 여성을 억압하고 학대하기 위해 수천 년간 갖은 노력을 했으며, 극소수가 전체를 지배하는 극단적 불평등을 겪으며 살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여자가 히잡을 쓰고 남편의 허락이 없으면 외출조차 어려운 나라가 있고,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끝도 없는 권력과 재물의 탐닉이 벌어지고 있다. 너무 과장인 것 같다고? 반박 시 당신 말 다 맞음.
우리는 흔히 원시시대는 무엇이든 미개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평균 수명이 40년 내외였던 시기, 남겨진 아이들은 공동체 전체에서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별 않고 돌봤으며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나눠져 있지 않았고 지금처럼 대규모의, 그리고 잔인한 전쟁이 있었었다는 증거도 없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낌새가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리더가 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모든 게 반대로 돌아가는 지금 사회는 정신병을 앓다 앓다 못해 내가 사는 지구까지 되돌리지 못할 지경으로 망가뜨리고 있다. 이게 미친 짓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지만 너무 낙담하지 말길.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정화 노력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전쟁을 막으려는 노력,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 그리고 좋든 싫든 가부장제는 점점 구시대의 산물로 바뀌어가고 있고, 환경을 살리려고 ESG 열풍까지 불고 있다. (물론 선진국들이 혼자 다 해 먹으려는 검은 속내가 살짝 있기는 하다.)
저자는 모든 것이 공감 능력의 문제라고 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 자연에 대한 공감이 바탕이 된다면 사회가 이렇게까지 어지럽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은 부분은 특히 환경과 가부장제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렵거니와 주제의 특성 상 쓸데없는 논쟁을 불러 일으킬 것 같아 너무너무너무 더 쓰고 싶지만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반박 시 당신 말이 다 맞다. 다만 이 저자는 굉장히 방대한 양의 지면을 (약 400페이지) 신화와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주장을 펼쳤음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