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예언으로 - 작은교회 30년 이야기
곽은득 지음 / 하늘향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책 <기억에서 예언으로>의 부제는  '작은교회 30년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한 개인의 역사이면서, 한 교회의 역사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책은 그치지 않는다.

한 개인과 교회가 한국사회를 업고 지나간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개인과 교회 공동체와 한국사회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때로는 헛헛하고 투박하지만

슬프지만 기쁘게 아련하지만 감동적으로 잘 만들어냈다. 

 

1. 30년이란 숫자에 기가 죽는다.

 

이 책의 저자 곽은득 목사님은 은퇴목사이자 원로 목사이다(원로는 한 교회에서 20년을 목회한 목사에게).

후배에게 모든 것을 깨끗하게 물려주고 일찍 은퇴하신 목사님이다.

교회법이 정한 은퇴 연세는 아직 아니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도시교회를 뒤로 하고 시골교회를 개척하여

외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먼저 은퇴를 결심하고 후배에게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보기 드문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전임목사와 후임목사 간의 갈등으로 인해

많은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2. 한국사회와 함께 걸아간 교회 이야기

 

곽은득 목사님이 개척하신 교회는 도시의 번듯한 교회가 아니었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목회하시다가 1980년 초반

새로운 길을 열어 젖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홀로 걸어가셨다.

경북 군위군 효령면 매곡리에 '작은교회' 시골교회를 일구셨다.

대구에서 목회 초년생으로 단독으로 전도사와 담임목사의 길을 거치면서

공장 근로자들과 노동자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우셨던 길.

노동운동을 하고 산업 선교를 하며 지나온 길.

앞으로의 세상은 이 땅의 예언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요청했던 바,

곽은득 목사님은 생태, 자연, 환경, 흙살림 등등의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는 생명목회를 시작하셨다.

성장 시대의 한국사회와 성장 시대의 종언을 알리며

새로운 길로 들어서기를 기대하는 우주의 바람에

한 걸음 먼저 움직이셨다.

<기억에서 예언으로>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한국사회와 동고동락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은 잘 접할 수 있으리라.

이 책에는 많지 않지만 목사님의 생생한 당시의 목회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설교의 형태로.

목사님이 손수 만드신 주보(소식지)에 실린 내용들을 책에 인용하셨다.

 

3. 서사(이야기)가 있는 책

 

곽은득 목사님은 '작은교회 30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셨냐면,

이야기 형식을 사용하셨다.

질문자와 답하는 자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끌어 가셨다.

질문자는 후배 목회자로, 답하는 자는 본인 곽은득으로.

주고 받는 식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의 폭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후배 목회자가 직접 곽목사님을 찾아가서 인터뷰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곽은득 목사님은 이야기 형식으로

후배 목회자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설정해 두었다.

감쪽같이 인터뷰한 글이 아닌가 할 정도로 완서도 높게 질문자와 답하는 자의 이야기글을 이끌어 갔다.

 

이런 이야기의 짜임새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곽은득 목사 본인의 삶에서 나온 것이다.

저자의 삶 자체가 이야기 보화로 가득 차 있다.

그 이야기는 성도들의 이야기 - 다른 말로 곽은득 목사가

보듬고 함께 살아온, 살아간, 살아갈 노동자와 농민

아들 딸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 와 곽은득 목사의 이야기가

섞이고 반응하고...

굳이 어려운 정, 반, 합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인생 이야기.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로서는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그런 어른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보는 이 없이 홀로 걸어왔기에

더더욱 곽은득 목사의 서사에는 힘이 있고 메시지가 강렬했다.

삶 자체가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과 메시지가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어

실천된 삶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설교 잘하는 목사, 대형교회 목사, 도시교회 목사가 다 필요하다.

시대를 보며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에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개인 개인으로

개성있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인간 이해를 우리가 온전히 알고 있다면

우리의 목회도 저기 어딘가에 하나의 별이 되고, 빛이 되고,

모래가 되고, 흙이 되겠지.

그러면 우리도 한 길로 비틀거리지만 정의의 길로 걸아가겠지.

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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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서 예언으로 - 작은교회 30년 이야기
곽은득 지음 / 하늘향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볼 수 있다!˝ 부제가 작은교회 30년이야기이다. 두껍지 않지만 30년 세월이 여기 이 책에 치열하게 녹아져 있다. 곽은득 목사님의 삶과 개인의 이야기, 작은교회가 한국사회를 업고 지나온 여정을 가슴 뜨겁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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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 공동체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1
브래드 이고우 (Brad Igou) 지음 / 들녘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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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미쉬 공동체

 

이 책은 생태적 삶을 위한 귀농총서 11”아미쉬의 목소리로 듣는 그 치열한 삶의 기록을 부제로 하고 있다. 제목은 아미쉬 공동체이다. 이 책은 브래든 이고우의 글로서 생태마을 연구회에서 옮겼다. 생태마을 연구회는 백승우, 안선희, 신은정, 최이규, 윤희정으로 보인다(책 날게 참조). 브래든 이고의 글이라고 말하기에는 약간의 설명의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도 엮은이기 때문이다. 아미쉬 정기간행물 <패밀리라이프>에 실린 글들을 스크랩하면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미쉬를 간결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6세기 종교개혁에 뿌리를 두며 제세례파의 한 분파로 야곱 암만의 이름을 따서 아미쉬라고 부른다. 재세례파는 루터나 칼뱅처럼 한 명의 지도자를 갖지 않았고 여러 공동체로 모여 각각의 지도자가 그 공동체를 섬겼던 것 같다.

 

우선 저는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데 노력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품절된 상태이고 엮은이 소개까지 491쪽의 분량이다.

책의 주제와 내용도 광범위 하거니와 분량도 많다. 반면에 대중의 관심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미쉬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들이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어떤 글은 내용의 제목을 달았고 어떤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바라기는 22쪽 분량의 발췌 요약본을 천천히 읽어 보시길 바란다.

무엇보다 기독교의 다양한 여러 흐름들(재세례파) 중에 아미쉬.

그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갖고 살아갔는지

그들이 모습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그 관심을 통해 현재 이 땅의 그리스도인(기독교인)이 얼마나 잘 믿는지

얼마나 바르게 사는지 가늠해 보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을 성찰하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부터 말씀에 비추어 바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부터.

 

40

 

아메리카를 향한 두 번의 이주 물결

 

아미쉬 이주자들과 그들의 가족에 관해 정확한 수를 알기는 힘들지만 역사학자들은 1700년대 첫 번째 이주 시기에는 남자와 여자, 아이를 포함해도 5백 명이 채 안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800년대에 이주해온 3천 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오늘날 아미쉬의 대다수는 첫 번째 이주 물결의 후손들이다.

 

(중략)

 

현재 아미쉬의 많은 성 가운데 1700년대에 들어온 것은 다섯 가지 뿐이다. 히딩스(Headings), 글릭(Glick), 카임(Keim), 레노(Renno) 그리고 리엘(Riehl)이 그것이다. 반면에 서른 두 개의 성은 1800년대에 들어왔다.

 

57

 

올드 오더와 개방 세력의 분열

 

아미쉬 올드 오더 아미쉬

 

아미쉬 메노나이트 메노나이트 교단과 통합

 

59

 

정착지

 

1974년 이후 설립된 버지니아, 네브라스카, 온두라스, 파라과이를 포함한 15개의 정착지가 1984년 경에는 모두 사라졌다.

 

63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 조나단 주크(Jonathan Zook)

 

둘황이 닥친 시기동안 공동체 식구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고 따라서 공동체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됐지요. 그러나 이제는 변해 버렸어요. 손쉽게 너무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너무 많은 세속적인 물건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지요.”

 

74

 

아미쉬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미쉬가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만일 어떤 것이 우리의 영혼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우리 자신을 단련시킵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소유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릅니다.

 

78

 

세속이라고 하는 우상

 

우리들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메노나이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전통적인 스타킹, 소박한 소재로 만든 정숙한 길이의 드레스에 에이프런과 케이프, 전통적으로 턱에 끈을 묶는 기도 모자 등을 모두 착용했다. 남자들은 멜빵을 하고 오르드눙의 코트를 입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하나둘씩 변해갔다.

 

(중략)

 

불과 20년 동안, 전통적으로 머리를 자르지 않던 메노나이츠 여성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기 시작했다. 많은 메노나이츠가 이러한 변화를 개탄했지만 그와 무관하게 그 같은 변화는 끝내 일어났다. 문제는 왜 이 같은 변화가 발생했는가?”이다. 세속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들처럼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경향이 공동체 내부에서 생겼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장 핵심에 닿아 있는 것 같다.

 

94

 

예방 접종

 

예방 접종을 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중략)

저는 아이들을 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방접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들으면 생각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말을 맨 마차에 남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마차바퀴에 아이가 끼었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태연히 대답했습니다. “, 하느님을 믿으세요. 아이를 보호해 주실 거예요.” 나는 그와 같은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의 몫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95

 

사회보장제도

 

우리는 정부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로부터 우리를 제외해 달라는 청원을 냈습니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이 청원서에 서명했습니다. “나는 나의 종교적인 신념(마태복음 634절의 가르침)을 근거로 노후와 재난에 대한 보장을 진심으로 거절합니다. 마태복음 631~33절과 시편 377~25절의 말씀에 따라, 나는 하늘에 계신 주 하느님께 나의 미래를 맡기고자 합니다. 나는 병에 걸리거나 다른 이류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부의 보조를 받는 것보다는, 우리가 아메리카로 건너오기 전부터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방법으로,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교단이 나를 보살펴 주리라 믿습니다.”

 

매년 수천달러의 기금이 우리의 노인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이웃을 돕기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웃의 무거운 짐을 나누기 위해 좀 더 많은 사랑과 돈, 노력을 우리가 준비할 수 없게 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아미쉬 사람들이 정부 기구에 모습을 나타내게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99~100

 

교회와 정부

 

범죄행위를 정부기구에 고발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 말고도, 정부에 대한 우리들의 책임은 얼마 만큼인가라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최근에 나는 우연히 이웃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을 크리스천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중략)

나는 그 사람에게 크리스천으로서 누구를 심판하여 벌주거나 복수를 하는 짓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더욱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용서하고 다른 쪽 뺨을 내주라고 가르쳤다. 그것이 나의 견해이고 우리 교회의 입장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정부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정부로 하여금 선을 지키고 악을 응징하도록 하셨다(로마서 13). 정부의 역할은 고대 모세의 율법 눈에는 눈, 이에는 이(출애굽기 2121~25) - 에 기초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정의로운 법 집행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면, 사형을 집행하는 데 대해 정부를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략)

나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은 다르며, 따라서 교회와 정부는 영원히 분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예스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다.

 

102~103

 

노동조합 그냥 사인만 해주세요.

 

(중략)

우리는 노조가 하는 모든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노동조합은 여러 차례에 걸쳐 폭력적인 행동과 불법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오하이오에서 트럭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예닐곱 명의 사람을 살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략)

전반적으로 볼 때, 노동조합이 활동하는 방식은 진정한 크리스천의 방식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조는 회사에 대해 이러저러한 일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말합니다(로마서 1217).

(중략)

한마디로 말해서 노동조합은 힘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과 착한 행실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교회에서는 누구에게도 교회에 가입할 것을 강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사람들이 교회에 가입하고 싶은 마음이 일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저는 노동조합도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105

 

이미지 또한 반대한다

 

자잘한 조각물이나, 골동품이나 사진을 주변에 늘어놓는 것은 플레인 피플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것들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은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전혀 맥락이 다른 얘기인 출애굽기 204절을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108

 

조각상에 대한 반대

 

(중략)

그렇지만 이 구절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 플레인 피플의 전통적인 사진에 대한 거부감과 카메라 앞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경향은 우상화를 경계하는 계명과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중략)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은 외향적인 인간을 찬양하는 세속의 그릇된 세계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략)

결혼식과 같은 행사 때마다 드레스와 장신구에 너무나 많은 신경을 쏟고 있는데, 이 또한 큰 문제다. 특별한 행사를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행사를 마치고 사진관으로 향하는 것은 그릇된 가치와 비기독교적인 장식에 대한 욕망을 증가시킬 뿐.

 

이어서 109

(중략)

또 하나 살림의 문제가 있다. 사진은 무척 비싸다. 일단 교회가 그것에 휘말리게 되면 장비와 필름값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끝이 없어 보인다.

 

이어서 110

우리는 티끌 같은 존재들이고 결국엔 티끌로 돌아갈 것이다(창세기 319).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한낱 흙으로 빚은 집에 불과한 것을 사진을 찍고 틀을 짜고 광을 내서 벽에 걸어놓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자의식을 키워서 우리들 자신에게 조각 이미지를 들씌우는 일이 없도록 하자.

 

118

 

결혼, 가장 신성한 제도

 

아미쉬들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를 하나님과 교회 간의 관계로 등치시키곤 한다.

 

이어서 119

(중략)

재혼이 하나의 선택 사항으로 남아 있다면, 화해라는 것이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다.

 

124

 

명확한 역할

 

여성의 존재가 남성에 비해 똑같이 소중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질문조차 될 수 없는 질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남녀가 동등하다는 것을 분명히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말이 곧 똑같은 소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 많은 여성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이것이다. 얼마나 동등하든지 간에 남자는 어디까지나 남자이며, 여자는 어디까지나 여자다. 각각은 위대한 창조자에 의해서 각기 다르고 분명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만약 결혼생활이 절반씩의 역할 분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가정에는 두 사람의 지도자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도 위배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어떤 사람이 썼듯, “한 사람 이상의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반드시 그 관계의 주도자가 있어야 한다. 작거나 크거나, 상업적이거나 박애주의거나, 세속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간에 어떠한 단체라도 한 명 이상의 지도자를 보유할 수는 없다.”

 

137

 

인디애나 할머니의 기억

 

점심 후엔, 아빠가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의 낮잠을 재웠다. 4시나 4시 반이 되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집안일을 하러 들어왔다. 우리는 함께 일했다. 저녁식사 후엔 그들은 전부 공터에서 놀았다. 때때로 나는 아빠가 공터에서 함께 노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일했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아빠가 그들에게 해준 어떤 것보다 함께 놀아준 시간들을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147

 

농사 못 짓는 농부와 공동체

 

이때 다행히 같은 공동체에 사는 한 분이 자청해서 이들을 돕기로 했다.

(중략)

올드 오더 교단은 농사를 짓는 가족에게 어떤 식으로든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른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보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172

 

목수인 나는 ……

 

자영업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면제해주도록 조처한 미 정부에 대해 나는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이런 면제 조치는 또한 몇몇 사람들이 동업자로서 함께 일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고, 또는 혼자서 자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 그들은 사회보장세를 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설사 세금을 낸다 해도 우리는 퇴직한 이후 연금을 받아선 안 된다. 비록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퇴직을 하게 되면 달마다 들어오는 사회보험금을 신청하고픈 유혹이 매우 큰 것은 사실이다. 돈이 필요하든 않든 말이다.

 

(중략)

그러나 대략 10, 15년 전쯤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정부 보조금이 있는데, 매우 비싸진 땅 값 때문에 지금은 그것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연방 주택공급 당국이 지방은행을 통해 생산물에 대한 충분한 신용을 얻지 못하는 농부에게 융자를 해주는 것이 그것이다.

 

173

 

값을 따질 수 없는 우리의 전통

 

우리들의 사명은 가정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하는 것이다. 선교를 위해 머나먼 외국땅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값으로는 셈할 수 없는 소중한 전통을 물려주는 것이다.

 

176

 

가정과 학교는 성공적인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함께 협력한다. 원룸교실 사립학교(private one-room schooling)가 보편화되어 있는 아미쉬 공동체에서는 8학년 동안 부모가 아이들의 생활과 교육에 공동으로 참여하며, 그들은 삶에 필요한 기술과 배움이 단순히 책상머리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79

 

낭비?

 

몇 년 전 공립학교의 한 선생님이 아미쉬 학부모에게 말했다.

트로이어 씨, 당신의 아들 베니가 아주 굉장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세요?”

(중략)

아미쉬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선생님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달랐다. 학교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내내 중얼거렸다.

진짜 엄청난 낭비고 말고. 그런 재능이면 박사는 충분히 되고도 남을 텐데, 의사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거고. 정말 뛰어난 예술가나 문학가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그런 재능을 가지고 고작 구닥다리 농장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평범한 농부들처럼 흙이나 만지고 산다는 건, 아무렴, 정말 낭비고 말고.”

 

낭비라고? 물론, 베니가 세상에 나갈 수도 있다. 그리고 부와 명예와 행복을 움켜쥘 수도 있다. 그런데 만일 베니가 자신의 영혼을 잃는다면 어떤가? 그것이 모든 낭비 중에서도 가장 큰 낭비가 아니겠는가?

 

184~185

 

세대차

 

300년 전에는 아이들이 성장 기간 동안 항상 자기 부모와 함께 있었다. 물론 거의 모든 사람이 문맹이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갖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아이들이 제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써버리고,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얼마 안 되는 현재의 상황이 가져올 위험에 대해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학교를 가지고 있는 일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이 좋지 않은 친구를 사귀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친구라 하더라도, 만일 그것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를 손상시키게 된다면, 위험천만이라는 점을 우리는 똑바르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우리에게 한 가지 모토가 있다. “가족이 늘 함께 기도를 올리면, 늘 함께 할 수 있다.” 이것은 단 몇 마디 말로 아주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아주 충분하지는 않다. 확실히 너무나 단순화시키고 있다. 제대로 된 가족이 되려면 함께 기도드리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함께해야 한다. 함께 노동하고, 함께 친구를 방문하고, 함께 읽고, 함께 계획을 세우고, 함께 먹고, 기쁨과 슬픔, 희망과 낙담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족은 함께 살아야한다.

 

219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

 

나는 최근 오타와의 한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어떤 대목을 보게 되었다. 캐나다의 통계청에 따르면 1984년 이후 1백만이 넘는 소년들이 빈곤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빈곤 어린이 분담금(tax credit)이 어린이 한 명당 565달러로 증가되었다. 이는 6살 이하의 어린이에게 2백 달러씩 지급해주는 것이 포함된 것으로 이로써 어느 정도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중략)

정부보조금이나 가족수당 지급을 받아들이지 않는 플레인 피플은 자신들과 아이들에 대한 그 어떤 특별보조금도 스스로 거절하고 있다.

 

224~225

 

아미쉬 교회당(Meetinghouse)

 

우리들 아미쉬는 교회를 특정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미국으로 이주해서도 우리는 개별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관습을 지켜왔다.

 

유럽에서는 교회당을 세우고 싶어도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중략)

반면, 농장도 소유할 수 있고 큰 건물도 지을 수 있는 미국 땅에 정착하고 나서는, 각 가정이 돌아가며 예배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교회당 짓는 것을 쉽게 허가하기는 했지만, 초기 이주자들은 그저 개별가정에서라도 예배를 계속 할 수 있는 현실에 흡족했다.

 

226

 

비용이 많이 드는 교회

 

학교 세우고 관리하는데 돈이 너무 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아미쉬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교회에 돈을 댈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해야 한다. 위니펙에 있는 대교회에서 실시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그 교회 예배자들은 주일마다 한 시간씩 예배하는데 연간 3만 달러가 든다고 한다. 한 시간에 5백 달러 이상이 드는 셈이다. 이런 계산대로라면, 3시간 동안 계속되는 아미쉬의 예배에는 1,500달러가 들게 되는 셈이다!

 

우리 아미쉬들이 이들보다 훨씬 싸게 예배드릴 수 있는 간단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제에게 지불하는 연간 수천달러에 달하는 급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가대에 연간 6,812달러나 주어야 하는 돈도 지불하지 않는다. 예배를 위한 교회건물에 드는 727,550달러 역시 필요 없다. 또한 우리는 77,851달러짜리 오르간이나 25천 달러 상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 없이도 살아가며, 3천 달러 상당의 카펫위를 걸어가는 일도 없다. 우리 공동체의 공동그릇에 3,727달러나 들이는 일도 결코 없고, 의자와 교상에 27,825달러를 쓰는 법도 없다. 우리의 예산대로라면, 위니펙 교회가 열두 개짜리 황동접시 세트를 사면서 쓴 240달러까지도 절약할 수 있다.

 

233

 

찬송에 대한 찬양

 

역사적으로 느리게 노래하는 것은 재세례파 사람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신앙을 위해 순교하며 그들은 죽을 때까지 노래했을 것이다. 이네들을 비웃으려고 당시 사람들은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재세례파 사람들은 그래서 느린 곡조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찬송으로 우리는 신을 찬양하며 경배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교화될 수 있다. 이러한 찬송은 화음을 넣어 네 파트로 나누거나, 효과음을 넣어 부를 필요가 없다. 이런 것들이 찬송가에 보태지면 가사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감흥은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음악과 음성에 신경쓰게 될 위험이 있다.

 

이어서 오래된 찬송가 부르기

 

우리 아미쉬 교회에서 느린 곡조로 찬송하는 것은 정말로 특별한 부분이다. 아미쉬들은 수백 년 동안 이런 곡조를 고수하며, 세대에 세대를 거쳐 전승해오고 있다. 이렇게 오래된 노래를 부르는 읽은 곡식을 심기 전 마지막으로 밭을 가는데 비유할 수 있다. 찬송은 마음을 열어 기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야 한다.

 

237

 

세례란 단순히 교회에 들어가는 의미뿐일까?

(중략)

강론 중 세례지원자들은 요란한 복장에 어색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스스로 속세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일이 목도되고 있다는 것은 신앙문화로 강등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262

 

아미쉬 공동체의 생활에 관한 것들 중 징계나 제명, 따돌리기와 같은 규율에 관한 것만큼 오해받고 있는 것도 드물다.

(중략)

하지만 1963년 아미쉬가 생겨난 후로 지금까지, 따돌리는 이러한 징계방식은 아미쉬의 생활양식을 보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어서 263

 

현대 아미쉬 올드 오더는 엄격한 따돌리기의 방침을 가진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대략 두 곳으로 나눌 수 있다. 엄격한 따돌리기는 좀더 개방적인 조직에 참여한 교인을 제명하거나 기피하는 방침을 말한다. 개방성에 대한 뚜렷한 판단기준은 현재 그 단체가 얼마나 개방적인 곳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자동차의 소유 여부로 판단한다. 이런 처벌의 근거는 교인이 세례의 맹세를 어기고 속세의 재물을 탐하며 불만을 내비쳤다는 데 있다.

 

1693년 아미쉬-메노나이츠 분리의 징조가 나타났다. 야콥 암만과 한스 라이스트가 두 그룹으로 갈라섰을 때, 그 견해 차이 중 하나가 따돌리기를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아미쉬는 추방당한 교인들과 매일 함께 음식 먹는 것조차도 삼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어서 264

 

(중략)

여기에서 문제의 난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진실한 교회는 하나인가 또는 여럿인가에 관한 문제제기이다. 이것은 실제 야콥 암만 시대의 이슈였다. ‘시실한 자는 주립교회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황도 변했다. 라이스트와 암만이 신실함에 대해 의견 차이를 보인 후 3백년이 지났다. 이제는 어쨌든 아미쉬 중에서 야콥 암만이 믿었던 식으로 진실한 교회가 오직 하나뿐이라고 여기는 그룹은 거의 없다.

 

265

 

교회의 분열

 

교회 분열의 원인 다섯 가지

 

1. 가르침의 부족 : 분열의 해악을 막을 가르침이 슬프게도 부족하다.

2. 겸양의 부족 : 패기만만한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너무 많다.

3. 소통의 부족 : 오해가 생겨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이러한 상처들을 빠르게 치유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가끔 둘 간의 문제가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이럴 때엔 교회의 다른 형제와 자매들로부터 특별한 충고와 조언을 구해야 한다. 그래도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으면 교회 전체 차원에서 평화와 조화를 복원시키는 쪽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끔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마태복음 1815~20). 물론 가끔씩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곳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공정한 해결을 위해 이웃 지역의 수품자에게 부탁할 수 있다.

4. 규율의 결여 : 규율은 어디서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려 살기 위해 중요하며 교회 안에서는 특히 더욱 그렇다.

5. 인간적 평온함의 부족 : 소박한 교회에서 해마다 속세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면 교회에서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278

 

누가 옳았나?

 

따돌리기에 대한 당신의 글은, 아미쉬 교회를 소중한 남자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으로 얘기를 마쳐야 했습니다. 제 생각에 당신은 지나치게 많은 말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것이 누가 옳았는지를 입증하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답] 누가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오직 성경만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우리는 누가 옳은지를 증명한다는 당신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사건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279

 

단 한 걸음

 

육신의 욕망을 거부하고 겸손한 순종의 삶을 통해 오로지 예수님을 따르려는 목적 아래, 우리를 도와줄 교우들과 교회의 지도 및 조언이 필요하다. 성경의 표현처럼 누군가 신의 명령에 근거한 교회 규칙에 순종하기 어렵다면 그의 믿음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은 겸양과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288

 

모순적으로 세상에서 가끔씩 아미쉬 차림의 단순함이 유행하기도 한다. 1990년 초반, 보그 잡지에 날씬한 금발의 모델이 아미쉬 옷차림을 하고서 랭커스터 카운티에서 찍은 사진이 특집으로 실렸다. 몇몇 아미쉬들은 배포된 사진의 가격도 보기 전에 이미 충격 받고 놀랐다. 대부분의 아미쉬들도 자신들 옷차림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소박한 옷차림은 단순히 생활하는 양식이 되어 버렸다.

 

292

 

단추 : 왜 이렇게 다른가

 

지금은 사소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당시에는 심각한 문제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가에 따르면, 오래 전 아미쉬들의 복장규정 중 하나는 단추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메노나이츠는 단추를 다는 사람들로 간주되었고, 반면 당시 유럽지역 일부에 살았던 아미쉬는 똑딱단추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중략)

우리는 단추의 역사를 통해 이면에 놓인 진정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세계백과사전은 다음고 같이 적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오늘날의 단추는 중세시대에 처음으로 중요한 영구적인 복장의 요소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흘러내리는 천을 고정시키는 수단으로 언제든지 뺄 수 있는 핀을 더 선호했다. 단추는 13세기 꽉 조이는 옷이 유행하게 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17세기와 18세기 남자들은 다이아몬드 단추의 수와 크기로 부를 과시하기도 했다. 호화스런 단추가 파리 남성들의 옷차림에서 크게 유행했다. 장인들은 사치스런 단추를 만들기 위해 조각한 상아에 거북껍질을 박아 넣거나 자게를 새겨 넣는 일을 했다. 남자들은 한 세트에 열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단추를 하고 다녔고, 이런 얘기들이 당시의 대화거리였다.

 

이 시기는 보통 사람들도 아름답고 눈부신 단추를 이용할 수 있게 된 때이기도 하다. 생산량이 증가했을 뿐 아니라 종류도 풍부해져 많은 이들이 원하는 단추를 살 수 있게 되었다. 파리에서 단추가 가장 널리 유행했기 때문에, 야콥 암만 시대의 파리에는 틀림없이 유행의 첨단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백과사전은 단추가 갖는 군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남성복에는 단추가 오른쪽에 달렸다. 반면 여성복에는 왼쪽에 달려 있다. 한때는 남성과 여성의 옷 모두가 왼편에 단추를 달았다. 그러다가 중세시대 왼손으로 재빨리 코트를 젓히고 오른손으로 검을 뽑을 수 있게 하려고 남성의복의 단추를 오른쪽으로 옮겼다.

 

필시 야곱 암만 시대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왜 기독교인이 값비싸고, 화려하고, 눈에 띄는 단추로 자신을 치장하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똑딱단추만큼 편리하고 실용적인 것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295

 

미사포와 보닛

 

오히려 재세레파 기록에는 여성의 미사포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신앙고백 열어덟 개 조항(1632년 도르트레히트)에도 미사포에 관한 언급은 없다. 이것은 당시 미사포에 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이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백 년 전까지만 해도 독실한 신앙인은 물론 단정한 일반 여성들까지도 미사포를 쓰지 않고 공공연하게 다닌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 역사학 서재에는, 1940년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어느 프랑스 시골 노파의 기사가 철해져 있다. 그녀는 분명 가톨릭이었지만 그녀의 미사포는 그녀를 아미쉬로 여길 정도로 아미쉬의 미사포와 흡사해 보인다.

 

이어서 296

 

(중략)

그래서 우리는 보통의 미사포보다 길게 내린 미사포를 더 자주 보게 된다. 이것 역시 순종의 상징이다. 여성이 미사포를 쓰는 것은 인생에서 그녀에게 걸 맞는 역할 - 남성의 보조자 을 자각하고 수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02

 

수염 : 구레나룻 전쟁

 

(중략)

두 번째 수염 기르기를 지지하는 성경의 원칙은 창조물은 창조주에 복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립스틱이나 눈 화장을 한 여성을 보면 우리는 그녀가 신이 창조한 모습에 만족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자가 수염을 깎아 얼굴을 좀 더 부드럽고 여성스럽게 가꾸려는 것 역시 똑같은 죄가 아니겠는가?

 

307

 

순종의 기도

 

우리는 소박한 옷을 입고 있지만, 소박한 옷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구호품을 낸다 해도 이러한 선행으로 신의 자비를 구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성찬식의 징표들 자체로는 그저 빵과 와인일 뿐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한다. 신이 그리하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최선의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옷차림과 천국

 

옷차림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는 데려다준다.

 

310

 

(중략) 주방에서는 액화가스를 이용한 냉장고와 스토브, 공기 압력식 믹서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떤 아미쉬 사업체들은 자동응답기를 설치한 곳도 있다. 무선 전화기, 그리고 인터넷을 접속하고 있지는 않지만 컴퓨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아미쉬들은 그들 밖의 세상에 비해 그다지 자주 또는 대규모로 변화하진 않는다. 그들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변화를 내버려두기보다는 그것을 통제하고 제한하기를 원한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많은 방면에서 그들은 성공해왔다.

 

318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 키신저는 정말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중국, 러시아, 아랍국가들, 이스라엘, 그리고 베트남에까지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아내와는 원만히 지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분주했을지는 몰라도, 정작 자신의 문제는 풀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목을 그만두라고 설득하는 동안, 자신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반목을 종식하지는 못했다. (중략)

 

키신저가 집안에서 절망적인 실패를 겪고 있을 때, 세상의 다른 쪽에서 성취했던 위대한 일들은 과연 얼마나 선할 수 있을까? 그가 진정한 평화의 전도사였다면, 그는 세상이 아니라 그 반대쪽, 즉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가정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가정의 문제를 풀지 않고 거기서 연유되는 사회의 문제를 풀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세상은 큰일을 성취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추켜세우지만, 그들의 대단함이란 결코 그만의 것은 아니다. 진정한 위대함이란 화려함과 허례, 오만과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따뜻함과 사랑, 친밀함과 친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어서 319

 

백 년 전의 미국 가정

 

(중략)

우리는 여전히 가정을 튼튼히 만드는 것이 교회의 초석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가정을 파괴하는 것들은 교회 또한 파괴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가 지금 바깥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태를 겪지 않으려면,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똑같은 길을 따라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46

 

시부모들과 화목하게 지내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단지 문제가 거기서 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시부모의 험담을 늘어놓을 때면, 그것은 담을 넘어가서 이웃들, 사제들, 학교 선생님, 그리고 때로는 자기 남편까지 헐뜯는 것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략)

 

시부모들을 험담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몇 년 후에 그녀도 결혼한 아들을 둘 것이고, 시부모가 될 텐데그녀가 과연 며느리와 잘 지낼 수 있을까?

 

346~347

 

젊은이들과 함께 사는 노인들을 위한 격언

 

자신은 언제나 덤과 같은 존재란 것을 잊지 마라.

가족들이 합의한 바를 잘 따라라.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하라.

가족들이 놀러갈 때 항상 끼려고 하지 마라.

잠자리에 일찍 드는 것이 상책이다.

집안에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해 고민하라.

아이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라.

며느리들을 존중하고 감사를 표시하라.

불완전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잘 기억하라.

가족끼리의 활동에 참석하더라도 가끔은 절제하라.

과거와 현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라.

최대한 합심하는 법을 배워라.

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라.

절대 조언을 주려 하지 말라. 먼저 물어오기 전까지는.

마음을 열고, 대신 남의 실수에는 눈을 감아라.

낯선 상황에서는 하느님의 인도를 구하라.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성질내지 마라.

자신의 슬픔을 가족에게 전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새롭고 신선한 취미를 가져라.

말을 아끼고 의미 있는 말만 하라.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곧바로 해결하라.

지금 누리는 편안함, 특히 고독으로부터의 자유를 높이 평가하라.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라.

때때로 느끼는 감사하는 마음은 즉시 표현하라.

우리의 젊음은 한 세기 전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이팅! 그 시절의 정신을 유지토록 노력하라.

-아들, 그리고 여섯 아이들과 함께 사는 증조부모

 

356

 

 

[출산 후 바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로부터 온 편지]

 

물론, 항상 왜라는 물음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길 원해서도 안 되고, 또 하느님께서 마침표를 찍으신 일에 물음표를 다는 일이 있어서도 안되겠지요.

 

뇌성마비로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

 

다서서 살 라마르 딘 디너는,

하느님 품에 안기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났네.

그 아이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몇 명 중 하나-

죄악의 유혹을 모르는.

 

아이는 천국에서 노래하기 위해 이땅을 떠났네,

남은 우리들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서게 하기 위해.

부모와 형제들 아이가 한없이 그리워도-

라마르의 갈 길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네.

 

364

 

급격하게 변화하는 바깥 세상은 보험을 둘러싼 것 같은 다양한 종류의 논쟁거리를 불러왔다. 어떤 아미쉬는 책임보험 정도는 받아들이지만 대부분의 아미쉬는 상업적인 보험이라든가, 재해, 건강보험을 기피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의료비 문제는 아미쉬 구제 계획이라는 아미쉬 내부의 상호부조제도가 생겨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공동체 내의 구성원들이 서로 돕는 방식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367

 

올드 오더 메노나이츠와 보험

 

보험 문제에 대해, 올드 오더 메노나이츠는 분명하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외부의 상업적 보험이든, 공동체 자체의 보험이든 종류를 막론하고 보험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에 대해서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 화재나 기상 재해를 당한 사람, 의료비가 필요한 사람 모두를 자발적 원조에 의존해 보살피고 있다.

 

이어서 368

 

누구를 믿는가 : 하느님인가? 아니면 보험인가?

 

지금 시대에 보험에 든다는 것은 삶의 필수적인 방편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앙이 없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세대에게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은 하늘과 땅에 살아계시며 자신을 보호해줄 하느님과 함께 있지 못하다. 그들은 하느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일을 기필코 실현해보이실 것을 믿지 못한다.

 

그렇다면 보험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국한된 것인가? 슬프게도 대답은 아니다이다. 개신교나 가톨릭 모두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보험에 의지해 지켜내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바깥 세상의 사람들은 재산 손실을 대비해 거대한 회사에 자기 자신을 맡기고 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에게는 그것도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말씀에서 우리 자녀들을 당신의 방식으로 돌보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물론 세상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요즘 이들은 소유한 재산 때문에 고소를 당할까 겁난다고 한다. 그들은 열심히 땀흘려 일해 획득한 것을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보험 없이 산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그렇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그러나 신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같으시다.

 

369

 

기독교인이 고소를 해야 하나?

 

나는 지금까지 이른바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간다는 아미쉬들이 그들 재산 손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법정에 고발해왔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중략)

마태복음 538~42절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고소했을 때 우리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적고 있다. (중략)

로마서 1217~19절에 의하면 누구에게나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언제나 선한 일을 하며 가능한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십시오.”

레위기 1918절에 보면 너희는 원수를 갚지 말고 너희 동족에게 앙심을 품지 말며 너희 이웃을 너희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러한 문구들은 그 뜻이 분명하고, 수없이 많습니다. 부디 우리 각자가 서로에게 힘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어서 370

 

보험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모든 보험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지상적인 정의관, 즉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지킬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관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것은 언뜻 정의로운 듯 보이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빠뜨리고 있다.

 

이어서 371

성경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나눔과 평등함, 즉 어느 누구도 지나치게 많이 갖지 않고, 또 누구도 지나치게 빈궁하지 않을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린도후서 812~15, 사도행전 244~45). 중략.

 

자선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재산 손실을 입었다거나,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면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그 대가를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은 친척들이 도울 의무가 있다. 만약 그 필요가 상당할 정도로 크다면, 지역 신도회에서 기꺼이 도울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올바른 사랑을 가지고 있고, 하느님께 받은 축복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러한 체제는 훌륭히 작동할 것이다.

 

이어서 372

어떤 도둑이나 사악한 자들이 위협할 때, 우리의 생명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지 않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들의 생명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느님께 잘 의지하면서, 우리가 가진 재산에 대해서는 하느님 외에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참으로 모순되게 느껴진다.

 

373

 

정치와 선거운동은 함께 엮어져 있는 것이 때문. 선거운동이란 사람들에게 경도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정치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것을 호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중략.

 

성경은 우리에게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고 가르친다. 우리의 의무는 세금을 기꺼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감사하게 납부하는 일이다. 비록 정부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구현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374

 

술과 마차

 

우리가 마차를 쓰는 이유는, 차량의 소유와 그것의 무분별한 사용이 빚어내는 유혹은 너무도 강력하고 광범위한 것이라 사람들의 영성에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쩐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동차에 적용하는 관점을 술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생활했던 레갑 족속에 대해 크게 칭찬하셨다(35장 참조).

 

이어서 375

 

내 경험으로 볼 때, 가정와 이웃 모임에서 알코올 음료를 허용하는 공동체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지나친 음주로 인해 많은 문제를 겪게 된다. 중략.

자동차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마차를 탄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당한 음주는 괜찮다는 식의 논리를 들이대며 음주를 주장하는 것을 볼 때 나는 참 가당찮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375

 

담배

 

토지 임대료를 내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담배의 해악에 대해 종종 얘기한다. 중략.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기아와 굶주림에 허덕이며, 먹을 것 때문에 울부짖는 천진무구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비옥한 농장에서는 담배가 자라고 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과연 토지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담배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담배 자체를 먼저 없앨 것인가?

 

382관광

 

파는 물건 아님

 

우리 동네 여자들은 관광객들에게 내다 팔 물건들을 만드느라 항상 분주하다. 중략.

장사벌이가 농사보다 훨씬 낫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이란, 우리가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는 정원 장식 같은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을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383~385

 

어떤 사업이 공동체를 일으킬 수 있는가?

 

갖가지 장식들로 가득 찬 자신의 잔디 앞마당에 판매라는 간판을 붙이고 있는 샘 밀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작년에 예쁜 화분과 맑은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어 팔기 시작할 때에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중략.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교회를 위해 쓸 것 외의 물건을 만드는 아미쉬들은 독단적이거나 비양심적인 이들로 치부되었다.

 

이어서 384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농장의 토지가격과 농사에 들어간 생산비의 가격이 상승했다.

(중략)

1980년대에 와서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중략)

아미쉬 인구는 2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은 18세 이하의 젊은이들이다. 문제는 비교적 단순하다. 사람은 너무 많고 땅은 너무 좁다.

처음엔 많은 농부들이 농장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업을 시작했다. 중략. 그러나 많은 이들은 농사에 대한 꿈을 포기했다.

 

이어서 385

경제적인 위협이 아미쉬를 포위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새로운 힘이 작용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아미쉬 마음에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부인들을 멀리해온 동안,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장사를 해왔다. 중략.

 

이어서 386

첫째, 어느 정도까지 관광객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어서 387

두 번째 질문은, 우리는 사용하지 않으면서 관광객들에게 팔 물건을 어느 선까지 확장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때, 두 가지의 성경 말씀을 떠올릴 수 있다. 야고보서 44절에서는, 세속과 벗되는 것이 하느님과 원수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어서 388

로마서 132절에 보면,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을 당한다는 하느님의 법을 알면서도, 그들은 자기들만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옳다고 두둔까지 하고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중략.

 

우리가 현대적 생활방식과 그에 따르는 위험을 진정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거기에 탐닉하는 것을 부추길 수 있는가? 중략.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중략.

그렇지 않으면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속에 담근 바리새인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략.

 

이것이 과연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이 사업이 얼마나 클 수 있는가? 나는 교회의 다른 농사짓는 사람들보다 우월하고, 쉽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1년에 1천 달러 정도를 버는, 작은 헛간을 짓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농장을 떠나 직업을 구한다는 것은 아미쉬에게 분명 해악입니다. 물질적 풍요는 기독교인에게 좋지 않아요. 지나친 돈은 어느 누구에게도 좋지 않지요. 돈은 죄악의 근원이에요. 지나친 풍요는 좋지 않아요.”

 

392

 

가장 큰 위험

 

현 시대에 아미쉬에게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인가? 1979<패밀리 라이프>지에서 던졌던 질문이다.

 

돈은 우리를 영적 생활에서 떼어 놓는다

 

돈만 있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을 영적인 것으로부터 떼어놓기 쉽다.

 

396~397

 

독립전쟁

 

1776, 식민지였던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모든 식민지 사람들은 영국과의 전쟁에 협조할 것을 요구받았다. 당연히 비저항주의자들인 아미쉬는 이를 거부했다. 군대징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벅스 카운티(펜실베니아)의 아미쉬 남자들이 체포되었다. 이 사람들은 감옥에 갇혔다. 빠르게 진행된 재판을 거쳐 아미쉬 죄수들은 사형을 선고 받았고 집행 날짜도 확정 받았다.

그러나 사형이라는 형벌로도 아미쉬르르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지역의 한 독일 개신교 목사가 법정에다 투옥된 아미쉬들을 석방해 달라는 청원을 냈다. 목사는 투옥자들이 징집을 피하기 위해 유럽을 떠나 온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유럽에서 그들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일을 미국에서 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410

 

저는 421일 두 곳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한 분은 우리 마을에서 북쪽으로 1마일쯤 떨어진 곳에 사시던 거의 80세에 가까운 분인데, 좋은 이웃이었지만 신앙을 갖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 중에 그를 형제라 부르는 것을 보며 저는 엄청난 교훈을 얻었습니다. , 어떻게 우리가 그 사람을 형제라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고백을 하지 않고서도 만족스런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의 설교 속에 천국이란 말은 어려 차례 있었지만 지옥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앞세우면서, 사탄이라는 이름은 입 밖에 내지도 않습니다.

 

419

 

세 명의 양심적인 병역 거부자들이 불려왔다. 환자가 들고 있는 면도날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즉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중요한 시험이었다. 몰려든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보고 있었다.

 

세 사람은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그리고 잠시 상의했다. 두 사람이 나가서 매트리스를 들고 왔다. 한 사람은 남아서 기다리다가 두 사람이 매트리스를 들고 왔을 때 환자가 갇혀 있는 쪽의 문을 열었다. 매트리스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두 사람이 들고 문간을 통과하는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두 사람이 들어 올리고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그들은 환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좀 도와주시겠어요?”

환자는 자신의 분노와 조금 전의 난폭한 행동 따위를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면노달을 떨어뜨리고 매트리스를 붙잡았다. 그 순간 방문을 열었던 아미쉬 소년이 재빨리 면도날을 들고 방을 빠져나왔다.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은 폭력 없이 승리로 끝이 났다.

 

457~458

 

마침내 비가 쏟아졌다. 큰 빗방울들이 땅에 떨어지고 수천 개의 작은 물방울이 구슬조각처럼 튀어 올랐다. 나는 밭을 생각했다. 지난 2주일 동안 내가 밭에 줄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이 밭에 들어갔다. 밭 전체에 물이 공급됐을 뿐 아니라 마당, 목초지, 옥수수밭, 나무 등 비를 맞은 수천 평의 땅에 있는 모든 작물들이 이 비로 해서 모두 살아나고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갤런이나 톤이라는 단위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양의 물이었다. 이 많은 물과 내가 매일 길어다가 밭에 준 2~3 갤런의 물을 비교하면서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야 이 엄청난 비에 비하면 내 물뿌리개는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거냐!”

내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네 물뿌리개가 비가 오기 전까지 작물들이 살아 있도록 한 거야, 만일 네가 물을 주지 않았더라면 작물들은 다 죽고 말았겠지.”

그녀는 지나가듯이 아주 간단히 말했지만 이 말은 내 마음에 와서 박혔다. 그 말을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말하자면 또 다른 종류의 물뿌리개가 참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된다.

 

465

 

더 나은 계획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나와 내 남편은, 홀로 되셔서 교회 집사로 있는 할아버지와 함께 농장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나는 축사 가까이에 있는 기름 탱크 옆에 난 자동차 바퀴 자국을 발견했다. 우리는 밤중에 지켰다가 도둑을 잡아보기로 했다.

그들이 다시 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다. 탱크 안에 있던 석유를 빼고 그 안에 물을 대신 채울 생각도 했고, 심지어 공포탄을 쏴서 도둑을 놀래키자는 말도 나왔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동차 바퀴에 총을 쏘자는 말도 나왔다.

 

할아버지는 이런 계획에 찬성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 계획을 취소하면, 내가 한 번 해보마.” 할아버지는 체인을 가져와서 탱크 마개에 호스를 더 단단히 조이시고 다이얼 자물쇠로 잠그셨다. 그리곤 탱크 위에다 다음과 같이 쓴 종이를 붙이셨다. “만약에 석유가 필요하다면 집으로 들어오세요. 좀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남의 것을 훔칠 필요가 없지요.” 그리곤 할아버지의 성과 이름을 적으셨다.

 

다음날 밤 2시 반쯤, 다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그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도둑들은 곧 떠났다. 그들은 큰길에 도착할 때까지 자동차 전조등을 켜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로 그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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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정원 - 부모가 아이를 만들고 아이들이 미래를 만든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원마루 옮김 / 달팽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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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세상 때문에 아이들을 뒤로 미루어 놓은 현대의 일상 속에서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공동체의 삶 속에서 건져올린 실천과 행함의 지혜로 아이들의 미래가 현재이며, 내일을 만드는 아이들은 부모가 만든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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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baal 2015-01-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연대 너무 소중한 제안이었습니다! 님의 글을 출력해서 찬찬히 읽고 있답니다. 읽을때마다 너무 감사 감사하고 있습니다.

AgalmA 2015-01-27 13:33   좋아요 0 | URL
과찬이세요. 저도 antibaal님 글 읽으며 힘이 나요^^... 중간중간에 글을 끊임없이 수정하는데, 그러지 마세요ㅜ...저도 부족한 게 많아서;
 
아미쉬 공동체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1
브래드 이고우 (Brad Igou) 지음 / 들녘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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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가 직접 쓴 글을 브레드 이고우가 편집하였는데, 아미쉬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 그들의 역사와 삶, 교회와 존재 방식, 특히 농업에 대한 관심, 자녀교육 등등. 아미쉬의 생각과 결정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대안이 될 깊은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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